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20  4편  슬로베니아 루블랴나

오늘은 3개나라를 거친다  크로아티아 에서 슬로베니아로 갔다가 다시 크로아티아 자다르로간다.

블레드를 보고 슬로베니아 루블랴나로왔다

류불랴나는 볼것이 많다.  프리셰르노브광장,  토모스토베(트리플브릿지), 구시가지관광

그 추억의 사진들을 아래에서 본다.



 

류블랴나

다른 표기 언어 Ljubljana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는 슬로베니아어로 ‘사랑스러운’을 뜻하는 이름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영향으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많이 지어졌다. 하지만 이후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도시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스타일의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바로크 양식과 묘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가 지금의 현대적이고 젊은 류블랴나와 잘 어울린다. 파울로 코엘로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배경지로 잘 알려져 있는 도시로, 소설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활발하고 개방적인 느낌이 드는 류블랴나는 유적지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강을 따라 늘어선 카페에 머물거나 산책을 즐기고, 자연 속의 도심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류블랴니차 강 유역에 위치해 있다. 북부 디나르알프스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자연적으로 형성된 저지(低地)에 자리잡았다. 이곳은 짙은 안개가 자주 낀다.

BC 1세기에 로마 도시인 에모나가 있었다. 에모나 시는 전략도시로서 류블랴나 협곡을 통제하는 파노니아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으나 약 5세기경에 이방인들에게 파괴당했다. 슬라브족이 루비가나라는 이름으로 재건한 뒤 10세기에 마자르족에게 다시 파괴당했다. 12세기에 카르니올라 공국으로 넘어갔고 1270년에 보헤미아의 오타카르 2세에게 정복되었으나 1277년에 라이바흐라는 이름으로 합스부르크가(家)의 지배를 받았다.

프레셰렌 광장(Prešernov trg)

프레쎼렌 광장은 슬로베니아 어로는 프레세레노프 광장(Prešernov trg)이라고 하는데 류블랴나의 중심 광장이며 만남의 장소, 각종 축제, 류블랴나 카니발, 콘서트, 스포츠 경기, 정치 집회 등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가장 번화하고 활기찬 장소로  위에 많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어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다.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1461년 류블랴나는 주교 소재지가 되었다. 1809년 프랑스에 점령되어 1813년까지 일리리아 지방의 정부 소재지가 되었다. 1821년에는 신성동맹 국가들의 모임이었던 라이바흐 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1849년 빈에서부터 오는 남부 철도가 건설됨으로써 발전이 빨라졌고 오스트리아 지배 밑에서 슬로베니아 민족주의가 자라나는 중심지가 되었다. 1797년 이곳에서 슬로베니아 일간지가 최초로 발행되었다. 외국에 의한 통치는 1918년 유고슬라비아와 합병되면서 종식되었다.


류블랴나는 중세시대 성채가 특징이다. 성채와 강 사이에 옛 시가지가 있으며 1895년에 심한 지진을 겪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바로크 양식의 오래된 건물 몇 채만이 남아 있다. 신시가지에는 대규모의 티볼리 공원이 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 대부분은 18세기에 지은 것이다. 그밖에 박물관, 화랑, 오페라 극장, 에드바르드카르델리대학교(1595, 류블랴나대학교로 창립), 신학교(1919), 3개의 예술원, 슬로베니아 과학예술원, 야금학연구소 등이 있다

프레셰렌 동상 (Prešernov Spomenik)

이곳에 시인의 동상을 세우자는 아이디어는  1889년 초등학생에 의해 처음 나왔고,  52명의 슬로베니아 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1898년 류블랴나 시장 이반 흐리바르(Ivan Hribar)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7명의 조각가들의 시안 중 Zajec의 작품이 뽑혀   1900년 10월에 정식 동상 제작을 의뢰 하였다.

동상의 대부분의 과정은 오스트리아에서 이루어졌는데  그가 사망한지 56년이 지난 1905년 9월 10일에 완성되었다.  청동상의 높이는 3.5m이다.   프레셰렌의 머리 위에 있는 여인은  바위 위에 앉아 월계수 잎을 들고 있는 뮤즈인데.  이 뮤즈까지의 높이를 더하면 9.6m에 이른다.


건물 벽에 한 여인의 부조가 붙어 있는  노란색 건물을 볼 수 있다. 건물은 프레셰렌이 평생 짝사랑했다는

율리아 프리미체(Julija Primic 1816~1864)가 살던 집이다.



율리아 프리미체 ▲

시인이 되기 전에는 변호사였던 프레셰렌은  1834년, 부유한 상인의 딸인 젊고 아름다운  18세의 ‘율리아 프리미체’를 사교모임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의 나이 34세 때였는데  소심했던 프레셰렌은 16살이나 어린 율리아에게  그 사랑을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결국 율리아와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1836년, 안나 옐로브섹(Ana Jelovšek)이라는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는 아이 셋을 낳은 안나를 평생 부양하고 배우자처럼 대했지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편 율리아는 1839년 부와 지위가 높은 남자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럼에도 프레셰렌은 멀리서 그녀를 바라만 보며  짝사랑을 이어갔으며, 그녀를 향한 수십 편의 시를 썼다.

그리고 1849년 2월 8일, 49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율리아를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이와 같은 프레셰렌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이곳에 동상을 세울 때 두 사람을 서로 마주보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낭만적이다.

이 도시는 오스트리아로 가는 철도 및 도로교통의 요지이다. 수력발전소용 터빈을 생산하며 천연섬유, 합성섬유, 알루미나, 종이 및 신문용지, 신발류, 가죽, 가전제품, 화학품, 비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세갈래다리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카메라만 대면 자동으로 미소를 지으면 포즈를 취해준다

미소를 지으면 포즈를

아담과

이브

노천 카페

푸줏간다리 유리다리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보든코브 광장에 있는 이 노천 시장은 관광객들뿐 아니라 현지 사람들이 찾는 재래시장으로

류블랴나의 중앙시장이다.


매일 싱싱한 채소, 계절 과일, 토산품,  수공예품 등을 팔고 있는 곳인데,  이미 파장 무렵인 듯 일부 진열대에서만 과일을 팔고 있다.




드래곤 브리지 Dragon Bridge

드래곤 브리지는 처음에는 목조 다리였으나  1900년~1901년 사이에 철근 콘크리트로 건축한 다리로

다리교각 네 모퉁이에 청동으로 만든  드래곤의 형상이 세워져 있어  '드래곤 브리지'로 불리고 있다.

류블랴나 도심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이 다리 아치에는 1848과 1888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요세프(Franz Josef) 황제의 40주년 통치기념을 뜻한다.



드래곤 브리지 교각 네 모퉁이에 있는  4마리의 드래곤은  자니노비크(Zaninović)가 설계하고 비엔나에서 제작되었는데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날개를 한껏 치켜 올린   용맹스러운 자태로 다리를 지키고 있다.

북동쪽 교각 모퉁이 드래곤 ▲

하지만 그 모습은 흔히 우리가 아는 용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서양의 용과 동양의 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용과 드래곤은 똑 같이 상상 속의 동물이다.  동서양을 망라하여  전 세계 모든 문화 속 전설이나 신화 에 등장하는 존재이지만  동양의 용(龍)은  우주 만물의 질서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지며  제왕(帝王)을 상징하는 동물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한 모습인데  날개가 없어도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


동양의 용모습


하지만 서양의 드래곤(Dragon)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다 주는 포악하고 두려운 존재로 괴물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을 괴롭히고 해치는 악으로 상징되었다. 그래서 영웅이 등장하여 이들 괴물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 모습도 공룡 및 익룡이나 도마뱀 내지는 악어 혹은 뱀을 닮은, 강하고 무시무시한데,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를 갖고 있으며, 등에는 박쥐와 같은 날개가 달려있어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입에서는 불이나 연기를 내뿜는다고 한다. 대체로 몸집이 거대하다.


이렇듯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은 생김새, 성격, 의미 등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동물일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다리는 드래곤 브리지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어쨌든 류블랴나의 드래곤은 류블랴나의 상징과도 같아 류블랴나 시의 깃발에도 등장할 정도인데

그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신화에 의하면 그리스의 테살리아의 왕 펠리아스는  이아손(Iason)이라는 조카가 있었는데,  펠리아스는 그에게 왕위를 빼앗길까봐 두려워,  이아손에게 용이 지키는 황금 양의 털을 가져오라는   어려운 임무를 주었다.  이에 이아손은 여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아르고 호라는 배를 만들어서 영웅들을 모아 원정길을  났고  흑해 동쪽 끝에서 황금양털을 구해 돌아가던 중  다뉴브 강과 사바 강을 거쳐  류블랴니차 강까지 거슬러 들어왔다 고 한다.

그때 이아손은 류블랴나 근처의 호수에서  큰 괴물을 물리쳤는데  그 괴물이 류블랴나의 드래곤이라고 한다.   이 전설로 인해 류블랴나 사람들은  이 도시가 이아손이 만든 도시라고 여기게 되었으며  그 드래곤은 현재 류블랴나 성탑 꼭대기의 깃발 속에  문장의 일부로 영원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푸줏간 다리 Mesarski most

푸줏간 다리는 페트코브섹 제방 길과 중앙시장을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다리이다

특이한 다리 이름은  과거 류블랴나 중앙시장의 정육점들이 모여 있던 장소에  다리가 놓여 있어 붙여진 것이다.  1930년대에 역시 요제 플레츠니크가  둥근 아치형으로 설계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보류되었다가 2010년 7월10일이 되어서야 철근과 유리 등을 이용한  현대식 다리로 개통되게 되었다.

 새롭게 설계를 맡은 사람은 Jurij Kobe로 양쪽 난간 가까이는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마감하여 흐르는 강물이 내려다보이게 하였다.



리고 이 다리에는 보스니아 출신 슬로베니아 조각가인 야코브 브르다르(Jakov Brdar)가 다리 곳곳에

그리스신화와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청동 구조물들을 만들어 놓았다.

먼저 다리 입구에는 인간에게 불의 사용을 알려준 죄로   벌을 받아 육체의 장기가 해체된 처참한 모습의

프로메테우스 동상이 서있다.

아담과 이브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主神)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 가르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Pandora)라는 여성을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냈다.

이때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는데, 이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 사건이 일어나고, 인류의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제우스의 장래에 관한 비밀을 제우스에게 밝혀 주지 않았기 때문에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되어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사티로스(Saturo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인 괴물들로  얼굴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머리에 작은 뿔이 났으며,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중을 들고 함께 광란의 축제를 벌이며 님프와 무녀들을 희롱한다.

술과 호색을 지나치게 밝히는 무리들로서 영어에서  ‘호색한’을 뜻하는 Satyric의 어원이 된다.

다리 끝에는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다리 건너  성 니콜라스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모습의 청동상이 있다.

푸줏간 다리 위에서 포즈를

푸줏간 다리 위에서 포즈를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모래시계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모래시계

보든코브 광장 노천시장

성 니콜라스 대성당


성 니콜라스 대성당

성당 내부


류블랴나 대성당의 정식 이름은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다.

수호성인인 니콜라스를 기리기 위해  13세기에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목조 건물이었으나  1701년부터 1706년까지 초록색의 돔을 비 롯,  건축가 안드레아 푸조(Andrea Pozzo)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높이 24m의 첨탑은 롬바드르 출신 건축가   줄리오 과글리오(Giulio Guaglio)의 설계로 이루어졌으며

1996년 교황 요한 바로오 2세의 방문을 앞두고,  정문과 측문을 새것으로 바꾸었다.



신자들의 기도하는 모습

소원을 비는 촛불

슬로베니아 문(Slovenska vrata) 슬로베니아 문이라 이름 붙은 정문은  가톨릭이 들어온 이후  슬로베니아 1250년의 역사를 묘사한 것으로  Tone Demšar의 작품이다.


류블랴나 문(Ljubljanska vrata)

문 상단 오른쪽의 수많은 백성은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왼쪽에 손이 묶여 있는 사람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나타낸다고 한다. 상단 가운데 창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인물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제일 처음 인정해준 바티칸 시국에 대한 감사가 담겨져 있다.


니콜라스 대성당 파이프 오르간 

류블랴나 문(Ljubljanska vrata) 정면 청동문,  

정면 청동문,   1996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류블랴나 기념을 방문해 새로 만들어진 문. 

측면 청동문 조각,  

측면 청동문 조각,  

측면 청동문 조각,  

측면 청동문 조각,  

측면 청동문, 이 조각은 성당 발전에 기여한 6명의 주교가 누워있는 예수를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성당 내부 천장화 

정면 청동문,   1996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류블랴나 기념을 방문해 새로 만들어진 문. 



성당 내부 천장화 

1703~1706년, 그리고 1721~1723년까지   줄리오 과글리오가 그린 벽화와  바로크 양식의 성전 내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파이프 오르간


성 니콜라스 대성당 천장

성 니콜라스 대성당 천장

류블랴나 성 Ljubljana Catsle  

류블랴나 성은 류블랴나의 핵심적인 관광 명소다.  중세 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고즈넉한 도시 분의기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운 도시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류블랴나 성은 9세기부터 존재하였던 중세의 성이라고 하며 14세기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중으로 넘어 갔다고 한다. 1511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당시의 성은 허물어졌고,  지금과 같은 외관을 갖춘 것은 16세기 후반부터다.  17세기에는 오스만 터키의 위협 속에서 성이 점차 파괴되었고,  1814년에는 수비대가 주둔하다가 감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05년에 시 행정부가 문화적 이용을 위하여 구매를 했으나 1970년대 말이 되어서야 복구를 하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성 내부에는 슬로베니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과 웨딩홀, 호텔, 레스토랑, 매점, 전망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무엇보다 프레쎼렌 광장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분홍빛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광장에서 제일 눈에 띄는 핑크색의 이 성당은  류블랴나의 수태고지 교구성당으로  교회의 분홍 색은 프란치스코 회의  수도적 지침을 상징한다고 한다.

  1646년부터 1660년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오래된 교회를 대신해 세워졌다.

  핑크 색의 바로크양식 외관에 아르느보 장식을 한 파사드는  1703년~1706년에 건축한 것으로  현재의 건물은 1895년 대지진후 리모델링한 것이다.

1층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2층은 코린트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붕 꼭대기에 있는 동상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이다.

2008년 들어 이 성당은  슬로베니아의 문화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프레셰렌 광장(Prešernov trg)


프레셰렌 광장(Prešernov trg) 에서 우리일행과 민속춤을 추고있다

프레셰렌 광장(Prešernov trg) 에서 우리일행과 민속춤을 추고있다








세갈래 다리. 프레셰렌 광장. 성 프란체스코 성당   .프레셰렌 동상












이 다리 아치에는 1848과 1888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요세프(Franz Josef) 황제의 40주년 통치기념을 뜻한다.





드래곤 브리지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