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21편 바로셀로나 구엘공원 2013.10.9

 

안토니 가우디의 오랜 후원자이자 사업가, 작가, 정치가였던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은 쾌적한 환경의 주택단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 산 밑의 땅을 사서 가우디에게 계획과 설계를 맡겼는데, 영국식 정원의 형태로 자연과 어우러지게 길을 만들고 부지를 나누어 주택을 짓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을 만드는 식이었다. 총 60개의 부지로 나뉘어 있었는데, 당시 가격에 비해 약간 비싸기도 했지만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 때문에 두 부지만 분양이 되었다. 이 두 집 중 하나가 지금 가우디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고, 나머지 하나가 카사 트리아스(Casa Trias)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역은 공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14년에 공사가 중단되었고, 1918년에 에우세비 구엘이 사망하면서 이후에 그의 상속자들이 이곳을 바르셀로나 시에 판매하여 1926년에 공원으로 개방되었다.

 

구엘 공원의 주 정문으로 들어가면 모자이크로 만든 도마뱀 분수가 있고, 그 뒤에는 살라 이포스틸라(Sala Hipóstila)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다. 여러 개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이 천장 가장자리의 난간은 위에서는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된다. 이곳은 장이 선다거나 모임이 열릴 수 있도록 설계된 장소이기도 하지만 기능적인 면으로 볼 때는 물을 모으는 곳이기도 하다. 천장으로 내린 비는 가운데가 뚫린 기둥을 통해 아래로 흘러내린다. 배수로 역할을 하기도 하는 기둥을 따라 흘러내린 물은 기둥 밑바닥에 설치된 저수 창고에 모인다. 로마시대에 사용하던 시스템을 가우디가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돌기둥이 세워진 산책로 역시 최대한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나무 모양처럼 만들었는데, 부지를 닦을 때 나온 돌을 활용한 것이다.

 

1900년부터 약 14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60채 이상 분양되어야 했지만 공사가 진행되던 중 구엘이 사망하면서, 3채만 분양되고 미완성 단지로 남게 되었다. 공원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그 앞으로는 알록달록한 타일 조각으로 옷을 입은 도마뱀 분수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삼은 시장이 있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 공원의 꽃이라 불리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 공원의 꽃이라 불리우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의 모습은 해 질 녘에 더 빛을 발한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미를 추구하는 가우디의 철학은 이 공원에도 적용되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길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자연 그대로를 설계에 담기 위해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길을 만들었으며, 마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신기하게 이어져 있다. 구엘 공원 안에는 가우디가 아버지와 함께 20년간 살았던 집이 있는데, 현재 이곳은 가우디 박물관이 되어 가우디가 생전 사용했던 유품들과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20편  바로셀로나 성가족성당 2013.10.9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성가족 성당 ,가우디 생전 마지막 작품. 스페인 바르셀로 나에 짓고 있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다. 또한 '사그라다'는 
스페인어로 신성한 또는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파밀리아는 가족을 뜻하기 때문에 성가족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을 책임졌다. 이 건물에 대한 가우디의 작업
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의 일부이며, 2010년 11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당에서 준 대성당으로 승격을 선포
했다

성가족 성당(Sagrada Família)은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대표적 인 건축물이다.1883년 3월 19일, 성 요셉 축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아직까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 감독을 맡았지만 생전에 완공하지 못하였다.그만큼 가우디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성당은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후원자들의 기부금만으로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작업이 무척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가우디는 죽기 전에 ‘이 작품의 주인(하느님)이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비록 미완성 작품일지라도, 가우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운 곡선, 섬세하게 조각된 내부가 인상적이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19편 스페인 바로셀로나 몬주익언덕,올림픽경기장 2013.10.9

 

몬주익 언덕은 올림픽 주경기장, 갤러리, 박물관, 야외극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복합 단지로서 시
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이곳이 문화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1929년 만국박람회(엑스포) 이후부터인
데 만국박람회의 전시관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1934년에국립 카탈루냐 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1975년에는 세계적 
예술가인 호안 미로가 재단을 설립해 개관한 호안 미로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몬 주익 언덕’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들의 귀에 익은 이름이었으며, 마라톤 금메달리스트‘황영
조’선수와 상호 등식관계로 우리 입에 오르내렸다. 바르셀로나에 찾아와서 직접 바라본 '몬 주익'은 마치 우리나라 
서울의 '남산'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리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그 높이(173m)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바다 
쪽으로 향하고 있는 산의 스카이라인은 남산(잠두봉 : 누에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형상)의 모습과 흡사하여 더욱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올림픽 스타디움>은 본래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 대회장으로 지은 것이었으나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을 계기로 5만 5천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스타디움으로 개조하였다. 현재는 바르셀로나 축구팀인 <에스파뇰>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 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 18편     스페인,그라나다 헤네랄리페 정원 2013.10.8

 

헤네랄리페(Generalife)는 그라나다 왕의 여름 별궁이었다. 14세기 초에 조성되었다. 세로형 정원의 중앙에 수로를 설치하고 좌우로 분수를 두었다. 주위에는 정성껏 가꾼 꽃과 담쟁이 덩굴이 만발해 있다. 물과 정원수가 어우러진 경관은 이슬람 조경의 특징이다.헤네랄리페 정원14세기에 지어진 파티오 데 라 아세퀴아는 정원의 심장이다. 길고 좁은 관개수로가 한쪽을 흐르며, 12개가 넘는 분수가 가느다란 물줄기를 공중으로 뿜어 올리고 있다. 파르티코 데 로스 시프레세스의 북쪽 포르티코로 넘어가면, 장방형 인공 연못이 있고, 그 주위를 잘 정돈된 나지막한 생울타리가 에워싸고 있다.

 

그라나다에서 알람브라 궁전으로 오르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궁전의 동쪽 높은 언덕에 그라나다 왕들의 피서를 위
한 은둔처로서 헤네랄리페(Generalife) 이궁이 있다.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이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보다 50미터
나 더 높은 서향 언덕에 위치하여 사방을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위 경치가 아름답고 시원한 곳이어서 휴양지
로서 이상적인 곳이다.따라서 정원보다 건축 위주인 알람브라 궁전이 왕들의 상주 공간이라면, 헤네랄리페 궁전은 
건물을 제외한 공간 전부가 정원인 셈이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17편  스페인,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  2013.10.08  

 

알람브라(아랍어: الحمراء, 스페인어: Alhambra)는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궁전과 성곽의 복합단지다.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졌다.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도 지역에서 머물던 아랍 군주의 저택이었던 곳으로 그라나다 시
의 남동쪽 경계에 있다. 현재에는 이슬람 건축 박물관으로쓰이고 있다. 르네상스식 건물이 카를로스 1세 때 추가되
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무어 왕조의 유물로 남은 가장 오래된 것은 알카사바라는 성곽으로 거대한 외벽과 탑, 방벽들만이 남아 있다. 알카
사바 안쪽에 알람브라 궁전이 있고, 그 안쪽에 시종들이 살던 알람브라 알타가 있다.이 궁전에서 으뜸가는 중정은 
도금양중정과 사자중정이다. 13세기말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알람브라 외곽의 ‘건설자의 정원'이라는 별장이 유
명하다.알람브라궁전에는 남부 유럽적이고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두 개의 커다란 정원이 있는데 그 주변에 많
은 방이 배치되어 있다. 궁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정원이 아라야네스 정원이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 16편  스페인 플라멩코 2013.10.8

 

 14세기부터 발전한 플라멩코는 집시·안달루시아인·아랍인·유대계 스페인인의 민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 집시들이 직업적으로 춤을 추게 되면서 플라멩코가 집시의 음악과 춤을 일컫게 되었다.보통 기타 음악과 즉흥춤을 수반하는 칸테(노래)로 구성된다. 심오하고 장중한 플라멩코는 비장감을 동반하며 죽음·번뇌·종교 등을 다룬다. 중간조의 플라멩코는 덜 심오하나 음악에 동양적 색조가 가미되는 경우가 많다. 경쾌한 플라멩코는 사랑·시골·즐거움을 소재로 한다.춤을 출 때 남성들의 발놀림은 발끝과 뒤꿈치로 탁탁 소리를 내는 등 복잡하게 펼쳐진다. 여성들의 춤은 발놀림보다는 손과 전신의 아름다움에 의존한다. 공연에는 복잡한 리듬의 손뼉치기·손가락 튕기기·추임새가 수반되기도 하며, 종종 캐
스터네츠도 등장한다.

 

스페인을 방문하면, 주요 도시에서 수준 높은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타브라오’란 곳을 찾아가 즐길 수 있다.춤을 감상할 때는 남자의 스텝과 여자의 손과 몸 동작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플라멩코 무용이란, ‘사파테아드’라고 하는 소리가 나는 스텝의 기술이고, 다음 기술은 손목에 의한 감정 표현, 팔, 어깨의 우아한 자세, 허리 놀림, 또 ‘피트’라고 하는 손가락으로 음을 내는 테크닉, 카스타넷 사용방법이다플라멩코 공연 중 ‘오레’라고 하는 흥을 돋우는 소리가 따르는데, 이 소리는 무용수, 가수, 기타리스트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복잡한 약속이 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15편  스페인 코르드바 메스키타사원 2013.10.7

 

메스키타는 모스크, 즉 이슬람 사원을 뜻한다. 아랍어로는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곳’이란 의미로 시작된 말이다. 8세기 후반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 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에 버금가는 도시를 코르도바에 세우고자 당시 서고트족의 교회의 일부를 구입한 뒤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게 되었고, 이는 스페인 이슬람 사원의 중심이 되었다. 9~10세기 동안 크게 세 번 증축을 하면서 약 2만 5천 명의 신자들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엄청난 규모로 완공되었다.

 

이 메스키타는한번에 2만5천명이 예배를 드릴수 있는 스페인의 가장 큰 모스크이며,  카톨릭 성당이다. 코르도바
는 이슬람 전성기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메스키타는 200년이 걸려서 10세기경에 완성 되었다. 8세기에 이
슬람 제국 때 모스크 건축 시작, 13세기에 레콩퀴스타 Reconquest 로 기독교가 다시 점령해서 중심부를 성당으로 개조,  머슬림과 크리스찬 문명이 한데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있다.  

 

예배 전 전 몸을 씻는 수반이 자리했던 중정, 850개의 말굽 모양의 아치 기둥, 정교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이슬람식의 문양은 전통적인 이슬람 사원의 양식을 따랐다. 국토 회복 운동 후에는 승리를 상징하는 가톨릭 성당을 사원 중앙에 만들었으며, 수반이 있던 중정에는 오렌지 나무를 심고, 중정을 둘러싸고 있던 아치들도 모두 벽으로 막아 버렸다. 원래 말굽 모양의 아치 기둥은 1000개가 넘었었는데 성당을 세우면서 약 150여 개의 기둥은 사라졌다고 한다. 역사의 흔적으로 인해 한 공간에 두 개의 종교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건축물로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종교 건축물이다.

 

성당의 모습도 기억에 남아 있지만 메스키타의 모습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슬람이 만들어 놓은 중앙 예배실에  
하이포스타일 hypostyle 메트릭스 처럼 줄을 서 있는 850여개의 기둥이 압권이다. 모든 기둥이  부채모양의 이중 
아치로 연결되어 있고 아치의 빨간 벽돌과 하얀 벽돌이 부채모양을 만들어 일직선으로 보면 기둥숫자가 2배로 보이
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미흐랍 Mihrab은 메카를 향해 기도드리는 방향이 표시된 곳으로 대리석과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 되어있는  화려한 벽이다. 비잔틴 제국에 모자이크 장인들이 가지고 온 16톤의 모자이크 조각으로 미흐랍을 만들었다고 한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 14편  스페인 미하스 2013.10.7

 

미하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자치지역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다. 도시의 중심인 미하스푸에블로 지구는 안달루시아 지방 특유의 하얀 외벽 주택으로 가득하다. 관광이 주 수입원이며 스페인에서 가장 큰 골프 리조트인 라칼라 리조트가 있다. 20세기 전반까지 농사 외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낙후한 지역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스페인 남부 ‘태양의 해변’에 속하는 관광도시로 부각됐다.연 강수량은 600mm이며 주로 10월부터 4월 사이에 비가 내린다. 고지대로 갈수록 기온이 낮아진다. 가장 높은 지대는 해발 600m에 달해 겨울에 가끔 얼음이 얼고 강수량도 800mm까지 늘어난다.

 

하얀 마을로 유명한 미하스는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평화로운 작은 마을로 건물이 모두 흰색이다. 
높은 지역에 위치한 마을인데 멀리서 보면 흰색 집들만 눈에 들어온다. 뷰도 좋아서 별장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거리에 놓인 벤치도 흰색이다. 전망대 벽면에 새겨진 마을 이름인 미하스(Mijas)가 아름다운 색채로 수놓아있다공원으로 가던 길에 당나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알고 보니 바로 Burro Taxi라는 것으로1960년대에 당나귀들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노동자들을 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산책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관광객들로부터 받은 돈이 노동자들의 월급보다 많아지게 되어 마침내 당나귀 택시 회사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는 카페도 있고 노점상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야자수 아래 돌로 만들어진 벤치가 신기했다. 벤치가 모두 대리석이었다. 대리석 장인 Galiano가 1884년에 분수대와 벤치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카페에서 쉬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미하스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던 마을… 흰색으로 통일시켜 만든 건물들 때문에 미하스가 관광지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만약 아무런 특성 없이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었다면 이처럼 많은 사람이 찾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청동기 시대에 사람들이 살게 된 고대의 유적지라고 하는데 후에 페니키아인, 로마인, 무어인, 마침내 크리스이 살게 된 곳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나름 오랜 역사 속을 흘러온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13편  모로코 카사블랑카 2013.10.06

 

모로코 대서양 연안에 있는 도시. 지명은 '하얀 집'이라는 뜻이다. 아랍 어로도 '하얀 집'이라는 뜻의 다르엘베이다(Dar el Beida)라고 한다. 옛 이름은 베르베르 어로 안파(Anfa)인데 '작은 산, 언덕'의 뜻이다. 16세기경 베르베르 인의 도시 안파의 자리에 포르투갈 인들에 의해 도시가 건설되어 18세기 후반에 무역항으로 재건되었다유럽인가 하면 황량한 사막과 오아시스가 펼쳐지고, 미로 같은 시가지의 골목길 사이로 화려하고 웅장한 이슬람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하지만 어느 하나이색적이지 않은 곳이 없다. 중심가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은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 세워졌다는 자체만으로 꽤나 놀랍다.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중해를 통해 유럽과 맞닿아 있는 모로코는 유럽색이 짙은 국가이다. 특히 모로
코 제2의 도시인 카사블랑카는 동명의 영화로 인해 아프리카보다는 남부 유럽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북쪽으로는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대서양 연안, 동쪽으로는 알제
리, 남쪽으로는 사하라사막에 둘러싸인 모로코의 지리적특성으로 인해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아프리카보다 
유럽을 통해서 유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디나 어디서든 한눈에 보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의 건물이 있다. 바로 카사블랑카 제1의 관광명소 ‘하산 2세 사원(핫산 모스크)’이다. 높이가 200m나 되는 거대한 기둥사원이 우뚝 솟아있어 어디를 가든 눈에 띈다. 하산 2세 사원은 카사블랑카 서쪽 해변을 막아 만든 간척지 위에 지어져 실내/외에 각각 2만 명과8만 명, 합쳐서 모두 1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대규모 사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알-하람 모스크(al-Haram Mosque)'와 메디나 의 '예언자 모스크(Prophet's Mosque)' 다음으로 큰 규모다. 모스크 건설에 투입된 장인만도 1만여 명, 공사 기간은 8년이나 소요된 거대한 건축물이다.

 

높이뿐 아니라 대리석이 깔린 넓은 광장으로 인해 얼핏 보면 사원이라기보다 고급스런 궁전 같다. 기둥과 건물 외
벽, 실내 곳곳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모로코 전통 문양으로 화려함을 뽐낸다. 코란의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구절을 따라 해안가 절벽에 지어졌기 때문에사원에서 바로 대서양의 시원한 바람과 석양을 맞이할 수 
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12편  모로코 수도 라바트의 핫산탑과 왕릉 2013.10.5

 

수도 라바트의 핫산탑과 왕릉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12세기말 야쿱 알 만스루왕이 거 대한 모스크를 지으려다가 사망하면서 중지된 채로 300여개의 크고 작은 돌기둥과 핫산탑이 있다.   이 거대한 미완성 모스크 바로 옆에 현 국왕인 모하메드 6세의 조부, 부, 작은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왕릉이 있다. 1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지하의 중앙에 있는 석관에는 조부인 모하메드 5세가, 왼쪽에는 부왕인 하산 2세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작은아버지 물라이 압둘라가 모셔져 있다.

 

모로코 현 국왕 모하메드6세의 조부 모하메드5세의 묘가 있는 곳 모하메드5세는 프랑스의 지배로 부터 모로코의 독립을 되찾은 왕으로 모로코 민족영웅. 현모로코 국왕의 조부인 모하메드5세이 죽음을 애도하여 그의 아들 하산2세가 하산탑이 있는 광장끝에 1962년~69년까지 7년간 400여명의 장인들에 의해 완공되었다고한다. 내부가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답다파란색 지붕은 곡식을 상징하고 꼭대기에 있는 3개의 원형봉은 이슬람.알라.코란을 의미한다.계단을 올라 건물안으로 들어가면 지하에 있 관을 1층에서 내려다볼수 있도록 중앙이 뚤려있으며 석관은 모두 3개이고 중앙에는 모로코 현 국왕인 모하메드6세의 조부 모하메드5세.왼족은 부친(하산2세. 오른족은 작은 아버지 뮬라이압둘라 관이 안치되어있다
모로코에선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르지 않고 한대를 건너뛰고 이름을 짓는다한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 여행기11편 모로코  페스 메디나 2013.10.05

 

1. 페스(Fès)
○ 라바트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인구 95만의 모로코 제3의 도시이다. 모로코 최초의 왕조를 세운 이드리스 1가 789년 도시를 건설하였고, 그 뒤를 이은 이드리스 2세는 808년 Fès를 모로코의 수도로 삼았다. 왕조의 변천에 따라 수도가 바뀌어도 페스는 발전을 계속하여 메린 왕조 시대에 가장 번창했다. 그 이후 모로코의 종교 · 문화 · 예술을 선도하는 “靈的 수도”로 알려져 있고, 세계 최대의 미로인 메디나는 중세의 세계가 지금도 활기를 띠고 있다. 페스는 2003년도에 우리나라 수원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페스의 메디나는 중세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 무려 9,600여 개에 이르는 협소한 골목은 좁았다 넓어지고 뻗었다 구부러지며 어느 하나 닮은 길 없이 완벽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골목의 유일한 운송 수단은 노새 정도뿐이다. 좁고 곡선이 많아서 수레는 다닐 수 없다. 평생 햇볕 한번 들어오지 않는 좁고 복잡한 골목, 구불구불한 그물 모양의 도로, 가파른 비탈길들이 뒤얽힌 중세 도시의 모습은 당시에도 살기 좋은 환경으로 여겨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외적의 침입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성스러운 도시 페스는 스페인-아랍 문명의 정수 중 하나이다.메리니드 왕조의 점령 후 13세기에는 아부 유수프Abou Youssouf) 술탄이이슬람력 674년에 페스 엘 제디드(Fez el Jedid)라는 새 도시를 서쪽에 건설하였다.이 도시는 마라케시를 대신해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두 도시는 각각의 독창적 특징을 잃지 않은 채 공생하였다.페스는 다양한 인구 계층을 토대로 다채로운 건축 양식과 도시 경관을 조성해낸 이슬람권 대도시 중 하나이자박물관과도 같은 도시이다. 1912년 이후 현대 도시의 장점에 밀려 페스는 쇠퇴의 길을 걸었고,행정 수도 자리를 라바트에 넘겨줬다. 하지만 여전히 페스는 모로코 문화와 정신의 중심지로서 자리하고 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 여행기 10편 스페인 론다 2013.10.4

 

론다(Ronda)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인 말라가 주의 도시로 인구는 36,827명(2009년 기준), 면적은 481.31km2이
다. 말라가에서 약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론다 인근에 위치한 쿠에바데라필레타(Cueva de la Pileta) 동굴에서 동굴 벽화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6세기에 켈트족들에 의해 아룬다(Arunda)라는 이름의 마을이 설립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은 이 곳에 아시니포(Acinipo)라는 이름의 마을을 세웠
다. 기원전 3세기에는 고대 로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장군에 의해 요새화되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는 도시 
칭호를 받게 된다.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 113km 떨어져 있는 도시로 말라가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세계적인 작가 헤밍웨이
가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말했을 정도로 스페인에서도 전경이 아름답기로 유명
한 곳이다. 헤밍웨이가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이곳 론다에서 집필하였다고 한다.

 

1785년에 완공된 투우장으로 세비야 투우장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이다.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최대 6,000명 정도의 인원이 입장할 수 있는 규모로 오직 투우만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투우장이기도 하다. 1984년에는 내부에 투우 박물관도 만들어졌다. 이곳 론다 투우장에서 투우의 창시장 프란시스코 로메로에 의해 붉은색 천(케이프)을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는 투우가 시작됐고, 그의 손자였던 페드로 로메로는 투우사로 지내는 동안 약 6,000마리의 황소를 단 한 번의 부상도 없이 쓰러뜨렸던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도 가끔 투우 경기가 열리고, 경기가 없을 때는 경기장 투어와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누에보다리
120m 높이의 타호 협곡 위에 세워진 론다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이어 주는 다리로, 론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협곡 아래 과달레빈강이 흘러 옛날부터 두 지역의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한 3개의 다리 중 하나이다. 당시 아라곤 지역의 천재 건축가였던 마르틴 데 알데후엘라(Martín de Aldehuela)가 40여 년 동안 공을 들여 1793년 완성했는데, 3개의 다리 중 가장 늦게 완공이 되어 ‘누에보(새로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이곳에서 포로들을 떨어뜨려 죽였고, 다리 중간 아치에 있는 공간은 감옥으로 사용했었다는 슬픈 역사
를 지닌 장소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사진 촬영지로 전 세계 작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안달루시아의 꽃이라고 일컫는 아름다운 마을 론다는 과달레빈강(Río Guadalevín) 타호 협곡(El Tajo Canyon) 위 해 780m 고지대에 세워진 절벽 위의 도시이기도 하다. 론다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경기 중 하나인 투우인데, 말을 타고 창으로 찌르던 전통 투우 방식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간 천을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는 방식의 투우를 창시한 곳이 론다이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낭만적인 협곡 도시 론다는 산책하듯 둘러보면 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누에보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에 있는 첫 번째 골목을 따라가면 캄피요 광장(Plaza del Campillo)이 나오고 광장 오른쪽 끝의 전망대까지 가면 누에보 다리와 협곡 위에 자리잡은 론다의 아름다운 모습
을 바라볼 수 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 여행기 9편  스페인세비아대성당 2013.10.4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세비야에 있는 로마 가톨릭 대성당이다. 1987년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1], 스페인의 주교좌 성당이기도 하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10번째로 거대한 성당이며, 가장 거대한 규모의 고딕 양식 성당이다.

 

16세기 완공된 이후, 세비야 대성당은 수 천년 동안 가장 거대한 성당이라는 명예를 지니고 있던 아야 소피아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성당으로 떠올랐다. 대성당은 11,520평방 미터의 면적을 차지하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부분의 길이는 약 126m, 너비는 약 76m이며, 그리고 첨탑의 최고 높이는 42m이다. 특히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인 히랄다 탑은 104.5m의 높이를 자랑하기도 한다

 

세비야 대성당은 1478년에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여왕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아라곤의 후안 왕자가 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며,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 알폰소 10세와 같은 군주들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기도 하다. 추기경의 경우에는 후 드 세르반테스 추기경, 페드로 곤잘레즈 데 멘도자 추기경 등이 묻혀있으며, 유명한 모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그의 아들도 이 곳에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콜럼버스의 묘(Sepulcro de Colón)
스페인 정부는 콜럼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여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그의 유언을 지켜 주기 위해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4명의 왕들이 그의 무덤을 짊어지게 했다. 앞에 있는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들은 고개를 들고 있고, 뒤에 있는 나바라, 아라곤 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것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했던 왕은 고개를 들도록, 반대했던 왕은 고개를 숙이도록 한 것이란다. 그리고 오른쪽 레온 왕의 창살 아래에는 그라나다를 뜻하는 석류가 꽂혀 있는데 국토 회복 운동으로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들이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문장이 해당 왕국을 의미한다.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이 유난히 반짝이는데, 이것은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속설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 여행기 8편  스페인 세비아  2013.10.4

 

스페인  세비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있는 도시.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 있는 내륙 항구도시로, 문화 중심지이다.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의 수도였으며, 스페인의 해외 식민지 건설의 거점이었다. 20세기 들어 항구가 확장되었으며, 공업과 상업의 요지로 다시 활력을 얻게 되었다. 주요수출품은 포도주·올리브·과일·코르크·광물이며, 담배·무기·섬유·도자기·기계류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은 이슬람의 마지막 왕국이었던 그라나다 까지 248㎞로 코르도바와 함께 카스티야 왕국이 이슬람세력을 이베리아 반도로부터 몰아내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며 콜럼버스가 이곳에서 항해를 시작한 곳으로 콜럼버스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고 한다.세비야는 해안에서 87여㎞ 떨어진 곳으로 과달카비르 강이 가로 지르고 있는데 과거에는 배도 작았고 과달키비르 강이 수심이 깊고 유량도 많아 항구로서 기능이 가능해서 스페인 제국의 당당한 제1 무역도시였었으며, 신대륙 교역의 첫 관문으로서 영화를 누렸지만 수위가 낮아지고 배는 커진 지금은 세비야의 기능을 말라가 같은 해안가 도시가 대신하고 있어서 항구도시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말았다.

 

스페인 광장
 마리아 루이사 공주가 1893년 산 텔모 궁전 정원의 반을 시에 기증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 루이사 공원이 만어졌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 안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세비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 스페인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당시 본부 건물로 지어진 건물은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고, 건물 양쪽의 탑은 대성당에 있는 히랄다 탑을 본 따 만들었고, 건물 아래층 반원을 따라 타일로 장식된 곳은 스페인 모든 도시의 문장과 지도,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 핸드폰 광고와 카드사 광고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 마차 투어를 즐겨 봐도 좋다.

 

황금의 탑
황금의 탑은 왕립 마에스트란사 투우장 맞은편 과달퀴비르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13세기 이슬람 시대에 지은 12각형 형태의 탑으로 강 상류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원래는 강 맞은편에 똑같이 생긴 은의 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황금의 탑만 남았는데 두 개의 탑을 쇠사슬로 연결해서 적의 침투를 막았다고 한다. 이슬람 시대에 지어진 군사용 건물로는 마지막으로 남겨진 건물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탑 위에 작은 부속 탑은 18세기 후반에 들어와 새롭게 증축된 것으로 탑은 소성당, 화약 저장고, 감옥 등으로 사용되다 현재는 해양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7편  리스본항구 타호강 벨렘탑,제로니무스수도원  2013.10.3

 

벨렘탑(포르투갈어: Torre de Belém)은 포르투갈 리스본 벨렝에 있는 타워로, 1983년 인근에 위치한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6세기 마누엘 1세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스페인 출신의 수호성인 성 빈센트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탑이다.[1] 카스 카이스 요새와 강 맞은 편에있는 세바스티앙 다 카파리카 요새 사이의 삼자 방어 시스템의 일부였다. 타워의 장식은 전형적인 마누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1512년 착공하여 1519년 완공되었다.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는 30m에 달한다. 

 

타호강 근처에 있는 벨렘탑은 4층의 등대로서, 1515∼1521년 프란시스코 데 알다가 가마의 업적을 추모하여 건물 모퉁이마다 감시탑을 세우는 형식으로 지었다. 포르투갈 특유의 마누엘 양식을 띠고 있으며 밧줄·조개·바다풀 등의 장식을 새겨넣고 총안을 둔 흉벽 등을 설치하였다. 탑의 안뜰에는 '성공의 성모' 조각상과 인도 양식의 작은 첨탑을 설치하였다. 지하감옥 위에 있는 '총독의 방'은 고딕 양식으로 꾸몄고, '찬란한 방'이라는 거실도 만들었다. 1983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제로니무스수도원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1세가 선조인 항해왕 엔히크를 기리기 위하여 착공하여 1551년 완공하였다. 석회암으로 된 건물은 1변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며 웅장하고 화려한 노르만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수도원의 산타마리아성당 파사드 가운데에는 마누엘 1세와 왕비 마리아, 성제로니무스, 세례 요한 등의 조각상이 있고, 남문 회랑에는 후기 고딕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성인과 고승들의 조각상 24개가 세워져 있다. 수도원 왕실묘지에는 마누엘 1세와 왕비의 돌널, 바스쿠 다 가마와 루이스 드 카몽이스 등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제로니무스수도원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1세가 선조인 항해왕 엔히크를 기리기 위하여 착공하여 1551년 완공하였다. 석회암으로 된 건물은 1변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며 웅장하고 화려한 노르만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수도원의 산타마리아성당 파사드 가운데에는 마누엘 1세와 왕비 마리아, 성제로니무스, 세례 요한 등의 조각상이 있고, 남문 회랑에는 후기 고딕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성인과 고승들의 조각상 24개가 세워져 있다. 수도원 왕실묘지에는 마누엘 1세와 왕비의 돌널, 바스쿠 다 가마와 루이스 드 카몽이스 등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 6편  포르투칼 까보다로까 땅끝마을  2013.10.3

 

유럽 대륙의 서쪽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도 서쪽 끝을 지키고 있는 나라가 포르투칼이다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포르투칼은 대서양을 발판삼아 15-16세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니며  해양 왕국으로 대성했다  이포르투칼에서 대서양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 땅끝 마을로 알려진 까보다로까다 리스본에서40km 거리에 있는데 신트라(Sintra)에서 약 20여분 걸리는 곳으로 까보다로까( Cabo da Roca)는 시작과 끝이 공존한다는 뜻이다 

 

바다 그리고 하늘 아름다운 야생 선인장꽃들  자연 환경에 취할 즈음 바위 벽에 부딪치고 깨어지는  백파를 감상하면서 남은 인생 여정에 대한 생각이 났다 이바다 대서양으로 쭉가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나온다 탐험모험가들은 여기서부 험난한 파도와 싸워가면서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 여행기 5편  포르투칼 파티마  2013.10.02

 

파티마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성모 발현의 역사는 1917년 5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세 명의 어린 목동 루치아(10세), 야신타(7세), 프란시스쿠(9세)의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서 세 가지 예언을 했고, 죄인들의 회개 기도와 로사리오에 대한 기도를 당부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비밀을 굳게 지켰지만, 성모 마리아가 매월 13일 여섯 차례 나타난다는 소문이 나면서 13일이 되면 몇 천 명의 신도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성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발현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성모가 나타나기로 한 마지막 날인 10월 13일, 자리에 모인 약 7만 명의 사람들 앞에 거대한 빛이 나타나면서 성모 발현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처음부터 성모 발현과 예언을 교황청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1930년 레이리라 주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바티칸 교황청에서도 성모 발현지로 인정하였고 파티마는 세상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여행기 4편  스페인 메리다  2013.10.02

 

메리다(스페인어: Mérida)는 스페인 바다호스도의 도시로, 액스트레마두라주의 중심 도시이다. 인구는 56,395명(2009년 기준)이며 면적은 865.6km2이다. 메리다는 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내린 칙령에 따라 건설된 도시인 에메리타 아우구스타(Emerita Augusta)를 효시로 하고 있으며 후에 루시타니아 속주의 수도가 된다. 이 때문에 메리다에는 로마 제국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메리다 고고유적군은 1993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 선정되었다. 

 

 

 

스페인 포로투칼 모로코 여행기 3편  스페인 마드리드  2013.10.01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카스티야 지방의 대표 도시이자 스페인 교통의 요충지이. 16세기부터 펠리페 2세가 왕궁을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스페인의 수도가 되었고 이후 스페인의 정치, 경제의 중심 역할 맡아 왔다. 왕실에서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들을 전시하여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라도 미술관이 마드리드에 자리 잡고,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소피아 왕립 미술 센터에 전시되면서 마드리드는 세계적인 미술의 도시가 되었다. 1936년부터 3년간 치러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마드리드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왕이 되면서 마드리드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마드리드(스페인어: Madrid)는 스페인의 수도로, 나라의 중앙부에 있다. 인구는 약 300만 명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수준)이다. 마드리드는 만사나레스(스페인어: Manzanares)강을 끼고 있으며 스페인의 중심에 위치한다. 마드리드가 쏟아내는 경제적 효과로 인해 주변 도시들이 크게 영향을 받으며 따라서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의 경제 중심으로 여겨진다. 또한 스페인 회사의 절대 다수가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드는 3개의 기업(Telefónica, Repsol-YPF, Endesa)도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스페인의 수도로서 정부 청사가 있으며 스페인 왕궁이 있을 뿐 아니라 스페인 정계의 중심이기도 하다.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여행기 2편 스페인  똘레도 비디오 촬영분 201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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