2017.5.21  7편  보스니아 모스타르

스플리트를 관광하고 1시간에 걸쳐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보스니아 모스타르 국경을 넘어 오느라 시간도 걸렸지만 그래도 나은편이라고 한다. 어느때는 2시간이상 걸린다고 한다. 서유럽은 거의 모구 통과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일일히 여권을 조사하니 말이다.

헤르체코비나의 수도였던모스타르는 한때 양민족의 화해의 상징이었던 모스타르 다리 를 조망한다.

그 추억들을 아래에 담아본다.

모스타르         Mostar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가장 큰 도시로 네레트바 강을 끼고 있으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사라예보 다음으로 잘 알려진 주요 관광지이다. 버스 터미널이 위치한 신시가지는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금 걸어서 구시가지로 넘어 오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모스타르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에서 쉽게 방문이 가능하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크로아티아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세르비아인도 상당히 거주하고 있었으나 전쟁 이후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지금은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도시를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 교회



모스타르 성당 종탑


주민들의 정성 관광 산업의 발자취 아름다운 주택

성당 종탑

상당과 종탑


건물 곳곳에 전쟁의 상처(총탄 자욱)가 선명히 남아있다


벽돌 건물에 뚤린 무수히 많은 총탄 자국 을 본다.

시가지 쇼핑

여인네들의 해맑은 미소

총탄의 흔적 건물 부서진 건물이 그당시를 영화 처럼 느껴본다 아직도 군데군데 포탄 자국이 남아있고, 무너진 집과 건물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



점원의 아름다운 미소 카메라를 보더니 향긋한 미소로 대답하는 아가씨

모스타르 입구 모스타르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모스타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남서부에 위치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슬람풍의 중세도시이다.

모스타르란 크로아티아어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관광객으로 사진찍을 여력조차 힘들고




스타리 모스트 Stari Most“오래된 다리”라는 뜻으로 1557년 오스만 투르크 의 하이

레딘이 1,088개의 하얀돌로 지었는데 길이 30미터 폭 5미터 높이 20미터 아치형 다리다.

 이슬람인과 기독교도 마을을 이어주었던 다리는 1993년 크로아티아의 포격 으로 붕괴되었다. 



좁은길에 쇼핑 선물가계로 더욱 붐비고


모스타르 (오래된 다리) 앞의 문구

 (잊지말자 '93. 1993년 내전으로 파괴된 다리를 복원하고 새겨 놓은 문구)



모스타르 가는 길 (터키인의 거리)


어딜가나 아이스크림 역시 맛있다


터키인의 거리 (카페, 식당, 기념품점,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모스타르의 카페, 레스토랑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오래 받아, 터키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호텔도보이고

인증샷도 빠지지 않고


역시 관광객은 알아보는 아가씨 포즈도 해맑은 미소로 아름답게

장인정신이 묻어나는곳

 모스타르 (오래된 다리) 앞의 문구

(잊지말자 '93. 1993년 내전으로 파괴된 다리를 복원하고 새겨 놓은 문구)

모스타르는 아드리나해로 흘러가는 네레트바 강 연안에

강의 북쪽에는 같은 슬라브민족이면서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들이,

남쪽에는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은 다양한 문화와 민족과 종교가 혼재되어 있는데

원인이 되바로 이러한 점이 내전 때 많은 모스크들과 아치형 다리가 파괴된 원인이 되었다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대표하는 오스만 건축물로 높이 약 20m, 길이 29m의 아치 형태로 된 간결한 석교다. 다리는 중앙을 향해 급경사르 이루고 있으니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자. 양 끝에 있는 탑 중 동쪽탑은 다리와 관련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탑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담력을 테스트 하기 위해 탑에서 뛰어드는 사람도 있따. 밤에는 조명이 밝혀 진다. 


예수상을 손안에 넣는기술


모스타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993년 내전으로 파괴된 것을 2004년 다시 복원 하였다)


모스타르 한복판을 유유히 흐르는 네레트바 강

모스타르는 아드리나해로 흘러가는 네레트바 강 연안에

강의 북쪽에는 같은 슬라브민족이면서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들이,

남쪽에는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은 다양한 문화와 민족과 종교가 혼재되어 있는데

원인이 되바로 이러한 점이 내전 때 많은 모스크들과 아치형 다리가 파괴된 원인이 되었다었다


바닥의 돌이 워낙많은 관광객 때문에 반질반질 미끄러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치형 다리가 바로 모스타르 다리 (Slari Most)이다.

다리는 양쪽에 타워 같은 건물을 두고 아치형 형태로 바닥엔 대리석이 깔려 있다




다리 양쪽의 건물들은,

다리 서쪽 (오른쪽)의 높은 건물은 옛날엔 감옥으로 쓰였다고 한다.

다리 동쪽 (왼쪽) 건물은 다리통제소

그 다리가 보스니아 내전 중 파괴되었다


내전이 끝난 후, 강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다리의 파편들을 꺼내 복구하였다.
모스타르의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모스타르 도심을 흐르는 네레트바 강

강을 사이에 두고 가톨릭교도들과 무슬림들이 나뉘어 살고 있다.




 모스타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993년 내전으로 파괴된 것을 2004년 다시 복원 하였다)

 (자갈 포장길이 인상적이다)

위에서 본 모스타트

평화의 상징인 모스타리 다리
모스타르 도심을 흐르는 네레트바 강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는 다이버로도 유명한데

관광객들이 다이버에게 일정량의 돈을 주면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린다고 한다.




바닥의 돌이 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달고 달아 미끄러워


조금 걸어 들어가니 이슬람풍의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넓지 않은 골목길엔 여행객들이 거의 밀려서 다니고 있다.

그 상점들 사이로 외국인들이, 여행객들이 밀고 밀려가면서 다닌다

쇼핑 거리 이모 저모 구경해보세요

낭만의쇼핑거리 없는 물건이 없네


어느 수도자가 미소띤얼굴로 멋진 포즈를 취해주고

아름다운 수공예품

아름다운 수공예품

아름다운 수공예품

포토죤 차지하는 것도 전쟁

관광객이 많아 사진찍을 자리도

모스타르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네레트바강() 연안에 위치한다. 주변 일대에서 포도 ·과일 ·잎담배가 재배되고, 담배 ·섬유 ·목재가공 ·비행기 공업도 활발하다. 또 부근에 있는 석탄 ·보크사이트 채굴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중세 건축물이 많으며, 로마 시대의 성(), 1556년 건설된 다리, 터키령 시대의 이슬람교 사원 등이 유명하다. 18781918년 오스트리아 지배 때에는 세르비아 애국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느낀 모스타르의 분위기는 이슬람이다.

마치 터키의 어느 소도시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터키를 여행하면서 들었던 분위기의 음악이고

거리의 분위기도 터키같다.

관광객들의 식사하는 모습이 정겨웁다

아주어린 관광객 엄마의 곁에서 무얼 배우나



강변에서 보이는 모스타르 (오래된 다리)

물담배를 피우고 있는 주민들




모스타르에서 내려다 보이는 네레트바 강



네레트바 강 상류쪽


네레트바강 오른쪽의 이슬람 지역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다


코스키 메흐메드 파시나 자미야

1619년에 세운 이슬람사원으로, 스타리 모스트의 북쪽에 있다. 첨탑과 강 근처에 잇는 테라스는 스타리 모스트가 잘 보이는 사진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밤에 조명이 켜진 스타리 모스트도 아름답다. 예배시간(금요일 12~15)에는 입장할 수 없다. 


네레트바강가의 카페



파괴된 다리를 복구하는데 원조한 국가들의 명패

 (이태리, 네덜란드, 터키, 유럽개발은행,크로아티아 등)

아름답지만 슬픈나라 보스니아로의 여행은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장소였다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모스타르 도심으로 들어간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가엔 폭격으로 무너진 집들이 서 있다.

건물은 멀쩡하다고 해도 외벽은 총탄자국으로 내전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느 벽돌 건물에 뚤린 무수히 많은 총탄 자국 을 본다.

아직도 군데군데 포탄 자국이 남아있고,

무너진 집과 건물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


모스타르 대성당 (아직 미완성이다.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모스타르를 떠나며, 보이는 네레트바 강과 모스타르의 집들

네움으로 가기위해 국경을 3번이나 넘는다 국경넘는시간이 2시간이나 걸린다

아드리아 해안의 네움호텔

 (길이 약 2km의 해안 도시 네움은 보스니아의 유일한 바다쪽 출구인 해안 도시이다)

아드리아네움호텔 저녁식사


네움(Neum) - 보스니아에는 20의 길지 않은 해안선이 있는데, 휴양도시 네움(Neum)이 그곳에 있다. 네움은 크로아티아의 해안선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티토가 구 유고 연방을 집권하면서, 모든 종교들이 모여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해안선 일부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네움도 이때에 보스니아의 영토가 됐다.

1970년대 말 보스니아 인구의 3-40%는 종교를 초월한 민족 간 혼혈이었다. 티토의 유고슬라비즘은 세르비아니즘을 막고 하나로 된 남슬라브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독자적 공산주의를 이룩한 티토는 내정에 간섭하려는 소련의 스탈린과 결별했다.


네움 아드리아 호텔에서 보이는 빨간지붕의 예쁜 집들과 아드리아해




다음편을기대하세요




2017.5.21  6편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아드리아호텔서 하룻밤을 지내고 또다시 짐을싸고 1시간 버스로 이동 스플릿으로 간다.

중부 달마시안의 황홀한 꽃이라 일칻는 스플릿의 모습이 어떻한지 궁금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가장 위엄있는 로마유적중 하나인 디오클레티안궁전 과 페에타 광장, 마리아해변을 보러 지금 출발한다.


스플리트

반도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에 수심이 깊은 보호항이 있다.옛 시가지의 중심 부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안에 자리잡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05년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313년 사망하기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거대한 이 궁전(295~305 세움)에는 바다를 향하는 두께 2m, 높이 22m의 벽과 북쪽을 향하는 높이 15m의 벽이 있다. 원래 이 궁전에는 4개의 성문과 16개의 탑이 있었는데, 그중 3개의 탑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옛날에는 아드리아 해의 파도가 남쪽 벽까지 밀려왔으나 이제는 가로수가 줄지어 심겨진 산책로로 인해 성벽까지 이르지 못한다


이 궁전이 세워진 이래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거주해왔으며, 로마 시대뿐만 아니라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건축물과 장식물들이 있다. 크로아티아 당국은 로마 시대의 유적들을 더 발굴하고 중세 초기의 유물들을 밝혀내기 위해서, 절충적인 양식의 건축물들과 현대적인 특색들을 보존하기 위해 힘써왔다. 지금도 주민들은 이 궁전을 박물관으로서가 아니라 시의 중심으로 여긴다.

대성당과 세례당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기둥이 늘어선 중정(中庭)에는 카페가 있다. 로마 시대 양식의 아케이드에는 가게들이 즐비하며 궁전의 동문 바로 바깥쪽에는 이 시의 주요시장이 있다. 그러므로 관광객들은 시민들의 빨랫줄 아래를 거닐면서 로마 시대 및 그 이후 모든 시대의 건축유적을 보게 된다. 박물관으로는 크로아티아의 조각가인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들을 전문적으로 소장한 박물관과 무기 박물관이 있다.


스플리트 (해안 풍광이 아름다운 휴양도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이 있다)

스플리트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라 야자수가 많다)

스플리트
- 청정 아드리아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휴양도시이다 -
고대 로마의 황제가 자리에서 물러난 후이곳에 궁전을 세워 여생을 보내고 싶어 했다고 하여 도시 전체가 '황제의 궁전' 으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이자 로마유적 가운데 가장 보전 상태가 뛰어난 디오클레티안 궁전이 있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로렌스 성당과 시청사가 있다. 

디오클레시안 궁전 드러가는문 양쪽에 상가가 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 들어가는 길의 기념품상

디오클레티안 궁전 안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의 첨탑이 우둑 서있다)

피곤에 지친 사랑하는 사람을 등에 업고

디오클레티안 궁전 안 (지금은 일반인들의 주거지가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 안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의 첨탑이 우둑 서있다)

성당 종탑


황제의 아파트 Vestibule 는 바닷가 전망 좋은 방에 활 모양의 창을 낸 신하들의 알현 대기실 등이 있는 데,

700명의 시종과 하인들은 반대편 구역에 거주했다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지 오래라

종탑 오르는 계단


종탑에서 본 스플리트항 풍경

가톨릭 성 도미니우스 성당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 8각형으로 세웠는 데,천장의 돔은 코린트식 기둥이 받치고 있고  채찍질 당하는 제단이 뛰어나며 탑 에 오르면 스플리트 시가지를 바라볼 수 있다



옛 로마 황제의 아파트 입구의 알현실 (민속음악팀의 공연이 있다)

 옛 로마 황제의 아파트 입구의 알현실 (민속음악팀의 공연이 있다)

로마 황제 아파트 알현실의 돔 지붕 (지붕이 붕괴되어 뻥 뚫려있다)

궁전내 최대 광장인 열주광장


스플리트 성내 십자형도로가 만나는 중심인 페리스틸 광장 Peristyle 은 열주 광장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자신을 주피터 (제우스) 신의 아들이라며 신격화를 위해 세웠지만 이젠 폐허가 된 주피터 신전

열주광장 (16개의 열주식 대리석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열주광장 (황제가 회의나 행사 등을 주재한 장소)


스플리트 성내 십자형도로가 만나는 중심인 페리스틸 광장 Peristyle 은 열주 광장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자신을 주피터 (제우스) 신의 아들이라며 신격화를 위해 세웠지만 이젠 폐허가 된 주피터 신전


스플리트 구시가의 골목

성의 북문 (황금의 문)

아치형 성문

디오클레티안 궁의 성벽 망루


페에타 광장 노천카페

아파트 빨래걸이

스플리트 현지가이드 쏘냐


철의 문(서)과 연결된 페에타 광장

(중세 양식의 건물이 즐비하다. 주변에는 레스토랑, 카페 등이 모여 있는 중심가)

성안 골목길 (과자상점들이 많다)

과자가 너무 맛있어보여 300g 3유로에 샀다

1,700 년 전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에 의해 지어진 신전이 있는 대리석이 깔린 광장에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로마군인 복장을 한 병사가 서 있는걸 보니 사진 촬영하는 것으로 새삼 관광지임을 느낀다!  

1,700 년 전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에 의해 지어진 신전이 있는 대리석이 깔린 광장에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로마군인 복장을 한 병사가 서 있는걸 보니 사진 촬영하는 것으로 새삼 관광지임을 느낀다!  


황금의 문(북) 앞의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

 (10세기의 대주교로 크로아티아에서 존경 받는 종교 지도자)






이탈리아 피자 먹음직스러운데 시간이 없어 못샀네

과자도 사고


열주광장옆 박물관



박물관안에서

박물관안에서  돌보석

박물관안에서  돌보석


궁전 나가는문

궁전 나가는 길목에 기념품 상점들


크로아티아_스플릿_디오클레티안_궁전_


이바나 파블라 광장의 시청건물

이바나 파블라 광장의 성 로렌스 대성당


스플리트 디오클레시안 궁전 앞

디오클렌티안 궁전의 남쪽

광장의 노천카페

스플리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스플리트 시가지 모형도


디오클레티안 궁전 안 모형도


아이스크림 가계 점원도 포즈를 취해주고 우리는 하나씩 맛을 보았다

맛이 좋아  모두들 나이에 관계없이 사먹는다

우리일행도즐거운 맘으로 여행을 달콤하게 입맛을 돗군다


기사들도 더위에 지친듯

노천카페에 한쌍의 여행객




스플리트를 뒤로하고..(아드리아해를 떠나 보스니아 모스타르 로..)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2017.5.20 5편  크로아티아 자다르

 류블랴나를 보고 다시우리는 크로아티아 자다르로 간다

하루에 2개나라를 왔다갔다 한다. 아름다운 석양과 바다오르간으로 유명한 자다르 여행을 지금부터 시작한다. 니콜라 바시치가 세계 제일이라 감탄한 세계최초 24시간 연주되는 바다오르간은 어떤 모습일까?


자다르 다른 표기 언어 Zadar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의 주도인 자다르는 아드리아 해 북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특히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크로아티아 주요 도시뿐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갈 수 있다.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 도시로 고대 로마 시대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지배하는 동안 전형적인 고대 로마 도시를 건설했다. 중세 시대 때는 로마 교황청에서 직접 이곳을 관리하기도 했고, 14세기 말엔 크로아티아 최초로 대학이 세워졌다.


 자다르 근교에는 14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코르나티 군도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12야〉의 배경이 된 곳이다. 고대 도시가 가져다주는 매력, 그리고 석양이 특히 더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안, 근처 섬들의 신비로움까지 더해진 자다르는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도시로 손색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건물의 75%와 항구시설들이 파괴당했다. 1944년에 해방되면서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으며,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에 따라 크로아티아의 영토가 되었다





휴계소에서 촬영을


이날은 주민 결혼식이 있어 뒷풀이를 2일동안 하고있었다.


페트 부나라 광장 Trg Pet Bunara

페트 부나라 광장은 현지어로 ‘다섯 우물의 광장’이라는 뜻이다.


페트 부나라 광장 Trg Pet Bunara

페트 부나라 광장은 현지어로 ‘다섯 우물의 광장’이라는 뜻이다.



본래 해자가 있던 자리였는데 1574년 당시 베네치아 인들이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에 대비해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이곳에 저수지를 만들고  5개의 우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위협이 사라진 후에도 1838년까지도  자다르 시민들이 사용하던 중요 식수원이었는데  그 우물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다섯 우물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남쪽 아래로 이동을 한다.

바로 자다르의 입구인  랜드 게이트(Land Gate)를 찾아 가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주인이 자주 바뀌어야 했던 자다르는 12세기 이후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에 귀속되어 있었는 데 남동부 유럽을 장악한 오스만 투르크가  지속적으로 침입하면서 잦은 전쟁을 치렀고  결국 베네치아 공화국은 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자다르 외곽에 튼튼한 성벽을 쌓았다.


이 성벽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요새 중 가장 규모가 컸다는데  지금은 성곽 일부와 4개의 문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중에 제일 유명한 문이 바로  땅의 문인 랜드 게이트다. 이제 우리는 그곳으로 향한다.

다섯 우물의 광장을 뒤로하고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비교적 큰길로 내려서니 그곳에 콘크리트로 마감해 버린 듯한 성문이 보인다. 바로 랜드 게이트의 뒷모습이다


랜드 게이트(Land Gate)  랜드 게이트는 1543년에 지어진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축물로 문 위쪽에는 자다르의 수호성인인 성 크리소고누스(St. Chrysogonus)의 기마상과  그 위에 성 마르코의 상징이자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달린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아름다운 결혼식 사진도 찍고

시로카 거리(Siroka Ul)

아드리아 해안에서 가장 긴 로마시대 직선 도로인 시로카 거리는 길이가 800m로 자다르에서 가장 붐비는 중심 거리다.


시로카(Siroka)는 크로아티아어로 넓은 길을 의미하지만 지금은 차량이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자다르를 찾는 사람들은  반드시 걷게 되는 거리다.  이 길에서 맨 처음 만나게 된 곳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성 아나스탸샤 성당이다.

​​성 아나스탸샤 성당(Cathedral of st. Anastasia)

성 아나스탸샤 성당은 성 아나스타샤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성 도나트 성당 내부

현재 성당 지하에는 도나투스 주교가 헌정한   성 아나스타샤의 대리석 석관 등  그녀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정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 갈수 없다.  다만 유리창 너머로 내부를 볼 수 있다 




성 아나스타샤는    로마 귀족 프라이텍스타투스의 딸이자 기독교 신자였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284년~305년)의  기독교 박해 기간 중에 체포되어 순교한 성녀다.


성 크리소고누스 ▲


그의 시신은 나중에 해변에서 자다르의 사제이자  훗날 성인으로 시성되는 조일로에게 발견되어  매장되었고 하며 그로인해 자다르의 수호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성 크리소고누스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교회 등에서  모두 성인으로 시성되어 공경을 받고 있는데 특히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 아나스타샤를  그의 영적인 딸로 인정하여 12월 22일을 공동축일로 제정하였다고 한다. 

한편 9세기 무렵  성 도나투스( St. Donatus)는 성 아나스타샤의 유골을  콘스탄티노플에서 자다르로 옮겨온 후 그녀에게 봉헌하는 교회를 세웠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성 아나스탸샤 성당이다.

당시는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12세기 무렵에 알렉산더 7세 교황의 지시에 의해3개의 회랑으로 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하여 1177년에 봉헌되었다.

하지만 1202년 십자군의 침공을 받았을 때 심각하게 훼손되는 바람에 오랜 기간에 걸쳐 보수공사를 마치고

1285년에 다시 완공된 것으로 달마티아 지방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다.


나로드니 광장

시계탑에는 자다르가 2016년 유럽 최고의 여행지로 선정 (EUROPEAN BEST DESTINATION 2016 ZADAR) 이라는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나로드니 광장은​  자다르 구시가지의 중심 광장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자다르의 사회, 정치, 행정적 중심 역할을 하던 장소다.   나로드니(Narodni)는 크로아티아어로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의 광장(People´s Square)’을 의미하는데 그리 넓지는 않지만 주변으로  시청사와 시계탑, 관광안내소를 비롯해

 카페, 레스토랑 등이 위치하여 현지에서는 만남의 장소로도 불린다.   이 광장 서쪽에는  1562년에 지은 르네상스 양식의 도시 망루가 있으며 현재시간 오후 5시22분을 가리키고 있는    고풍스런 시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시계탑은 1798년 오스트리아 통치를 받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시계탑 옆 건물은 시청사이고맞은편의 건물은 미술관이다.


나로드니 광장을 지나서부터 이어지는 길은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재위:1342년~1382년)이자

  폴란드의 국왕(재위: 1370년~1382년)이던 러요시 1세의 왕비인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딴 엘리자베테 코트로마닉 거리(Ul. Elizabete Kotromanić)다.


종탑(Bell Tower)

  ​​​성 아나스탸샤 성당 옆으로는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5세기에 완성된  56m높이의 종탑이 있는데

현재의 종탑은 성당과 함께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어 1989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종탑 180개 계단을 오르면 바다와 어우러진 자다르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데 시간에 쫒기어

성 아나스타샤_대성당

여기도 아이스크림 맛만봐도 즐거워

노천 카페

시로카 거리가 끝나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노천카페 테이블에 앉아 음식과 음료 등을 즐기고 있는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바로 나로드니 광장이다.

나로드니 광장 Trg Narodni



페트라 조라니차 광장(Trg Petra Zoranića)

페트라 조라니차 광장은 한 눈에 봐도 무척 깔끔하다.  광장바닥을 2011년에 대리석으로  다시 시공했기 때문이다.


성 도나트 성당


중세 초기 크로아티아의 기념물로 자다르를 상징하며 로마 포룸에 있다. 처음 교회는 27m높이인 삼위일체 탑이었다. 그러나 전통에 의하여 9세기에 주교 Donat가 성당을 세웠다. 16세기 부터는 성 도나트 (St. Donat) 의 성당으로 불렀다. 성당은 원통형 모양으로 만들어 졌고 내부는 이중 공간으로 되어있다. 오랫동안 신성한 예배 기능에는 벗어난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행사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엔 성 도나트의 음악의 밤을 오랫동안 열었었다. 성당 옆에는 11세기부터 있었던 주교 궁전이 있다.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까지 이 건물은 여러 번을 다시 지었다. 현재의 모습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만든 것은 15세기 때이다. 지금의 외관은 183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성 도나트 성당

로마포럼

성 도나트 성당


성 도나트 성당 첨탑

성 도나트 성당

성 도나트 성당


성 도나트 성당

성 도나트 성당



포럼광장

포럼광장

포럼광장

제트스키 경기 연습이 한창이다

바다오르간 파도가 치면 물결의 힘에 의하여 구멍속에서 구멍마다 각각 다른 소리가 난다

바다오르간

바다오르간


아드리아 해변을 촬영하는 모습


여기도 신혼부부 촬영현장

바다 오르간 속이 궁금한가봐

일행들의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지친모습들

일행들의 바다를 감상하며

저바다를 건너면 이탈리아 베네치아 인데





다음편에 연속됩니다



 

2017.5.20  4편  슬로베니아 루블랴나

오늘은 3개나라를 거친다  크로아티아 에서 슬로베니아로 갔다가 다시 크로아티아 자다르로간다.

블레드를 보고 슬로베니아 루블랴나로왔다

류불랴나는 볼것이 많다.  프리셰르노브광장,  토모스토베(트리플브릿지), 구시가지관광

그 추억의 사진들을 아래에서 본다.



 

류블랴나

다른 표기 언어 Ljubljana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는 슬로베니아어로 ‘사랑스러운’을 뜻하는 이름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영향으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많이 지어졌다. 하지만 이후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도시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스타일의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바로크 양식과 묘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가 지금의 현대적이고 젊은 류블랴나와 잘 어울린다. 파울로 코엘로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배경지로 잘 알려져 있는 도시로, 소설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활발하고 개방적인 느낌이 드는 류블랴나는 유적지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강을 따라 늘어선 카페에 머물거나 산책을 즐기고, 자연 속의 도심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류블랴니차 강 유역에 위치해 있다. 북부 디나르알프스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자연적으로 형성된 저지(低地)에 자리잡았다. 이곳은 짙은 안개가 자주 낀다.

BC 1세기에 로마 도시인 에모나가 있었다. 에모나 시는 전략도시로서 류블랴나 협곡을 통제하는 파노니아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으나 약 5세기경에 이방인들에게 파괴당했다. 슬라브족이 루비가나라는 이름으로 재건한 뒤 10세기에 마자르족에게 다시 파괴당했다. 12세기에 카르니올라 공국으로 넘어갔고 1270년에 보헤미아의 오타카르 2세에게 정복되었으나 1277년에 라이바흐라는 이름으로 합스부르크가(家)의 지배를 받았다.

프레셰렌 광장(Prešernov trg)

프레쎼렌 광장은 슬로베니아 어로는 프레세레노프 광장(Prešernov trg)이라고 하는데 류블랴나의 중심 광장이며 만남의 장소, 각종 축제, 류블랴나 카니발, 콘서트, 스포츠 경기, 정치 집회 등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가장 번화하고 활기찬 장소로  위에 많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어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다.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1461년 류블랴나는 주교 소재지가 되었다. 1809년 프랑스에 점령되어 1813년까지 일리리아 지방의 정부 소재지가 되었다. 1821년에는 신성동맹 국가들의 모임이었던 라이바흐 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1849년 빈에서부터 오는 남부 철도가 건설됨으로써 발전이 빨라졌고 오스트리아 지배 밑에서 슬로베니아 민족주의가 자라나는 중심지가 되었다. 1797년 이곳에서 슬로베니아 일간지가 최초로 발행되었다. 외국에 의한 통치는 1918년 유고슬라비아와 합병되면서 종식되었다.


류블랴나는 중세시대 성채가 특징이다. 성채와 강 사이에 옛 시가지가 있으며 1895년에 심한 지진을 겪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바로크 양식의 오래된 건물 몇 채만이 남아 있다. 신시가지에는 대규모의 티볼리 공원이 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 대부분은 18세기에 지은 것이다. 그밖에 박물관, 화랑, 오페라 극장, 에드바르드카르델리대학교(1595, 류블랴나대학교로 창립), 신학교(1919), 3개의 예술원, 슬로베니아 과학예술원, 야금학연구소 등이 있다

프레셰렌 동상 (Prešernov Spomenik)

이곳에 시인의 동상을 세우자는 아이디어는  1889년 초등학생에 의해 처음 나왔고,  52명의 슬로베니아 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1898년 류블랴나 시장 이반 흐리바르(Ivan Hribar)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7명의 조각가들의 시안 중 Zajec의 작품이 뽑혀   1900년 10월에 정식 동상 제작을 의뢰 하였다.

동상의 대부분의 과정은 오스트리아에서 이루어졌는데  그가 사망한지 56년이 지난 1905년 9월 10일에 완성되었다.  청동상의 높이는 3.5m이다.   프레셰렌의 머리 위에 있는 여인은  바위 위에 앉아 월계수 잎을 들고 있는 뮤즈인데.  이 뮤즈까지의 높이를 더하면 9.6m에 이른다.


건물 벽에 한 여인의 부조가 붙어 있는  노란색 건물을 볼 수 있다. 건물은 프레셰렌이 평생 짝사랑했다는

율리아 프리미체(Julija Primic 1816~1864)가 살던 집이다.



율리아 프리미체 ▲

시인이 되기 전에는 변호사였던 프레셰렌은  1834년, 부유한 상인의 딸인 젊고 아름다운  18세의 ‘율리아 프리미체’를 사교모임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의 나이 34세 때였는데  소심했던 프레셰렌은 16살이나 어린 율리아에게  그 사랑을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결국 율리아와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1836년, 안나 옐로브섹(Ana Jelovšek)이라는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는 아이 셋을 낳은 안나를 평생 부양하고 배우자처럼 대했지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편 율리아는 1839년 부와 지위가 높은 남자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럼에도 프레셰렌은 멀리서 그녀를 바라만 보며  짝사랑을 이어갔으며, 그녀를 향한 수십 편의 시를 썼다.

그리고 1849년 2월 8일, 49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율리아를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이와 같은 프레셰렌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이곳에 동상을 세울 때 두 사람을 서로 마주보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낭만적이다.

이 도시는 오스트리아로 가는 철도 및 도로교통의 요지이다. 수력발전소용 터빈을 생산하며 천연섬유, 합성섬유, 알루미나, 종이 및 신문용지, 신발류, 가죽, 가전제품, 화학품, 비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세갈래다리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카메라만 대면 자동으로 미소를 지으면 포즈를 취해준다

미소를 지으면 포즈를

아담과

이브

노천 카페

푸줏간다리 유리다리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보든코브 광장에 있는 이 노천 시장은 관광객들뿐 아니라 현지 사람들이 찾는 재래시장으로

류블랴나의 중앙시장이다.


매일 싱싱한 채소, 계절 과일, 토산품,  수공예품 등을 팔고 있는 곳인데,  이미 파장 무렵인 듯 일부 진열대에서만 과일을 팔고 있다.




드래곤 브리지 Dragon Bridge

드래곤 브리지는 처음에는 목조 다리였으나  1900년~1901년 사이에 철근 콘크리트로 건축한 다리로

다리교각 네 모퉁이에 청동으로 만든  드래곤의 형상이 세워져 있어  '드래곤 브리지'로 불리고 있다.

류블랴나 도심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이 다리 아치에는 1848과 1888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요세프(Franz Josef) 황제의 40주년 통치기념을 뜻한다.



드래곤 브리지 교각 네 모퉁이에 있는  4마리의 드래곤은  자니노비크(Zaninović)가 설계하고 비엔나에서 제작되었는데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날개를 한껏 치켜 올린   용맹스러운 자태로 다리를 지키고 있다.

북동쪽 교각 모퉁이 드래곤 ▲

하지만 그 모습은 흔히 우리가 아는 용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서양의 용과 동양의 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용과 드래곤은 똑 같이 상상 속의 동물이다.  동서양을 망라하여  전 세계 모든 문화 속 전설이나 신화 에 등장하는 존재이지만  동양의 용(龍)은  우주 만물의 질서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지며  제왕(帝王)을 상징하는 동물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한 모습인데  날개가 없어도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


동양의 용모습


하지만 서양의 드래곤(Dragon)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다 주는 포악하고 두려운 존재로 괴물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을 괴롭히고 해치는 악으로 상징되었다. 그래서 영웅이 등장하여 이들 괴물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 모습도 공룡 및 익룡이나 도마뱀 내지는 악어 혹은 뱀을 닮은, 강하고 무시무시한데,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를 갖고 있으며, 등에는 박쥐와 같은 날개가 달려있어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입에서는 불이나 연기를 내뿜는다고 한다. 대체로 몸집이 거대하다.


이렇듯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은 생김새, 성격, 의미 등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동물일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다리는 드래곤 브리지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어쨌든 류블랴나의 드래곤은 류블랴나의 상징과도 같아 류블랴나 시의 깃발에도 등장할 정도인데

그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신화에 의하면 그리스의 테살리아의 왕 펠리아스는  이아손(Iason)이라는 조카가 있었는데,  펠리아스는 그에게 왕위를 빼앗길까봐 두려워,  이아손에게 용이 지키는 황금 양의 털을 가져오라는   어려운 임무를 주었다.  이에 이아손은 여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아르고 호라는 배를 만들어서 영웅들을 모아 원정길을  났고  흑해 동쪽 끝에서 황금양털을 구해 돌아가던 중  다뉴브 강과 사바 강을 거쳐  류블랴니차 강까지 거슬러 들어왔다 고 한다.

그때 이아손은 류블랴나 근처의 호수에서  큰 괴물을 물리쳤는데  그 괴물이 류블랴나의 드래곤이라고 한다.   이 전설로 인해 류블랴나 사람들은  이 도시가 이아손이 만든 도시라고 여기게 되었으며  그 드래곤은 현재 류블랴나 성탑 꼭대기의 깃발 속에  문장의 일부로 영원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푸줏간 다리 Mesarski most

푸줏간 다리는 페트코브섹 제방 길과 중앙시장을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다리이다

특이한 다리 이름은  과거 류블랴나 중앙시장의 정육점들이 모여 있던 장소에  다리가 놓여 있어 붙여진 것이다.  1930년대에 역시 요제 플레츠니크가  둥근 아치형으로 설계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보류되었다가 2010년 7월10일이 되어서야 철근과 유리 등을 이용한  현대식 다리로 개통되게 되었다.

 새롭게 설계를 맡은 사람은 Jurij Kobe로 양쪽 난간 가까이는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마감하여 흐르는 강물이 내려다보이게 하였다.



리고 이 다리에는 보스니아 출신 슬로베니아 조각가인 야코브 브르다르(Jakov Brdar)가 다리 곳곳에

그리스신화와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청동 구조물들을 만들어 놓았다.

먼저 다리 입구에는 인간에게 불의 사용을 알려준 죄로   벌을 받아 육체의 장기가 해체된 처참한 모습의

프로메테우스 동상이 서있다.

아담과 이브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主神)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 가르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Pandora)라는 여성을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냈다.

이때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는데, 이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 사건이 일어나고, 인류의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제우스의 장래에 관한 비밀을 제우스에게 밝혀 주지 않았기 때문에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되어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사티로스(Saturo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인 괴물들로  얼굴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머리에 작은 뿔이 났으며,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중을 들고 함께 광란의 축제를 벌이며 님프와 무녀들을 희롱한다.

술과 호색을 지나치게 밝히는 무리들로서 영어에서  ‘호색한’을 뜻하는 Satyric의 어원이 된다.

다리 끝에는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다리 건너  성 니콜라스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모습의 청동상이 있다.

푸줏간 다리 위에서 포즈를

푸줏간 다리 위에서 포즈를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모래시계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모래시계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성 니콜라스 대성당


성 니콜라스 대성당

성당 내부


류블랴나 대성당의 정식 이름은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다.

수호성인인 니콜라스를 기리기 위해  13세기에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목조 건물이었으나  1701년부터 1706년까지 초록색의 돔을 비 롯,  건축가 안드레아 푸조(Andrea Pozzo)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높이 24m의 첨탑은 롬바드르 출신 건축가   줄리오 과글리오(Giulio Guaglio)의 설계로 이루어졌으며

1996년 교황 요한 바로오 2세의 방문을 앞두고,  정문과 측문을 새것으로 바꾸었다.



신자들의 기도하는 모습

소원을 비는 촛불

슬로베니아 문(Slovenska vrata) 슬로베니아 문이라 이름 붙은 정문은  가톨릭이 들어온 이후  슬로베니아 1250년의 역사를 묘사한 것으로  Tone Demšar의 작품이다.


류블랴나 문(Ljubljanska vrata)

문 상단 오른쪽의 수많은 백성은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왼쪽에 손이 묶여 있는 사람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나타낸다고 한다. 상단 가운데 창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인물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제일 처음 인정해준 바티칸 시국에 대한 감사가 담겨져 있다.


니콜라스 대성당 파이프 오르간 

류블랴나 문(Ljubljanska vrata) 정면 청동문,  

정면 청동문,   1996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류블랴나 기념을 방문해 새로 만들어진 문. 

측면 청동문 조각,  

측면 청동문 조각,  

측면 청동문 조각,  

측면 청동문 조각,  

측면 청동문, 이 조각은 성당 발전에 기여한 6명의 주교가 누워있는 예수를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성당 내부 천장화 

정면 청동문,   1996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류블랴나 기념을 방문해 새로 만들어진 문. 



성당 내부 천장화 

1703~1706년, 그리고 1721~1723년까지   줄리오 과글리오가 그린 벽화와  바로크 양식의 성전 내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파이프 오르간


성 니콜라스 대성당 천장

성 니콜라스 대성당 천장

류블랴나 성 Ljubljana Catsle  

류블랴나 성은 류블랴나의 핵심적인 관광 명소다.  중세 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고즈넉한 도시 분의기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운 도시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류블랴나 성은 9세기부터 존재하였던 중세의 성이라고 하며 14세기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중으로 넘어 갔다고 한다. 1511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당시의 성은 허물어졌고,  지금과 같은 외관을 갖춘 것은 16세기 후반부터다.  17세기에는 오스만 터키의 위협 속에서 성이 점차 파괴되었고,  1814년에는 수비대가 주둔하다가 감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05년에 시 행정부가 문화적 이용을 위하여 구매를 했으나 1970년대 말이 되어서야 복구를 하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성 내부에는 슬로베니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과 웨딩홀, 호텔, 레스토랑, 매점, 전망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무엇보다 프레쎼렌 광장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분홍빛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광장에서 제일 눈에 띄는 핑크색의 이 성당은  류블랴나의 수태고지 교구성당으로  교회의 분홍 색은 프란치스코 회의  수도적 지침을 상징한다고 한다.

  1646년부터 1660년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오래된 교회를 대신해 세워졌다.

  핑크 색의 바로크양식 외관에 아르느보 장식을 한 파사드는  1703년~1706년에 건축한 것으로  현재의 건물은 1895년 대지진후 리모델링한 것이다.

1층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2층은 코린트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붕 꼭대기에 있는 동상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이다.

2008년 들어 이 성당은  슬로베니아의 문화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프레셰렌 광장(Prešernov trg)


프레셰렌 광장(Prešernov trg) 에서 우리일행과 민속춤을 추고있다

프레셰렌 광장(Prešernov trg) 에서 우리일행과 민속춤을 추고있다








세갈래 다리. 프레셰렌 광장. 성 프란체스코 성당   .프레셰렌 동상












이 다리 아치에는 1848과 1888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요세프(Franz Josef) 황제의 40주년 통치기념을 뜻한다.





드래곤 브리지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2017.5.20  3편 슬로베니아 블레드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리는 슬로베니아 블레드로간다.

블레드 호수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블레드성과 블레드 호수위 자리잡은 섬 불레드섬및 블레드호수 조망을 본다. 블레드섬 나룻배탑승 요금 12유로와 섬관광 포함 30유로

블레드성내부입장 30유로  총 60유로가 옵션으로 지불됐다



블레드 다른 표기 언어 Bled

블레드는 알프스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알프스와 성 그리고 호수와 그 안에 작은 섬과 작은 교회가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율리안 알프스의 보석’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작은 마을이지만 블레드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명인들이 즐겨 찾았기 때문이다. 유럽 최초의 골프장이 있고 온천, 스키, 하이킹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블레드 섬 안의 교회는 슬로베니아인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하는 장소로 늘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슬로베니아를 여행한다면 블레드는 빼놓지 말고 꼭 가보길 바란다. 가격 12유로



블레드(슬로베니아어: Bled, 독일어: Veldes)는 슬로베니아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188.5㎢, 인구는 10,899명(2002년 기준), 인구 밀도는 57.8명/㎢이며 율리안알프스 산맥과 접한 관광 명소이다.

블레드 호수(Blejsko Jezero)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이다. 빙하 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호수인 블레드 호로 유명하며 블레드 호 주위에는 바위로 만든 블레드 성이 있다.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는 보힌 호수와 더불어 알프스 만년설이 녹은 물로 이루어진 빙하호로, 크기는 보힌 호수의 3분의 1 정도 된다. 호수 자체로도 예쁘지만, 호수 중앙에 자리한 블레드섬과 블레드성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구(舊) 유고슬라비아 지도자였던 티토(Josip Broz Tito, 1892~1980년)*의 여름별장도 이 호수 주변에 지어졌다고 하니, 블레드의 풍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슬로베니아는 다른 연방 소속 국가들과는 달리 내전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관계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2004년 5월 EU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으며, 2007년 1월에는 신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유로화를 도입했다.


이 지역 출신의 남자들만이 이 배를 운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블레드 호수의 명물인 플레트나는 블레드 여행에서 한번쯤 타 보길 권하는 배이다 가격 : €12



블레드 호수(Blejsko Jezero)

블레드 호 안에 있는 블레드 섬은 플레타나(pletana)라고 부르는 나룻배를 타고 갈 수 있다.

플레트나(Pletna)    

블레드 호수의 명물인 플레트나는 블레드 여행에서 한번쯤 타 보길 권하는 배이다. 이 배는 18세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전통 배로, 역사가 오래된 만큼 배를 운행하는 뱃사공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오직 이 지역 출신의 남자들만이 이 배를 운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생각보다 젊은 뱃사공은 많이 없지만, 자부심 높은 뱃사공이 직접 운행하는 전통 배를 타 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운 관광 상품이다. 다만, 6명 이상 모여야만 배가 출발하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적은 비수기 여행이라면 시간의 여유를 넉넉히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배는 블레드 섬을 왕복한다. 블레드 섬 선착장에 내린 후, 섬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돌아오면 다시 처음 탑승했던 호숫가 부두에 내려준다





블레드 호수엔 배가 23척뿐이다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때부터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함스부르크 가문은 블레드 호수가  고요한 순례지로 남길 원했다.  플레트나의 뱃사공은 가업으로 남성 


직계가족에 대물림 된다






블레드 섬에는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는데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는 종을 울리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블레드 섬에는 선사 시대에 사람이 살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교회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슬라브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인 지바(Živa)의 성지로 여겨졌다

블레드 섬에는 계단 99개가 있으며 전통적인 결혼식에서는 신랑이 신부의 등 위에 오른 채로

계단 99개를 오른다. 이 때 신부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 침묵해야 한다.






4차례(1966년, 1979년, 1989년, 2011년)나 세계 조정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도시이다.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는 만년설이 녹아내려서 만들어진 빙하호수다 그래서인지 호수는 더없이 맑고 깨끗했다


나루터 가까이에는 백조도 청둥오리와 함께 살고 있어 더욱 중세 성다운 면모를 자아낸다. 


Lake Bled 블레드 호수 연인들이 꿈꾸는 웨딩장소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는 보힌 호수와

더불어 알프스 만년설이 녹은 물로 이루어진 빙하호

로,  크기는 보힌 호수의 3분의 1 정도 된다.

 
호수 자체로도 예쁘지만, 호수 중앙에 자리한 블레드섬과

 블레드성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구(舊) 유고슬라비아 지도자였던 티토(Josip Broz

Tito, 1892~1980년)*의 여름별장도 이 호수 주변에

지어졌다고 하니,  블레드의 풍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블레드섬에 내리자마자 우릴 기다리고 있던 관문은

 99개의 돌계단.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를 안고

이 계단을 다 올라야 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블레드섬에는 성모승천교회(The Church of


the Mother of God)가 있다.

 
이곳은 9~10세기경 슬라브Slav

신화 속 지바 여신의 신전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종교 전쟁으로 인해 신전이 파괴되고

몇 차례의 부침을 겪다가 17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바로크

스타일 교회가 완성되었다.  즉, 모두 다 합치면 그 역사가 천년이 넘는 교회다. 

교회 안에 있는 종을 세 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블레드 섬은 아주 작은데 섬에는 99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성모승천 교회가 있다




교회에서 종을 쳐서 세 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성모승천교회







같이간 일행들의 즐거운 시간






숲속의 피아노







같이한 일행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화이팅도 외쳐보고

블래드성도 보이고




중세시대로 돌아간 시간



블레드섬과 함께 블레드 호수에서 들러야 할 또 하나

의 명소는 블레드성(Bled Castle)이다.

 호수 한 켠 13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블레드성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 중 하나다.

 블레드성의 역사는 독일 왕 헨리 2세(Henry II)가

아델베론 브릭슨 주교(Albuin of Brixen)에게

 성이 자리한 영토를 주었던 1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금의 성터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로마네스크 탑만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1011년 비로소 성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이후 중세시대에 이르러 몇몇 탑들이 추가로 지어졌고,

1511년 지진으로 소실된 이후 다시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블레드성은 박물관과 와인 셀러, 레스토랑,

 채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블레드성의 역사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이 성에 오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블레드 성에 올라 내려다보는 호수 풍경





블레드 성 Bled Castle 블레드 호수에 깎아 지른 듯한 형상으로 우뚝 솟은 블레드 성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 중의 하나이다 그 역사는 천년이 넘었다고






블레드 성에 올라 바라본 블레드 섬




블래드 섬이 자그만하게 보인다 경치는 끝내준다



블레드 성안의 저 빨간 집은 인쇄소다 

성 아래층에 있는 인쇄소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 감각은

더욱 무뎌지고 만다. 

마치 역사책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이 공간은 15세기

구텐베르크 활자 인쇄 방식을 재현하는 인쇄소다.

“Don’t wait for the perfect moment. Take the

 moment and make it perfect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지 마라. 지금 이 순간을

완벽하게 만들어라) .”






성 곳곳에 중세시대 의상을 입고 있는 사람들, 박물관

안에 실제 사람 크기로 재현해 놓은
 
중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이곳만큼은

시간이 빗겨간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역사책에서 금방 툭 튀어나온 것 같은 블레드성

내부의 구텐베르크 인쇄소



블레드성에 위치한 와인 셀러. 슬로베니아 전통에

의하면 중요한 날,  중요한 사람이 와인 병을 칼로

가르며 축제를 시작 한다고 합니다.





​130m의 절벽 위에 세워진 블레드성에 들어서면 중세의 생활상을 옅볼 수 있기도 합니다





슬로베니아의 국기

위로부터 하양·파랑·빨강의 3색기로서 왼쪽 위에 이 나라의 국장()을 배치하였다.


 국장은 이 나라 최고봉인 트리글라브(Triglav)산(2,864m)을 형상화한 방패 모습이며 파랑 바탕에 흰색의 산으로 구성


하였고,  산 그림의 하단에는 바다와 강을 나타내는 2개의 파랑 물결선이 있다.  국장 상단에는 3개의 노란색 6각 별이 


 있는데,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초까지 대()슬로베니아왕조를 이룬 첼레(Celje) 백작 집안의 문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1991년 6월 27일 내전을 거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제정하였다








블래드성 한글 설명서 워낙 한국인관광객이 많으니 설명서도 한글로




















적당한 휴식도 필요하죠


블레드성 입장권과 한국어판 설명서


어디가나 한국사람들이 많은지 이곳에 아예 한국어판 설명서도 비치되어 있습니다.




블레드      블레드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


블레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가 바로 블레드 성이다.  블레드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율리안 알프스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이 성은 1400년대 독일 황제 헨리크 2세가 주교인 알부인에게  이 지역의 땅을 선물했고,


 곧 성이 지어졌다. 물론 지금의 모습은 18세기에 들어서 갖추게 된 것이다.













블래섬의 포토죤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은 중국식


점심 식당 중국집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2편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 (2017.5.19)


잘츠부르크  다른 표기 언어 Salzburg

잘츠부르크는 빈에서 서쪽으로 300km 떨어져 있으며, 알프스 북쪽 경계의 잘자흐 강 양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잘츠부르크는 ‘소금의 성’을 뜻하는 말로, 말 그대로 예로부터 소금 산지로 유명한 지역이었으며, 오스트리아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발달하고 가장 부유한 도시이기도 했다. 또한 유럽에서 손꼽히는 음악의 도시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뮤지컬 영화인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어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도시이다. 음악의 도시답게 유럽 3대 음악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매년 여름 개최되며 이 기간에는 전 세계의 음악인들이 잘츠부르크를 찾는다. 잘츠부르크 구시가지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잘츠부르크


짤츠부르크는 약 15만명의 인구와 매년6백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여 관광으로 먹고사는 소도시이다


미라벨 궁전은 1606년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연인 살로메 알트를 위해 지은 곳입니다!
미라벨 정원은 궁전보다 더 유명한 곳으로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서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송을 부른 곳으로 유명한데요! 이곳 뿐만 아니라 잘츠부르크의 여러 지역에서사운드오브 뮤직이 촬영 되었답니다


미라벨정원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연인을 위해 지은 미라벨 궁전,   원래 대주교는 결혼도 금지 되어있던 당시 파격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부인과 자식을 두고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본인은 그로인해 쓸쓸히 탑에 갖힌채 죽어갔다는 슬픈 이야기..  더 쓸쓸해 보였던 미라벨 정원. 


체체적인 조화를 중시하여 조성하였으며, 분수와 연못, 대리석 조각물과 많은 꽃들로 잘 장식되어 있다. 중앙분수 주위에는 1690년 모스트(Most)가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을 조각한 작품이 늘어서 있고 그 옆에는 유럽의 많은 바로크 예술품들을 전시해 놓은 바로크 박물관이 있다. 정원 서쪽에는 1704~1718년에 만든 울타리로 주위를 두른 극장이 있고, 북쪽 문 앞에는 정교한 청동조각으로 꾸민 패가수스 분수가 있다


미라벨 궁전은 규모는 작아도 콘서트가 많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궁전 내 대리석 홀에서 대주교를 위해 연주를 하였으며, 지금도 실내악 연주회가 자주 열린다. 또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으로도 인기 있는데, 결혼식이 끝나면 꽃 장식 마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다. 미라벨 정원 맞은편의 미라벨 광장에는 교외로 나가는 많은 관광버스들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도레미 송'을 불렀던 곳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으며, 멀리 보이는 호헨잘츠부르크성()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헬브룬 궁전 : 물의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마르쿠스 대주교의 별장으로 지어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도레미 송'을 불렀던 곳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으며, 멀리 보이는 호헨잘츠부르크성()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날씨가 무더워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관광객들 우리들도 한개씩


어딜가나 자물통 영원한 사랑


기타치고 알바하는 학생


미라벨 정원을 지나서 게트라이데거리로


게트라이데 거리 : 잘츠부르크 최대의 번화가로 잘츠부르크의 문화적 특성과 매력을 볼 수 있음


우산가계는 우산이 걸려있고 신발가계는 신발이 걸려있고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는 12세기 무렵 지어진 이 건물 3층에서 태어나 17세이던 1773년까지 살았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로,  1층에는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침대, 피아노, 바이올린, 자필 악보, 서신 등이 있고 2층에는 유명한 오페라 《마술피리》를 초연할 당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짜르트 생가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


카우보이 아닌걸  마부

거리의 악사


잘츠부르크 대성당 :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성당이며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은 곳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 : 유럽에서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되어있는 성


멀리서도 눈에 띄는 황금빛 공 위에 서있는 사람의 모습.

독일의 조각가인 슈테판 발켄홀의 '구(Sphere)'라는 작품인데,

'발켄홀 모차르트 공'이라고 불린다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들






국경을 지나고



호텔앞 공원


우리가 묵었던 그라지스키호텔



호텔앞 단란주점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고, 오르간 연주자로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잘츠부르크의 유명한 장소들은 대부분 모차르트와 관련이 있거나,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곳인 것 같다

이 곳에 있는 오르간은 파이프가 6000개나 들어간 유럽에서 가장 큰 오르간이라고

성당 내부가 조각상과 그림들로 가득차있는 것 같았다


대리석 장식과 벽화로 꽉 찬 화려한 돔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호엔잘츠부르크성


멀리서도 눈에 띄는 황금빛 공 위에 서있는 사람의 모습.

독일의 조각가인 슈테판 발켄홀의 '구(Sphere)'라는 작품인데,

'발켄홀 모차르트 공'이라고 불린다



미라벨정원





호텔앞 단란주점



우리일행은 주민들과 함께 춤을 추며 신나게 이밤을 즐겼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동유럽4 (독일,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발칸3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여행기


    2017.05.18-05.29  (11박12일)
    출연진: 창삼회원(4명)외 35명
    협조: 온라인여행사

    ㅇ.  아시아나뱅기,  비용 2,190 천원

    ㅇ. 일정 :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헝가리, 체코


    1편 오스트리아 짤츠캄머굿 호수마을


    2017.5.18~5.29까지 11박12일 동유럽 독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발칸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를 여행하였다.

    짤츠캄머굿, 짤츠부르크, 블레드, 루불리나,플리트비체, 자다르, 트로기르, 스플랫, 모스타르, 네움, 두브로브니크, 자그레브, 부다페스트, 비엔나, 체스키크롭로프, 프라하, 탄테스부르크, 로텐부르크, 프랑크푸르트, 순서로 돌았는데 패키지 여행은 즐거우면서 빡빡하다.아마도 평생 탈 버스 여행을 금차 한거번에 모두 타버린것 갔다.긴여행 이었지만 피곤도 하였고 행복한 시간도 많았다.

    온라인여행사 이원정가이드 010-2129-7337 의 친절과 열성에 같이간 일행 39명은 모두 감탄을 금했고 우리일행4명도 여행의 쾌락 만족함에 깊이 빠져 있었다.

    온라인여행사, 아시아나뱅기,일행39명,금액일인당 2,190천원여행경비가 많이 줄여 맘놓고 즐길수 있었다.이국적인 동유럽의 모습을 보고 각국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지식을 배우는 한편 우리나라가 세계 어느나라에 비교해도 손색없고 힘이있는 나라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역사와 문화에는 뒤지지만 새롭고 현실적인것은 최고의 수준같았다. 특히 인터넷 그리고 화장실문화 사람들의 순수함은 최고의 수준이다,

    여기 긴여행의 추억의 발자국마다 찍힌 사진들을 차례로 올려본다 


    첫째 오스트리아 캄머굿 할슈타트 호수마을 (2017.5.19)

    아름다운호수마을 짤츠캄머굿 3,000m산들사이로 76개의 호수가 어우러진 자연장관을 감상한다

    여기에는 짤츠유람선과 타허슈타인산 전망대를오르는 케이블카 총 80유로의 비용이 들었다.


    인천공항

    아시아나 A380

    인천출발 프랑크푸르트로

    할슈타트

    동의어 잘츠카머구트의 진주 다른 표기 언어 Hallstatt

    잘츠부르크 동쪽에 위치한 잘츠카머구트는 알프스의 산자락과 70여 개의 호수를 품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나온 그림 같은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그중에서도 할슈타트는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잘츠카머구트의 진주’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워, 우리나라 드라마 〈봄의 왈츠〉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날씨가 좋으면 마을 풍경이 호수에 비쳐 데칼코마니를 그려 내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문화 풍경 부문에 등재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스트리아 '호수마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오스트리아 서부 도시 잘츠부르크.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해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열린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모차르트 쿠겔른 초콜릿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의 잘츠캄머굿(Salzkammergut, '소금창고'라는 의미) 지역은 고산지대 빙하가 녹아서 생긴 76개 호수로 이뤄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할슈타트 호수와 볼프강 호수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일흔여섯 개의 호수가 있는 곳으로 잘츠(Salz)는 ‘소금’을, 감머(Kammer)는 ‘창고’를, 그리고 굿(Gut)는 ‘좋다’는 듯이니, 풀이하면 ‘좋은 소금 창고’라는 의미를 지니는 지역이 바로 ‘잘츠캄머굿’이다.


    오스트리아 전통가옥

    레스토랑

    오른쪽이 가톨릭 교구교회(The Catholic Parish Church) 아래 건물들은 호텔들

    할슈타트 루터 교회(Hallstatt Lutheran Church)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과 삼위일체상

    살구나무와 포도나무로 조경을 한 기념품점

    가톨릭 교구교회(The Catholic Parish Church)

    가톨릭 교구교회에서 본 할슈타트 루터교회

    교회 정원은 공동묘지로 조성되어 있다.

    장크트 길겐 마을 볼프강 호수는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11킬로미터, 깊이는 114미터이다. 호수 서북쪽에는 인구 3850명의 아름다운 마을 장크트 길겐이 있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독일 통일 당시의 총리 헬무트 콜이 라인란트 팔츠 주지사 때부터 해마다 여름 휴가를 보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장크트 길겐에서 북쪽 고속도로를 향해 가면 몬트 호수가 있고, 호수 북단 마을이 몬트제이다. 이곳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유명한 미하엘 교회가 있다.


    여기도 살구나무를 이용해 조경을 했다

    소금 광부 석상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집


    꽃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아름답기도 하겠지만 근면할 것이다.


    장크트 길겐에는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보존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사실 모차르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잘츠부르크 대학 법과에 입학하기 위해 잘츠부르크에 왔다가 전공을 바꿔 음악공부를 했다. 1743년 대사교 궁정악단의 바이올린주자가 되어 44년간 근무를 했다.


    장크트 길겐은 볼프강 호수를 끼고 있는 해발 542m 지역으로 인구가 385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호수마을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외가라는 점 때문이다. 장크트 길겐은 모차르트 외할아버지가 시장을 지냈으며,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둘째는 유명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무대라는 점 때문이다. 셋째, 슈트로블에서 유람선을 타고 장크트 길겐까지 오는 할슈타트 지역의 풍광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유럽 신혼부부들의 신혼여행지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다.


    기념품점의 장식들


    모든 집들이 꽃을 많이 가꾸며 화분으로 집을 장식해 아름답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의 잘츠캄머굿(Salzkammergut, '소금창고'라는 의미) 지역은 고산지대 빙하가 녹아서 생긴 76개 호수로 이뤄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옛 소금광산 마을인 할슈타트(Hallstatt)는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별장 학교

    배를 타고 나오면서 본 할슈타트


    이원정 가이드

    11박 12일 동안 우리들 태워준 버스  운전기사 진도불이 아르또르


    끝없는 유채밭







    여기에도 태극기가



    다흐슈타인산을가기위해 케이블카를



    다흐슈타인산을가기위해 케이블카를

    산 중턱에 자리잡은 호텔및 식당




    다흐슈타인산 전망대



    다흐슈타인산 전망대

    다흐슈타인산 에서 내려다본 할슈타트 마을

    다흐슈타인산 전망대의 십자가




    저멀리 알프스산들이 손에 잡힐듯




    저멀리 알프스산들이 손에 잡힐듯





    대한민국이 이쪽인가



    저게 알프스야

    저멀리 알프스 산들이 보이고


    전망대에서 가리키는 한국은 어디에

    알프스산들에 둘러쌓인 경치는 어디를 봐도 엽서 한장

    해발 1,490m 인 전망대


    하산하는데도 10분이 더 걸린다


    할슈타트마을은 깨끗하고 아름다워 사람들의 마음조차 읽을 수 있다











    5월의 봄날에 많은 꽃들이 온마을 을 휘감고





    할슈타트 교구 성당(Pfarre Hallstatt)

    할슈타트에 하나뿐인 성당
    할슈타트 역에서 페리를 타면 보이는 마을 풍경 중 가장 큰 건물이 바로 할슈타트에 하나뿐인 성당이다. 1181년 처음 세워졌으며 1505년 현재의 고딕 양식 건축물 형태를 갖추었다. 성당 뜰에는 마을 묘지가 있는데 묘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예쁘게 가꾸어 놓아 마치 정원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할슈타트의 풍경도 너무 아름답다. 성당 지하는 17세기 초부터 납골당으로 사용되었는데, 현재 약 1,200개의 두개골이 쌓여 있다

    성당천장

    할슈타트 교구 성당(Pfarre Hallstatt)


    파이프 오르간




    성당 뜰에 마련된 공동묘지는 아름다운 정원이네



    집에 정원도 이렇게 가꿀수 있을까



    마을 중앙 제일 좋은 곳에 성당과 공동묘지가 정원을 처럼 차지하고

    선물가계를 주인의 마음을 표현한듯 깨끗하고 깔끔해


    쇼핑점

    이정표에도 기념품이



    모차르트어머니 생가



    모짜르트를 표현한 동상

    모차르트어머니 생가 마당

    모짜르트 어머니 생가







    볼프강(Wolfgang) 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유람선에서 무얼 찍을 까   백조도 보이고

    슈트로블(Strobl) 선착장 볼프강(Wolfgang)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만나게 되는, 슈트로블(Strobl)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았던 장크트 길겐(St. Gilgen)까지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영복 차림의 아가씨가 모터보트를 반기고

    볼프강(Wolfgang) 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슈트로블(Strobl)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았던 장크트 길겐(St. Gilgen)까지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잘크트 길겐은 작곡가 모차르트의 어머니의 고향으로 '모차르트 음악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모차르트 교향곡부터 <사운드 오브 뮤직>까지 잔잔하고 아늑한 멜로디들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볼프강(Wolfgang) 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본 할슈타트 마을


    멋쟁이 폼도 잡아보고



    별장 학교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The Poet and I / Frank Mills



     


    일본대마도 여행기 4편

    2017.3.6


    4편 와타즈미신사, 만세키바시 다리, 타아라 쇼핑

    대마도의 상징 '와타즈미 신사'=와타즈미 신사는 이즈하라의 팔번궁 신사와 더불어 대마도의 대표적인 신사로 꼽힌다. 풍어와 뱃길 안전을 기원하는 해신(海神), 토요타마 히매와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해궁이다. 특이한 게 신사문(토리이)이다. 토리이가 바다 속에 세워져 지상으로 이어지는데 만조 시에는 2m 정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독특한 구조이다. 특히 토리이 방향이 옛 신라의 수도 서라벌과 일치하고 있는데, 기록 속에 와타즈미신사가 '도해궁(바다를 건너온 궁)'으로 불렸다고 남아있어 한반도에서 건너온 신을 모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와타즈미신사 경내의 또 다른 명물은 낙락장송. 땅으로 드러난 아름드리 소나무의 뿌리가 길게 드리워져 마치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지니고 있다





























    임시매점 고로케150엔, 커피250엔 심심하던차 아주 감칠나게 맛있다.






    모두들 즐거운 맘으로 한개씩 들고 인정삿











    만제키바시는~ 메이지 33년 당시   함선이 항해할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파내서 만든 해협에 건설된 다리입니다.
    쓰시마의 상도(가미시마)와 하도(시모시마)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다리 위에서 조류의 소용돌이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만제키세토라 불리는 운하입니다.
    원래 상도와 하도가  서로 붙어있었다고 하는데요.
    1900년 구 해군이 대마도 아소만에  있는 군함을 쓰시마 동쪽 해상으로
    빨리 이동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약국  티아라몰 옆에 있는  마츠모토 키요시 (구.미도리약국)

    마츠모토 키요시 약국  약만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생활 필수품도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사가는 건  동전파스, 건강식품,  생활용품 등입니다

    5.400엔 이상이면 면세 적용됩니다

    쇼핑요령
    여행하실 분들을 위한 TIP!! 레드캐비지와 마츠모토키요시에서 중복되는 상품들이 많아요~
    일단 어느 한곳을 정해서 가격을 먼저 보고?그 후에 비교해서 사시는게 좋아요~
    전 먼저 도착해서 마츠모토에서 금액확인 후에,레드캐비지 가서 비교해서 물건 사서..
    다시 마츠모토 갔어요~~레드캐비지는 면세가 안되지만..마츠모토는 면세적용이 되요~
    5400엔 이상하면 면세 적용받는데,







     

    일본 대마도 여행기  3편

    2017.3.5


    3편 가네이시 성터, 덕혜옹주비, 쓰시마민속자료관, 예보시티전망대

    가네이시성
    대마도의 명산 아리아케산 (有明山 558m) 이 뒤로 솟아 있는 가네이시성은 대마도가 크게 번성했던 시기인 1669년에 소오요시자네 가 건설한 성으로 역대 대마도주들의 거쳐였던 곳이며 조선통신사 환대가 이루어 졌던 곳이기도 하다.
    가네이시성은 대마도도주 소가의 거점이었으나 내분으로 소실되고 17세기 후반에 정비하여 가네이시성 정원은 현재는 야쿠라문은 성에서 주변을 감시하기위해 만든 망루역할을 하던곳으로 다이소 시대에 소실된것을 1990년에 옛문헌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덕혜옹주결혼봉축비
     가네이시성문을 지나 200m 쯤 걸어가면 덕혜옹주 결혼봉축비를 볼수있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는 덕혜옹주가 1931년 5월 대마도 도주의 후손인 소오 타케유키 백작과 정략결혼하면서 대마도 주민들이 이를 축하하기 위해 높이 2.3m 폭1m의 이왕가 소가 백작 이왕가종가백작어결혼봉축개념비(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 쓰인 결혼봉축 기념비를 만들었다고한다.


    덕혜옹주는 조선26대왕이자 대한제국 초대황제인 고종의 환갑에 정식비가아닌궁녀인 복녁당 양귀인의 딸로 태어나 공주가 아닌 옹주라 불렀으며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압박에 의해 1925년 3월 24일 14살이라는 어린나이에 동경 유학을 떠난뒤인 20살이 되던해인 1931년 5월8일 데마도 백작 소오다케유키와 정략결혼하게 된다.

    결혼후 정신분열증에 시달려 1946년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일제의 패망으로 귀족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한 소오다케유키와 이혼하게 된다.
    1962년1월26일 귀국하였고 1989년 창덕궁 낙선제에서 별세하였다.

    덕혜옹주와 소오다케유키와 이혼을 하자 결혼봉축기념비는 시내의 한구석에 버려지게 되었는데 한국관광객이 많이 찾게 되자 2001년에 복원하게 되었다.










    대마도 역사 민속자료관
    조선통신사비 옆으로는 동백 꽃피운 동백나무가 자리잡고있으며 그옆으로는 대마도의 역사자료를 살펴볼수 있는 대마도역사 민속자료관이 자리하고있다
    이곳에서도 당시 한류를 전파하였던 조선통신사 행렬도 등의 유물을 살펴볼수 있었다.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천혜의 절경, 아소만=109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대마도는 리아스식해안과 다도해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그중 아소만 일원이 최고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와타즈미 신사를 뒤로하고 산길을 굽이쳐 올라가면 대마도 최고의 명소 '에보시타케 전망대'가 나선다. 까마귀가 모자를 쓴 형상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에보시타케는 아소만을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는 대마도 유일의 전망 포인트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아소만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이 마치 오밀조밀 가꿔놓은 정원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연무가 드리워지는 날이 많아 수채화처럼 맑고 또렷한 풍광을 대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 대마도 여행기  2편

    2017.3.5


    2편 토스이 기념관, 팔번궁신사,

    토스이 기념관: 나카라이 도스이는 쓰시마 출신 기자이다 소설가다. 1860년 쓰시마 이즈하라에서 출생 그의 집안은 대대로 쓰시마 번주의 주치의 가문이었다. 부산에서 왜관의 의사로 상주하던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그는 우리말을 배웠고 15세에 도코영문학학원 공립학사에서 수학 1881년 오사카 아사히신문 부산 통신원으로 파견된다. 1882년에는 특파원1호로 서울로 파견되어 임오군란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같은해 아사히 신문에 춘향전을 20회에 나누어 번역 연재하는대 이때 춘향전의 내용뿐아니라 조선에 대한 지식과 문화를 주석과 해석을 통해 소개해 좋은 평을 얻었다고한다.

    현재 일본의 5000엔지폐의 주인공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의 선생이었으며 그녀가 연모하던 정인이었다고 알려져있다.



    나카라이 도이시관에는  나카라이에 대한 자료 전시 지역주민의 교류등의 휴식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더불어 관광객을 위한 기모노 체험을 할수 있도록 대여가 가능하고 (만원) 옆에는 쉬어갈수 있는 캘러리 찻집 만마야가 있다.



    ◇'팔번궁' 신사=대마도 최고의 신사이다. 이즈음 신사 경내에는 만리향의 향취가 은은히 풍겨나 신비감을 더한다. 팔번궁 신사는 일본 천황을 모신 신사로 토리이의 지붕석이 위로 치솟지 않고 일자형태를 이루고 있다. 일본은 짧은 역사를 미화, 합리화시키기 위해 유독 신화발굴에 공을 들여왔다. 팔번궁 또한 은신천황관련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일본 대마도여행

    ㅇ. 일시: 2017.3.4 ~ 3.6 1박 3일

    ㅇ. 여행사 이즈하라 여행사 황용태기사 010-5270-0319

    ㅇ. 경비: 200,000원 가이드 2만원 별도

    ㅇ. 일정: 1일차  이즈하라 시내 유적지 견학

              이즈하라시내, 팔번궁신사, 수선사, 덕혜옹주비, 조선통신사비, 토쓰이기념관,가네시티성터,

              쓰시마민속자료실, 온천목욕,

               2일차: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전망대및 만제키바시 다리등

               예보시티전망대, 만세티바시다리, 와타즈미신사, 티아몰쇼핑센타,약국, 등



    1편 이즈하라시내, 수선사


    부산항



    입국장

    부산 영도앞

    부산 오륙도도 보이고

    부산조도앞

    멀리 태종대도 보이고



    오션 플라워 타러가는중





    쓰시마 이즈하라시

    쓰시마 시(일본어: ?馬市, 문화어: 쯔시마 시)는 일본 나가사키 현 쓰시마 섬 및 부속 도서로 구성된 시이다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해협의 중간과 동해의 남쪽에 놓여 있다. 가장 가까운 육지인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서는 남동쪽으로 49.5km 떨어져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타 지역인 나가사키 현 이키 섬에서 북서쪽으로 47.5km, 후쿠오카 시에서 북서쪽으로 138km 떨어진 곳에 있다





    쓰시마는 일본에서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섬 전체가 쓰시마시(市)에 속한다. 시 아래 6개읍(이즈하라[嚴原町], 미쯔시마[美津島町], 도요타마[豊玉町], 미네[峰町], 가미아가타[上縣町], 가미쯔시마[上對馬町])이 있고, 이즈하라에 쓰시마시청이 있다. 중앙부의 아소만[淺茅灣]과 인공적으로 굴착된 만제키세토[萬關瀨戶:瀨戶는 水路]에 의해 상·하 두 섬으로 나뉜다.


    섬 전체가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지이고, 산지의 계곡들은 곡벽이 험준하다. 농경지는 총면적의 4%에 불과하고 계단식 밭이 많으며 최근까지 화전 경작을 했다. 특히 대마도에는 멧돼지가 많아 에도시대에 멧돼지 퇴치를 담당하는 번사(藩使)를 두기도 하였다.


    산촌에서는 숯제조와 표고버섯 재배가 주업이었기 때문에 산림의 벌채가 심했으나 이후 조림이 이루어졌다. 바다장어·오징어·도미잡이와 전복·소라·성게·천연김 채취를 하고, 아소만에서는 진주조개 양식이 성하다.


    이즈하라 항은 대마도의 주요 어항으로 오래전부터 번성하였으며 식당, 술집 등 번화가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어획고가 줄면서 상업적인 활기도 줄어들었다. 매년 8월에는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한 아리랑 축제가 열린다. 부산에서 정기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예로부터 한국과 일본 열도 사이의 중계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여 대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부산에서 약 50km의 거리에 있어 한국과 관계가 깊었다. 고려 말부터 조공을 바치고 쌀·콩 등을 답례로 받는 관계에 있었다.


    1274년 1281년 두 차례 몽골군 일본 본토 정벌을 위해 대마도에 상륙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마도를 근거지로 조선의 해안으로 출몰하는 왜구의 폐해가 막심했다. 조선에서는 이들을 퇴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하였고 굶주린 왜구들에게 쌀을 제공하는 회유책과 벼슬을 하사하는 귀화정책 등의 정책을 구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되자 세종 때에는 이종무(李從茂)가 200척의 군선을 이끌고 대마도 원정(遠征)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대마도의 수비가 완강했고 복잡한 지형의 현지사정에 어두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퇴각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대마도의 지명은 고려와 조선의 영향을 받은 지명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즈하라에 있는 시라기야마(新羅山)와 북섬에 있는 고마야마(高麗山)이 그 예가 된다.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 수군의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당시 쓰시마도주(島主)는 소 요시토시(宗義智)였으며 그의 장인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였다.


    이들은 임진왜란 당시 선발대로 부산포로 쳐들어왔다. 이후 대마도 번주 소우지[宗氏]의 간청으로 조선이 삼포(부산포·염포·제포)를 개항하자, 쓰시마는 에도[江戶]시대 말기까지 대(對)조선무역이 활발했다. 1906년 구한말에는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렸던 애국지사 최익현이 볼모로 잡혀와 사망한 곳이며 그를 추모하는 비석이 슈젠지(修善寺)에 세워져 있다.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갈 때 대마도를 거쳐가기 때문에 사절단 일행이 머물렀던 유적이 남아있으며 숙박지였던 세이산지(西山寺)가 있다. 또한 대마도 번주의 관사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고려문(高麗門)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부근에 대마도 민속자료관과 향토사료관이 있다.


    그리고 조선 초 통신사로 대마도에 건너가 계해약조(癸亥約條)를 체결한 이예(李藝)의 공적비가 대마도 미네초(峰町)에 소재한 엔추지(圓通寺)라는 사찰에 세워졌다. 그리고 신라국사 박제상공 순국비(新羅國使朴堤上公殉國碑)가 있다. 그는 볼모로 잡혀간 신라의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일본에서 처형되었다.


    1703년에는 위문행역관사(慰問行譯官使) 선박이 대마도로 입항하다 암초에 좌초되어 침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사 한천석(韓天錫)과 부사 박세양(朴世亮) 등 113명 전원이 사망하였으며 그들의 넋을 기리는 조선역관순난지비(朝鮮譯官殉難之碑)가 한국전망대에 세워져 있다. 


    오션플라워 3층 우등실은 요금이 만원이 추가된다







    부산에서 배편으로  1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이즈하라는 아래쪽에 있어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분명 대마도는 일본이지만 대마도를 찾은 분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일본어를 할 줄 몰라도  전혀 불편함이 없고  안전하게 마음껏  다닐 수 있습니다.  쇼핑도 자유롭구요.



















    조선통신사 비

    조선은 임진왜란이후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지 않았는데 일본의 국교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통신사를 보내줄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이를 받아들인 조선은 1607년부터 조선말 1811년 까지 12회에 걸쳐 이곳 대마도를 거쳐 에도(도코)에 도착하였다고한다. 이런 한일간 우호관계를 21세기 지향점으로 삼고자 이곳 대마도에 1992년 통신사비가 세워 졌다고한다.  





    dancing_queen-이석화.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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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다낭 여행기 16편

    2017.02.10


    16편 손짜영응사, 한강용다리, 하이반고개

    손짜반도 영응사 ( 비밀의 사원 )  다낭을 태풍의 피해로부터 지켜준다고 생각해서 만든 영흥사 67미터의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있어서  다낭을 가면 반드시 가야되는 곳입니다.  보면 하얀 해수관음상이 보입니다.

















    이곳이 비밀의 사원으로 불리는 이유는 은밀하게 소원을 빌고 글로 적어서 몸에 소중하게 간직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믿거나 말거나...) 이곳 역시 화려한 문양과 다양한 색을 사용해서눈에 확 띄였습니다.

















    손짜반도 영응사(비밀의 사원)는 베트남 전쟁 막바지무렵 패망을 눈앞에 두고 베트남 정권 협력자나 부유층들 1만4천여명이  탈출을 하려다가 다낭 앞바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 중 살아남은 한 베트남인이 미국으로 떠나 큰 성공을 이루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같이 탈출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하여 이 절과 해수관음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손트라산 중턱에 위치한 영응사는  비밀의 사원이라고도 불리운다고  영흥사(비밀의사원)에는 엄청난 크기의 해수관음상으로 유명하여 베트남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인듯....




    용교(Cau Rong-까우 롱) 2003년 3월 해방 33주년을 기념하여 조성한 총길이 666m, 높이 37.5m의 용모양의 거리  토, 일요일 9시가 되면 용의 머리에서 불과 물을 내뿜는 쇼가 펼쳐진다 용다리 불쇼 용다리   평소에도 야경으로 소문난 곳, 주말 야경의 '끝판왕'인 용다리 불쇼 주말 저녁 9시에 용다리에서 불쇼를 한다 요즘은 주말 저녁 9시 시작! '용의 쇼'가 시작되면, 차들이 자발적(?) 운행중단하기 때문


























































    베트남, 하이반고개와 다낭 해변 해발 1,172M의 하이반고개 (Hai Van Pass)는 15C에는 베트남과 참파왕국 사이의 국경이었으나 지금은 다낭과 후에의 경계선이고 50여년 전 남북베트남의 경계선이기도하다. 베트남에서 가장 높고 긴 고갯길로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가 이 고개를 통과해 20킬로미터가량 구불거리며 이어진다. 기후적으로도 경계가 되어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바다까지 이어진 트루옹손 산맥에 가로막혀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한다.


    .

     

     

    첨밀밀/충쇠

    (티엔미미~니~ 쌰오더티엔미미).
    好像花兒開在春風裏 開在春風裏
    (하오시앙후아얼카이자이춘펑리 카이자이 춘펑리)
    在那裏在那裏見過爾
    (자이나~리~자이나리젠꿔니)
    爾的笑容這樣熟悉
    (니더쌰오룽 쩌양 수~시)
    我一時想不起 (워이스 썅붙이)
    啞~ 在夢裏 (아~ 자이멍~리)
    夢裏夢裏見過爾 (멍~리~ 멍리 젠꿔니)
    甛密笑得多甛密
    (티엔~미~시아오더뚜어티엔미)
    是爾是爾 (쓰니 쓰니)
    夢見的就是爾 (멍젠더지우스니)
    在那裏在那裏見過爾
    (자이나~리~자이 나리젠꿔니)
    爾的笑容這樣熟悉
    (니디 쌰오룽쩌양 수~시)
    我一時想不起 (워이스 썅붙이)
    啞~ 在夢裏 (아~ 자이멍~리) 



     어디에서 본 것만 같은데

    웃는얼굴 낯이 읶은데 

    기억이 안나네

     아~~꿈이었어꿈속에서 너를 보았지

    감미롭게 웃는 모습은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너

    어디에서 본것만 같은데

    웃는얼굴 낯이 읶은데

       기억이 안나네

        아~~꿈이었어


        아~~꿈이었어




    캬바레


    베트남 다낭 여행기 15편

    2017.02.10


    15편 바나힐스

    다낭 바나힐가면 꼭 알아야 할 팁

    1. 테마파크를 전부 이용해보자- 테마파크는 부담스러운 놀이기구가 없어서 어른이나 아이들도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고 레일카, 자이로드롭, 5D 체험관 순서로 해서 이용 동선이 가장 좋습니다!

    2. 테마파크를 전부 이용해보자- 케이블카를 처음 이용할 때 몰랐던 사실 중 하나는 멋진 장관들이 오른쪽 편인가 왼쪽 편인가 하는 것인데요! 미리 타기 전 오른쪽 편에 자리를 잡고 올라가는 것을 추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넓은 하늘과 함께 아름다운 폭포가 있어서 사진을 찍기 유용하답니다.

    3.바나힐에서 유럽풍의 마을을 둘러보자- 놀이기구를 무서워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말 그대로 경치를 구경하는 공간이 무척 많습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먹거리들이 많으니 테마파크를 이용하지 못했다면.. 아름다운 전경에 몸을 맡겨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낭 시내에서 차로 30~40분 거리에 위치한 바나힐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케이블카를 타고 바나힐로 올라갑니다. 케이블카 길이가 무려 5,200m나 되는데요~ 케이블카 이용료가 55만동(바나힐 입장료 및 놀이기구 이용 포함), 3만원 정도입니다.케이블카 이용료가 왜 이렇게 비싸??!! 하실 수도 있겠지만바나힐 입장료와 이용권 모두 포함이랍니다!

    바나힐은 볼거리 가득한 곳이랍니다. 프랑스의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유럽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에서 인생사진 찰칵!베트남 커플들이 셀프웨딩 촬영으로도 많이 오는 곳이니 어떤 분위기인지 아시겠죠?

     

    다낭에서 바나힐만 가는 것도 택시를 섭외하면 50~60만동 합니다. (3만원), 호이안에서 다낭까지는?? 90~100만동, 한국 돈으로 6만원 정도? 게다가 바나힐 케이블카 + 입장료로 55만동을 추가로 내야하죠~ 3만원 추가요~ 다낭 출발 기준 6만원, 호이안 출발 기준 9만원 ㅠㅠ1. 다낭-바나힐 택시 : 50~60만동 (3만원) / 호이안-바나힐 택시 : 90~100만동 (6만원)2. 바나힐 케이블카 + 입장 및 이용료 : 60만동 (3만원)3. 다낭에서 바나힐 왕복 비용 = 6만원!! / 호이안에서 바나힐 왕복 비용 = 9만원!!










































    바나힐스(Ba Na Hills Resort)

    바나힐스는 다낭시 서쪽에 있는 해발 1,487m의 꽤 높은 산으로 총 17분이 소요되는 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산 정상에 놀이공원과 프랑스풍의 마을을 조성하여 서늘한 기후에서 쾌적하게 유흥을 즐길 수 있게 만든 테마파크이다

    리조트에는 호텔(Mercure Bana Hills French Village Hotel), 골프장(18), 14개의 식당과 바, 쇼핑점,

    놀이공원(Fantasy Park), 화원 등이 있는데 2011년 개장된 놀이공원은 동남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다낭에서 서쪽으로 23km, 자동차로 20~30분 정도면 도착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부근의 프랑스마을에 들어 섰으나 비안개가 심해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을 정도

    리조트 입장료가 US$30(60만동) 정도로 비싸며 이곳에 있는 레스토랑도 맛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

    2009년에 오픈한 이 케이블카(톡티엔-인도차이나라인)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고도차(1,368m)와 가장 긴(5,810m) 싱글 로프 케이블카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으며 세계10대 케이블카로 꼽힌다고 한다. 17분간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이 아래로 보이는 계곡물과 열대수림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베트남 다낭, 바나힐(Bana Hill)

    다낭 서쪽에 있는 바나힐은 마치 프랑스의 작은 옛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20여분 동안 케이블카를 타고 바나산 정상에 오르면 유럽풍의 고성들이 반겨준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이 더위를 피해 산 정상에 별장을 짓고 지내던 곳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바나힐은 프랑스 식민지인 1900년대 초, 프랑스 장군이 프랑스 사람들의 휴양지로 개발했다. 그런 이유로 바나힐에서 프랑스풍의 건물과 정원, 그리고 100년이 넘은 와인셀러 등을 찾을 수 있다. 현재는 호주 자본에 의해 리조트로 개발되어 관광객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 곳에는 놀이공원과 오락실까지 있어서 가족들과 놀러오기 안성맞춤이다



























     







    베트남 다낭 여행기 14편

    2017.02.09


    14편 다낭 후에



    카이딘 왕릉입구


























    티엔무사원

    중국불교의 흔적이 많이 묻어나는 사원으로 특히 남방불교의 색채를 많이 띄고있다. 절 입구에는

    21미터에 달하는 빛 바랜 팔각형의 7층 석탑이 강물을 굽어보며 자리 잡고 있다. 탑의 좌우에는

    탑비와 범종이 자리잡고 있으며, 탑의 각층에는 불상이 안치되어있다.



















    후에성

    베트남 왕이 중국의 자금성을 본따서 지은 성으로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황궁이다. 현재는 일부만 관광이 허락되고 있으며 다른 곳은 복원중이다. 허나 그 규모를 따지면 어마하다. 성 외부는 해자가 둘러져 있고, 황궁 앞에는 좌우로 대포진지가 있고, 태화전 현임각 등이 있다.




























    태화전(Thai Hoa Dien) 혹은(Thai Hoa Palace) 태화전(Thai Hoa Dien)은 예전에는 '황제 즉위식' 등과 같은 중요한 일을 치렀던 곳이지만. 현재는 왕좌, 옥쇄, 등을 전시한 곳!














    베트남 다낭 여행기 13편

    2017.02.08


    13편 다낭 호이안

    호이안 : 16세기 무역도시의 고풍스러움이 살아 쉬는 거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후에에서 4시간, 다낭에서 남쪽으로 약 30KM에 위치한 고대의 항구도시 호이안은 17세기의 옛모습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복고적인 외관이 멋스러운 도시이다.호이안 유적지 관광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인 호이안 구시가지





    일본내원교 1593년 일본인들이 세웠다는 목조지붕이 있는 다리로 일본인거리와 중국인 거리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개와 원숭이 조각상이 다리의 양끝을 지키고 있으며, 다리위에는항해의 안전을 기원하고자 하는 절이 있다.

































    베트남의 중앙부에 위치한 이 도시는 하노이와 호치민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베트남 시민들이나 베트남을 잘 아는 여행자들은 한결같이 최고의여행지로 호이안을 뽑는다. 다른 대도시처럼 아오자이를 휘날리며 달리는 오토바이의 물결도 없고, 줄지어세워진 빌딩도 없지만 호이안은 깨끗하게 잘 정돈된 시가지에 옛 모습을 잘 보전한 매력적인 도시이다.




















    풍흥의 집 19세기 중엽 풍훙이라는 무역상이 자신의 상점으로 지은 곳으로, 전체적으로베트남, 중국, 일본 풍이혼합되어있는 품위 있는 목조 건물이다.집안은 물건들을 진열하는 곳과 창고 주거지, 제단으로 각각구분되어있다.



    광조회관(관운장사당) 1885년 중국 광동 지역의 무역상인들이 지은 건물이다. 회관 내벽에는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관우,장비의 그림들이 걸려있고, 제일 안쪽에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설치되어있다 매년 음력 1월 16일이 되면 광동 인들이 이곳에 모여 제사를 지낸다.



















     




     







     베트남 다낭 여행기 12편

    2017.02.08


    12편  마블마운틴,

     베트남 다낭, 오행산(Mable Mountain) ▶다낭의 가장 아름다운 명소, 마블마운틴(대리석산) 및 전망대 관광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낭 시민들에게는 신앙의 땅으로 믿음을 받아온 산.다낭의 명소로서 다낭을 대표하는 투이손산(물의산)에는 2개의 절과 부처를 모셔놓은 몇개의 동굴들이 있다.





















    올라가는 입구에 오행산에서 생산된 각종 대리석 제품들을 전시 및 판매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다낭시민들에게는 신앙의 따응로 믿음을 받아온 산으로 다낭  명소. 대표하는 산에는 2개의 절과 부처를 모셔놓은 몇개의 동굴들이 있습니다.























    베트남인들의 민간 신앙을 대변하는 산으로 물, 나무, 금, 땅, 불을 상징하는 5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산 전체가 대리석이기 때문에 마블 마운틴이라고 불린다. 오행산은 베트남 중부 최대의 도시 다낭 시내에서 남쪽 방향에 있으며 차로 약 20분 정도 걸린다.


    물을 상징하는 투이 선(Thuy Son)이 핵심 봉우리로 산속 둥굴에 지옥계와 천상계로 구분하여 각종 불상과 지옥모습들이 있다. 석단에는 전망대가 위치하여 논 느억(Non Nuoc) 마을과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논 느억 마을에는 대리석 공예품을 판매한다.







    베트남 다낭여행기  11편

    일시: 2017.02.07~02.11  3박5일

    여행사: 온라인여행사   박관우02-2003-2217

    비용: 1인당 649,000원

    옵션: 바나힐60불, 야경관광 30불, 씨클로20불, 스톤맛사지40분 가이드50불 계200불


    11편 첫째날 다낭 대성당, 까오다이교 사원,다낭 박물관










    베트남 중부여행  다낭 경제수도 호치민(Ho Chi Minh, 구 사이공) 베트남 수도 하노이(Hanoi) 북동부 하이퐁에 이어 베트남 중부의 제4도시 다낭은 북쪽 후에와 남쪽 호이안에 둘러싸인 항구도시로 새롭게 떠오르는 베트남’의 상징이다.

    큰 강입구 뜻을 지닌 다낭(Da Nang),
    경제와 휴양도시로 유명한 베트남의 하와이 “한강(漢江)”이 도심을 가로 지르는 중부권의 중심도시 다낭, 영화 인도차이나의 촬영지 차이나 비치, 석회석 오행산 마블 마운틴, 다낭 대성당 ! 베트남의 남산격인 바나산 해발 1600m의 케이블카는 5Km로 세계 두번째 길다




    시내 한복판에 절이 우뚝 아기자기하다







    다낭 시내 하늘에서 본사진




    미케비치해변



    다낭 대성당 다낭 도심에 있는 프랑스풍의 고딕성당으로 1923년 프랑스 식민지 건설되었다 다낭 대성당은 다낭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프랑스풍 카톨릭 성당이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 지배를 받던 1923년에 세워졌다. 당시 프랑스계 주민들을 위해 세워진 성당은 다른 건물과 다르게 분홍색으로 되어 있어 어디서든 눈에 띈다.성당의 지붕에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닭 모양의 풍향계가 있어, 일명 ‘수탉 교회’라고 불린다.평상시에는 닫혀 있지만 일요일 미사시간이 되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다낭 시티디스버리  기본코스 중 한 곳, 까오다이교사원 까오다이교 베트남 신흥종교로 1926년 유교적도덕, 불교교리,도교제식을 섞어 보편주의와 채식주의를 주장하며 까오다이교 신을 모시는 종교  베트남 남부 터이닌에서 창시 되어 호아하오교와 함께 베트남 양대 신흥종교이다  까오다이란 높은 곳이란 의미로 신이 지배하는 천상의 영역, 천국을 뜻한다 남자, 여자 입구가 달라요.정문을 바라보고 좌측은 여성(Nu Phai)!우측은 남성(Nam Phai) 문이에요!















    다낭 박물관 다낭의 역사를 한눈에! 다낭박물관 (Bảo tàng Đà Nẵng) 주소: 24 Trần Phú, Thạch Thang, Đà Nẵng, 베트남 관람시간: 08:00~ 17:00까지 (중간 점심시간 : 11:30~13:30까지 오픈안함) 입장료: 20,000VND


    다낭시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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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6MB

    라오스 여행기 4편

    라오스 방비엥에서 비엔티엔으로  방비엥거리

     

     

    몬도가네 건어물 시장 

     

     

     

     

     

     

     

    탕원유원지에서 선상 중식

    남능강에 유유히 흐르는 풍경을 감상하며 선상에서식사하는 특식(현지식)

     

     

     

     

     

     

     

     

     

     

     

     

     

    바다가 없는 라오스 소금마을

    방비엥의 소금마을 바다가 없는 나라에서 소금을 만드는 방법은 두가지로, 지하수를 퍼낸 후

    한국의 바다에서 보던것 처럼 염전을 만들어 자연 건조 하는 방법과 가열염전으로 물을

    끓여서 소금을 얻는다. 라오스에서만 볼수 있는 톡특한 곳

     

     

     

     

     

     

     

     

     

     

     

     

    비엔티엔 왓탓루앙 사원

    라오스의 상징인 왓탓루앙은 빠뚜싸이(독립기념탑) 동북쪽으로 약 1.5km 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타지역의 라오 인들조차 이곳에서 공양을 드리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 여기는 불교 유적이며 라오스의 주건을 상징하기도 한다

     황금사원이라고도 불리며, 부처님의 가슴뼈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삐마이축제, 탓루앙 축제 등 다채로운 축제가열린다.

     

     

     

     

     

     

     

     

     

     

    라오스 비엔티엔 물축제

    라오스는 태국과 같이 1년에 3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모든 관공서 가게는 문을 닫고 물축제를

     한다

    여행의 묘미는 축제에 같이 어울려 즐기는 것도 또한 즐거움의 하나이다.

    특히 3일은 모두 거리에 나와 축제에 같이 어울리고 여행객들도 반바지 차림에 동참하여

    같이 물을 뿌리고 즐긴다 밤에는 메콩강 주변에 공연장에서 가수들이 나와 같이 노래를

    부르며  천장에 샤워기에서 물을 뿌린다

    비누 방울을 기계에 넣고 뿌릴때는 관광객들이 더 좋아한다.

    거리에 지나가는 오트바이 또 트럭을 개조한 쌩때우에 물을 싵고 가면서 거리행인들에게

    물세래를 준다.

     

     

     스님들도 물축제 참가 앞의 물통이 비워있네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

    특히 바나나 꽃과 열매는 환상적이다

     

     

     

     

     

     

     

     

     

     

     

     

     

     

     

     

     

     

     

    라오스 여행기를 끝으로 같이 여행한 일행들과 현지가이드 김현동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또한 무사히 여행을 같이한 모두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이 되도록 기도해본다

    끝까지 봐 주셔 감사를 드린다.

    편집인: 이수연

     

    라오스 여행시 참고사항

    라오스 여행은 옵션이 무지 많다 여행사 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된다면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여행사마다 다름)

    유이폭포: 20불,    블루라군 20불,  버기카 50불,  롱데일보트 30불

    짚라인 50불, 탐쌍동굴 10불, 카약킹 30불, 코끼리트래킹 50불

    산악오토바이 40불, 열기구 100불, 햄그라이드 150불 등등 끝

     

     

    첨부파일 help me make29.mp3

     

     

     

    라오스 여행기 3편

    방비엥

    방비엥은 수도 비엔티엔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아름다운 소도시이다여행자들은 대게 비엔티엔과 루앙프라방을 오갈때 방비엥에 들리곤 하는데 소박한 자연에 이끌려 예정보다 며칠을 더 머무르곤 한다 굽이굽이 둘러쌓인 산들과 수 많은 동굴 또 그주위를 끼고 도는 메콩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사람들의 마음을 사호 잡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계림을 닮았다고 해서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소계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라오스의 방비엥은 중국 구이린과 베트남 하롱베이와 더불어 세계 3대 카르스트 지형에 속하 는  곳 이다. 이는 아름답고 기이한 봉우리들과 동굴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트래킹이나 동굴 탐험을 하려는 세계의 배낭여행자들이 방비엥으로 몰려든다.여행을 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선에도 속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시속 100킬로미터의 자동차, 시속 50킬로미터의 오토바이, 시속 20킬로미터의 자전거에서,
    그리고 시속 4킬로미터로 걷다보면 세상은 아무래도 서로 다르다.

     여행자의 속도가 달라지면 볼 수있는 풍경도 달라진다.

    방비엥거리 풍경 

     

     

     

     

    롱데일 보트를 타고 쏭강에서 노을 감상과 레포츠를 즐기는 관광객을 만나다

    열기구와 햄글라이드를타는 스포츠맨들

     

     

    방비엥의 새벽 풍경과 거리모습 

     

     

     

     

     

     

     

    전용차량으로 쌩때우를 타고 블루라군으로 가는길

    방비엥의 먼지는 모든 사람을 기절시키고 마스크 수건 가릴것 없이

     

     

     

     

     

    블루라인에서 짚라인타면서 즐기는 군대의 유격훈련

    생땀이 흐르는 산능선에서 키가큰 나무 중턱에서 높이가 15m 정도 나무와 나무사이

    거리는 짧은 것은 50m  긴곳은 100m 정도 줄한개에 목숨을 걸고 타는 재미는 스릴과

    싸스펜스 그 자체이다 특히 여성 분들이 너무좋아 고함을 지른다.

     

     

    블루라군에서 다이빙은 묘미가 스릴과 순간의 아찔함은 관광객들로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높은 나무가지에 올라 밑을 보면 아찔하다 평소 다이빙을 못하는 나도 건물 4층높이의

    나무에 올라 다이빙을 3번이나 했다. 같이온 일행들은 무서워 모두 내려가고 혼자 만 뛰었다

    나무에 오르니 수많은 구경꾼이 쳐다보고 사진을 찍는데 눈 딱 감고 뛰었다

    물의 깊이가 2.5m 인데 막상 뛰었지만 조금 무서웠다

     

     

    탐남동굴 (튜빙체험)


    수중동굴로 입구가 물속에 있어 튜브를 타고 굴속에 설치해 놓은 줄을 잡고 이동한다.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한 종유석 동굴로신기하고 재미있는체험이다.

    방비엥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많은 동굴이 있으며, 탐쌍동굴 근처의 자연경관은

    하나의 멋있는풍경을 보는듯 하다. 동굴에 들어가면 쏭강과 방비엥 시내를 내려다

    볼수있는 곳도 있다. 동굴 탐험은 투어의 절정이다

     

    탐남동굴가는 길에 시장도 보고

     

     

     

     

     

     

     

     

     

     

    탐쌍동굴 (코끼리 동굴)

    대표적인 종유석 동굴로 동굴 안을 이동하면서 원숭이나 개구리, 흰 코끼리, 머리가 세 개 달

    린 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의 형상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관광객들의 편안한 관광을 위해 시멘

    트로 길을 깔아두었으며 다채로운 조명으로 어두컴컴한 동굴을 훤히 밝혀 주기 때문에 마치

    색채화를 보는 느낌이 들며 동굴 왼쪽 길을 따라가면 방비엥 일대를 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

    가 나온다.

     

     

     

     

     

     

    쏭강을 따라 카약을 타고 내려오며 방비엥의 산수를 감상할 수 있는 래프팅 체험

     

    방비엥에서 가장 인기있는 일정으로 쏭강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며 경치를 감상하는 일정이다.

     물에 젖을 옷과 끈이달린 샌들 또는 아쿠아 슈즈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방비엥은 물살이 적절해 카약킹을 즐기기에 최적의 명소가 되며 방비엥에서 즐길수 있는

    투어 중 하일라이트 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절경속을 헤치고 강을 내려오면서 천혜의 자연을 만끽 할 수 있으며 처음 만나는

    여행객 끼리도 친밀감을 형성 할 수 있어 방비엥에서 꼭 해봐야 할 스포츠 이다

     

     

     

     

     

     

     

    다음편에 계속

     

    첨부파일 one Way Ticket (Cm) Neil Sedaka .mp3

     

     

     

     

     

     

    라오스 여행기 2편

    루앙 프라방

    몽족야시장 루앙프라방 수공예품 전시장

     

     

     

     

     

     

     

     

     

     

     

     

     

     

     

     

     

     

    탁밧행렬

    모두가 나눠먹는다는 이념아래 행해지는 탁밧행렬은 이른아침부터 시작된다.

    가장 나이가 많은 스님이 앞장을 서고 서열에 따라 한줄로 뒤를 따른다. 스님들은 시주들

    앞을 지나가면서 바리때의 뚜껑을 반쯤만 연다. 그러면 시주들이 준비한 음식물을 바리때에

     넣어준다. 루앙프라방의 스님들은 하루에 아침과 점심 두 끼니밖에 먹지 않는다.

    루앙프라방에서 꼭 놓치지 말아야할장면이다.라오스에서 가장 긴 탁밧행렬이며 주민들 및

    여행객들이 공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님들이 공양받은 것을 불우이웃을 위해 다시 나눈다

     

     

    푸씨산

    루앙프라방 사면 어디에서든지 이산을 바라보이는 산이다. 일출, 일몰의 경치가 멋있다.

    정산은 해발 약 150M정도로 그리 높지는 않다. 정상에 올라 루앙프라방의 전경을 감상하

    노라면 마음의 정화가 되는듯한 기분을 얻는다.

     

     

     

     

     

     

     

     

     

     

     

     

     

     

     

     

     

     

     

    루앙프라방 아침시장

     

     

    망고파는 아줌씨  4kg  5달러 무지 많이 주네

     

    맛있는 망고 고르는 법을 알켜주고 있는 라오스 아줌마

     

     

     

    튀김 만두를 빗는 라오스 아가씨 몹시 예쁘다

     

     

     

    난전에서 고기를 쌓아 놓고 파는 가계

     

    라오스 국화 독챰파

     

     

    라오 통족 화전마을 아이들과 집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가는길 알랑산맥을 넘으며

    아름다운 푸피양퍄산 휴게실와 현지 중식

     

     

     

     

     

     

     

     

     

     

     

     

     

    방비엥가는길 노천온천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첨부파일 pipe_line-이석화.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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