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으로 시작한 태국 치앙마이 여행기

첫째날 (2018.2.26.)

2018.2.26.~ 2018.3.2.(35) 기대와 설래임으로 떠난 여행 이국적인 태국의 향수에 모두들 추위를 버리고 반팔의 옷차림으로 시작한 치앙마이는 그이상의 만족을 주었다.

치앙마이공항에 도착후 가이드 김병호 부장과 미팅후 곧바로 숙소인 하모나이즈 호텔로 향했다.

하모나이즈[Harmonize Hotel]  2016년 신축 호텔로서  내부 디자인과 깔끔한 객실 구성으로 무료생수, 무료 와이파이, 등 이용이 가능하다.

 

둘째날(2018.2.27.)

아침새벽에 일찍 일어나 호텔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니 도시와는 약간 떨어져 있어 아침 산책하는데는 실패 했다.

7시경 식사를 끝내고 도이수텝사원으로 갔다.

 

치앙마이 도이수탭은 치앙마이 여행의 백미로 수탭산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한 사원이다. 내부에는 또하나의 벽으로 둘러쌓인 황금불탑이 있으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보관되어있다. 흰 코끼리의 전설이 있으며, 사원의 마당에서 보는 치앙마이의 전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눈을 땔 수가 없다.

왓 프라탓 도이수텝의 하이라이트인 황금 대형 불탑에서 많은 사진을 남겼고, 태국의 사원 중 가장 전망이 좋은 사원의 하나이다.


도이수탭사원 온통 황금으로 만들어 ....

도이수탭 불상도 환영의 인사를 건네고..


'왓 프라탓' 은 부처님의 사리가 안치되었다는 뜻이다. 1383년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산위에 세워진 유서깊은 사원으로 태국의 사원 중 가장 전망이 좋다. 치앙마이를 방문 한 사람 중에 '도이수텝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은 치앙마이를 보았다고 할수 없다' 라는 말이 있듯 치앙마이의 관광 꼭봐야하는 필수 조건이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불교성지 순례자들이 찾아드는 곳이며,

 

누워있는불상도 우리들을 반기고..

나의 소원을 빌어볼까


치앙마이의 상징인 사원으로 치앙마이에서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지점이다. 우리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올때는 300개의 계단으로내려왔다. 도이수탬의 사원은 온통 금색으로 덥혀있는 탑들과 옛조상들의 예술미가 깃든 한폭의 영화 같은 불교의 정서를 한눈에 담겨있었다.

 

도이수텝에서 어린이와 하이파이를 하고 기념품으로 쪼코렛과 볼펜을...


사원을 보고 우리는 코끼리캠프로 이동했다.

먼저 한 것은 짚라인 100불이라는 비용이 부담이 되었으나 나는 라오스에서 한번 해보아 경험이 있어서 또한번 해보고 싶었다.

우리일행8명 모두가 신청하여 사전교육을 받고 계곡과 나무사이로 오가는 17개코스로 이루어진 타잔놀이는 처음에는 무서움으로 시작해서 중간에는 즐거움으로, 끝나고 나서 아쉬움으로 남는 행복한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다.

 

우리일행 8명 모두가 화이팅을 외치며 안전하게 행복하게..무사히


짚라인을 마치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현지식으로 포식하고 코끼리 라이딩체험을 실시했다.

전통적으로 태국의 영물로 여겨졌던 친숙한 동물 코끼리. 근대에는 교통수단이 되고, 벌목을 도와주는 코끼리 등에 올라 트래킹을 하였고 .



우마차 체험을 하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였다.

우리와 언어, 생활 풍습등이 흡사한 고산 소수민족중 하나인 "리수족마을"에서 우마차를 타고 산길 유람하고,



매삥강의 지류인 매땡강을 뱀부레프팅으로 유유자적 유람하는 대나무 땟목으로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50분 동안 가는 동안 코끼리 교육장, 관광객들과코끼리 목욕하는 모습등 많은 사진을 남기고 오늘 일과는 종료하였다.



일일 뱃사공 한국에서 파견.....


피곤한 몸들을 피로를 푸는 최고의 방법 전신마사지 전통안마를 받으려 갔다.

안마를 받고나니 온몸의 피로가 싹가신다.

 

지금부터는 야간 시티투어시작이다. 원시와 현대가 공종하는 도시에서 툭툭이를 타고 야시장의 활기와 700년 고대도시의 유적들을 체험하는 시간 쌀국수로

시장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돼지고기 꼬치로 안주삼아 한잔의 태국술을 먹으니

천하가 내것이다. 가이드가 김병호부장이 망고과일을 푸짐히 먹도록 해주니 이 또한 안주는 금상첨화 이다.

 

툭툭이를 타고 야시장거리를 ...


또다시 야간투어시작이다 다시 툭툭이를 타고 왓체디루앙으로간다


 

왓체디루앙 최대의 사리탑이 있는 사원이며 회당의 앞쪽 현관을 장식하고 있는 계단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사원이다. 구시가지의 중심부인 왓프라싱 동쪽 프라 뽁그라오거리에 위치한 사원으로 1411년에 건립되었다. 5400년이 넘은 폐허의 체디가 있으며 1411년에 세워 1475~1478년 사이에 띠로까왕에 의해 확장되었으며 본당 안에는 금색으로 빛나는 8미터 높이의 입불상이 있다.


오늘의 일정은 이것으로 끝이다 호텔로 돌아와 다음날을 기약해본다

 

셋째날(2018.2.28.)

오늘은 일정이 빡빡하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630분에 출발했다

치앙라이로 가는데 214km 3시간30분 거리 종교화가 찰럼차이 교수의 개인사원이며 극락세계를 표현한 백색사원으로 간다.

 

백색사원 정면에서

웅장하고 정교한 사원 평생 잊지못할 기념물....


롱쿤 (WAT RONG KHUN) 이라고 하며, 태국에서 천국과 지옥을 가장 잘 연출한 화가 찰럼차이교수 개인의 사재를 들여서 50년 계획으로 짓고 있는 순백의 사원, 사원곳곳에 거울을 붙여서 백색과 은색의 조화를 너무 아름답게 이루어 놓은사원이며 군데군데 세워진 석상과 인물상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북부를 상징하는 최고의 사원으로 2014 년의 지진으로 약간의 피해를 봤으나 현재는 복원이 거의 끝난 상태이다 . 특이하게 화장실만 금색이며 신발을 바꿔 신어야한다

 

사원이 온통 백색이다 전세게적으로 단한개있는 희기 사원이다.


북쪽에 위치한 백색사원 왓롱쿤은 모든 사원이 백색으로 칠해져 있고 유리조각으로 장식이 되어 있어 햇볕을 받으면 눈부시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사원이다. 이 사원은 지옥과 극락을 표현한 태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원이며 아직도 미완성된 사원으로 계속 공사 진행 중이다. 햇볕이 눈부신 날에 찾아간다면 반짝반짝 빛나는 사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 이다.

 

스님들도 짬을네어 한장의 인정샷을 ....

우리일행 너무 황홀하여 정신을 못차리고...


백색사원에서 많은 기념사진을 남기고 태국과 미얀마의 유일한 육상통로 태국최북단 메사이 다리를 건너 미얀마 양곤의 츠웨따껑 불탑을 본떠만든 황금사원을보러간다

 

미얀마 츠위다껑 황금불탑 사원

미얀마 타킬렉에 위치 미얀마 양곤의 99톤 황금탑을 모방하여 만든 츠위다껑 황금불탑입구에서 미얀마 아이들이 양산을 받쳐들고 햇볕을 가려주며 설명을 나름대로 하는데 알아 들을수가 있어야지 전망대위에서 태국과 미얀마를 비디오 촬영하고 황금불탑 인정샷을 날리고 아이들에게 1달러의 팀과 기념품을 주니 연신 좋아다 감사표시를 한다.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타이야족의 전통사원인 왓타이 사원을 보러갔다.

 

미얀마 츠위다껑 황금불탑 사원에서 물로샤워하는 불상

미얀마 츠위다껑 황금불탑 사원에서 33도의 무더위를 양산으로 받쳐준 아가씨와 인정샷


타이야이족은 중국 윈난성으로 부터 이주한 타이족의 한분파이다.운남성에 살던 타이족이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중국남부와 미얀마/ 태국 북부지방에 정착한 타이족의 일부를 타이야이족이라 부른다. 왓 타이야이는 태국인도 아닌 미얀마인도 아닌 타이야이족 만의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고 이어가기위해 만들어진 사원이다

미얀마 왓타이야이 사원

  미얀마 왓타이야이 사원

 

다시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태국,미얀마,라오스 3국을 가로지르는 메콩강에서 롱테일보트를 타고 골든 트라이앵글 관광으로 라오스입국 풍물시장과 같은 시장에서 기념품을 하나사고 다시 보트를 타고 태국으로 갔다.


 

롱테일보트를 타고 메콩강 탐사 메콩강은 동남아시아 최대의 강이며, 중국의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미얀마.라오스.태국.캄보디아.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 강입니다. 전체 4,200km 길이이며, 태국/미얀마/라오스 3개 국가 국경지역의 메콩강을 롱테일보트를 타고 탐사(20km) 라오스와 태국을 오가다.


메콩강에서 목욕하는 라오스 사람들

강변사원으로 불리는 치앙센사원


태국,미얀마,라오스가 만나는 뷰 포인트! 아시아에서 제일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골든트라이앵글세계의 지붕이라 히말라야산맥의 티벳 남쪽 기슭으로 부터 흘러내린 메콩강이 황금의 삼각지대에 이르면 우리 나라의 한강보다도 더 큰 강줄기가 되어 태국,미얀마,라오스 국경을 가르게 된다.3개국의 국경이 접해있는 황금의 삼각지대는 많은 역사들의 애환을 남기고 있어 누구나 한번쯤 꼭 가보고싶어하는 곳이다. 치앙마이 시에서 북쪽으로 200km 정도 가면 치앙라이가 나타나고, 여기서 북동쪽으로 60km쯤 가면 메콩강을 끼고 있는 고도 치앙쎈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쾌속보트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약 9km만 가면 세갈래의 메콩강이 합쳐지는 곳이 있는데 이부근 지역이 바로 황금의 삼각지대인 골든 트라이앵글이다.

 

강변사원으로 불리는 치앙센사원


강변에 있는 강변사원으로 불리는 치앙센사원.부처님이 배를 타고 계산 모습의 사원에서 촉박한 시간속에 사진을 몇장 남기고...

다시 떠난다.

 

고산족마을에서 ...

 고산족마을에서 부족들과 민속춤을...


숙소를 오는도중 5부족마을에 들려 옵션(30) 고산족들과 카렌족들 풍속과 삶을 살피며 민속춤을 같이 즐기고 기념촬영을 챙기고

치앙마이 고산족 마을 - 카렌족 마을, 아카족 마을

카렌족 5살 무렵부터 목에 링을 끼기 시작해 5년에 3개정도 링을 추가 한다. 무거운 링을 목에 끼우고 생활하는 목긴 카렌족을 관광하며, 카렌족 마을 생활을 체험했다.


카랜족마을 부족들의 생활모습

카랜족마을 부족민들과 인정샷

카랜족마을 부족민들과 인정샷


다시 267km 4시간 걸쳐 숙소로 향했다. 10시가 되어 도착 투숙

 

넷째날(2018.3.1.)

호텔 조식후 고대도시 위앙꿈깜 란나왕국의 수도였으나, 1300년대초에 핑강의 홍수로이해 도시가 묻혀버려서 현재 치앙마이 구도시로 이주하였다. 1980년대에 공사도중 우연히 발견 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발굴 복원되었다고.

 

다음 라택스, 로얄제리, 보석류, 기념품을 둘어보고 점심 식사 후 태국 최고의 수공예단지 싼캠핑 으로 갔다.

 

싼캉팽 &버쌍 우산 마을 치앙마이는 세계 최대의 가내공업 중심지의 하나이다. 전통적으로 왕실에서 쓰여 지는 생필품과 장신구를 생산이 토대가 되어 수대에 걸쳐 전수 되어온 장인들의 솜씨가 보석, 은제 그릇, 청자도기 비단, 무명, 손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종이우산 등에 경이로움을 연출한다.


 태국 최고의 수공예단지 싼캠핑

태국 최고의 수공예단지 싼캠핑


따라서 쇼핑의천국이며, 다양한 종류의 진기한 기념품을 구입 할 수 있다. 생산 공장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생생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데, 반보쌍, 산깜팽 같은 곳은 마을 전체가 수공업에 전적으로 종사하고 있다. 옷 및 모자에 산수화를 그려주고 기념품을 파는 시장이다.

태국 최고의 수공예단지 싼캠핑

 

다음 룽아룬 온천으로 간다.

룽아룬 온천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 나들이 삼아 다녀올 수 있으며, 태국에서 최고수질의 유황온천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섭씨 105도의 펄펄 끊는 물로 유황성분이 200~650ppm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피부병이나 관절질환에 효과가 있으며, 온천을 하고 나면 피부가 보들보들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개인탕과 단체탕, 수영장은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하며, 비누와 샴푸를 비롯한 목욕용품은 사서 사용해야 하므로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룽아룬 온천하늘로 뿜어나는 온천수


시간을 한 시간 주고 온천을 하는데 개인탕이라 집의 욕조라고 생각하면 탁이다

1인용으로 들어가서 물이 뜨거워 10분도 안되 나오니 가이드가 온천계란을 2개씩 준다 시장끼에 맛있게 먹으니 기분과 맘이 상쾌하고 한결 가볍다

일행들이 잔디밭에서 사진찍느라 여념이 없다.

 

룽아룬 온천후 나는 듯한 기쁨으로

룽아룬 온천후 마음은 20대  몸은 60대 향기롭고 새콤한 기분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나 아니다 아직 한방 전신맛사지(2시간 50)가 남아있다

2시간의 한방맛사지를 받으니 시장끼가 돈다.

삼겹살로 배를 채우니 어느듯 공항 갈시간 4일간의 일정이 마무리 되는 시간이다.

치앙마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8시 밤 10시 비행기이니 시간을 충분하다.

가이드 김병호 부장과 기사 쑥이에게 팁 1달러씩 주고 이별을 고한다

4일동안 수고 했어요 태국보조가이드 덩꺼이도 수고 마니 했어요.

인천공항도착 새벽5시 즐거운 치앙마이여행은 여기에서 종료된다.

 

보물섬여행을 자주 이용하지만 금차처럼 친절하게 만나본 가이드도 드물다.

보물섬여행 정예은님께 친절하게 해주어 감사드립니다.

 

2018.3.3. 글쓴이 이수연

 

 

첨부파일 one Way Ticket (Cm) Neil Sedaka .mp3

 

 

 


동유럽 발칸여행기 총괄2편

동유럽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발칸(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를 여행하면서

추억으로 남길 사진들을 편집하여 1~2편으로 나누어 편집하여 왔다

2017.5.18~2017.5.28 (11박12일) 39명의 일행으로 우리는 창삼회4명이 참석하여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수 있었다. 

기회가 있다면 또다시 여행을 하면서 다른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의 친분을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할것이다.

여기 사진편집 2편을 아래에 올리니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한다.

편집:이수연



동유럽 발칸여행기 총괄1편

동유럽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발칸(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를 여행하면서

추억으로 남길 사진들을 편집하여 1~2편으로 나누어 편집하여 왔다

2017.5.18~2017.5.28 (11박12일) 39명의 일행으로 우리는 창삼회4명이 참석하여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수 있었다. 

기회가 있다면 또다시 여행을 하면서 다른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의 친분을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할것이다.

여기 사진편집 1편을 아래에 올리니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한다.

편집:이수연



2017.5.28   24편   독일 프랑크푸르트

드디어 여행 마지막날 최종목적지 프랑크프르트에도착 쇼핑센타에서 열심히 모두들 많은 기념품을 샀다.

점심을 먹고 시내구경을 하고 공항으로간다.


프랑크푸라인르트    Frankfurt am Main

라인 강의 지류인 마인 강변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경제와 문화의 중심 도시이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크고 활기 찬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있어서, 독일을 중심으로 여행하는 여행객들에게 프랑크푸르트는 여행을 시작하는 관문이나 혹은 여행을 마무리하는 관문이 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금융의 중심지답게 유럽 중앙 은행을 비롯해 많은 은행이 있으며, 괴테가 태어난 문학의 도시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도서전이 열리는 도시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에게는 독일 여행지 중에서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도시이기는 하지만 접근성도 좋고, 현대와 과거의 적절한 조화와 다양한 박람회 등을 통해 큰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임은 분명하다.


로텐부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오가는길

로텐부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오가는길  농촌마을





유럽의 관문도시 '프랑크푸르트'

'뱅크푸르트(Bankfurt)'라고 불리우는 프랑크푸르트는 금융과 상업의 도시로 독일 최대공항이 있고 현대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이다. 8세기 샤를르마뉴 황제에 의해 많은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하여, 12세기에 들어서 유럽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견본 시장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독일 역사를 짊어진 역사적 관광지로 프랑크푸르트의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렸으며, 장크트 파울 교회에서는 독일 제 1회 국민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등의 작품을 남긴 세계적인 문호 괴테의 생가가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52명의 실물크기 초상화가 벽에 장식되어 있는 구시청 건물 뢰머(Romer)와 오페라하우스가 인상적이다. 매년 많은 세미나와 국제회의가 개최되는 등 독일 최대이 회의 센터이기도한 프랑크푸르트는 유명한 도서전시회(Book Fair)가 열린다.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깊은 도시로 외환은행 등 6개의 금융기관, 대한항공, 여러 종합상사와 건설회사들의 지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교포상사들이 상업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독일의 창은 가로에 비해 세로길이가 길게 제작되어 있다. 왜냐하면 유럽에서는 창문이 세로가 길쭉하게 보이는 것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준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특히, 프랑크푸르트 이 곳의 창문들은  대부분 창문이 길쭉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스타벅스나  일부 건물들도 이런 길쭉한 창을 하고 있는데 세련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마인강(Main River) 위를 가로지르는 '아이제르너 다리'


대성당- 

뢰머 광장 동쪽에 위치해 있는 대성당은 카롤링 왕조 시대인 13-14C에 건립되었으며, 15C 고딕식 탑으로 다각형의 박공관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성로마 제국 황제의 선거 및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유서 깊은 성당으로 '카이저 돔'이라고도 한다.
그리스도의 무덤교회가 있으며15C교회에는신성 로마제국의 일곱제후들이 잠들어 있다. 332개의 계단을 따라 95m의 탑에 올라가면 라인강을 따라 형성된 시가지와 타우나스 산을 볼 수 있다.


'아이제르너 다리'

프랑크푸르트 마인강(Main River) 위를 가로지르는 '아이제르너 다리'

 철제로 만들어진 보행자 전용다리로 운터마인 다리와 알테 다리 중간쯤에 위치한다.

 보행자전용이기에 마인강을 굽어보며 거닐기 좋은 곳이다.

프랑크푸르트 마인강(Main River) 위를 가로지르는 '아이제르너 다리'



 철제로 만들어진 보행자 전용다리로 운터마인 다리와 알테 다리 중간쯤에 위치한다.

보행자전용이기에 마인강을 굽어보며 거닐기 좋은 곳이다.

'아이제르너 다리' 에서 본 성당

프랑크푸르트 마인강(Main River) 위를 가로지르는 '아이제르너 다리' 대성당이 보인다

프랑크푸르트 마인강(Main River) 위를 가로지르는 '아이제르너 다리'



프랑크푸르트 마인강(Main River) 위를 가로지르는 '아이제르너 다리'

프랑크푸르트 마인강(Main River) 위를 가로지르는 '아이제르너 다리'  거리의 악사

프랑크푸르트 마인강(Main River) 위를 가로지르는 '아이제르너 다리'  모두들 사진찍기에



프랑크푸르트 마인강(Main River) 위를 가로지르는 '아이제르너 다리'


뢰머광장-

 

뢰머광장((Roemerplatz)에 위치하고 있는 시청사, 뢰머는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2차 대전이후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원래 귀족의 저택이었던 것을 15세기 초에 시가 사들인 것으로 도시의 생성과 동시에 지어진 뢰머의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베풀던 방, 카이저자르가 있다. 유럽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뢰머광장앞 정의의 여신 분수 또한 유명한 관광거리이다.

 

프랑크푸르트_뢰머광장 중앙의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 상


뢰머광장((Roemerplatz)에 위치하고 있는 시청사, 뢰머는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2차 대전이후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원래 귀족의 저택이었던 것을 15세기 초에 시가

 사들인 것으로 도시의 생성과 동시에 지어진 뢰머의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베풀던 방, 카이저자르가 있다. 유럽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대성당-

 

뢰머 광장 동쪽에 위치해 있는 대성당은 카롤링 왕조 시대인 13-14C에 건립되었으며, 15C 고딕식 탑으로 다각형의 박공관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성로마 제국 황제의 선거 및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유서 깊은 성당으로 '카이저 돔'이라고도 한다.
그리스도의 무덤교회가 있으며15C교회에는신성 로마제국의 일곱제후들이 잠들어 있다. 332개의 계단을 따라 95m의 탑에 올라가면 라인강을 따라 형성된 시가지와 타우나스 산을 볼 수 있다.

뢰머광장-


뢰머광장-

 

뢰머광장((Roemerplatz)에 위치하고 있는 시청사, 뢰머는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2차 대전이후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원래 귀족의 저택이었던 것을 15세기 초에 시가 사들인 것으로 도시의 생성과 동시에 지어진 뢰머의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베풀던 방, 카이저자르가 있다. 유럽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뢰머광장앞 정의의 여신 분수 또한 유명한 관광거리이다.

뢰머광장-


뢰머광장 뢰머시청사

뢰머광장-

뢰머광장-

독일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라인 지구대 북부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 연변에 있는 상공업도시이다. 문호 괴테의 출생지로 널리 알려졌으며, 18세기까지는 국왕의 선거 및 대관식이 거행되던 곳이었다.

1815년 빈 조약으로 독일의 4개 자유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1816년에는 독일연방 의회의 개최시가 되었다.

 1848∼49년에는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열렸으며,1871년에는 프랑스-프로이센전쟁의 화평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항공·철도·자동차 교통의 요지가 되었으며, 독일의 경제·금융의 중심지로서 주식·상품거래소가 있고

 매년 국제박람회가 열리는데 특히 2년마다 열리는 자동차박람회가 유명하며, 그외 서적, 기계공구,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의 국제박람회로 알려졌다. 57층의 메세투름은 박람회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공업으로는 염료·약품·광학·전기기기·기계 등이 이루어지며,괴테대학교,국립예술대학,자연박물관,공예박물관,역사박물관, 기타 문화 ·교육시설도 정비되어 있다.

시가지의 중심에 있는 구()시가는 12세기에 건설된 것이고 신()시가는 1333년 이래 확장된 것으로, 성벽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1806년 이후 철거되고 산책길로 바뀌었다.

19세기 중엽 이후 외곽으로 새로운 시가지가 발전하였다

. 관광지로는 대성당, 뢰머광장, 괴테생가, 팔먼가든 등이 유명하며,사과와인과 소시지가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 ]

약칭은 ECB이다.

 EMU(Economic and Monetary Union:유럽경제통화동맹)이 발족하여 각 회원국의 개별 화폐가 소멸되자

유럽 통화정책에 관해 집단결정을 강화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회원국의 통화 주권을 인수하고

유럽 공동의 통화금융정책을 지휘하는 일을 맡는다.
미국의 FRB(Federal Reserve Bank:
연방준비은행)와 마찬가지로 단기금리 조절과 물가안정을 위한 업무를 관장하는 것은 물론 2002년부터는 회원국의 금융정책의 집행권을 갖게 된다.

다만, 통화정책에 관해서는 각국의 통화당국이 최종 책임을 진다.

 1989년 4월 발표한 들로르위원회 보고서에는 EC(European Community:유럽연합)의 경제통화동맹이

 3단계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제2단계가 유럽중앙은행의 창설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 설치될 이 은행은 임기 8년의 총재 1명과  부총재 6명이 운용하게 된다.

 이 기구는 독일의 분데스방크식의 엄격한 통화안정 노선을 채택하여 회원국들에게 환율 안정과 외채 및 예산적자를

 감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월 현재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 가맹국 중 영국만 설립에 반대하며,나머지 가맹국은

유럽중앙은행의창설에 관하여 기본적인 합의를 하였다. 

  설립 후의 과제로는 회원국 정부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와 EMU 가입하지 않은 영국 등 4개국의 통합 등이다.

유로타워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에 있는 고층 건물이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시내 중심가의 빌리 브란트 광장(Willy-Brandt-Platz)에 있다. 전체 높이는 148m이며, 모두 40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전체 면적은 78,000㎡이다. 오늘날 유럽중앙은행(Europ?ische Zentralbank: EZB)이 이 건물에 있다.

리차드 하일(Richard Heil)이 건축을 맡았다. 1971년에 짓기 시작해 1977년에 완공되었다.

 완공 직후에는 독일의 공동경제은행(Bank f?r Gemeinwirtschaft)이 이 건물을 사용했고, 유럽중앙은행은 1998년 6월 1일에 입주했다.

 1970년대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유일하게 일반인이 드나들 수 있는 고층 건물이었다.

1990년대까지는 건물의 최저층부터 3층에 쇼핑센터가 있었다.

오늘날 건물 1층에는 유럽 중앙은행의 사무실이 있으며 지하에는 레스토랑과 클럽 등이 있다.



성파울교회  뢰머광장과 자일거리중간쯤에 있다. 1786년부터 건축 1833년에 완성

지금은 교회의 기능보다집회나 축하연장소로이용되고 있다.

뢰머광장 여기도 아이스크림이 줄서서 기다린다





거리예술가 인기가 없어보여

거리의 커피집


성파울교회  뢰머광장과 자일거리중간쯤에 있다. 1786년부터 건축 1833년에 완성

지금은 교회의 기능보다집회나 축하연장소로이용되고 있다.





















독일에 오면은 한국사람들이 꼭 들르는 독일제 공산품가게입니다.

한국사람이 운영하는데 장미칼이나 손톱깍이,가위등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독일제

제품들이 즐비하게 있어서 저는 가위3개를 (1개에 89.95유로 3개 269.85)사고 나왔습니다.

프랑크프르트공항에 도착하여 운전기가 아래도리 진도불이씨와 악수를하고 정들었던 시간을 추억으로 남기고 헤어졌습니다 . 가이드 이원정의 안내로 짐을 몽땅 부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위하여 아쉬운 작별을 모두에게 하였고 뱅기에 몸을 실고 인천공항으로 10시간의 장거리 체력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보면 남는것은 가슴속에 남은 추억과 사진뿐이라는데, 별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노는 사진모습을 자주 올리는게 겸연쩍었지만,그리도 끝까지 잘보아 주시는사람들이 계시는것같아 염치 불구하고 올렸습니다.

내나름 공부한는셈치고 잘모르는 부분은 검색하여 펌해온 사진도 좀 있었고,자료도 퍼올렸으니 원작자분들은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라며,동유럽,발칸여행은 인생에 있어서 죽기전에 꼭 한번쯤은 가봐야 멋진 여행지였습니다.

그동안 가이드의 열성에 감탄하고 칭찬으로 아끼지 않으며 일행 모두에게 항상 좋은일만 있기를 빌어봅니다.  끝


에어버스 A380-800

A380-800 항공기는 프랑스 툴루즈 에어버스(Airbus)사가 제작한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여객기다.

 '꿈의 비행기',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고도 불린다.  동체길이가 72.73m이고, 날개 길이는 79.75m로

축구장 크기와  맞먹으며,  높이는 24.45m로 8층 건물 높이와 비슷하다.

 대당 가격은 3억 7500만 달러(약 4100억 원)에 이른다.  지난 2007년 이미 상용화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증명하고 있는 초대형 항공기다.

2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에 최대 승객을 운송할 수 있으며,   연료 효율성이 높고 소음이 적어 친환경적 항공기로 알려져 있다.


2017.5.28   23편 체코 프라하 플젠마을,  독일 로텐부르크

프라하에서 관광을 마치고 다시 체코 플젠마을 외곽 지역에 숙소가 있어 이동을한다

하룻밤을 플젠에서지고 독일 로텐부르크 로맨틱가도의 시작점 중세의보석 으로 간다. 고딕양식의 건축물로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유명한 교회인 "야콥교회"를보고, 마르크트광장, 시청사, 크리스마스상점 등 관광후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다.


플젠         Plzeň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90km 정도 떨어진 보헤미아 지방에 위치한 플젠은 체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의 본고장으로 약 700년 전부터 맥주를 만들어 왔다. 유럽에서도 가장 유명한 맥주의 도시이다. 독일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중세 시대부터 독일과의 교류가 활발해 상업 도시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던 곳이다. 또 플젠은 맥주뿐만 아니라 체코를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인 슈코다(Škoda)의 본사가 있는 도시로 공업 도시로의 발전도 주목할 만하다. 체코에서 가장 높은 성 바르톨로메이 성당 첨탑과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벨카 시너고그가 자리해 있는 플젠은 2015년 ‘유럽 문화 중심 도시’에 선정되었다.



우리가 묵었던호텔  플젠시는 여기서도 한참떨어져 있다



마을주택가

아름다운 마을








마을중앙에  공동묘지

어느집에 양귀비를심고



아름다운 가정집앞에서

아름다운 가정집앞에서


우리가 묵었던 호텔

아름다운 가정집앞에서 이리저리 포즈도


작은마을 성당

로텐부르크       Rothenburg                        

로만틱 가도의 하이라이트인 로텐부르크의 정식 명칭은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이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로텐부르크는 구시가지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벽 밖에 위치한 기차역에서 내려 성문을 통과하면 마치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아기자기한 마을이 펼쳐진다. 특별한 랜드마크는 없지만, 다채로운 색감의 예쁜 집들과 꽃으로 장식된 창문들이 이어지는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로텐부르크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겨울에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리며, 망치로 깨 먹는 과자 슈니발렌이 바로 로텐부르크의 전통 과자다. 도시 자체가 크지 않아 한나절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독일 중남부의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까지의 약 300㎞에 이르는 도로에는 낭만적인 별칭이 붙어 있다. 독어로는 ‘로만티셰 슈트라세(Romantische Strasse)’. 직역하자면 ‘로맨틱한 거리’다. 우리나라에서는 ‘로맨틱 가도(街道)’로 부르는 곳이다.

이 길을 따라 여행하다보면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독일의 아름다운 소도시를 지나가게 된다. 그중 로맨틱 가도의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도시가 바로 로텐부르크다. 바이에른주 주도 뮌헨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을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도시의 아기자기한 매력에 반해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로텐부르크를 찾고 있다.

로텐부르크를 여행한다면 시작점은 도시 시청사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시청사는 13세기 지어진 고딕 양식 건물로 마르크트광장 중앙에 있다. 첨탑 꼭대기에 올라 빨간 지붕을 얹은 뾰족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로텐부르크의 그림 같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유럽의 여느 중세 도시가 그러하듯, 도시의 중심부에는 교회가 있다. 로텐부르크에서 방문해 볼 만한 교회는 장크트야콥 교회로 완성하는 데 190년이 걸린 건물이다. 교회는 중세 시대 교회 건축 양식의 전형을 따른다.

로텐부르크 여행 스폿은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성벽 안쪽에 몰려있다. 성벽 안쪽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로텐부르크 주민의 대다수는 성벽 안쪽에서 생활하고 있다. 중세시대부터 로텐부르크 사람들이 성벽 너머 세상을 드나드는 통로가 바로 슈피탈성문이다. 13세기 완공된 슈피탈성문은 2개의 성과 7개의 문으로 구성돼 있다.



밀밭이 펼쳐져 있고

로만틱 가도의 하이라이트인 로텐부르크의 정식 명칭은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이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로텐부르크는 구시가지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도시의 아기자기한 매력에 반해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로텐부르크를 찾고 있다.

로만틱 가도의 하이라이트인 로텐부르크의 정식 명칭은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이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로텐부르크는 구시가지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벽 밖에 위치한 기차역에서 내려 성문을 통과하면 마치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아기자기한 마을이 펼쳐진다

조금있다가 저 성벽투어를 시작한다

모자이크 한 벽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포도나무 한그루도 정성이 가득히

나무 한그루도 정성과 배경이 너무신기할 정도로 맞춘다


포도나무 한그루도 정성이 가득히

다채로운 색감의 예쁜 집들과 꽃으로 장식된 창문들이 이어지는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로텐부르크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유명한 성당이라는데 내부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밖에서 사진만 담아 봅니다.



이 성당에서 유명한 것 또 하나는 5,000개의 파이프로 만든 초 대형 파이프 오르간.


나무 한그루도 정성이 가득히 가로수 역활을 톡톡히

로텐부르크시청사와 마르크트광장

로텐부르크 오프데어 타우버  인구 약 15만 5400명(1997)이다. 타우버강()의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지명'타우버강 위쪽에 있는 로텐부르크'라는 뜻이며,  줄여서 로텐부르크라고도 한다.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9세기로 로텐부레로라고 표기되어 있다.

 

  슈타우펜왕조 때 지은 요새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였다. 


1274~1803년에 자유제국도시로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다가 17세기의 30년전쟁 이후 쇠퇴하였다.


중세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중세의 보석'이라 일컬어지며,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에 이른다.


 13~16세기에 지어진 시청사에는 높이 60m의 종탑이 있는데,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성야콥교회에는 틸만 리멘슈나이더(Tilman Riemenschneider)의 나무 조각 작품인 《최후의 만찬》이 있다. 


체코 프라하처럼 정시에 인형이 나오고 있네요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시청사 연회관 Ratsherrn Trinkstube (VIP 인사들의 Guesthouse) 건물 시계탑에서는 매시마다 창을 열고

인형들이 나오는데 잔을 들이키는 Nusch 시장과 장군모자를 쓰고있는 Tili 장군 이다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플뢴라인

돌길과 중세 건물들 그리고 탑이 조화를 이뤄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돌길과 중세 건물들 그리고 탑이 조화를 이뤄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돌길과 중세 건물들 그리고 탑이 조화를 이뤄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돌길과 중세 건물들 그리고 탑이 조화를 이뤄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로텐부르크시청사와 마르크트광장

365일 크리스마스…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  긴 이름의 마을이다.  '타우버 강 위의 붉은 요새' 뜻. 독일 남부 뷔르츠부르크와 퓌센을 잇는  약 300㎞ '로맨틱 가도' 가운데에 있다.

인구 1만1000명 마을에 연간 100만명 이상 여행객이 몰려든다.

 현지에서 받은 안내서에는 "마을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걸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돌로 쌓아 올린 성벽이 먼저 맞는다. 
 둥근 성벽 군데군데 뚫린 네모 구멍에는 검은색 몸을 바깥으로 내놓은  낡은 포(砲)가 이제는 사라진 적(敵)을 겨누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다락방 딸린 2~3층 집들이 나란히 이어진다.  파스텔 톤으로 벽면을 색칠한 집이 동화에서 진짜 방금 튀어나온 듯 하다.  작은 성이겠거니 했는데 제법 큰 마을이다.  면적 42㎢. 서울 강남구보다 조금 크다.   아기자기한 기념품점, 빵집,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다.  어디를 찍어도 사진엽서 같은 풍경이다.
미술관·전시관이 여럿 있다. 
 '범죄와 정의 뮤지엄'은 중세 시대 고문 및 사형 도구 등을 전시했다.

못이 가득 박힌 의자, 사형 집행에 사용된 칼 등이 어두운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크리스마스 뮤지엄"은 밝은 분위기다. 시대별 산타클로스 모습, 트리 장식과 크리스마스 변천의 역사 등을 전시한다.

이 마을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로 작정한 게 틀림없다.

기념품점 "캐테 볼파르트"는 1년 내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 등을 파는 전문 매장이다. 1964년 이곳에서

 처음 문을 열어 이제는 유럽 곳곳에 체인점을 두고 있다. 트리 장식과 산타클로스 인형이 가득했다.


이곳에서도 정시가 되자 체코 프라하처럼 인형이 나오고 있네요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크리스마스 마켓


독일 중남부의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까지의 약 300㎞에 이르는 도로에는 낭만적인 별칭이 붙어 있다. 독어로는 ‘로만티셰 슈트라세(Romantische Strasse)’. 직역하자면 ‘로맨틱한 거리’다. 우리나라에서는 ‘로맨틱 가도(街道)’로 부르는 곳이다.

이 길을 따라 여행하다보면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독일의 아름다운 소도시를 지나가게 된다. 그중 로맨틱 가도의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도시가 바로 로텐부르크다. 바이에른주 주도 뮌헨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을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도시의 아기자기한 매력에 반해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로텐부르크를 찾고 있다.

로텐부르크를 여행한다면 시작점은 도시 시청사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시청사는 13세기 지어진 고딕 양식 건물로 마르크트광장 중앙에 있다. 첨탑 꼭대기에 올라 빨간 지붕을 얹은 뾰족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로텐부르크의 그림 같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유럽의 여느 중세 도시가 그러하듯, 도시의 중심부에는 교회가 있다. 로텐부르크에서 방문해 볼 만한 교회는 장크트야콥 교회로 완성하는 데 190년이 걸린 건물이다. 교회는 중세 시대 교회 건축 양식의 전형을 따른다.

로텐부르크 여행 스폿은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성벽 안쪽에 몰려있다. 성벽 안쪽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로텐부르크 주민의 대다수는 성벽 안쪽에서 생활하고 있다. 중세시대부터 로텐부르크 사람들이 성벽 너머 세상을 드나드는 통로가 바로 슈피탈성문이다. 13세기 완공된 슈피탈성문은 2개의 성과 7개의 문으로 구성돼 있다.

아름다운주택가


돌길과 중세 건물들 그리고 탑이 조화를 이뤄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텐부르크 시중심가에 있는 동화속 마을처럼 생긴 아름다운 건물들 광장주변에 있는데 좀 독특하기도하고 동화마을같은느낌입니다.

로텐부르크를 여행한다면 시작점은 도시 시청사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시청사는 13세기 지어진 고딕 양식 건물로 마르크트광장 중앙에 있다. 첨탑 꼭대기에 올라 빨간 지붕을 얹은 뾰족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로텐부르크의 그림 같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크리스마스 마켓

첨탑 꼭대기에 올라 빨간 지붕을 얹은 뾰족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로텐부르크의 그림 같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돌길과 중세 건물들 그리고 탑이 조화를 이뤄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돌길과 중세 건물들 그리고 탑이 조화를 이뤄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첨탑 꼭대기에 올라 빨간 지붕을 얹은 뾰족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로텐부르크의 그림 같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선물을 잔뜩 실은 예쁜 차도 있네요. 

크리스마스선물을 잔뜩 실은 예쁜 차도 있네요.  12월이 되면은 온통 도시전체가 크리스마스축제속으로 온 세계인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선물을 잔뜩 실은 예쁜 차도 있네요. 









성안에 모습


거리의 음악가


마치 숲속에 들어온듯한 느낌


한가로이 책을보는 탐방객







성벽넘에는 무엇이

성위에서본 로텐부르크

성위에서 태권도 시범을



일행들의 사랑스런 포즈


성위에서본 가정집 햇볕가리개

다시 성안으로 역사가 궁금하여

집들이 벽이 모두 모자이크

집들이 벽이 모두 모자이크

집들이 벽에 나무를 붙여서 심는기술

집들이 벽에 나무를 붙여서 심는기술




물고문설치대

물고문설치대  사람을 틀안에 넣고 물속으로 넣는고문대






로텐부르크 특산물 슈니발렌  과자가 부지면서 달삭지근하다


크리스마스 축제사용

기념품가계

로텐부르크 특산물 슈니발렌


기념품가계

기념품가계

기념품가계

창틀의 꽃들로 장식하여 아름다움의 극치를


기념품가계







인증샷은 나라와 관계없이 모두 좋아하네 서로사진을 찍자고 난리 법석

 중세시대부터 로텐부르크 사람들이 성벽 너머 세상을 드나드는 통로가 바로 슈피탈성문이다. 13세기 완공된 슈피탈성문은 2개의 성과 7개의 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성벽을 올라 시내를 한준에 보는재미와 지금도 살고있는집들의 마당모습을 볼수있다

 중세시대부터 로텐부르크 사람들이 성벽 너머 세상을 드나드는 통로가 바로 슈피탈성문이다. 13세기 완공된 슈피탈성문은 2개의 성과 7개의 문으로 구성돼 있다.

성위에서본 건축물들

성위에서본 건축물들

성위에서본 건축물들

성벽에올라 가정집의 뒤뜰을보니 아기자기하여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성위에서본 가정집들

성위에서본 가정집들

성위에서 투어

성위에서 투어

성위에서 투어

고풍스런 건물들과 함께 예쁜 꽃들이 만발하여 마음이 참 편안해 집니다.



성위에서 투어

성위에서 투어

성위에서 투어

성위에서 투어

성위에서 투어




과거에 이곳이 2차대전때 독일군이 패망하여 이곳을 물러날때 연합군이 2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로텐부르크를 전면 폭격할것인지,아니면 순수히 물러나면 도시를 폭격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하자

독일군이 순수히 물러나기로해 그런데로 로텐부르크의 도시들이 온전할수 있었다고 하네요.

성위에서 투어   끝




다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간다

다음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간다






2017.5.27   22편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광장, 천문시계

아침일찍 타보르 시내를 보고 다시1시간의 걸쳐서 프라하 시내로 간다


바츨라프 광장

동의어 신시가지를 대표하는 긴 대로의 광장 다른 표기 언어 Wenceslas Square , Václavské Náměstí


구시가지 광장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광장 중 하나인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국립 박물관에서부터 무스테크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750m, 너비 약 60m에 달하는 긴 대로이다. 국립 박물관 앞에는 체코인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서 있으며 이에 바츨라프 광장의 명칭이 유래되었다. 기마상 앞쪽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좌절되고 1969년 소련군의 침공에 맞서 학생이었던 얀 팔라크가 분신 자살을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8년 체코인들의 자유 · 인권 · 민주를 향한 외침인 ‘프라하의 봄’이 이 광장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소련의 탱크에 무참히 짓밟혔다. 체코인들의 자유에 대한 이런 열망들이 바탕이 되어 1989년 11월 극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하벨(Václav Havel)은 반체제 연합인 ‘시민 포럼’을 조직해 공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시민 혁명을 이룩하였다. 시민 혁명이 성공한 뒤, 체코의 대통령이 된 하벨은 한 연설에서 “우리는 평화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냈다. 이는 벨벳 혁명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벨벳 혁명’이란 말이 비롯되었다.


석양이 아름다운 동유럽의 문화 수도, 프라하

프라하의 중심지인 광장에는 천문 시계탑이 있어요. 시계가 그려진 두 개의 원반 옆에는 각각 네 귀퉁이에 네 개의 조각이 달려 있습니다. 허무와 탐욕, 죽음과 낭비를 상징하는 인간 세상의 모습일까요? 15세기에 정교하게 설계된 이 시계탑은 매 시간마다 원반 위 두 개의 창문이 열리며 그리스도의 12사도를 상징하는 인형들이 차례로 나왔다가 사라지면서, 맨 마지막에는 시계 위쪽의 닭이 울면서 시간을 알려 줍니다.

바츨라프 광장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의 역사적 현장입니다. 그 해 봄, 체코에는 민주화 바람이 일어났어요. 그러나 8월 20일 소련군은 탱크를 앞세워 이러한 시민들의 열망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자유를 포기할 수 없었던 두 청년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갔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프라하 시민들은 그 험난한 고난을 이기고 민주주의를 이루어냈어요. 광장에는 분신한 두 청년의 사진이 있어요. 그 앞에는 향불이 타오르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이 바친 애절한 꽃송이들이 연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제 체코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프라하 성으로 가 보도록 해요. 세계 최대의 성곽답게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요. 처음 건축은 9세기 후반에 시작되었으나 수많은 세월을 거쳐 오면서 건물이 늘어나고 오늘날의 규모로 커졌어요. 그러고 보니 건물 하나에도 시대를 달리하는 여러 건축 양식과 예술 분야가 모여 있는 느낌입니다. 프라하 성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성 비투스 대성당입니다. 약 천 년 동안 건축을 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요.


성 밖에는 ‘황금 골목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공방 골목이 있어요. 궁 안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 궁에 물품을 납품하던 상인들이 거주하던 곳입니다. 한 때 황금을 만들려는 연금술사들이 이곳에 자리하면서 ‘황금 골목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요. 소설가 카프카의 집필실도 이곳에 있어요





프라하 성 [Prague Castle ]
블타바 강 왼편의 고지대인 흐라트차니 성() 지구에 위치해 있다.   도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대한 성으로 둘러보기만 해도 최소 3시간은 걸린다.
9세기 중엽 보르지보이 왕이 건설한 성을 기초로 14세기에 카를 4세가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성의 전성기는 16세기 말로,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2세가 이곳에 궁정을 두면서 중세 체코 정치의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이후 궁정은 빈으로 옮겨 갔고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개축 공사가 이루어졌지만 

이전의 전성기를 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대통령 관저로 쓰기 시작했으며,  현재 성의 일부를 대통령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입구는 3개로, 흐라트차니 광장과 접한 서쪽의 정문, 말라스트라나와 면한 동문, 
성 정원 쪽으로 나가는 북문이 있다. 

각 문에는 위병이 지키고 서 있는데 1시간에 한 번씩 교대한다.

 매일 정오에 정문에서 화려한 위병 교대식이펼쳐지는데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제1정원이 나온다.  국빈이 방문하면 맞이하는 곳이다.

 제2정원으로 들어가면 17세기에 만든 바로크 양식의 코르 분수를 볼 수 있다.  제2정원 오른편에 위치한 건물이 대통령 관저다.  그 뒤로 성 십자가 예배당이 있다.  정원 왼편에는 왕궁미술관이 있다.

 제3정원으로 들어서면 프라하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인 성 비투스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성당 앞의 여행안내소에서 관광을 위한 각종 자료를 구할 수 있으며 가이드 투어도 제공받을 수 있다.

 성당을 지나 좀더 위쪽으로 들어가면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는 성 이르지 교회와 로젠베르크 궁전, 

황금 소로 등을 볼 수 있다.

 성의 주변까지 전체를 보려면 한나절을 꼬박 둘러보아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볼거리가 풍성하다.


왕실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왕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경비들이 지키고  프라하성은 들어오고 나가는곳마다 왕실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는데,사진을 찍어도크게 불편해하지않고 친절하여 자주 카메라를 들이 댑니다.





체코 프라하 성의 성 비투스 대성당 앞에서


체코 프라하 성의 성 비투스 대성당 정문


체코 프라하 성의 성 비투스 대성당 정문



문양 하나하나 현지가이드님이 설명을 해주시는데,어느게 로마네스크양식이고, 어느게 고딕양식인지 언뜻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중세에는 학문만이 아니라 예술도 종교를 위해 봉사하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중세의 예술은 순수예술이라기보다는 실용예술인 셈이다. 11세기부터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달하면서 마을과 도시에 새로운 교회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세워진 교회들은 대개 로마 시대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불렸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는 아치형 석조 천장과 이것을 받치기 위한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이 특징이다.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으로 인해 교회 실내 분위기는 어두우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교회 출입문의 좌우 기둥에는 성서의 내용이나 일상의 도덕, 죄와 형벌에 관한 그림들이 그려졌고,

 실내의 두꺼운 벽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 

프랑스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이루어진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은 캉의 수도원과 수녀원이다.

12세기 말부터는 새로운 고딕 양식의 교회들이 나타났다.  "고딕(gothic)"이라는 말은 야만족이었던 고트족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고딕 양식을 야만적인 것으로 비하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내부를 살펴보고 나와 옆으로 돌아가니 구 왕궁의 건물이 보입니다.
구 왕궁의 건물이 성 비투스 대성당과 광장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하고 있습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양 끝에 끝이 뾰족한 사각기둥도 보입니다


성 비투스 대성당


성 비투스대성당 후면

고딕 양식은 로마네스크 양식과는 달리 조골(助骨) 궁륭에 의해 벽의 무게를 분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벽을 얇고 창문을 크게 만들 수 있었다. 

뾰족하고 높은 첨탑 모양의 교회 지붕은 12, 13세기 중세의 번영과 활력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지은  도시 상인들의종교적 열정과 애향심을 상징하였다.

사실 교회 건축은 종교적 신앙심만이 아니라 자신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에는 샤르트르 대성당과 아미앵 대성당,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랭스 대성당 등이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성 비투스 대성당 [St. Vitus’s Cathedral ]

날아오를 듯 높이 솟은 프라하 성 내부의 대성당 성 비투스 대성당은 프라하 성의 제3정원에 있다. 

블타바 강 너머에서 보일 만큼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며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9세기에 바츨라프 1세가 교회 건물을 지은 것이 성 비투스 대성당의 원형이고, 이후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14세기 카를 4세가 고딕 양식으로 새로 짓기 시작하면서 갖추어진 것이다.  건설에 착수한 뒤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후스 전쟁이 일어나면서 그나마 중단되었다가 20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성 비투스 대성당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전체 길이 124m, 너비 60m, 높이 33m의 건물은 프라하 성 안에서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성당 남쪽 탑은 96.5m, 서쪽 탑은 82m 높이를 자랑한다. 

성당 안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 대부분 아르누보 예술가의 작품이다.

 특히 서쪽 측랑의 왼쪽에 있는 <성 키릴과 성 메토디우스(St. Cyril and Methodius)>는  알폰스 무하(Alfons Mucha)의 걸작이므로 빼놓지 말고 관람하자.

성당의 중앙에는 16세기의 묘가 있는데 합스부르크가의 페르디난트 1세와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주제단의 뒤쪽에는 7개의 예배당이 있고 그중 중앙의 마리아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아름답다. 

제단 오른쪽에는 성 얀 네포무츠키(Jan Nepomuck?)의 묘와 2톤의 은을 녹여 만든 조각상이 있다.
바츨라프의 유물이 전시된"성 바츨라프 예배당"은 성 비투스 성당의 필수코스로 손꼽힌다. 

바츨라프는 보헤미아의 수호 성인으로 세계 최대의 사파이어가 박혀 있는 왕관은 금으로 만들어져 보석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것이며 황금색으로 옻칠을 한 예배당 벽에도 석류석, 자수정, 에메랄드 등 1,372개의 보석이 박혀 있다.
성당 지하에는 카를 4세, 바츨라프 4세 등 왕과 주교들의 묘가 있다. 첨탑에서는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캉의 수도원

샤르트르 대성당

구 왕궁은 현재 대통령의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이 왕실정문인 서문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총을 들고 서있는데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관광객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구 왕궁 건물의 출입구 위의 난간에 세운 조각상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구 왕궁 건물 대통령궁

구 왕궁 건물 대통령궁

여기도 고치구이가

구 왕궁 건물 대통령궁

구 왕궁 건물 대통령궁

구 왕궁 건물 대통령궁





프라하 시내

돈을주면 옛날 복장을하고 사진을 같이

돈을주면 옛날 복장을하고 사진을 같이

대통령궁을 지키는 병사와 같이사진을

대통령궁을 지키는 병사와 같이사진을 표정이 변하지 않아

바츨라프 광장에서

바츨라프 광장에서

바츨라프 광장에서

바츨라프 광장에서 스포츠카 돈을 주면  탈수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바츨라프 광장에서

바츨라프 광장에서

이곳에서는 클래식카로 돈을 주면을 태워준다고 합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코끼리열차


바츨라프 광장에서

대통령궁을 지키는 순경의 아름다운 모습 카메라를 대니 살짝 웃어준다


 프라하 시내

좌측천문시계와 틴성당

구시가 광장의 구 시청사탑 남측면에 있는 천문시계

구시가 광장의 구 시청사탑 남측면에 있는 천문시계

천문시계

오를로이가  매 시각마다 1분여 정도의 인형극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정시가 되면 오를로의 오른편에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모래 시계를 돌려놓고 오른손으로 줄을 당기며

 작은 종을 계속 친다. 이때 두 개의 작은 창문이 열리며 예수의 11-배신자 유다를 뺀- 제자와 사도 바울이

 창밖으로 몸을 한 번 돌리면서 지나간다.


한편 해골은 바로 옆에 있는 사치를 상징하는 터키인 인물상과, 왼쪽에 허영을 상징하는 거울을 든 인물상,

 돈주머니를 움켜진 탐욕을 상징하는 수전노 인물상에게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한다고 한다

맨 위쪽에 시계가 있고, 중간에 천문시계, 그 아래 보헤미아의 농경생활에 따른 112달을 표시한 일종의 달력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지나가고 나면 황금색 수탉이 운다. 이 인형극이 끝나면 사람들이 광장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141010월 오를로를 제작한 이 시계 명장 하누슈에게 프라하의 시장은 다른 도시에도 이런 시계를 만들어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명물을 만든 명인에게 보답은 못 할망정 그의 눈을 뽑았버렸다는 전설이있다고 한다


천문시계는 시계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빌어와 간단히 오를로이Orloj’라 부른다

오를로이는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안쪽의 원과 시간을 알려주는 바깥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가운데 지구본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돈다는 뜻이라하고. 시간과 별자리 달의 공전 주기를 표시하는 시계다


노점카페

노점상가

노점카페



거리예술가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에서의 비누 거품 쇼


성당안의 예술

구시가지 광장 모습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은 11세기 시장에 시장으로 조성된 이래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건축물로 둘러싸인 광장으로 변모해서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광장의 하나로 손꼽힌다.

구시가지 광장 에는 오늘도 에술 공연히 펼쳐지고있다.

  틴 성당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성당으로 80m의 두 개의 첩탑과 작은 여러개의 첩탑이 특징인 건물로

 보헤미아 고딕양식의 건물로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구시가 광장의 구 시청사탑 남측면에 있는 천문시계

천문시계탑위를 올라가는데  안내아가씨 




천문시계탑위를 올라가는데 20유로를 별도지급  계단을 걸어서 한사람씩

천문시계탑위를 올라가는데 20유로를 별도지급  계단을 걸어서 한사람씩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모습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모습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모습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모습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모습

프라하를 백탑의 도시라 합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탑이 백개정도는 보인다고 하네요. 그만큼 종교적인 영향으로 성당들이 많다고 보아야지요.


천문시계탑위에서본 틴성당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광장 모습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광장 모습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광장 모습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광장 모습과 틴성당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광장 모습

 틴 성당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성당으로 80m의 두 개의 첩탑과 작은 여러개의 첩탑이 특징인 건물로

 보헤미아 고딕양식의 건물로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틴 성당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성당으로 80m의 두 개의 첩탑과 작은 여러개의 첩탑이 특징인 건물로

 보헤미아 고딕양식의 건물로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구시가지 광장 모습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은 11세기 시장에 시장으로 조성된 이래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건축물로 둘러싸인 광장으로 변모해서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광장의 하나로 손꼽힌다.

천문시계가 있는 탑은 1364년 세워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걸어 올라 갈수 있으며

 꼭대기에 오르면 프라하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높이는 69.5m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광장 모습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구시가지 광장 모습

 틴 성당

 틴 성당

천문시계탑위에서본프라하 시내

천문시계탑위에서본프라하 시내

천문시계탑위에서본프라하 시내

천문시계탑위에서 바라본 츨라프광장과 틴성당

천문시계탑위에서본프라하 시내

천문시계탑 위에서본 광장  여기올라오는데 20유로 지급

틴성당

천문시계탑 위에서본 광장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광장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광장과 틴성당

천문시계탑위에서본 광장

천문시계탑위에서본 시가지

천문시계탑위에서는 교통신호등이 있다

천문시계탑 위에서는 교통신호등이 있다 한줄로가기 때문에 신호등을 잘지켜야


천문시계탑 정문

광장에서 예술공연 대기자

광장에서 예술공연 민족의상을 입고 입장

광장에서 예술공연 민족의상을 입고 입장

광장에서 예술공연 민족의상을 입고 입장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광장에서 천문시계탑을 보기위해 모여든사람들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광장에서 틴성당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광장에서 천문시계쇼를 보기위해 모여든사람들

프라하 국립 박물관(Prague National Museum, Národní Muzeum)

프라하 국립 박물관(Prague National Museum, Národní Muzeum)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191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선언이 이 광장에서 선포 되었다.


프라하 국립 박물관(Prague National Museum, Národní Muzeum)

바츨라프 기마상

바츨라프는 서기907년 그가 태어났을 때 보헤미아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지 않았음에도 그의 할머니로 부터

기독교식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보헤미아의 통치자가 된후 이곳을 기독교화 하는데 힘썼다.


국란이 닥쳤을 때 동굴에서 잠자고 있던 보헤미아 기사들을 깨워 적군을 물리쳐 나라를 구했다는

 전설적인 인물로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 체코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그의 시신은 성 비투스 성당에 안치 되었다.



체코인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있는데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지배를 받은 체코

 사람들이 18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눈을 뜨면서 당초 말 시장이였던 이곳의 명칭을

 바츨라프 기마상에서 착안 바츨라프 광장으로 부르게 되었다.


프라하 국립 박물관(Prague National Museum, Národní Muzeum)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바닥도 모자이크

틴성당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노상카페

얀 후스의 기념상

얀 후스(1369~1415)는 마루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부르짖기 100년전 당시 라틴어로만 하던 미사를 체코어로

집전했고 면죄부 판매로 부패한 교회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등 종교 개혁의 불씨를 지핀 위인으로,

 체코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위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Václavské Náměstí)

기마상 좌대에 체코 땅의 영도자이며 우리의 주군 성 바츨라프여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소서!라고 새겨진 문장이 있다.

바츨라프 기마상을 중심으로 앞에는 그의 할머니 성녀 루드밀라의 동상등 보헤미아 성자들의 동상이 앞 뒤로 세워져 있다.




바츨라프 기마상

프라하 국립 박물관 앞에 십자가가 땅에

프라하 국립 박물관(Prague National Museum, Národní Muzeum)

바츨라프 기마상

프라하 국립 박물관(Prague National Museum, Národní Muzeum)

프라하 국립 박물관(Prague National Museum, Národní Muzeum)

프라하 국립 박물관(Prague National Museum, Národní Muzeum)

구시가지 광장 카페에서 우리는 음료를 한잔씩 피로를 풀어본다 


구시가지 광장 카페에서 우리는 음료를 한잔씩 피로를 풀어본다 



광장에서 하는 공연 끝없이 다양하게 계속이어진다 


틴성당




광장에서 하는 공연 끝없이 다양하게 계속이어진다

광장에서 하는 공연 끝없이 다양하게 계속이어진다



비엔나 특식 빵

비엔나시내

한국관에서 비빕밥으로 점심을 해결




멀리 카를교가 보인다






밑에서 두번째가 카를교




강가의 벽면에는 에술가들의 낙서와 예술이 범벅이 되어 있고 그앞에서는 키타치며 노래하는 청년

다음편은 오스트리아 플젠마을 로갑니다

2017.5.27   21편 체코 모헤미아 타보르(Tabor)


프라하 야경을 보고 보헤미아지방의 타보르라는 마을에 있는 PAICAT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밤11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다시 매일은 프라하로 가서 바츨라프광장과 천문시계 틴교회를 볼예정이다

타보로는 숙소가 있어 잠시 들렸다가 가는곳이며 유적지는 아래와 같다.


 보헤미아지방의 Tabor라는 도시는 보헤미아는 현재의 체코로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성을 가지는 곳이다. 특히 개신교도 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겨주는 곳이다. 그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은 바로 프라하 남쪽으로 약 70km떨어진 Tabor라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바로 보헤미아의 개혁 사상의 중심지 였을 뿐만 아니라 바로 제 1차 30년 종교 전쟁의 시발지였다.


이 곳 사람들은 일찌기 얀 후스개혁가의 주요 활동 무대 였으므로 일찌기 개혁적 종교 사상에 깨어있던 곳이었다. 후스는 말씀위주의 신앙생활을 선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 사상에 반대하는 로마 교황청의 반대와 음모로 후스는 코스탄스에서 화형을 당하고 만다. 보헤미아의 정신적 지주의 화형 소식을 접한 보헤미안들은 로마 교회에 공식적으로 반대의 노선으로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파견한 사절단을 성위에서 던져 버리고는 전쟁이 시작되게 된다. 얀 지즈카 장군의 영도하에 카톨릭 군대를 몇번이나 물리쳤으나 마지막에는 결국 패하고 만다.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강제령에 의해 강제로 카톨릭지역이 된다. 그러나 보헤미안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간직하며 오늘날에도 상당수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타보르는  붉은 지붕의  요새 같은 중세풍의  소도시로 타보르 강이  휘돌아 흐르고 고대와  현대가  공존 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을  “타보르(Tabor) 라고 한데는 1412년   얀 후스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와서 머물면서부터  불리워졌다고 한다.  이유는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된  변화 산이  이스라엘에서는  “타보르산”이라고  불리워졌는데 보헤    사람들에게 이 도시는 변화  혹은 계시의 도시로  인식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광장에는  변화 산 교회가  세워져   그 옆에는  시 청사와 부속건물이,  광장 중앙에는   “지슈카 장군  동상”이  서  있다.  시청 건물  안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동굴을 파면서 결사 항전한  지슈카 장군과 후스 파 후예들의 투쟁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여의  않아 동굴입구만  눈 팅만 하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기 100년전에  이미 성    번역하고  말씀을 생명을 걸고 실천 하려 했던 곳이다 



 PAICAT 호텔에서 내려다본 타보르시내

PAICAT 호텔에서 내려다본 타보르시내

타보르광장


우리가 묵었던 호텔


기념탑



타보르광장




타보르광장과 시청사

 광장 중앙에는   “지슈카 장군  동상”이  서  있다

타보르광장과 시청사


광장에는  변화 산 교회가  세워져   그 옆에는  시 청사와 부속건물이,  광장 중앙에는   “지슈카 장군  동상”이  서  있다.

광장에는  변화 산 교회가  세워져   그 옆에는  시 청사와 부속건물이,  광장 중앙에는   “지슈카 장군  동상”이  서  있다.

광장에는  변화 산 교회가  



  시 청사와 부속건물이










기념공원

타보르 지도

도시 뒤족에는 큰 호수 공원이 있는데


도시 뒤족에는 큰 호수 공원이 있는데  많은 오리들이 행복하고 자연스레 놀면서

탑위에서 내려다본 광장

탑위에서 내려다본 시내모습



탑위에서 내려다본 광장



다음편은  프라하로 간다





2017.5.26  20편  체코 프라하야경및 카를교


프라하

다른 표기 언어 Praha

      19세기에 제조업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체코의 경제를 주도하는 도시가 되었다. 주요공업은 중·정밀기계 제조업과 프라하 맥주를 비롯한 식품류 및 전자·화학제품 제조업이다. 블타바 강이 프라하 중앙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강의 서쪽과 동쪽 모두 역사적 기념물들이 많으며 프라하 궁은 강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도시 전체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스바티이르지 교회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인 국립박물관까지 갖가지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물 유산이 풍부하다. 문화의 도시로도 유명하여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프라하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로는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이 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끼고 있는 보헤미아 지방은 오랜 전부터 동서남북을 잇는 유럽의 길목으로 앞선 문화와 여러 사상들이 모이는 중심지였습니다. 과학자인 케플러와 아인슈타인, 음악가인 모차르트와 드보르자크, 소설가 카프카 등 역사상의 훌륭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배출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유네스코 세계유산

프라하 역사 지구  Historic Centre of Prague 


프라하(Prague) 시가지의 건축물들은 중세시대에 건축학적·문화적 중심지였던 프라하의 영향력을 잘 대변해 준다.  프라하에는 11~18세기에 건축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하라드차니 성(Hrad?any Castle),  성 비투스 성당(St Vitus Cathedral), 카를 다리(Charles Bridge) 등 세계유산에 등록된 많은 건축물은 대부분  14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4세 황제 시대에 축조된 위대한 기념물들이다.


블타바(Vltava) 강, 가옥들이 형성한 풍경, 간간이 탑이 보이는 성들, 그리고 주변 건물들이 보여주는 경관 때문에 프라하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대표적인 역사 중심지인 중세 도시 프라하는, 샤를 4세가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고자 하는 의도로 건설된 신도시이다.

 프라하의 건축은 14, 15세기의 고딕 양식, 18세기 전반 바로크 절정기의 양식, 1900년 이후 모더니즘 양식까지를 한눈에 보여 준다. 

그만큼 중부 유럽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건축 발전에 있어 주도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하는 도시 속에서의 창조적인 삶, 시대를 넘나드는 건축과 인간 정신의 조화라는 믿음을 대표하는 

세계 건축의 중심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라하는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발전한 도시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역사적 도시이다.

 중세 초기에 건설을 시작한 프라하는 도시의 성장 단계와 그 변화 과정이 거대한 도시 구조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프라하는 전성기 고딕 시대에 확장되었으며,  바로크 시기와 19세기에 더욱 확장되었다.

 

대규모 도시 재개발이나 철거를 하지 않은 까닭에 전반적인  구조와 양식, 그리고 공간 구성을 보존할 수 있었다.  도시와 관련한 기록에 따르면, 1,100년의 역사를 가진 프라하는 각 시대의 역사와 문화 양식을  건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프라하에는 건축 역사의 각종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모여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을 꼽으면 프라하 궁,  성 비투스 성당, 프라하 성 앞의 하라드차니 광장, 강의 왼쪽 제방에 있는 발드체인(Vald?tejn) 궁전,  고딕 카를 다리,성십자가 교회의 로마네스크 원형 건물, 오래된 도시 광장 주변으로 고딕식 아케이드를  이루는 거주지들, 스타레메스토(Star? Mesto)에 있는 전성기고딕(High Gothic)의  성제임스 프란체스코회 교회(Minorite Church of St James),  노베메스토(Nove M?sto)의 19세기 말 건물과 도시 계획 등이다.

프라하는 중세 시대 중부 유럽에서 기독교가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 초기 프라하는 유럽의 문화 중심지였다. 

1348년에 문을 연 프라하 대학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가운데 하나이고,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의

 대학 환경은 사실상 종교개혁운동의 시발점이 된 후스 파(Hussite)의 사상을 형성하는 토양이 되었다.

카를 4세 집권 이후, 프라하는 중부 유럽의 지성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그러한 환경 속에서 페트르 팔러(Petr Parl??),  얀 후스(Jan Hus),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n Dvo??k),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에드워드 버네스(Edvard Bene?, 국제연맹의 공동 설립자), 바츨라프 하벨(V?clav Havel)과 같이 예술, 과학 그리고 정치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프라하와 관련을 맺었다.



시내 발코니앉아 담배를 피우는 여성

프라하시내모습

프라하시내모습

프라하시내모습

프라하시내모습

프라하시내에서 다정 스레 손잡고

프라하시내모습

프라하시내 백화점

프라하시내모습

프라하시내 시청사

프라하시내

프라하시내 시청사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 성 비투스 대성당

사진의 중심으로 두개의 웅장한 탑을 볼수 있는데요 틴 성당입니다. 

틴성당은 1365년에 건립되었는데 , 외관은 고딕 양식 내부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입니다.

탑의 높이는 80미터 입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건축양식을 보이는것은 시대적으로 추기되고 수리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시대의 건축양식이 더해져서 복합적인 형태가 된겁니다.

틴성당은 좌우 크기가 다른 두개의 탑을 가지고 있는데, 아담과 이브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큰쪽이 아담  작은쪽이 이브,틴 성당의 또하나의 특징은 두개의 탑 사이로 보이는  황금빛 성모마리아상 입니다.  성배를 녹여서 만들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붙드는곳 입니다.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틴 성당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성당으로 80m의 두 개의 첩탑과 작은 여러개의 첩탑이 특징인 건물로

 보헤미아 고딕양식의 건물로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틴 성당

 틴 성당

 틴 성당

 틴 성당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전철을 타봅니다 몇 코스나 갔을 까요


프라하시내모습

블타바(Vltava) 강, 가옥들이 형성한 풍경, 간간이 탑이 보이는 성들, 그리고 주변 건물들이 보여주는 경관 때문에 프라하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프라하시내모습 현지가이드 열성적인 설명

프라하시내모습

프라하시내모습 가이드 설명에 모두 열심히

프라하시내모습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프라하시내 시민회관



프라하시내에서 전철을 기다립니다

프라하시내에서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인증샷


프라하시내에서 전철타는 요령을 가르키는 가이드



프라하시내 전철을 타고가면서

프라하시내 전철을 타고가면서

프라하시내 전철을 타고가면서

프라하시내 전철을 타고가면서

프라하시내 전철을 타고가면서

프라하시내 전철을 타고가면서



프라하시내 전철에서 내려



프라하시내 거리의 악사



프라하시내

프라하시내 발맛사지  발을 물속에 담구면 물고기들이 와서 모조리 뜯어 먹는다  9유로

프라하시내  자전거 인력거

프라하시내


카렐교탑

카렐교탑

다리교각 입구에 하나씩 있는데,과거에는 통행료를 받기위해 만들었는데 . 지금은 전망대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카렐교 [Charles Bridge]

     프라하의 유일한 보행자 전용 다리이자 체코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석조 다리 블타바 강 우안의 구시가지와 좌안 언덕 위에 우뚝 세워진 프라하 성을 연결해 주는 카렐교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이다.

 135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프라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카를  4세가 블타바 강에 놓은 다리로 너비 10m, 길이 520m에 이른다. 

성 비투스 성당을 지은 페테르 파를레르시가 공사를 맡아 바츨라프 4세 때인 1402년에 완공되었다.
16개 아치가 떠받치고 있는 이 다리는 유럽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다리의 시작과 끝 부분에 놓인 탑은 본래 통행료를 받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30개의 성인상도 볼거리다.

 다리 양옆에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성 요한 네포무크, 성 루이트가르트, 성 비투스 등

 체코의 유명한 성인 조각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조각상들은 모두 성경에 나오거나 성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을 새겨 놓은 것인데 그중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이 가장 유명하다.
성 요한 네포무크는 바츨라프 4세가 왕비 조피에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 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난간에는 작은 청동 십자가 5개가 있는데 십자가에 손을 내밀어 5개의 별 중 하나를 만지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각상 밑단에 그의 순교 장면이 묘사된 부조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유독 새까맣게 손때가 많이 탔다.

성인상들은 모두 모조품이고 국립 박물관에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볼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카렐교는 원래 마차가 다니며 양쪽의 교역 역할을 하는 용도로 쓰였지만 대대적인

공사를 거친 후 지금은 보행자 전용 다리로 이용되고 있다.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기 때문에 음악과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는 예술의 다리로도 유명하며 악사와

 초상화 그리는 화가, 마리오네트 인형극이 펼쳐진다. 

단,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인  만큼 관광객을 노리는소매치기들이 많으니 소지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카렐교는 프라하 성의 가장 아름다운 전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구시가 교탑에서 내려다보는프라하 성과 블타바 강의 전경이 매우 인상적이다. 

카렐교를 지나 말라스트라나 광장에서 프라하 성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인 네루도바 거리에는 다양한 상점과 

레스토랑, 카페가 즐비해 시내 관광 중 잠시 쉬어가기 좋다.


카를교 프라하의 유일한 보행자 전용 다리이자 체코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석조 다리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30개의 성인상도 볼거리다.

 다리 양옆에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성 요한 네포무크, 성 루이트가르트, 성 비투스 등

 체코의 유명한 성인 조각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조각상들은 모두 성경에 나오거나 성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을 새겨 놓은 것인데 그중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이 가장 유명하다. 성 요한 네포무크는 바츨라프 4세가 왕비 조피에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 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난간에는 작은 청동 십자가 5개가 있는데 십자가에 손을 내밀어 5개의 별 중 하나를 만지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각상 밑단에 그의 순교 장면이 묘사된 부조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유독 새까맣게 손때가 많이 탔다.



성 얀네포무츠키상  이곳 다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성 얀 네포무츠키상

얀 네포무츠키가 왕비 조페에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는 바츨라프4세의 청을 거절하자

그를 다리밑으로 떨어뜨려 죽였는데,그후 성인으로 추대되었다고 합니다.

동상 아래 청동부분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반질반질해졌네요.



성 얀네포무츠키상

카렐교탑

다리교각 입구에 하나씩 있는데,과거에는 통행료를 받기위해 만들었는데 . 지금은 전망대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다리가 유명한 카렐교입니다.

이다리를 건너면 프라하 구시가지 중심가로 들어가게 됩니다. 길이가 520m나 된다고 하네요.

카렐교탑 다리교각 입구에 하나씩 있는데,과거에는 통행료를 받기위해 만들었는데 .

 지금은 전망대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135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프라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카를  4세가 블타바 강에 놓은 

다리로 너비 10m, 길이 520m에 이른다. 

성 비투스 성당을 지은 페테르 파를레르시가 공사를 맡아 바츨라프 4세 때인 1402년에 완공되었다.
16개 아치가 떠받치고 있는 이 다리는 유럽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다리의 시작과 끝 부분에 놓인 탑은 본래 통행료를 받기 위해 세운 것이다. 





카렐교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성 얀네포무츠키상

이 조각상들은 모두 성경에 나오거나 성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을 새겨 놓은 것인데 그중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이 가장 유명하다. 성 요한 네포무크는 바츨라프 4세가 왕비 조피에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 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난간에는 작은 청동 십자가 5개가 있는데 십자가에 손을 내밀어 5개의 별 중 하나를 만지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각상 밑단에 그의 순교 장면이 묘사된 부조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유독 새까맣게 손때가 많이 탔다.

카렐교탑 다리교각 입구에 하나씩 있는데,과거에는 통행료를 받기위해 만들었는데 .

지금은 전망대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카렐교탑에서 바라본 시내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을 만지면 꿈을이룰수있다 얘기가

성 얀 네포무츠키상

이곳 다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성 얀 네포무츠키상

얀 네포무츠키가 왕비 조페에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는 바츨라프4세의 청을 거절하자

그를 다리밑으로 떨어뜨려 죽였는데,그후 성인으로 추대되었다고 합니다.

동상 아래 청동부분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반질반질해졌네요.

이곳을 만질려면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을 만지면 꿈을이룰수있다 얘기가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을 만지면 꿈을이룰수있다 얘기가

여기도 구걸하는 분이

카렐교에서본 볼타바강

강폭이 우리나라 한강보다 적을것 같은데,이런 멋진 다리가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오지않을까 싶네요.

카렐교와 그넘어로 프라하성이 보입니다


석양에 카렐교의 아름다운 모습

카렐교와 그넘어로 프라하성이 보입니다

카렐교와 그넘어로 프라하성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유람하는 유람선들이 수시로 드나 듭니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유람하는 유람선들이 수시로 드나 듭니다.


카렐 4세  가장 위대한 보헤미아의 왕 [Charles IV ]

카렐 4세는 체코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보헤미아의 왕, 로마의 왕, 신성로마제국 황제, 이탈리아 왕,  부르군디 왕 등 많은 지위를 이용해 보헤미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성장에 기여한 인물이다. 

카렐 4세는 통치 기간 동안 프라하를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정하고 중부 유럽 최초로 대학을 설립하는 등 

학문과 예술의 발전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카렐 4세는 금인칙서를 발표해 제국의 황제 선출을 명문화하여 19세기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제국의 기틀이 되는 원칙을 마련했다.

카렐 4세는 아버지 얀 룩셈부르크와 어머니 엘리자베스(엘리쉬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카렐 4세의 당초 이름은 외조부인 바츨라프 2세의 이름을 따서 바츨라프라고 정했는데,  훗날 자신의 삼촌인 프랑스의 샤를 4세의 이름을 따서 카렐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카렐은 어린 시절 샤를 4세의 궁정에서 7년을 보낸 바 있었다.

카렐은 이런 시절 프랑스에 머물면서 프랑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라틴어, 체코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다섯 개 언어에 능통했다. 

1331년부터는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하기도 했고, 이후  루카(투스카니) 총독으로 향후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

카렐은 이 당시 루카 주변에 요새를 건설하고 ‘카렐의 산’이라는 의미의 도시 몬테카를로를 세웠다. 

1333년부터는 보헤미아 왕국도 통치하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인 얀이 자주 원정을 다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얀이 거의 실명 상태에 있어서 정사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334년 보헤미아 왕국의 후계를  의미하는 모라비아 후작이 되었고 2년 뒤에는 티롤 총독이 되었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유람하는 유람선들이 수시로 드나 듭니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석양이 찾아오고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석양이 찾아오고 한아가씨는 묵상에 잠겨있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석양이 찾아오고 인증샷도 챙기고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석양이 찾아오고 광주 초등동기들도 인증샷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석양이 찾아오고 광주 초등동기들도 인증샷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석양이 찾아오고 광주 초등동기들도 인증샷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에 자전거배들은 대기하고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가의 건물들도  석양을 맞을준비

카를4세 동상입니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석양이 찾아왔네요

카를4세 동상입니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에 어둠이 깔리고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에 어둠이 깔리고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에 어둠이 깔리고 조명이 드러오기시작



카를4세 동상앞에서

카를4세 동상앞에서

카를4세 동상앞에서

카를4세 동상앞에서


카를4세 동상앞에서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배경으로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배경으로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배경으로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배경으로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배경으로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배경으로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볼타바강을 배경으로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 틴성당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 틴성당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



다음은 체코 타보라마을로갑니다

2017.5.26  19편  체코 체스키크롬로프

비엔나에서 만은것을보고 느낀우리들은 오늘 국경을 넘어 3시간에 걸쳐 이동으로 체코로간다

보헤미아 지방에서 프라하성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성채 체스키크롬로프 성조망과 시청사, 스보르노스티 광장  성당등을 보고 점심으로 특식을 준비했다.


체스키크룸로프

동의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 속 마을 다른 표기 언어 Český Krumlov

블타바 강이 굽이쳐 흐르는 체스키크룸로프는 14~16세기에 수공업과 상업으로 번영하였다. 중세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체스키크룸로프는 카메라 렌즈 속에 가장 아름답게 담기는 동화 속 마을이기도 하다. 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체코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체코에서는 프라하에 이어서 두 번째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드라마, 영화, CF,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체코어로 ‘체코의(Český) 오솔길(Krumlov)’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 마을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마을을 끼고 커다랗게 휘어져 흐르는 블타바 강에서는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 레프팅을 즐길 수도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는 카메라 렌즈 속에 가장 아름답게 담기는 동화 속 마을이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체코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체코에서는 프라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고 드라마, 영화, CF, 뮤직 비디오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체코어로 ‘체코의 오솔길’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 마을 곳곳에 있으며, 마을을 끼고 휘어져 흐르는 블타바 강에서는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 레프팅을 즐길 수도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 카드

체스키 크룸로프 성 박물관, 성탑, 에곤 실레 미술관 등을 입장할 수 있는 카드이다. 관광 안내소나 성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격 : 성인 200kč / 학생 100kč


 

입체지도

체스키는 체코(옛 보헤미아)를 의미하고 크롬로프는 블타바강이 말발굽모양으로 흐르기 때문에 말발굽이라는 뜻의 크롬로프를 붙여서 체스키크롬로프라고 한다



성 외곽의 주택들

중세의 작은 도시 체스키 크롬로프의 구시가지로 들어간다

마을 어느 곳을 서성거리든 체스키 크룸로프의 우뚝 솟은 상징은 체스키 크룸로프성이다. 보헤미아 지역에서 프라하성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성은 르네상스 양식의 방, 바로크 양식의 홀 등 귀족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3세기 크룸로프 영주가 성을 건축했지만 그 후 시대별로 유행하던 건물들이 하나하나 덧씌워졌다. 각각 다른 양식의 정원과 건축물들을 지나면 가장 안쪽에는 바로크 양식의 넓은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으로 향하는 ‘붉은 문’ 아래에는 곰들도 사육되고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성은 세계 300대 건축물로도 지정된 바 있다.

 

성외곽의 장인정신 기념품가계

마을의 상징인 체스키 크룸로프 성

160여 개의 계단을 지나 원형 탑에 오르면 구시가와 그곳을 ‘S’ 자로 감싸고 흐르는 블타바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헤미아 삼림에서 시작된 블타바강은 이곳 보헤미아 남부 땅을 거친 뒤 체코를 경유해 독일까지 흘러 들어간다. 성루에서 바라다보면 마을의 윤곽은 또렷이 전해진다. 외지인들은 여름이 오면 블타바 강변에서 중세마을을 배경으로 카누를 즐기기도 한다.

 

협곡을 이은 높은 다리가 멀리서 보면 마치 등에 두른 망토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망토다리(Cloak Bridge) 아래는 마침 정당한 각도의 햇빛이 하트모양을 만들고 있었고, 그 너머로 이미 정겨워진 동유럽의 파스텔 톤의 붉은 지붕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 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서

밖에서 본 성벽


성 안쪽의 풍경

중세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는 카메라 렌즈 속에 가장 아름답게 담기는 동화 속 마을이다. 

흐라데크 타워전망대 흐라데크타워는 높이가 54.5m이며 7층으로 234계단이 있다고 한다.

5층에는 4개의 종이 매달려 있고 7층의 전망대에서는 체스키크롬로프성이 다 내려다 보인다고한다.

다리 아래를 지나자 체스키 크롬로프로 건너가는 첫 번째 다리가 나타났고, 다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블타바강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실 강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폭이 좀 넓은 시내와 같은 수준이었다. 다리에 서서 상류 쪽을 보니 작은 댐이 있었고, 그 아래 뱃놀이하던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흐라데크 타워전망대

체스키 크룸로프는 체코어로 "체코의 오솔길"이라는 뜻이다. 


점심을 특식으로 채우고

점심 만찬을  특식으로 채우고


체스키 크룸로프성이 있는 라트란 거리와 강 건너 구시가를 연결하는 다리가 ‘이발사의 다리(Lazebnický most)’다. 예전에 다리 인근에 이발소가 위치해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귀족과 이발사 딸의 비운의 사랑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다리 위에는 십자가에 박힌 예수상이 세워져 있다.



흐라데크 타워전망대

흐라데크 타워전망대   우린 가보지못해 아쉽다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성.  "이발사 다리"

"이발사 다리"에 예수상

성 요한 네포묵 신부 동상


예전 영주를 모시던 하인들이 거주했다는 라트란 거리


"이발사 다리" 에서 기념사진을

"이발사 다리" 에서 기념사진을

"이발사 다리" 에서 기념사진을


"이발사 다리" 에서 예수상을 손위에

"이발사 다리" 에서 예수상을 손위에


구시가지 광장

체스키크롬로프 성

성으로 올라가는길

체스키크롬로프 성

체스키크롬로프 성

성으로 올라가는길목에 옛모습의 군인복장

성으로 가는길

성으로 들어가는문





체스키크롬로프 도시는 S자로 완만하게 흐르는 블타바 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도시로 붉은 지붕과 둥근 탑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에요. 체코가 공산 국가였던 시절에는 그저 낙후된 도시에 불과했던 체스키크룸로프는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해요.
도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프라하보다 빨간지붕이 더많이 볼 수 있고,정말 이쁜마을이에요


뒤로 흐라데크 타워전망대가 있다.

흐라데크타워는 높이가 54.5m이며 7층으로 234계단이 있다고 한다.

5층에는 4개의 종이 매달려 있고 7층의 전망대에서는 체스키크롬로프성이 다 내려다 보인다고한다.

우리는 올라가 보지 못해 아쉽다.


성으로 올라가는길


성문 앞의 분수

중세마을의 관문인 부데요비츠카 문.


성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

성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

성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

성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

성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 집들이 동화속에 나오는 건물들같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 집들이 동화속에 나오는 건물들같다

로잔베르크가문의 저택으로

로잔베르크가문의 저택으로




체코 공화국의 남동쪽에 자리한  인구 약 1만 5천의 중세의작은 성 도시다

체스키 부데요비체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져 있으며, 블타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강은 남쪽으로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바바리아를 서로 분리시키는  슈마바(Sumava) 산 아래에서 S자형으로 흐르고 있다.

체스키 크롬로프(Český Krumlov)는 ‘체코의 굽은 강가 습지’ 또는 ‘체코의 오솔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도를 보면 앞의 뜻이 와 닿고, 거리를 걷다보면 뒤의 풀이가 와 닿는다.
첫 번째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또 하나의 다리가 나오는데, 바로 옆의 댐에서 큰 수로처럼 물을 흘려보내는 물길인 듯했다. 그 물가에 관광객을 위한 숙소와 식당 및 카페 등을 만들어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체스키 크룸로프성은 오렌지색 지붕이 늘어선 중세마을의 상징

로잔베르크가문의 저택으로

성아래로 구시가지가 발달해 있는데, 지금까지도 이 도시의 중심으로 각종 상점과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으며 지금까지도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1992년에 프라하, 성 요한 네포묵 순례교회, 쿠트나 호라, 호란 비체 등과 함께 보헤미아 땅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성은 오렌지색 지붕이 늘어선 중세마을의 상징


체스키 크룸로프성은 오렌지색 지붕이 늘어선 중세마을의 상징 같은 존재다.

체스키 크룸로프성 인근 역사지구에는 고딕, 르네상스 건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도심의 절반은 유적과 상점이고 나머지 절반은 펜션, 민박집들로 채워진다.

 










로잔베르크가문의 저택으로 들어서다

체스키 크룸로프성은 오렌지색 지붕이 늘어선 중세마을의 상징

체스키크롬로프 도시는 S자로 완만하게 흐르는 블타바 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도시로 붉은 지붕과 둥근 탑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에요. 체코가 공산 국가였던 시절에는 그저 낙후된 도시에 불과했던 체스키크룸로프는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해요.
도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프라하보다 빨간지붕이 더많이 볼 수 있고,정말 이쁜마을이에요


폭포도 보이고







망토다리 전망대에서 본 풍경

구시가지의 풍경





체스키크롬로프 성과(좌) 성비토성당(우)

 체코 공화국의 남동쪽에 자리한 중세의 성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는 인구 약1만5천의 작은 도시다.

 체스키 부데요비체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져 있으며,블타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강은 남쪽으로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바바리아를 서로 분리시키는 슈마바(Sumava)  산 아래에서 S자형으로 흐르고 있다.

 

 체스키크룸로프는 블타바강 만곡부(灣曲部)에 있는 도시로서, 봉건귀족 비데크가(家)의 보호를 받아  14∼16세기에 수공업과 상업으로 번영하였다.

옛시가지에는 체스키크룸로프성을 중심으로 중세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13세기에 창건한 체스키크룸로프성 안에는영주가 살던 궁전과 예배당,조폐소 등이 있었다.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하였는데,개축 당시 둥근지붕이 덮인탑과 회랑을 만들었다. 

궁전에 있는 가면의 방은 로코코 양식으로 만들었으며 아름다운 풍경화로 장식해 놓았다. 


라트란 지구에는 14세기에 건설하여 16세기에 개축한 성체(聖體) 성당과 성요스트 성당이 있다. 




낮은 언덕 을 따라 올라가면서 옛모습의 집들과 숲이 우리를 반겼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가니 영주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잘 다듬어진 정원이 나왔다. 오스트리아에서 본 미라벨 정원철럼 예쁜 꽃들로 잘 다듬어진 정원은 여행에 지친 우리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정원의 잔디에 누워도 보고 정원 주위를 산책하며 모처럼 여유를 즐겼다. 정워에서 내려오며 보이는 풍경은 장면장면이 모두 그림이다. 왜 이 곳의 동화의 마을이라는지 알 것 같다. 브타바강을 돌아 돌아 강 주변으로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마을 어디에서나 잘 조망되는 체스키성으로 이정표를 삼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것 같다

정원으로 올라가는 다리위에서 본 구시가지  뒤로 보이는 흐라데크타워가 보인다


이날 호주수상이 와서 교통이 혼잡했으나 경위병들이

경위병과 인증샷을


이날 호주수상이 와서 교통이 혼잡했으나 경위병들이 교통정리를 잘해서



중간에 기념품가계도있고

옛날에 사용된 대포도 있네


하수도 뚜껑도 마크가 선명히

이빵이 여기 명물인데 먹어보지 못해 아쉽다


여기에서 레프팅도하는데

여기 거리의 악사도 점포없이 영업을

휘어진 길을 따라 아름답게 장식된 가게들을 보며 걷노라니, 내가 마치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홀로 걸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길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다보니, 오른쪽에 ‘에곤 쉴레 아트센터(Egon Schiele Art Centrum)’가 보였다. 가이드에게 혼자 아트센터에 남겠다고 말하려고 보니 이미 중앙광장 쪽으로 올라가고 보이질 않았다.

성당도 보이고



체스키크롬로프성내의 중앙광장인 스보르노스티광장

스보르노스티광장은 체스키크롬로프성,볼타바강과 함께 동화마을 체스크크롬로프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드마크이다.중세시대의 오래된 르네상스 건물로 둘러쌓여 있어서,소박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모두 다른 모양의 지붕과 외관을 가지고 있어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건물마다 독수리 문양과 체코국기,그리고 로젠베르크 영주 가문의 문장인 꽃잎 문양이 새겨져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체코를 대표하는 인상파 화가인 에곤 실레의 미술관을 둘러본 뒤 구시가 광장 옆의 체스키 크룸로프 성당을 감상해도 좋다. 에곤 실레는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도시 곳곳을 담아냈다. 보헤미안 지역의 유물을 보관한 역사박물관이나 체코 인형극의 인형들을 보관한 마리오네트 박물관 역시 이곳만의 정취가 묻어난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작은 책방과 골동품 상점이 나타나며 오래된 도시의 산책을 풍요롭게 한다.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는 스보르노스티 중앙광장(Náměstí Svornosti)에서는 주말이면 흥겨운 공연이 열린다. 보헤미안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며, 예전 수공업으로 빚어냈던 각종 물건들을 파는 장이 들어선다. 중앙광장은 13세기에 형성된 체스키 크룸로프의 또 다른 상징으로 마을 길이 방사선으로 뻗어 있으며 광장 주변의 오랜 건축물들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외지인들은 주말이면 일찌감치 이곳에 숙소를 잡아놓고 영주들이 누렸을 옛 정취에 취한다. 펜션들은 대부분 강이 흐르는 목 좋은 곳에 들어섰고, 마을 뒷골목에는 운치 있는 레스토랑들이 차곡차곡 늘어서 있다. 길 모퉁이 작은 클럽의 문을 열면 밤늦게까지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체코 프라하의 물가가 비싸고 도시 분위기가 위압적이라면 이곳은 저렴하고도 포근하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쓸만한 쉼터를 찾기 위해 한두 시간 짐을 끌고 다니는 수고쯤은 유쾌하게 한다.

스보르노스티 중앙광장


성 비토성당   

성 비토성당   

성 비토성당   

스보르노스티 중앙광장앞에서 수줍은듯 포즈를 취해주는 아가씨 미인이다

스보르노스티 중앙광장위에 성 비타 성당

중앙광장위에 성 비토성당   

중앙광장위에 성당 안

성 비토성당   

 

옛시장터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리와 후기고딕 양식의 성비토 성당이 보존되어 있다. 

성당은 1309년 착공한 건물로서 내부에는 그물 모양의 볼트와 바로크 양식의 제단이 있고, 

건물 서쪽에는 좁고 높은 탑이 서 있다. 

중앙광장위에 성당 안


중앙광장위에 성당 안

중앙광장위에 성당 안


중앙광장에서


구시가 등을 둘러보는 데는 걸어서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도시는 인구 1만 5,000여 명의 아담한 규모고 마을의 관문인 부데요비츠카 문(Budějovická Brána)을 지나면 옛 영주들을 모시던 하인들이 거주했던 라트란(Latrán) 거리가 이어진다. 꼭 특별한 테마를 찾으려 하지 않더라도 도시 자체가 오롯하게 문화유적지라는 느낌이 전해진다. 오렌지색 지붕과 흰 담벼락은 동화 속 골목을 산책하는 착각을 안겨 준다.




중앙광장 앞의 건물들이 색갈이 모두 제각각


중앙광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관광객들 

체스키 크롬로프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체스키(체코)+크롬로프(말발굽)  란 뜻이다. 

슈마바산 아래 볼타바강이 S자형으로 흐르는 강 만곡부에 자리잡고 있다. 

붉은 기와 지붕,성곽,성당의 첨탑이 어울어진 중세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1992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위에서본 구시가지 

강가에 일광욕과 레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옛날십자군의 방패 

옛날십자군의 투구

기념품


즐거운 레프팅



일행들의 단체 사진도 있네

일행들의 단체 사진도 있네

일행들의 단체 사진


체스키크롬로프성 입구인데 웅장하고 높아서 위압감을 느낍니다.








다음편 프라하에서 봅시다

2017.5.25 18편  오스트리아 비엔나 슈테판성당

벨레데레궁전을 보고 다시 슈테판성당으로 간다


슈테판 대성당

동의어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식 혼합 성당 다른 표기 언어 Stephan Cathedral , Domkirche St. Stephan

빈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슈테판 대성당은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식 성당이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처음 지어졌으며, 14세기 중반에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8세기에 들어와 성당의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독특한 혼합 양식의 건물이 되었다. 화려한 모자이크가 인상적인 지붕은 기와 23만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137m 높이의 남탑과 67m 높이의 북탑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장소로도 유명하고, 내부엔 16세기의 조각가 안톤 필그람이 만든 설교단이 있으며, 지하에는 대주교의 묘지와 역대 합스부르크 왕가의 내장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보관되어 있다. 페스트로 사망한 2천여 명의 유골을 모아 놓은 카타콤베는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다.

가격
카타콤베 : 성인 €5.50 / 청소년(15~18세) €3 / 어린이(6~14세) €2
남탑 : 성인 €4.50 / 청소년(15~18세) €2 / 어린이(6~14세) €1.50




빈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슈테판 대성당은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식 성당이다.


게른터너거리 

게른터너거리 


게른터너거리 




게른터너거리  대단히 복잡하고 특히 소메치기가 원정오는거리





시가 5억짜리 스포츠카 앞에서 멋진 폼으





슈테판 대성당은 빈을 상징하는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적인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입니다. 본당의 건물 길이가 107m, 천장 높이가 39m에 이르며, 첨탑은 높이가 137m에 달합니다. 슈테판 대성당은 특히 23만 장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 장식이 유명합니다.


교회 북측 탑은 엘리베이터로, 남측 탑은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습니다. 슈테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남측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슈테판 대성당의 아름다운 지붕과 빈 시내 풍경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집니다.

북측 탑에는 수백 개의 대포를 녹여 만든 종이 있는데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이라고 합니다.

대성당 지하에는 역대 황제와 후손들의 내장을 안치한 납골당이 있으니 성당과 납골당을 자세히 둘러보고 싶다면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양초봉헌대

성당안에서 기도도 드리고

성모님이 예수님을 안고

예수상

성당앞 제대


성당앞 제대


성당앞 제대

성당 파이프 오르간   파이프 한개가 약1천만원정도간다





모자이크 성당으로 더 유명하다

게른터너거리 

슈테판 대성당은 빈을 상징하는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적인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입니다. 본당의 건물 길이가 107m, 천장 높이가 39m에 이르며, 첨탑은 높이가 137m에 달합니다. 슈테판 대성당은 특히 23만 장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 장식이 유명합니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처음 지어졌으며, 14세기 중반에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8세기에 들어와 성당의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독특한 혼합 양식의 건물이 되었다.




지붕의 모자이크 당시의 에술성을 후세까지

지붕의 모자이크 당시의 에술성을 후세까지



교회 북측 탑은 엘리베이터로, 남측 탑은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습니다. 슈테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남측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슈테판 대성당의 아름다운 지붕과 빈 시내 풍경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집니다.

북측 탑에는 수백 개의 대포를 녹여 만든 종이 있는데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이라고 합니다.

대성당 지하에는 역대 황제와 후손들의 내장을 안치한 납골당이 있으니 성당과 납골당을 자세히 둘러보고 싶다면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붕의 모자이크 당시의 에술성을 후세까지





지붕의 모자이크 당시의 에술성을 후세까지

정문쪽

화려한 모자이크가 인상적인 지붕은 기와 23만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137m 높이의 남탑과 67m 높이의 북탑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지하에는 대주교의 묘지와 역대 합스부르크 왕가의 내장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보관되어 있다. 페스트로 사망한 2천여 명의 유골을 모아 놓은 카타콤베는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장소로도 유명하고, 내부엔 16세기의 조각가 안톤 필그람이 만든 설교단이 있으며




호텔근처 교회

오스트리아 주택가의 아름다움

우리가 묵은 호텔은 조용한 주택가

호텔앞에 양귀비도피고

주택가 한복판에 공동묘지가 정원처럼 아름답다

어느 주택안의 모습 아름다워 한컷트


호텔옆 어느 주택안의 모습 아름다워 한컷트

26일 아침일찍 체코 체스키크롬호프 로간다 약3시간소요

수도원

체코로 가면서 휴게소에서 경치가 좋은 곳에서 인증샷

체코로 가면서 휴게소에서 경치가 좋은 곳에서 폼도 잡아보고

체코로 가면서 휴게소에서 경치가 좋은 곳에서 폼도 잡아보고

체코로 가면서 휴게소에서 경치가 좋은 곳에서 대한민국만세도해보고

체코로 가면서 휴게소에서 경치가 좋은 곳에서 태권도 시범도해보고

고속도로 휴게소의 아름다움

오스트리아의 한적한 시골 풍경


오스트리아 목장농지

화이팅도 와쳐보고




오스트리아 농가마을






오스트리아 유체꽃밭을 하염없이 달려서 체코로


다음편에 기대하세요

2017.5.25 17편  오스트리아 비엔나 벨레데레궁전

쉔부른궁전을 보고난 후 비엔나의 2대 궁전인 벨베데레 궁전으로 간다 여기는 내부관람료 30유로를 별도로 지급했다

궁전안은 사진이 촬영 금지되어 있어 간간히 한두건 촬영을 했다.


벨베데레 궁전

동의어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만나다, 벨베데레 궁 다른 표기 언어 Belvedere Palace , Belvedere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사보이 왕가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이다. 1714~1723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벨베데레는 이탈리아어로 ‘좋은 전망의 옥상 테라스’를 가리키는 건축 용어이다. 벨베데레 궁전은 2013년 이전까지는 상궁과 하궁 · 오랑게리(Orangerie)의 두 미술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2013년 현대 조각 전시관인 21 하우스(21er Haus)가 오픈하면서 총 3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이외에 오스트리아가 낳은 또 다른 대표 화가인 에곤 실레의 작품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하궁은 오이겐 왕자의 별궁으로 현재는 바로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상궁의 인기에는 못 미치지만 다비드의 〈나폴레옹〉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하궁 옆에 있는 오랑게리는 아열대 식물을 보관하던 식물원인데 오스트리아의 중세 작품 등을 전시 중이다. 21er Haus는 오스트리아 조각가인 프리츠 보트루바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현대 조각 미술관이다.


가격
상궁 : 성인 €14 / 학생 €11.50 / 빈 카드 소지자 할인 €11 / 18세 미만 무료 입장
하궁 : 성인 €11 / 학생 €8.50 / 빈 카드 소지자 할인 €9.50 / 18세 미만 무료 입장
벨베데르 티켓(상궁+하궁) : 성인 €19 / 학생 €16.50 / 빈 카드 소지자 할인 €16.50
21 하우스 : 성인 €7 / 학생 €5.50 / 빈 카드 소지자 할인 €5.50 / 18세 미만 무료 입장


비엔나 3구에 있는 벨베데레는 바로크의 유명한 건축가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 (Hildebrandt ) 가 설계하고 베네치아 출신인 조각가 죠반니 스테파니가 함께 만들었다.

1714년 건축을 시작하여 1723년에 완공하였으며 천정은 마르니코 앝트폰테라는 화가가 완성하였다.상궁과 하궁으로 되어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벨베데레는 왕가에서 1697년 부지를 사들여 사보이의 왕자 유진(1663~1736)의 여름 거주지로 사용되었었다.

1919년 오스트리아 정부의 소유로 박물관으로 개조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나 현재 복원되어 지금은 클림트의 '키스'를 비롯해 에곤 쉴레등의 현대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상궁은 1955년 5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외무 장관이 모여 오스트리아의 자유와 독립을 부여한 조약을 체결한 장소로 유명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가 잠시 거주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인 〈키스〉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벨베데레궁전은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세운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으로서 먼저 1716년에 별궁으로 하궁이 세워지고 1723년에는 연회장으로 이용할 상궁이 완성되었다. 오이겐 왕자는 루이 14세의 사생아라는 이야기도 떠도는데 프랑스에서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여 국가를 위한 업적을 많이 남긴 위인이다.

상궁과 하궁 사이에는 완만한 언덕을 이용해 분수와 잔디밭, 프랑스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궁전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름답고 격조 있는 궁전으로 유명하다.

벨베데레 궁전 정문

벨베데레 궁전 정문

오이겐 왕자가 죽은 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궁을 사들여 미술작품을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상궁은 19, 20세기 회화관으로, 하궁은 바로크미술관으로 쓰이게 되었다. 클림트의 작품들은 바로 이곳, 상궁에 소장되어 있다.

궁전과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상궁과 하궁 사이에는 완만한 언덕을 이용해 분수와 잔디밭, 프랑스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궁전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름답고 격조 있는 궁전으로 유명하다.




궁전과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


궁전과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사보이 왕가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이다.  1714~1723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벨베데레는  이탈리아어로 ‘좋은 전망의 옥상 테라스’를 가리키는 건축 용어이다.  벨베데레 궁전은 2013년 이전까지는 상궁과 하궁 ·  오랑게리(Orangerie)의 두 미술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2013년 현대 조각 전시관인 21 하우스(21er Haus)가  오픈하면서총 3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상궁과 하궁 사이에는 완만한 언덕을 이용해 분수와 잔디밭, 프랑스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궁전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름답고 격조 있는 궁전으로 유명하다.










벨베데레 궁전은 18세기 비엔나의 유력자인 '오이겐 사보이' 공에 의해 세워진 궁 으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대표작인 키스(The Kiss), 유디트 (Judith I)를 비롯해 아델레 블 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  에곤 쉴레의 죽음과 소녀,를 비롯한 명화들이 전시 되어 있습니다




   정원을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 조각







이 곳 벨베데레 궁전은 빈의 유력자 오이겐 폰 사보이 공이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궁전이에요


동화속에 나오는 아시스 집

정원을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 조각

이탈리아어로 전망이 좋다는 뜻의 벨베데레 궁전이  가지고 있는 저 정원은 프랑스식이라고 하네요

오스트리아에는 벨베데레 궁전 말고도 쉔브룬 궁전(유럽의 3대 궁)이 있는데

조각상에 가슴을 너무 만져 색갈이 바랬다


조각상에 가슴을 너무 만져 색갈이 바랬다

입구에 있는 육중한 기둥을 받치고 있는 거인 조각상들

-입구에 비치된 동상-

*클림트의 그림<유디트>:  - 사진은 올리지 못하고 전시된 그림을 보고 와서-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베트리아 마을의 과부로, 아시리아군이 쳐들어오자 적진에 뛰어들어서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성적으로 유인하여 그 목을 잘라가지고 돌아온 여성이다. -우리나라의 논개와 같은 여성-

이런 구약의 유디트는 아름다운 여인의 대담한 살인 행동이라는 측면에서 과 죽음을 표현하는 요소가 있어 19세기 말에 많은 화가에 의해 그려졌지만,

클림트 이전에 화가들은 유디트가 적장의 목을 베어버리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 그림을 그렸으나, 클림턴의 <유디트>는 살해에 대한 고통보다는 가슴과 배꼽이 드러난 옷을 입은체로 쌕시한 눈매로 웃음을 짓고 있는 매혹적인 여인을 그렸다. (-오른쪽 손에 적장의 잘린 머리가 들려 있는 것이 보인다-)

이런 매혹적인 그림을 그려 감상자들을 에로틱한 상상으로 이끄는, 이렇게 그리는 풍이 클림트의 회화 특징이라고 한다.

입구에 있는 육중한 기둥을 받치고 있는 거인 조각상들

입구에 있는 육중한 기둥을 받치고 있는 거인 조각상들


입구에 있는 육중한 기둥을 받치고 있는 거인 조각상들


관람객들은 입장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클림트의 전시실로 향하는데 키 작은 풀, 꽃밭 위에서 서로에게 의지한 채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세계 최고 걸작품 중의 하나인 「키스」는 실제로 보면 그 오묘한 색과 화려한 기하학적 무늬들의 조합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제목 "키스" 작품 유일하게 사진을 찍게 하는 모조품의 작품앞에서


입장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클림트의 전시실로 향하는데 키 작은 풀, 꽃밭 위에서 서로에게 의지한 채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세계 최고 걸작품 중의 하나인 「키스」는 실제로 보면 그 오묘한 색과 화려한 기하학적 무늬들의 조합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열심히 찍은 것이 거울에 비친 내모습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1714년 건축을 시작하여 1723년에 완공하였으며 천정은 마르니코 앝트폰테라는 화가가 완성하였다.상궁과 하궁으로 되어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1714년 건축을 시작하여 1723년에 완공하였으며 천정은 마르니코 앝트폰테라는 화가가 완성하였다.상궁과 하궁으로 되어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예수상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궁전에서 내려다본 정원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 나폴레옹"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그리고 묘한 표정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유디트 I」도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유디트 I」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미망인 유디트를 그린 것으로 유디트는 이스라엘을 침략한 앗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그의 목을 베고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가능하면 여러 각도에서 감상하며 유디트의 알 듯 말 듯한 표정과 관능적 자태 속에 담긴 수수께끼 같은 의미와 메시지를 찾아보자.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작품수가 워낙 많아 다볼수 없어 중요한 것 가이드 설명을 듣고 내려온다







궁전안 천장



궁전안 천장의 아름다움

궁전안 천장의 아름다움

그리고 묘한 표정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유디트 I」도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유디트 I」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미망인 유디트를 그린 것으로 유디트는 이스라엘을 침략한 앗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그의 목을 베고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가능하면 여러 각도에서 감상하며 유디트의 알 듯 말 듯한 표정과 관능적 자태 속에 담긴 수수께끼 같은 의미와 메시지를 찾아보자.


궁전안 천장의 아름다움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작품의 설명을 들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나 "비너스"


고흐자화상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화려한 황금빛 색채 속 묘한 표정의 여인, 마치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꿈 속에 나올 법한 키스. 누구나 한 번은 본 적 있는 클림트의 작품 「유디트Ⅰ」과 「키스」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흥분되고 설레는 일인가. 때문에 클림트의 두 작품이 한곳에 존재하는 빈 벨베데레궁전 상궁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나폴레옹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관람객들은 입장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클림트의 전시실로 향하는데 키 작은 풀, 꽃밭 위에서 서로에게 의지한 채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세계 최고 걸작품 중의 하나인 「키스」는 실제로 보면 그 오묘한 색과 화려한 기하학적 무늬들의 조합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전시장 안의 진품 작품들


화려한 황금빛 색채 속 묘한 표정의 여인, 마치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꿈 속에 나올 법한 키스. 누구나 한 번은 본 적 있는 클림트의 작품 「유디트Ⅰ」과 「키스」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흥분되고 설레는 일인가. 때문에 클림트의 두 작품이 한곳에 존재하는 빈 벨베데레궁전 상궁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조작상의 가슴을 그냥두지 않아


약1시간30분의 관광을 마치고 다시 정문으로 나오니



다음편에는 비엔나 슈테판성당으로 갑니다

2017.5.25  16편  오스트리아 비엔나 쉔부른궁전  

부다페스트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음악의도시 오스트이라 수도비엔나로오는데 4시간이나 소요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 쉔부른 궁전및 정원을 보고 네오고딕 양식의 멋진건물 시청사와 첨탑과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적인 슈테판 성당을 보러간다.


   Wien 


  도나우 강을 따라 자리잡고 있으며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의 관문 역할을 한다.

1558~1806년에 신성 로마 제국 중심지였고, 그후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중심지였다. 품위있고 거대한 문화적 위업을 이룬 도시로서 건축과 음악으로 유명하다.

빈은 판노니아 분지가 서쪽의 알프스 고산지역을 향해 높아지기 시작하는 곳에서 도나우 강과 접하고 있다. 시내에서 가장 높은 지역은 빈 삼림지대인데 이곳은 대체로 반원형인 4개의 계단식 대지를 이루면서 도나우 강을 향해 가파르게 낮아진다. 


      빈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

이곳의 유명한 건물들 중의 하나인 성 스테파누스 성당은 12세기 중엽에 세워졌다가 화재로 손실되어 200년 후 재건되었다. 다른 중요한 중세기 건물로는 13세기말 합스부르크 통치자들의 성인 호프부르크, 14세기 미노리텐키르헤 교회, 마리아암게슈타데 교회가 있다. 17세기말이 되면서 플라구에콜룸 같은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빈 지역에서 바로크 양식은 70년 이상 유행했으나 마침내는 링 건축양식에 대체되었다. 링 양식의 건축물들은 링슈트라세를 따라 일렬로 늘어서 있으며, 그중에는 신(新)프랑스르네상스풍의 국립 오페라관, 의(擬)고딕식의 포티페 교회, 신이탈리아르네상스풍의 빈대학교, 신플랑드르고딕식의 라트하우스(시청) 등이 있다.

빈은 건축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수세기 동안 세계적 중심지였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슈베르트, 요하네스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구스타프 말러,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 많은 서양 음악가들이 이곳을 그들의 본거지로 삼았다. 티롤 민속춤에서 파생된 왈츠는 1820년에 이곳에서 확립되었으며, 그 직후에 위대한 빈 오페레타 시대가 개막되었다.

또한 세계적으로 뛰어난 교향악단 중의 하나인 빈 관현악단(비엔나 필하모닉)의 본거지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 동선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847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중앙유럽 알프스 산맥에 있는 내륙국이다. 

유럽의 중앙에 위치해 여러 나라의 국경이 맞닿아 서쪽으로는 스위스,리히텐슈타인,북쪽으로는 독일, 체코,

동쪽으로는 헝가리슬로바키아,남쪽으로는 이탈리아슬로베니아가 있다. 

스위스 쪽은 알프스 산맥과 도나우 강이 흐르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1인당 GDP(4만5천불)가 높다. 

시민을 위해 수준 높은 복지를 하는 나라다. 

수도 은 수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유엔(UN, 국제 연합) 회원국이 되었으며

 1995년에는 유럽 연합(EU)에 가입하였다.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의 창립국이다.


 또한 1995년 솅겐 조약을 체결, 1999년 유로화 사용을 시작하였다.

현재의 오스트리아의 근원은 합스부르크 왕가 시대로 올라간다.

 당시 오스트리아는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17,18세기 유럽의 주요 강대국 중 하나였다. 

1804년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여 프랑스 제1제국 성립을 선포하자 이에 대항하여 

황제 프란츠 2세오스트리아 제국을 수립하였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9개의 연방주로 이루어진 대표 민주주의 실현 국가이다.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는 (비엔나)으로 17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쉔부른궁전모형도

우리가 묵었던 부다페스트 호텔





드디어 비엔나 도착

비엔나시내







쉔부른궁전도착

모짜르트에 이어서 베토벤,브람스등 당대의 천재 음악가들의 활동무대답게 오감을 경험할수있는 음악도시로서  비엔나는 황홀한 경험이었고,유럽 최고의 가문이었던 합스부르크가의 여름별궁이었던 쉔부른 궁전과 모짜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모두 거행된 "성 슈테판 대성당"의 규모와 웅장함에 우리나라의 문화적 왜소함이 왠지 작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비엔나 쉔브룬궁전 !


쉔부른 궁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쇤브룬 궁전 [Sch?nbrunn Palace ]


매우 인기 있는 황궁과 정원이 훌륭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름 주거지였다. 


'합스부르크 옐로'로 알려진 독특한 색채의 건물은 내부에 호화로운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로코코 양식이 주를 이루며 황금으로 된 장식, 크리스털 샹들리에, 커다란 거울 등을 볼 수 있다.  쇤브룬에는 1,441개라는 엄청난 개수의 방이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그녀의 남편인 황제 프란츠 1세는 쇤브룬에서 여름을 보냈으며, 그들이 통치하던 시절 
여섯 살 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궁전에 초대받아 여제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쇤브룬에서 1830년 출생했으며 여든여섯의 나이로 이곳에서 죽게 된다. 

이 궁전은 프란츠 요제프의 아내이며 애칭으로 '시시'라 불리기도 했던 엘리자베트 황후와의 인연으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쇤브룬을 매우 사랑하여 결혼한 이후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냈다.

합스부르크 가의 이 궁전은 17세기에는 사냥 별장이었으며, 터키가 빈을 점령했을 때 파괴되었던 자리에 세워졌다.
 '쇤브룬'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샘물을 의미하는데, 이곳에 왕실의 식수를 제공해 주던 천연 샘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쇤브룬 궁전은 '글로리에테'라는 이름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웅장한 신고전주의풍 아치들, 모조 로마 유적, 화려한 분수, 인상적인 종려나무 온실을 완벽하게 갖춘 눈부시게 화려한 대정원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궁전에는 또한 프란츠 황제가 1750년대에 조성한 작은 동물원의 후손인 동물원도 있다. 

이 동물원은 여전히 원래의 자리에 남아 있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때문에 동물 우리가 상당히 작은 편이다.

1918년 카를 1세 황제가 왕위에서 물러나 오스트리아는 공화국이 되었다. 그는 퇴임 연설을 쇤브룬에서 거행했고, 
궁전은 공화국의 소유가 되었다. 쇤브룬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피해를 입어 1950년대에 복구되었다. 

오늘날 이 궁전은 마땅히 빈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가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갖고 있는18~19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궁전

베르사유 궁전 보고 자극받아 만든 궁전


<임페리얼 투어/Imperial Tour>

쉔부른 궁전 내부 전체 중 22개의 방만 관람 가능한 티켓 관람 소요시간 30~40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포함

성인 14.20 유로 어린이(6~18) 10.50 유로 학생(19~25) 13.20유로

​<그랜드 투어/Grand Tour>

쉔부른 궁전 내부 전체 중 40개의 방만 관람 가능한 티켓 관람 소요시간 50~60분

성인 17.50 유로 어린이(6~18) 11.50 유로 학생(19~25) 16.20유로


사진촬영금지 구역이라 힘들게 몇장

쉔부른궁전의 내부의 화려한 모습

쉔부른궁전의 내부의 화려한 모습


▶쉔부른궁전 내부의 화려한 모습

  온통 금색으로 되어있어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네요.


 빈, 비엔나 쉔부른 궁전






쇤부른궁전의 내부의 화려한 모습

유럽의 여러가문중 가장 영향력이 컸었던 합스부르크가문에 대해 잠시 알아보고 갈까요?

합스부르크 왕조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계자인 카를로스는 1519년에 신성 로마 황제가 되어 이탈리아 영토와 식민지를 
물려받음으로써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정치적 주역이 되었다.
카를로스 1세를 계승한 펠리페 2세에서 스페인은 '황금시대'를 맞이한다. 
그는 관료조직을 완비하여 국가질서의 수립에 정진하는 한편, 포르투갈을 합병함으로써 이베리아 반도 통일을 이루어 식민지 정책에서 스페인의 주도권이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이후 모직물에 상권을 영국과 네델란드 빼앗기면서 국내 산업은 침체하여 스페인의 쇠퇴는 더 한층 두드러졌으나, 합스부르크가의 마지막 왕 카를로스 2세 때는 중상주의 정책의 채택으로 경제도 느리게나마 회복되어갔다. 



합스부르크 가(Haus Habsburg)

합스부르크 가(Haus Habsburg) 문장

오스트리아 가문은 유럽 왕실 가문들 중 가장 영향력있던 가문 중 하나이다. 

1438년부터 1740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는 연달아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나왔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왕실을 거의 600년 동안 지배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 합스부르크왕가의 가계도


손님을 기다리는마차

궁전을 뒤로돌아 정원으로 나가 봅니다

장미터널도 있고

정원과 어우러져 저멀리 언덕위에 있는 글로리에테까지 너무나 멋진 모습입니다

분수대가 너무 아름다운 쉔부른궁전

오늘은 분수가 영업을 안하네




쉔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이름의 유래는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도중 아름다운 샘을 발견한데서 유래한다.

 매우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건물로서 18C 철의 여제: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서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경쟁심으로 지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외부는 크림색 바로크 양식의 대궁전이고 내부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집한 각종 동양의 자기나 칠기, 세밀한 자수(실이 머리카락보다 얇다고 한다.)등으로 화려하게 로코코양식으로 장식되었다.




정원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고




음악회 준비에 바쁜사람들


글로리에테


저멀리 글로리에테가보이고

저멀리 글로리에테가보이고

글로리에테에서 바라본 쉔브룬궁전

정원의 백미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비 글로리에테(Gloriette)에 서면

분수와 정원,쇤부른궁전은 물론 빈시내까지 휀히 내려다 보인다.

저멀리 글로리에테가보이고


글로리에테에서 내려다본 쉔부른 궁전


글로리에테

글로리에테에서 내려다본 쉔부른 궁전

쉔부른궁전정문


글로리에테

글로리에테


궁전안 정원에 조각상



장미터널

아름다운 정원







쉔부른 궁전 정문



쉔부른 궁전 정문앞 풍경




거리예술가 옆에서 가이드 이원정



거리예술가

거리예술가

기념품은 어디에나


기념품은 어디에나





비엔나 시내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오스트리아 비엔나국회의사당입니다.

무슨 박물관 건물처럼 보였는데,웅장하고 멋진 조형물입니다.

왠지 낯설어 검색해보니 그리스에있는 세계문화유산1호인 파르테논신전을모티브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고대 그리스 양식의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건물은 1873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본보기로 완공되었다.설계자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그리스의 건축 양식에 따르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건물 내부도 그리스식 원주 기둥들을 세움으로써 파르테논 신전의 겉모습처럼 보이게 했다. 건물 바깥의 정중앙에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동상을 세웠으며, 지붕 위의 시꺼먼 굴뚝도 그리스 신들의 웅장한 석상으로 가렸다.설계자는 길거리에서 잘 볼 수 있도록 의사당의 기단을 높이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심지어, 두 줄로 서 있던 아름드리 가로수도 건물의 모습을 가린다고 해서 베어 버렸다. 그는 하원 건물과 상원 건물을 연결하는 중앙 통로에는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영웅들의 동상들을 세우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건물은 아주 아름답게 완성되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회의사당 건물일 것이다.



국회의사당


비엔나 백화점

손님을기다리는 마차

트램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청사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청사






도심을 투어할 마차들도 상시 대기중이네요.







국회의사당 야경

오스트리아_비엔나_오페라하우스_GettyImagesBank_ 야경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청사 야경



노면전차(트램)[street car,  ]

도로상의 일부에 부설한 레일 위를 주행하는 전차.

19세기 말 도로교통 근대화의 한 방편으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실용화되었다. 

1920년대 이후에는 기동성이 우수한 버스의 보급으로 쇠퇴하여,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노면전차가 일소되었으나,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는 전차의 고성능화와 더불어 궤도의 전용 노선화 및 지하터널화하여 버스를 능가하는 수송능력을 갖춘 도시가 많다




빈유엔사무국

빈 유엔 사무국

유엔 빈 사무국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 국제 센터에 위치한 유엔 사무국이다. 

1980년 1월 1일에 설립되었다




관광도시답게 멋진 건축물과 노면 커피점들이 인파들로 넘쳐 납니다.

우리는 햇볕이 좀 따가운데 유럽인들은 아랑곳없이 길거리에서 차와 음료를 마시면서 일상을 즐기는것 같네요. 낭만과 여유가 넘쳐 흐릅니다.

다리밑에는 낙서인지 예술인지

오스트리아_비엔나_오페라하우스_GettyImagesBank_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청사야경



다음편 벨레데레 궁전에만나요

2017.5.24  15편  헝가리 부다페스트 영웅광장과 다누브강 야경

영웅 광장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광장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높이 36m의 코린트 양식의 기념비가 서 있고 기념비 위에는 민족 수호신인  왕관을 든 천사 가브리엘이 올려져 있다. 


기념비 아래에는 헝가리 민족을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끌었던 아르파드를 비롯한 초기 부족장 7명의 기마상이 서 있다.

 기마상을 가운데에 두고 뒤편 양옆으로는 초대 국왕이었던 이슈트반 1세부터 독립운동가였던 코슈트 러요시까지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인물 14명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광장은 매년 헝가리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며,  5월 1일(노동절)에는 이곳에서부터 에르제베트 광장까지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광장 양옆에는 서양 근대 미술관(Sz?pm?v?szeti M?zeum)과 헝가리 작가들의 현대 작품을 볼 수  있는 현대 미술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서양 근대 미술관에는 엘 그레코, 라파엘로, 루벤스, 고흐, 마네, 모네, 르누아르, 세잔, 로댕 등 유럽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스페인 회화 전시실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페인 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만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하기위해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위인들 14분의 동상들이 건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광장     




현대미술관  서양 근대 미술관에는 엘 그레코, 라파엘로, 루벤스, 고흐, 마네, 모네, 르누아르, 세잔, 로댕 등 유럽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스페인 회화 전시실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페인 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만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광장 중앙에는 높이 36m의 코린트 양식의 기념비가 서 있고 기념비 위에는 민족 수호신인  왕관을 든 천사 가브리엘이 올려져 있다.








광장 양옆에는 서양 근대 미술관(Sz?pm?v?szeti M?zeum)과 헝가리 작가들의 현대 작품을 볼 수  있는 현대 미술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비 아래에는 헝가리 민족을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끌었던 아르파드를 비롯한 초기 부족장 7명의 기마상이 서 있다.

 기마상을 가운데에 두고 뒤편 양옆으로는 초대 국왕이었던 이슈트반 1세부터 독립운동가였던 코슈트 러요시까지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인물 14명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기둥꼭대기에 있는가브리엘대천사상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자주본 맥주캠핑카

10여명정도 올라타 발로 페달을 굴리면서 맥주도 한잔 하면서 시내를

관광합니다.참 멋진 아이디어 이네요.


광장 양옆에는 서양 근대 미술관(Sz?pm?v?szeti M?zeum)과 헝가리 작가들의 현대 작품을 볼 수  있는 현대 미술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하기위해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위인들 14분의 동상들이 건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하기위해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위인들 14분의 동상들이 건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하기위해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위인들 14분의 동상들이 건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광장 양옆에는 서양 근대 미술관(Sz?pm?v?szeti M?zeum)과 헝가리 작가들의 현대 작품을 볼 수  있는 현대 미술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도나우강(다뉴브강) 야간투어

도나우 강(독일어: Donau, 영어: Danube 다뉴브, 라틴어: Danubius, 문화어: 두나이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km의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도나우 강은 독일 남부의 브레게 강과 브리가흐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흘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대평원을 지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이른다. 

여기서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면서 카르파티안 산맥발칸 산맥 사이를  통과하는데 이곳은 철문(the Iron Gate)이라고 불리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하류에 이르면 저지대인 루마니아 남부의 왈라키아 평원을 지나게 된다. 

흑해에 가까워지면서 도나우 강은 도브루자 구릉지대를 만나면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다가 다시 동쪽으로 흘러 비로소 흑해로 유입한다.

강 하구에서는 세 개의 주요 분류로 나뉘면서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그 면적은 약 5,000㎢이다.


다뉴브강 야간투어를 위해 갑니다



세체니다리

도나우강(다뉴브강) 야간투어

도나우 강(독일어: Donau, 영어: Danube 다뉴브, 문화어: 두나이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km의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국회의사당도 보이고

석양에 물든 국회의사당은 완전 동화속의 한장면같고


세체니다리와 석양





세체니다리



우리가 탈 유람선



유람선위에서 인증샷




유람선위에서 인증샷











밤은 점점 깊어가고

부다왕궁의 야경 낮에 본것과는 점점차이가 있고





부다왕궁 야경

부다왕궁 야경 낮에 본 것과 너무 대조적입니다







세체니다리 야경 멋져버러

우리일행들 말고도 유람선을 타는 관광객들이 많이 있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의 멋진 야경 모습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의 멋진 야경 모습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의 멋진 야경 모습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의 멋진 야경 모습














낮에보는 모습과는 또달리 황홀한 야경 모습입니다


헝가리 국회의사당 야경 모습은 너무 멋지네요


세체니다리 야경

세체니다리 야경 너무 아름답다


헝가리 국회의사당 야경










국회의사당 야경 너무멋져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특징은 다른곳과 달리 눈에 거슬리지않는 은은한

조명으로 유명합니다.



국회의사당 아름답지 않으세요




부다왕궁야경


부다왕궁야경

부다왕궁야경

부다왕궁야경










성이슈트반성당

성이슈트반성당

성이슈트반성당



부다왕궁야경

부다왕궁야경

세체니다리야경

세체니다리야경

세체니다리야경


어부요새야경  너무 아름답습니다

어부요새야경  너무 아름답습니다



다음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계속됩니다

2017.5.24  14편 헝가리 부다페스트

어제 자그레브를 여행하고 홀리데이 호텔서 하루 밤을 자고 아침일찍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간다

긴버스 여행이라 4시간 30분이나 걸린다. 헝가리는 건국 1000년을 기념해 건설된 영웅 광장과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막은 장소인 어부의 요새를 보고 건국 1000년을 기념해 로마네스크, 자유기념비

양식으로 건축된 성 이슈트반 성당과  마차시 성당, 국회의사당, 부다왕궁, 겔레르트 언덕을 보고 다뉴브강 야간 크루즈 탑승하고  숙소 카나다 호텔로  간다.


부다페스트     Budapest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서쪽의 부다(Buda)와 북쪽의 오부다(Obuda), 동쪽의 페스트(Pest)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지역은 1873년 통합된 이후 지금까지 함께 공존하며 발전해 왔다. 오늘날의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이자 정치 · 산업 · 상업 · 교통 · 문화의 중심지이며 중부 유럽 최대의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고풍스런 건축물과 문화 유적이 즐비하고, 도나우 강과 온천수가 있어 물의 도시로도 유명하며, ‘동유럽의 파리’, ‘도나우의 진주’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프라하와 더불어 동유럽 여행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며 멋진 야경과 음악이 있는 부다페스트를 만나 보자.


부도 지구와 페슈트 주의 행정중심지이다. 도나우 강 양안에 걸쳐 있다. 헝가리의 정치·행정·산업·상업의 중심지이며 헝가리 인구의 약 1/5이 살고 있다

BC 3000년 이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오늘날 헝가리 인구의 약 1/5이 살고 있다. 1873년 페슈트(도나우 강 좌안)·부도(도나우 강 우안)·오부도(옛 부도, 부도의 북쪽)의 마을들이 합병되면서 부다페스트라 했다. 도시의 규모는 외곽의 여러 공업지대까지 포함할 정도로 커졌다. 페슈트가 평탄하고 단조로운 평야에 있는 반면 부도 구릉의 사면에 세워진 부도는 도나우 강 서안 아래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부다페스트의 인근 지역에서는 농사를 거의 짓지 않으며, 부다페스트 경제에 있어서 공업의 비중은 제조업의 분산으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중공업과 섬유제품·기구·통신장비·전자제품 등의 제조는 여전히 활발하며, 서비스 및 행정 부문도 성장해왔다. 헝가리의 수송 및 통신 서비스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도나우 강 유역에 있는 지방에는 선박 대리점들이 있다. 외국 무역상사도 많이 있으며, 상업은 국제박람회와 전시회를 통해 촉진되고 있다. 도심 재개발과 외곽지대로의 산업체 이주로 인구가 도심에서 외곽지대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헝가리공화국(Republic of Hungary)으로, 1989년 10월 23일 헌법 개정으로 


헝가리인민공화국(Hungarian People’s Republic)에서 바뀐 명칭이다.

면적은 9만 3028㎢, 인구는 989만 7541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부다페스트(Budapest)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마쟈르족으로 96.6%이며, 독일인이 1.6%, 기타 슬로바키아인과 남슬라브인, 루마니아인이


있고, 언어는 민족고유의 마쟈르어를 사용한다. 국민의 67.5%가 가톨릭교를 믿으며, 개신교 20%, 그리스정


교 2.6%이다.


 

왼쪽이 부다지역이고,오른쪽이 페스트지역입니다.

부다페스트는 부다와페스트를 합쳐서 부르는말인데,부다는 언덕이라는 뜻이고,페스트는 평지라는 뜻이라네요.


부다페스트(Budapest)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서쪽의 부다(Buda)와 북쪽의 오부다(Obuda), 동쪽의 페스트(Pest)로 이루어져 있다.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


12세기 헝가리에 기독교를 전파하려다 순교한 이탈리아인 성 겔레르트가 순교한 장소로, 

그의 이름을 따서 겔레르트 언덕이라고 부른다. 


해발 약 235m의 언덕으로,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20세기 초까지 이곳은 매춘가와 도박장이 밀집되어 있던 장소로 나란히 위치한 

부다 왕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부다 지구와 페스트 지구, 도나우 강을 파노라마처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하지만, 관광지와 

조금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밤에 혼자 찾는 일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겔레르트 언덕 

그림같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멋진 풍경입니다. 다뉴브강을 좌우로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는데,가운데 다리는 유명한 세체니다리 같습니다.



12세기 헝가리에 기독교를 전파하려다 순교한 이탈리아인 성 겔레르트가 순교한 장소로, 

그의 이름을 따서 겔레르트 언덕이라고 부른다. 

왼쪽이 부다지역이고,오른쪽이 페스트지역입니다. 부다페스트는 부다와페스트를 합쳐서 부르는말인데, 부다는 언덕이라는 뜻이고,페스트는 평지라는 뜻이라네요.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서쪽의 부다(Buda)와 북쪽의 오부다(Obuda), 

동쪽의 페스트(Pest)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지역은 1873년 통합된 이후 지금까지 함께 공존하며 발전해 왔다. 오늘날의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이자  정치 · 산업 · 상업 · 교통 · 문화의 중심지이며 중부 유럽 최대의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고풍스런 건축물과 문화 유적이 즐비하고, 도나우 강과 온천수가 있어 물의 도시로도 유명하며,  "동유럽의 파리", "도나우의 진주"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프라하와 더불어 동유럽 여행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며 멋진 야경과 음악이 있는 부다페스트를 만나 보자. 

해발 약 235m의 언덕으로,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20세기 초까지 이곳은 매춘가와 도박장이 밀집되어 있던 장소로 나란히 위치한 

부다 왕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겔레르트 언덕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

그림같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멋진 풍경입니다.

다뉴브강을 좌우로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는데,가운데 다리는 유명한 세체니다리 같습니다.

도나우강(다뉴브강)

도나우 강(독일어: Donau, 영어: Danube 다뉴브, 라틴어: Danubius, 문화어: 두나이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km의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도나우 강은 독일 남부의 브레게 강과 브리가흐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흘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대평원을 지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이른다. 

여기서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면서 카르파티안 산맥발칸 산맥 사이를  통과하는데 이곳은 철문(the Iron Gate)이라고 불리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하류에 이르면 저지대인 루마니아 남부의 왈라키아 평원을 지나게 된다.  흑해에 가까워지면서 도나우 강은 도브루자 구릉지대를 만나면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다가 다시 동쪽으로 흘러 비로소 흑해로 유입한다.

강 하구에서는 세 개의 주요 분류로 나뉘면서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그 면적은 약 5,000㎢이다.




도나우강 넘어로 멋진 건축양식을 뽐내고 있는 헝가리 국회의사당

조금있다가 밤에 유람선을 타고,세계3대 야경중하나인 부다페스트 야경을 감상하는데

가장 멋지고 핵심적인 야경포인트가 국회의사당 야경 모습이다. 

유럽에서 2번째로큰 국회의사당이라는데, 낮에 보아도 멋지고 훌륭한 건축물입니다.



역시 축구의 나라


세체니 다리

다리의 이름은 다리 건설의 주요 후원자였던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인 세체니 이슈트반에서 따온 것이다. 

템스 강의 런던다리를 성공적으로 건설한 영국의 설계기사 클라크(William Tierney Clark)와 

건축가 애덤 클라크(Adam Clark)를 초빙해 건설하였다.

어부의 요세

겔레르트언덕에서 어부의 요새로 넘어 옵니다.



어부의 요세 입구입구

거리의 악사는 여기에도


어부의 요새 

19세기 말 지어진 작품으로,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회랑이다.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구가 내려다보이는 곳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7개의 고깔 모양을 한 탑이 있는데  이 탑은 헝가리 땅에 처음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마자르의 7개 부족을 상징한다. 19세기 왕궁을 지키는 시민군이었던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어하면서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이 붙었다. 1층은 무료지만 2층은 티켓을 끊고 입장해야 한다.

어부의 요새 성이스트반 기마상

어부의 요새

어부의 요새 19세기 말 지어진 작품으로,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회랑이다.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구가 내려다보이는 곳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7개의 고깔 모양을 한 탑이 있는데  이 탑은 헝가리 땅에 처음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마자르의 7개 부족을 상징한다.


어부의 요새  19세기 말 지어진 작품으로,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회랑이다.   

어부의 요새 에서 내려다본 다뉴브강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성이스트반 기마상

마차시성당

마챠시 성당(Matthias Templon)   
13 세기에 지어진 고딕식 건물로 역대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마챠시라는 이름은 1470년 마치시 왕의 명령으로 교회 첨탑이 증축 되면서 붙 여진 이름이다.6세기에 부다

터키에 점령 당하면서 모스크로 변했다가 17기에 다시    카톨릭 교회로 돌아왔고,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었다.  

카톨릭 교회로 돌아왔고,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었다.  

그 후에  슈레크의  개축으로  본래의 모습인 고딕양식을  기본으로 한  현재의 건물이 완성되었다.  

  역사적인 이유로 내부는 이슬람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여러가지 원색 타일을사용한 지붕과 내부장식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여름철의 금요일 미사때는 리스트와 코달리의 음악이 연주 되기도 한다.  


어부의 요새 전경

마차시성당

마차시성당의 아름다운 모습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다본 성 이슈반 성당

어부의 요새의 아름다움


어부의 요새의 아름다움


어부의 요새광장

마차시성당

어부 최초의 국왕인 성이스트기마상

어부의요새

도나우 강은 독일 남부의 브레게 강과 브리가흐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흘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대평원을 지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이른다. 

여기서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면서 카르파티안 산맥발칸 산맥 사이를 통과하는데 이곳은 철문(the Iron Gate)이라고 불리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하류에 이르면 저지대인 루마니아 남부의 왈라키아 평원을 지나게 된다. 

흑해에 가까워지면서 도나우 강은 도브루자 구릉지대를 만나면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다가 다시 동쪽으로 흘러 비로소 흑해로 유입한다.강 하구에서는 세 개의 주요 분류로 나뉘면서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그 면적은 약 5,000㎢이다.

도나우강



마차시성당

어부 최초의 국왕인 성이스트기마상

마챠시 성당(Matthias Templon)   
13 세기에 지어진 고딕식 건물로 역대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마챠시라는 이름은 1470년 마치시 왕의 명령으로 교회 첨탑이 증축 되면서 붙 여진 이름이다. 





마챠시 성당(Matthias Templon)   
13 세기에 지어진 고딕식 건물로 역대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마챠시 성당(Matthias Templon)   
13 세기에 지어진 고딕식 건물로 역대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마차시성당 모형도



외국인도 같이 멋진포즈를 잡아주고

역시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젊은 남녀들과함께 인증샷






마차시 성당은 1255부다 성 내에 건축되어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의 장소로 이용되었다이후 1479년 마차시 1세에 의해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는데, 높이 80미터의 첨탑이 이때 증축되었다.



이더위에 시원 한 물줄기가

마챠시 성당(Matthias Templon)   
13 세기에 지어진 고딕식 건물로 역대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마챠시라는 이름은 1470년 마치시 왕의 명령으로 교회 첨탑이 증축 되면서 붙 여진 이름이다. 

6세기에 부다가 터키에 점령 당하면서 모스크로 변했다가 17기에 다시  카톨릭 교회로 돌아왔고,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었다.  

그 후에  슈레크의  개축으로  본래의 모습인 고딕양식을  기본으로 한 현재의 건물이 완성되었다.  역사적인 이유로 내부는 이슬람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여러가지 원색 타일을사용한 지붕과 내부장식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여름철의 금요일 미사때는 리스트와 코달리의 음악이 연주 되기도 한다.  

마챠시 성당(Matthias Templon)   
13 세기에 지어진 고딕식 건물로 역대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야경이 더아름다운 마차시 성당

야경이 더아름다운 마차시 성당

야경이 더아름다운 마차시 성당

마차시성당앞에 세워진 삼위일체상

당시 유럽을 공포에 떨게했던 흑사병이 사라진것을기념하기위해1713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부다왕궁과 대통령궁으로갑니다









좌측이 대통령궁이고 오른쪽이 부다왕궁입니다


부다왕궁


대통령궁


부다왕궁 광장에서 내려다본 다뉴브강 밤에 야간크루즈를 할것입니다

도나우 강(독일어: Donau, 영어: Danube 다뉴브, 라틴어: Danubius, 문화어: 두나이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km의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부다왕궁 광장에서 내려다본 다뉴브강 밤에 야간크루즈를 할것입니다 국회의사당의 우렁찬모습

국회의사당의 우렁찬모습

세체니 다리


세체니 다리(헝가리어: Sz?chenyi L?nch?d)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서쪽 지구 부더와 동쪽 지구 

페슈트 사이에 있는 도나우 강에 놓인 현수교이다.

 이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을 가로질러 놓인 최초의 다리이며, 1849년에 개통되었다.


다리의 이름은 다리 건설의 주요 후원자였던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인 세체니 이슈트반에서 따온 것이다. 

템스 강의 런던다리를 성공적으로 건설한 영국의 설계기사 클라크(William Tierney Clark)와  건축가 애덤 클라크(Adam Clark)를 초빙해 건설하였다.


 건설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경이로운 다리로 여겨졌다.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의 경제와 국민 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장식물들과 구조는 주철로 만들었으며, 잔잔한 기품과 안정적인 모습을 발산하여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업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세체니 다리는 진보, 국민의 각성 그리고 동쪽 지구와 서쪽 지구를 한데 묶어주는 상징물이 되었다.

밤이 되면, 380m의 케이블로 이어진 수 천개의 전등이 도나우 강의 수면을 비춘다.


도나우강(다뉴브강)


세체니 다리(헝가리어: Sz?chenyi L?nch?d)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서쪽 지구 부더와 동쪽 지구 

페슈트 사이에 있는 도나우 강에 놓인 현수교이다.

 이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을 가로질러 놓인 최초의 다리이며, 1849년에 개통되었다.


부다왕궁 광장에서 내려다본 다뉴브강 인증샷



도나우강(다뉴브강)
도나우 강(독일어: Donau, 영어: Danube 다뉴브, 라틴어: Danubius, 문화어: 두나이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km의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도나우 강은 독일 남부의 브레게 강과 브리가흐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흘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대평원을 지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이른다. 

여기서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면서 카르파티안 산맥발칸 산맥 사이를  통과하는데 이곳은 철문(the Iron Gate)이라고 불리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하류에 이르면 저지대인 루마니아 남부의 왈라키아 평원을 지나게 된다. 

흑해에 가까워지면서 도나우 강은 도브루자 구릉지대를  만나면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다가 다시 동쪽으로 흘러 비로소 흑해로 유입한다.

강 하구에서는 세 개의 주요 분류로 나뉘면서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그 면적은 약 5,000㎢이다.



부다왕궁북문


부다왕궁앞에서 인증샷

부다왕궁앞에서 인증샷


대통령궁


헝가리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대통령궁

헝가리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대통령궁

근위병들이 지키고 서있는데 사진을 찍어도 무방하고 모델도 선뜻 되어 줍니다.






왕궁을 뒤로하고 하산중입니다



다뉴브강에서본 부다왕궁

다뉴브강에서본 성이슈반성당

부다왕궁

관광은 마차를 타고 봐야 운치가 좋은데







부다왕궁

부다왕궁

세체니 다리

다리의 이름은 다리 건설의 주요 후원자였던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인 세체니 이슈트반에서 따온 것이다. 

템스 강의 런던다리를 성공적으로 건설한 영국의 설계기사 클라크(William Tierney Clark)와 

건축가 애덤 클라크(Adam Clark)를 초빙해 건설하였다.

 건설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경이로운 다리로 여겨졌다.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의 경제와 국민 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장식물들과 구조는 주철로 만들었으며, 잔잔한 기품과 안정적인 모습을 발산하여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업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세체니 다리는 진보, 국민의 각성 그리고 동쪽 지구와 서쪽 지구를 한데 묶어주는 상징물이 되었다.

밤이 되면, 380m의 케이블로 이어진 수 천개의 전등이 도나우 강의 수면을 비춘다.


국회의사당과 세체니다리

세체니다리

세체니다리

세체니다리

세체니다리의 아름다움

세체니다리의 아름다움

시내 여행

시내를 일주하는 관광버스같은데,시원스럽게 버스지붕이 없어서 한번쯤 타보고 싶은 버스입니다.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 이스트반] 성당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으로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성 이스트반 대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성당으로 1851년부터 50여년간의 공사기간를 거쳐 1905년 완공되었다.                 
특이한 점은 이 성당 중앙 돔의 높이는 96m인데,
이는 헝가리인의 조상인 마자르 족이 
처음으로 이 지역에 자리잡은 해인 896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페스트 지역에 세워져있는 국회의사당의 돔 높이도 마찬가지로 96m이다.    또한 다뉴브 강변의 모든  축물은 도시 미관을 위해 이보다 높이 지을 수 없게 규제되어 있다고 한다.     

 이보다 높이 지을 수 없게 규제되어 있다고 한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내부에는
성 이스트반의 오른쪽 손목이 
다른 유품과 함께 진열되어 있다.       1991년에는 바오로 2세교황이 이곳에 와서 집도했을 만큼 유명한성당이다.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 이스트반] 성당




성당천장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 이스트반] 성당  현재 미사중이라 사진찍기가 민망


성이슈트반대성당 미사중이다

성이슈트반대성당

성이슈트반대성당 미사중이라 사진을



성이슈트반대성당


성당안


성당을 지을때 자료들을 일일히 사진으로 전시한 모습



성당 미사중

성당안에서

성당안에서 유리창


시내 여행


놀이터도 보이고

전차버스도 보이고







한국관 식당에서 점심을



다음편 영웅광장과 다뉴브강야간투어에서 봅니다



2017.5.23  13편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라스토케에서 송어구이로 점심을 먹고 약2시간에 걸쳐 자그레브로 왔다. 자그레브는 네오고딕 양식의 화려한 2개의 첨탑을 볼 수있는 성슈테판성이 이 있고 화려한 칼라의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다운 성마르코교회가 구시가지에는 반젤라치 광장을 볼수 있다.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수도인 자그레브는 1094년에 주교구로서 유럽 지도상에 출현했다. 역사 깊은 두 개의 언덕인 그라덱Gradec 과 캅톨Kaptol 부근에 세워져서 메드베드니차 Medvednica 산 등성에 위치해 있는 자그레브는 메드베드니차와 사바 Sava강 사이의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이 도시는 강 건너편까지 확대되었고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오늘날, 자그레브는 마치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세 개의 도시을 포함하고 있는 듯 하다.


상부 도시(Upper town)는 지난 시절의 평화와 고요가 매혹적인 곳이고 하부 도시 (Lower town)는 유럽의 거대 상업도시에 비길 만큼 활기찬 지역이다. 그리고 신 자그레브(New Zagreb)라고 불리는 지역은 현대 건축과 도시화의 전시장을 연상케 하는 모던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종교적, 비 종교적 기념물과 거리, 광장, 공원들의 디자인에서 역사의 매 시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하고 매력적인, 정신문화와 예술의 도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이다


메드베드니차 산의 경사면과 사바 강의 범람원에 걸쳐 있는 크로아티아 정치·문화의 중심지이다. 자그레브는 19세기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1918년 10월 크로아티아 의회는 이곳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단절하고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달마치야를 독립 국가로 선포했다. 11월에 신생 크로아티아 공화국은 세르비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와 연방국가를 형성했다. 1941년 4월 추축국 지배 하에서 크로아티아 괴뢰정부의 수도가 되었으나 1945년 5월 해방되었다.




자그레브

크로아티아수도인구는 2011년 기준으로 79만 명 가량으로 크로아티아 전체 인구를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본래는 요새 마을인 그라데츠와 성직자 마을인 카프톨로 나뉘어 있었으며 서로 경쟁하는 입장이었으나,  19세기에 새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두 마을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광장과 공공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신도시가 생기는 등  시가지가 사바 범람원까지 확장되면서 경쟁관계가 끝났다. 

이후 크로아티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는  19세기~20세기 초까지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다.
1918년 10월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했으나 11월에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함께 연방국가를 결성하게 
되면서 수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잠시 괴뢰 정부의 수도가 되었다가, 티토에 의해 해방된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치르고 크로아티아가 분리, 독립하면서 다시 수도가 된다.
유명한 관광지로는 반 옐라치치 광장과 자그레브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성 스테판 성당을 비롯한 여러 성당들, 
자그레브 국립극장과 자그레브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트칼치체바 거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상당수 작품들이 위작 의심을 받고 있긴 하지만, 미마라 미술관도 대표적 관광지로 뽑힌다. 

백건우 - 윤정희 부부가 이 동네에서 납치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미국 영사관으로 도망쳐 화를 모면한 사건이 있었다.


메드베드니차 산의 경사면과 사바 강의 범람원에 걸쳐 있는 크로아티아 정치·문화의 중심지이다. 자그레브는 19세기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수도인 자그레브는 1094년에 주교구로서 유럽 지도상에 출현했다.

 역사 깊은 두 개의 언덕인 그라덱Gradec 과 캅톨Kaptol 부근에 세워져서 메드베드니차 Medvednica 산 등성에  위치해 있는 자그레브는 메드베드니차와 사바 Sava강 사이의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이 도시는 강 건너편까지 확대되었고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오늘날, 자그레브는 마치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세 개의 도시을 포함하고 있는 듯 하다. 

상부 도시(Upper town)는 지난 시절의 평화와 고요가 매혹적인 곳이고 하부 도시 (Lower town)는  유럽의 거대 상업도시에 비길 만큼 활기찬 지역이다. 

그리고 신 자그레브(New Zagreb)라고 불리는 지역은 현대 건축과 도시화의  전시장을 연상케 하는 모던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종교적, 비 종교적 기념물과 거리, 광장, 공원들의 디자인에서 역사의 매 시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하고 매력적인, 정신문화와 예술의 도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이다.


현지학습나온 초등학생들과 기념촬영

현지학습나온 초등학생들과 기념촬영 한명이 시작하니 끝이 안보이네 편집시 일부 삭제

















메드베드니차(자그레바치카) 산의 경사면과 사바 강의 범람원에 걸쳐 있다. 이 도시에는 탁 트인 광장과 공원이 많다


19세기 크로아티아의 국가 재건 당시 범유고슬라비아 운동 및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오늘날 이 도시는 서부·중부 유럽에서 아드리아 해와 발칸 반도로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망의 주요연계지이며, 플레소 공항의 항공편을 통해 유럽 각지로 연결되어 있다






자그레브 대성당(성 스테판대성당)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대성당 

자그레브 대성당은 1093년 처음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1242년 타타르족의 침입 때  방화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재건축되었지만, 1880년 지진으로 인해 성당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188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다.

 현재도 성당 외부 일부가 공사 중이다. 성당은 전반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높이 솟아 있는 108m의 쌍둥이 첨탑은 후반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처음엔 똑같이 만들어졌던 것이 손상되면서  그 높이가 달라졌다고 한다.

 내부는 5,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인데,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제단들이 있고,  보물급 유물들도 10개 이상이 이곳에 있다. 또한 13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벽에 새겨진 상형 문자도 눈여 겨봐야 한다  성당 앞 광장에는 성모상과 수호성인의 화려한 조각상이 있다.


성 스테파노 대성당의 아름다운 모습

 성당 앞 광장에는 성모상과 수호성인의 화려한 조각상이 있다.


자그레브 대성당 (성 스테판 성당  St. Stephen )      


구시가를 바라보고 광장의 오른쪽 길을 올라가면 자그레브 대성당인 성 스테판(St Stephen) 성당이 있다. 1093년- 1102년 동안 건설되었는데 성당의 높이가 77m, 북쪽탑이 105m, 남쪽탑이 104m로 자그레브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건축외관은 로마네스크의 과도기적 양식인데, 수차례 외세 침략과 화재로 손상을 입어 현재까지도 공사중이다. 성당 앞에는 성 마리아의 동상과 분수대가 있다. 성모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모신 성당 답게 성당 곳곳에는 성모 마리아에 관한 예술품이 많다. 이 성당 안에선 13세기의 프레스코화, 르네상스시대의 교회 의자,대리석 계단, 바로크풍의 설교단 등이 유명하다







자그레브 대성당 옆면

성당내부 성모자상    

십자고상

십자가 고난상

십자가 고난상

십자가 고난상


성모승천화

제대

수호천사상 

정면 위 조각 

자그레브 대성당 광장 성모 마리아상과 수호천사상

앞면 조각 


앞면 조각 

성당내부

스테피나치 대주교의 밀랍인형


성당내부 안쪽 뒤편에 1961년에 순교한 스테피나치 대주교의 밀랍인형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스테파니치 대주교는 구 유고슬라비아의 공산정권에 앞장서 대항하던 분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승모승천화





자그레브대성당을 지나서 골목길로 들어서면,또하나의 멋진 성당인 성마르코성당이 나오고,

5분정도 가면 자그레브의 중심인 반 엘라치치광장이 나옵니다.



도시 골목 어디가나 참 아릅답습니다. 바닥이 전부 돌로 되어 있어서 오래 걸으면,다리가 조금 피곤한것만 빼면 도로나 건물,색상들이 참 편하고 아름답게 지어졌다는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성 마르코교회

성 마르코교회 화려한칼라의 모자이크지붕이 아름다운교회

자그레브대성당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성 마르코 성당(Crkva Sv. Marka)  스톤게이트에서 자그레브 성 마르코 성당까지는 도보로 5분 정도 소요된다.


 그레브대성당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성 마르코 성당(Crkva Sv. Marka)  스톤게이트에서 자그레브 성 마르코 성당까지는 도보로 5분 정도 소요된다.



성 마르코교회  화려한칼라의 모자이크지붕이 아름다운교회





성 마르코교회

성 마르코교회

성 마르코교회   화려한칼라의 모자이크지붕이 아름다운교회



성마르코 광장앞으로 군대 열병식같은 행렬이 진행됩니다. 나중에 가이드님 설명으로는 군인들이 아니라,우리나라로  치면 소방관 이라고 하네요.




군인들 못지않게 질서정연하고 팀웩들이 잘이루어져 있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합니다.



자그레브 대통령궁












포토죤 에서 성슈테판성당을 배경으로 



낙서의 그림도 다 뜻이 있어 비행선을 발명한 사람도 크로아티아인

만연필을 발명한 사람도 크로티아인


어딜가나 핸드폰 무대준비도 않고 핸드폰에 빠져서

자그레브의 중심인 반 엘라치치 광장으로 왔습니다.


반젤라치크 광장 에서 시원한 커피한잔

반젤라치크 광장

반젤라치크 광장

반젤라치크 광장

반젤라치크 광장  리허설이 한창인 무대


반젤라치크 광장


자그레브 중심의 반 옐라치치 광장.

이 광장은 자그레브 여행의 시작이자 끝인 장소로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광장 주변은 현대적이고 고풍적인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트램을 제외하고는 차가 다닐 수 없는 보행자 전용 광장이다.

 이 광장은 17세기 오스트로-헝가리 스타일로 건설되었으며, 중앙에는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친 전쟁 영웅 반옐라치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주의에 의해 반옐라치치 동상이 제거되고, 이 광장의 이름도 "공화국의 광장"으로 바뀌었다가,  1991년 유고슬로비아로부터 독립한 후 다시 예전의 이름을 되찾고 동상도 제자리에 돌아왔다.  동상 근처에는 만두세바크(Mandu?evac) 분수대가 있다.


옐라치치 광장에는 오스만튀르크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옐라치치 장군의 동상이 있다

반 옐라치치광장의 중심에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광장의 이순신장군 같은 분이라고 할까요..

자그레브의 상징과도 같은 파란색 트램  환경오염에도 신경을 많이쓰는 크로아티아는 트램을 적극 활용하고 이곳에는

차량을 일체 금한다고 합니다.



반젤라치크 광장에서 스틱으로 경기를


군인들도 하기식 끝난뒤 집으로

거리의 악사도 열심인데 관중이 없어 썰릉


반젤라치크 광장 전망대 위에서 찍은모습





반젤라치크 광장

반젤라치크 광장

반젤라치크 광장

반젤라치크 광장

반젤라치크 광장

유럽에서는 거리의 예술가 엄청 많네

힘들어 잠시 쉬는 시간

자그레브 거리

크로아티아는 인구가 1,300만명으로 자그레브 인구는 80만,국토길이가 1,200KM나 되는 기다란 나라입니다.



잠시 커피도 한잔 마시며 자유시간




국기 하강식

이원정가이드의 열정어린 설명

시내광장에서 포즈없이 인증샷



우와 피자 봐라 도대체 몇명이나 먹을 까



호텔 숙소 에서 아침 산책하다가 연못을 발견 낚시하는 노인네와 담소를

고기는 잡지 못하고 열심인 노인네 맘의 여유와 편안해 보인다



자그레브가면서 점심먹었던 식당


식당옆 주택들이 조용하고 아름답기만하다



다음편을 기대하세요 헝가리부다페스트로갑니다


2017.5.23  12편  크로아티아 라스토케

오전 플리트비체를 관광하고 라스토케로 향한다 33KM 버스로 약 30분정도 거리다

라스토케를 지금부터 여행하여 본다


라스토케는 꽃보다누나를 본 사람이면 다 알테지만,

덧붙여 설명하자면 플리트비체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아마 꽃누나가 아니었으면 한국인들은 결코 몰랐을 마을이다.


마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을, 인구 65명(위키피디아 출처) 의 마을.

지도에도 보이듯이 작은 계곡을 끼고 있기 때문에 '물의 요정 마을' 이라고도 불린다.



페트로 라스토케(Petro Rastoke

슬루니(Slunj)지방의 라스토케는 오늘날은 몇 명이 사는지 자료를 못 찾았지만  위키피디어에 의하면

2001년 기준으로 65명이고 2011년에는 5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주 작은 마을이다



어딜가나 인증샷





다리에 낙서가


왼쪽은 레스토랑

잘 보존된 방앗간이 있고 그림같이 예쁜 작은 폭포들로 유명한데, 슬루니차 강(Slunjica river)강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든 다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흘러내려오는  코라나(Korana)강으로 합류한다. 이 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쏟아지는 폭포를 보고 누군가 ‘천사의 머릿결을 가진 마을’이라  했다고 하는데,  사실 라스토케는  플리트비체 공원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잠시 들러 가는 마을에 불과했다.

더구나 크로아티아를 잘 모르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2013년 11월 이곳을 찾아온「꽃보다 누나」에 의해서  오늘날은 한국여행사의 필수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그 방송을 보았던  리도 마찬가지다.

맑은 강물은 마을 끝을 감아 돌면서 바로 우리 앞으로 흘러 내려오고 있다.  코라나(Korana)강물이다.

앞에 관광객 출입금지 마을에서 시끌러워서 인지 돈을주고 입장했는데도 못가게 막고 있다.


방아간에서 흘러나오는 물


방아간집

관광객을 보여주기 위한 방안간 여행객들이 있을때만 방아를 돌린다


플리트비체 호수를 거쳐 흘러온 물인데 이 작은 마을에 이르러 슬루니차 강물까지 품은 것이다.







그냥지나가면서 보는 데 입장료를 내는것이 아깝다



마을이 물과 숲속에 파묻혀

오히러 집라인을 타보는것도 좋은데

점심 송어집

사이 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곳곳에 나무로 만든 다리들이 놓여 있다.

지붕들이 꽤 운치가 있어 보이는데, 그 사이로 맑은 강물이 흐르고  한 편에서는 송어들이 모여 헤엄을 치고 있다.

중간에 낡고 작은 건물이 보이고 그곳에 PETRO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라스토케 레스토랑



또 주택들 사이로도강물이 작은 폭포를 만들며 시냇물 처럼 흐르고 있다.


방아간집 할머니가 관광객이 오면 방아를 돌린다. 이것보는데 입장료를 내는것이다

다리의 낙서판

 마치 마을이 물위에 떠있는 것만 같다



마을 전체가 마치 계단식으로 되어있어서 이런 작은 폭포들을 많이 볼수 있다.

중간에 보이는 집이 방아갓집









레스토랑


혹시 그 누군가 이를 보고 천사의 머릿결이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사이사이로 쉼 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하얀 물방울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시원스럽다


낙서를보니 궁금하여 A POIL MARIANNE와 HA KUNA MATATA는  궁금해서 구글에 검색해 보니

A POIL MARIANNE는  프랑스어로 ‘벌거벗은 마리안느’라는 뜻이고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잘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두 글 사이에 하트 표시가 있는 것을 보면 ‘벌거벗은 마리안느’가 어떤 대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랑한다. 모두 잘될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간 높은 교각에 글을 써 놓은 것을 보면 정성만큼은 대단하다.      아치 다리 아래로는  슬루니차 강의  맑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데  그 다리 아래에도 마을을 잇는   또 하나의 다리가 있다.





지도를 보니 꽃 누나들이 다니던 주택가 등  아직도 볼 곳이 무척 많다


완전 동화속 의 집들이 수중에 지운집이 운치는 있다


작은 플리트 비체같다






라스토케 마을을 뒤로하고 우리는 특식 송어구이 점심 먹으러 간다

다음편 자그레브를 기대하세요

2017.5.23  11편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트로기르를 여행하고 플리트비체로이동한다  크로아티아 최대의 자연관광지인플리트비체까지는 2시간30분정도 소요되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며 16개의 호수와 계곡 수많은 폭포의 향연이 아름다운 플리트비체를 지금부터 여행하여본다


플리트비체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 공원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 공원인 플리트비체 국립 호수 공원은 공원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는 크로아티아의 인기 명소이다. 카르스트 산악 지대의 울창한 숲 속에 석회암 절벽과 16개의 아름다운 호수, 그리고 크고 작은 폭포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 공원은 크로아티아의 국립 공원들 중에서도 단연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요정이 살고 있을 듯한 이곳, 지상 낙원이란 말을 실감케 하는 플리트비체의 숨 막히는 절경에 빠져 보자.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자그렙(Zagreb)과 자다르(Zadar), 두 도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국립공원이다. 약 19.5Ha에 해당하는 면적의 숲으로 이루어진 이 국립공원은 곳곳에 16개의 청록색 호수가 크고 작은 폭포로 연결되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약 18km 길이의 인도교는 개울 위를 지나기도 하고, 개울이 인도교 위를 지나 얕게 흐르기도 하여 매우 상쾌한 산책로를 형성하고 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보존을 위해 내부의 모든 인도교, 쓰레기통, 안내표지판 등을 나무로 만들었고, 수영, 취사, 채집, 낚시가 금지되어 있으며 애완동물의 출입도 막고 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그 크기가 매우 커 구석구석을 자세히 보려면 3일 정도가 소요되는 공원이다. 하지만 근처의 대도시 자다르나 자그렙에서 하룻동안 들러서 보아도 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봄철에는 풍부한 수량의 폭포의 웅장함을 볼 수 있고, 여름철에는 녹음이 우거진 울창한 숲 속의 신비로운 호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가을철에는 사람이 적어 고요한 분위기와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사시사철 매력 있는 곳이다.


이 국립공원의 호수는 상류부분과 하류부분으로 나뉜다. 상류부분에 위치한 백운암 계곡의 호수들의 신비로운 색과 울창한 숲의 조화가 가장 신비로운 장관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류부분에 위치한 호수와 계곡들은 그 크기가 조금 더 작고 얕으며, 나무도 작아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대부분의 물은 Bijela와 Crna (하얀과 검다는 뜻을 갖는다.) 강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며, 모든 물줄기는 Sastavici 폭포 근처에 있는 Korana 강으로 흘러 나간다.


국립공원 내부의 방대한 양의 물은 물에 포함된 광물, 무기물과 유기물의 종류, 양에 따라 하늘색, 밝은 초록색, 청록색, 진한 파란색, 또는 회색을 띠기도 한다. 물의 색은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비가 오면 땅의 흙이 일어나 탁한 색을 띠기도 하고, 맑은 날에는 햇살에 의해 반짝거리고 투명한 물빛이 연출되기도 한다.









친절하게도 가는 길목에  하류에 있는 4개의 호수 조감도가 세워져 있다.

밀라노바츠 호수(Milanovac jezero)부터

차례로 가바노바츠 호수(Gavanovac jezero),

칼루데로바츠 호수(Kaludjerovac jezero),

그리고 0.3헥타르(907.5평)에 불과한

노바코비차 브로드 호수(Novakovića Brod jezero)가 그려져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1979년도






칼루데로바츠 호수와   S자형 곡선 데크로드가 있는 가바노바츠 호수가 어울려져  환상적인 옥빛 향연을 펼치는  플리트비체 호수 최고의 전경을 찍을 수 있는  베스트 뷰 포인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뷰 포인트에 이르러  나 역시 환상적인 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데  내 실력으로는 실제 모습을 그대로 담을 수가 없다.   정말 경이롭다.




발 아래로 가바노바츠 호수(Gavanovac jezero)와 바로 위에 있는 밀라노바츠 호수(Milanovac jezero)가 펼쳐진다. 옥빛의 호수다.

라노바츠 호수와 상류 호수인 코쟈크 호수일부다.

물의 색갈이 에메랄드빛을 띄서 너무 아름답다






올라가는데 커피숍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얕은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코쟈크 호수는 에메랄드빛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오전 햇빛을 받아 약간 청색을 띠고 있다. 송어가 제법크다 완전 물반고기반이다

코쟈크 호수(Kozjak jezero)

쟈크 호수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16개 호수 중에서  면적이 81.5헥타르로 가장 넓고,

  47m로 가장 깊은 호수다.

상류 호수에 속해있지만 고도 535m로  상류호수 중에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류호수와 연결되는 호수이기에  교통의 중심역할을 한다.

그와 같은 이유로 바로 이 호수에  P1, P2, P3 등 3개의 선착장(부두)이 있으며  이 선착장 사이를 환경 친화적인 전기 배가   관광객들의 이동을 편리하게 해주기 위해 운행 하고 있다.


호수가 넓어서인지 반대편에서 배가 지나가는데도 매우 잔잔하다

호수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코쟈크 호수

코쟈크 호수





중요한 포인트는 한개도 빠지지 않고 촬영을


호수를 보니 수많은 송어 때가 에메랄드 빛 호수에서 평화롭게 헤엄을 치고 있다.


밀라노바츠 호수(Milanovac jezero)


이 호수 앞에서 먼저 반기는 것은  라노바츠키 폭포(MILANOVACKI SLAP)다.



10m의 낮은 폭포이지만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폭포다.


무 사이로 폭포를 카메라에 담고 계속 내려간다.  잔잔한 밀라노바츠 호수 옆을 지나는 길은 흙길이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을 더욱 운치 있게 하는 유명한 데크 로드다.

데크로드를 지나는 여행객들이 끝이 없다

가바노바츠 호수(Gavanovac jezero)

밀카 테르니나 폭포(Milka Trnina Cascades)

밀카 테르니나 폭포(Milka Trnina Cascades)


크로아티아 출신의 소프라노 가수  ‘밀카 테르리나(Milka Ternina) 기념하는 명판이다.
그곳에는 『이 폭포들은 1898년 세계적인 크로아티아의  오페라 가수인 '밀카 테르니나(Milka Ternina: 1863~1941)'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라고  영어와 현지어로 적혀 있다.
  밀카 테르니나는 플리트 비체 국립공원의 자연보호를 위해  노력한 가수였다고 하는데


그녀는 런던에서 초연된 '토스카'의 타이틀 롤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며   명지휘자 '토스카니니'가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앞에 있는 작은 폭포들이 밀카 테르니나 폭포(Milka Trnina Cascades)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계속 내려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동굴이 보인다  일행들은 그냥 지나쳐 가버리고 나는 동굴로 향해서 올라가보니 예쁜아가씨 둘이



아가씨들이 동굴 입구를 배경으로 인증샷 해준다

동굴에서 내려다 본 풍경

밑에서 쳐다본 동굴 나무사이로

칼루데로바츠 호수(Kaludjerovac jezero)

동굴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플리츠비체의 핵심 사스타비츠(Sastavici)폭포가 나온다


호수 위로 나무로 만든 길이 다리처럼 놓여 있다.

벨리키 폭포로 가는 길목에서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막내로 가장 낮은 호수인

 노바코비차 브로드 호수(Novakovića Brod jezero)가 있다.




벨리키 폭포로 가는 길목에서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막내로 가장 낮은 호수인

 노바코비차 브로드 호수(Novakovića Brod jezero)가 있다.

면적은 0.3헥타르(907.5평)에 불과하고 최대깊이가 4.5m에 고도가 504m다.



사스타비츠(Sastavici)폭포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폭포인 벨리키 폭포가

벨리키 폭포(Veliki slap)

벨리키 폭포(Veliki slap)에서  Veliki는 크로아티어로 크다는 의미이고 slap은 폭포라는 뜻이다.

즉, 이름 자체가 큰 폭포다.



벨리키 폭포(Veliki slap)


벨리키 폭포(Veliki slap)

벨리키 폭포(Veliki slap)

높이가 78m로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큰 폭포이자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상징적 존재다.

벨리키 폭포 너머로 숲속을 굽이굽이 흘러내려오던  플리트비체 강(Plitvica River)이 이곳에 이르러

78m 아래로 급전직하로 떨어지며   큰 폭포가 된 것이다.

벨리키 폭포는 과연 유명세답게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각자 포즈를 잡으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나도 같은 모습을 몇 번이고 촬영하며  인증 사진을 찍게 한다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ST 1을 향하여 걷기 시작한다.  칼루데로바츠 호수의 물빛이 드디어 에메랄드 그린으로 다가온다. 정말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옥빛 호수를 뒤로하고 ST 1으로 가는 길은   높은 산을 타고 올라가는 길이다.

비로소 난코스를  만난 셈인데 점점 오르면서 되돌아보는 경치가 올라 갈수록 압권이다.







나이야가라 폭포 등에 비하면 사실 대단한 것은 없지만  이곳은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이다.

98개의 크고 작은 폭포 중에 으뜸이라는 사실 하나로   관광객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벨리키 폭포(Veliki slap)


나도 같은 모습을 몇 번이고 촬영하며  인증 사진을 찍게 한다


사스타비츠(Sastavici)폭포  사스타비츠(Sastavici)는 크로아티아어로 만남을 의미한다.

  16개의 호수로 이어져 내려온 물이 이 폭포에 이르러 72m아래 계곡으로  뛰어내리면서 장관을 이룬다.

사스타비츠(Sastavici)폭포


특히 상단의 벨리키 폭포와 하단의 사스타비츠폭포가 한 눈에 보이면서 끊임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


  

사스타비츠(Sastavici)폭포  

좀 더 오르면 옥빛의 노바코비차 브로드 호수가 더해져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룬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최고의 뷰 포인트

더 오르면 옥빛의 노바코비차 브로드 호수가 더해져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룬다.

특히 상단의 벨리키 폭포와 하단의 사스타비츠폭포가 한 눈에 보이면서 끊임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

방금 전에 지나왔던 호수들을 높은 산위에서 역순으로 차례차례 감상하며 가는 길이자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절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데크로드로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지나갔는지

산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순간순간 나타나는 호수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가니 전혀 힘들지 않다.


벨리키 프르스타바츠 폭포(Veliki Prstavac Slap)

벨리키 프르스타바츠 폭포(Veliki Prstavac Slap)

벨리키 프르스타바츠 폭포(Veliki Prstavac Slap)

벨리키 프르스타바츠 폭포는 높이가 28m에 달해,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상류에서는 가장 큰 폭포다.


그래서 이 폭포의 이름에도 하류에서 만난 벨리키 폭포(Veliki slap)처럼 크다는 의미의  벨리키(Veliki)가 붙어있다  높은 절벽을 타고 수많은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시원하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갈로바츠키 부크 폭포( Galovački buk)



하얀 포말을 그리며 역시 세차게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말리 프르스타바츠 폭포 Mali Prstavac Slap

말리 프르스타바츠 폭포는  줄여서 말리 폭포라고도 하는데벨리키 폭포보다는 조금 작지만 그래도 높이가 18m에 달한다.



사스타비츠(Sastavici)폭포




사스타비츠(Sastavici)폭포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칼루데로바츠 호수와   S자형 곡선 데크로드가 있는 가바노바츠 호수가 어울려져  환상적인 옥빛 향연을 펼치는  플리트비체






플리트비체 호수는 먼 곳에서 볼 때 에메랄드 그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옥빛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호수들이  초록의 산과 어울려 가히 환상적이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최고의 뷰 포인트

F코스와 H코스에서 마지막 부분인 ST 1을 향해 가는  좁은 숲길은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다.

방금 전에 지나왔던 호수들을  높은 산위에서 역순으로 차례차례 감상하며 가는 길이자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절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기에 등장하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칼루데로바츠 호수와   S자형 곡선 데크로드가 있는 가바노바츠 호수가 어울려져  환상적인 옥빛 향연을 펼치는  플리트비체 호수 최고의 전경을 찍을 수 있는  베스트 뷰 포인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스타비츠(Sastavici)폭포

사스타비츠(Sastavici)폭포 사스타비츠(Sastavici)는 크로아티아어로만남을 의미한다.

16개의 호수로 이어져 내려온 물이이 폭포에 이르러 72m아래 계곡으로 뛰어내리면서 장관을 이룬다.







 다음편에는 라스토케로갑니다 기대해주세요



2017.5.23  10편  크로아티아 트로기르

두브로브니크를 여행후 트로기르로 가는 데 3시간 30분이나 걸렸다.

트로기르는 대표하는 건물이 성로랜스성당과 1997년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7년)

으로 지정되었던 트로기르 구시가지를 여행해본다


트로기르 (크로아티아)

동의어 스플리트 근교 여행 다른 표기 언어 Trogir

트로기르는 기원전 3세기경 비스(Vis) 섬에 살고 있던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발견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특이하게 바다에 둘러싸인 섬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는 것이 용이한 곳이었다. 트로기르 구시가는 특별한 랜드마크는 없지만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골목을 여유롭게 산책하듯 즐기는 것이 좋다. 골목마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과 예쁜 레스토랑들이 자리하고 있어 구시가를 산책하며 토로기르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


아드리아 해의 섬에 있으며, 다리를 통해 본토와 치오보 섬과 연결되어 있다. BC 385년경 시라쿠사 그리스인들의 식민지가 되어 트라구리온으로 불렸으며, 6세기에는 동로마(비잔틴) 제국에 합병되었다. 이후 1,400년 동안 크로아티아인·노르만인·베네치아인·보스니아인 등에게 지배당하다가 1920년 신생국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다.

베네치아 지배시절에 세워진 카메를렝고 성과 성마르쿠스 탑이 남아 있으며,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한 성 라우렌티우스 대성당은 달마치야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대규모 조선소가 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트로기르로 가는길

천해의 자연환경으로 농사를 짓는 농촌모습

암벽 산에는 나무한그루도 없고

드디어 트로기르 입성

해는 저물고 저멀리 바라보는 석양에 경치는 아름답다

호텔앞 바닷가 어부는 고기잡이 준비에 한창이고

호텔로비의 트로기르 사진


호텔로비의 트로기르 사진

호텔로비의 트로기르 사진

새벽 5시 트로기르 바닷가

호텔 정원에 핀꽃 양귀비

호텔옆의 주택 아름답기만 하다

새벽 어부 들은 고기잡이가 한창이다

인구는 1600명이며 스플릿에서 서쪽으로 27Km 떨어진 안에 자리 잡은 작은 항구 도시이고 시오보(Ciovo) 내륙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이다.

아드리아 해변의 주택가.


치오보 섬의 우리가 묵었던 호텔




트로기르 구시가지로 가려면 작은 돌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면 마을 전체가 모두 중세의 집, 유네스코 문화유산입니다 . 징기스칸이 이곳을 건너지 못해 유럽진출이 끝났다고 전해진다. 아드리아 해안에 연한 이 도시는 무려 2,300년 전 BC 3세기에 그리스 사람들이 건설한 전진 기지였습니다.


트로기르의 수호성인 성 이반 오르사니 상(像)이 굽어보고 있는 성의 북문

도시의 좁은 공간에 많은 문화유산을 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자 아드리아 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가 바로 트로기르(Trogiro)이다. 

카메르렌고(Kamerlengo) 요새 북문 이 요새의 이름은 당시 이곳 총 책임자였던  행정장관 카메르리우스의 이름을 사용했다.  트로기르 서남쪽 끝에 위치한 카메르렌고 요새는  한때 도시 성벽의 일부이었다. 


트로기르는 아드리아해를 끼고 크로아티아 내륙과 시오보섬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섬으로
토르기르는 섬 전체가 1997년 유네스코에 등록 된 세계문화유산이다.

거장 라도반의 "아담과이브"가 로마네스크 현관을 장식하고 있는 성 로베르 성당.

성 로렌스 성당」은 13~15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정교한 건물에 속한다 

1476년에 건설된 성 세바스티안교회 시계탑

이 작은 섬에는 16개의 교회, 37개의 레스토랑, 50여 개의 카페나 바(bar)가 있다고 한다.

거장 라도반의 "아담과 이브"가 로마네스크 현관을 장식하고 있는 '성 로렌스성당'   

구시청사를 마주하고 높이 바라보이는성 로브르 성당은  13~15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정교한 건물에 속한다.        

 

성 로브르 성당 「라도반 정문」 그 중에서 가장 정교한 작품은 거장 라도반(Radovan)과

그의 동료들이 같이 만든 「라도반 정문」이다.  조각이 특이해서 좀처럼 보기 드문 것이다.

 양쪽에 베니스를 상징하는 사자가 조각되어 있고  사자 위에는 아담 이브 벌거벗고 서 있는 조각이 있었는데이것은 달마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누드 조각이란다. 

트로기르 성 로렌스 대성당의 출입구 왼편 문, 사자위에 이브가 벌거벗고 서있습니다

' 트로기르 성 로렌스 대성당의 출입구 오른쪽 문, 사자위에 아담이 벌거벗고 서있습니다

성당 입구에는 출입구 양쪽으로 베니스를 상징하는 사자 위에 아담과 이브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예술 거장 라도반 Radovan 이 제자들과 함께 1240년에 완성한 조각 작품입니다


1240년에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이 성당 정문은 건성으로만 지나치지 않는다면 정말 엄청난 문입니다

47m 높이의 성 로렌스 성당의 옆 모습을 보면 사각형 모양의 3층탑 위에
붉은 지붕을 가진 종탑의 1층은 초기 고딕양식이고,

2층은 아름다운 베네치아식 고딕양식, 3층은 17세기 초 후기 르네상스 양식이며,

종탑 꼭대기에는 4대 복음서 저자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성인상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성 니콜라스 성당과 베네딕트 수녀원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고' 서 있는 모습이라니,
이브의 몸은 예술적 미화보다는 현실적이고 인체 육감적 에로스가 넘칩니다.

이 특별한 작품은 르네상스 명장 미켈란젤로보다 무려 300년이나 앞서 조각된 작품.



1476년에 건설된 성 세바스티안교회 시계탑은 베네치아 뒤를 이어 지배했던 오스트리아가 만들어 세운 것입니다.시계탑 벽 윗부분 조각은 성경책을 들고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아랫부분의 조각은 선원들의 수호성인인 성 세바스티안





15세기가 되어 베니스가 이곳을 차지할 때 파괴되었던 도시를 다시 지었다.

대성당이 있는 섬의 동쪽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커지면서 점차 서쪽에도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19세기가 되면서 도시 방어벽이 무너졌고 트로기르는 달마치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중심지가 되었다. 

  

 1997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록된 이곳은 감자 모양의 섬에

13~15세기 도시를 감싸는 성벽 안에서 발전한 곳이다.

 

수 백년의 세월을 이긴 돌들이 반들반들하다. 

남쪽 문(Porta Citivas)에 도착했습니다

북문 성벽으로 입장하여 남문쪽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다와 작은 요트가 이곳이 유명한 "아드리아 해(海)"임을 알린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 어디든 틈만 있으면 꽃을 정성스럽게 키우고 있어 좁은 골목을 아름다운 길로 만들고 있다.

시간의 미로를 걷는 기분입니다.

이국적이고 낯선 마을의 풍광이 정겹기만 한마을

골목을 걷습니다. 트로기르 마을 전체가 중세 미로의 좁은 길입니다.



구시청사가 있는 광장 카메르렌고 요새로부터 안쪽으로 들어가니 구시청사가 있는 광장이 나왔다.

20년 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으며 지금은 야외극장과 내부에 무대가 설치되어

각종 이벤트를 할 수 있는 미디어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트로기르는처음에는 베니스인들이 13~15세기에 만든 것으로 해군기지였다.

  높은 탑은 14세기에 있었던 것을 크게 만든 것이란다. 요새의 현재모습은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 남문

남문쪽은 아드리아해로 나가는 항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치오보 섬으로 가는 다리

이 섬이 지금처럼 아름다운 중세 마을로 다시 태어난 것은 1420년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에 요새로 건축된 카메를렝고 요새는 오늘날까지 남아 트로기르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19세기가 되면서 도시방어벽이 무너졌고 트로기르는 달마치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은 걸어서 15분 내에 섬을 돌 수 있을 만큼 좁은 공간에 만들어진 문화유산 집결지였다.


길 끝에 베네치아 공화국이 만든 카에를렌고 요새가 보입니다

이 섬에 걸어 들어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카메르렌고(Kamerlengo)요새」이었다.

 이 요새의 이름은 당시 이곳 총 책임자였던 행정장관 카메르리우스의 이름을 사용했다.

 트로기르 서남쪽 끝에 위치한 카메르렌고 요새는 한때 도시성벽의 일부이었다.

 처음에는 베니스 인들이 13~15세기에 만든 것으로 해군기지였다

 

느긋하게 걸으면 모든 것이 다 마음속에 안기는 그런 곳입니다

좁은 골목골목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름다운 가계도 있고

창에는 덧문을 붙여 비바람을 막고 있다.

 다리 양 켠에 작은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다.

왼쪽이 '토르기르'

 

성 니콜라스 성당과 베네딕트 수녀원

트로기르는 1420~1797년까지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아 "발칸반도의 작은 베니스"로 불리기도 하고

트로기르의 수호성인 성 이반 오르사니 상(像)이 굽어보고 있는 성의 북문

트로기르 초등학교 건물


성 니콜라스 성당과 베네딕트 수녀원

이 작은 섬에는 1600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데 16개의 교회,

37개의 레스토랑, 50여 개의 카페나 바(bar)가 있다고 한다

창문하나하나에도 시민들의 사랑과 정성이

골목길도 향기롭고 정겨웁게 장식을하고

해가길어 밤시간에 햇볕을가리는 창문

좁은 골목골목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수백년을 이어진 돌 아스팔트

돌들이 딸고 달아

돌계단도 정성이 자연스럽게 담겨있다

혼자 쓸쓸히 낭만을 즐기다 카메라를 보자 반갑게

다시 북문으로 나간다

트로기로 시장에는 모든 과일과 식품 꽃들이 즐비합니다 

우리도 체리를 2kg 를 6유로에 사서 4명이 이틀통안 실컷 먹었습니다



다음은 트로기르에서 플리트비체로 갑니다 기대하여주세요



2017.5.22  9편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릴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크로아티아 여행의 핵심 포인트이다. 중세 시대에는 아드리아 해에서 중요한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성장했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다 1358년 라구사(Lagusa)라는 도시 국가로 탈바꿈한다. 라구사 공화국은 인근의 강대국 사이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적절한 균형을 지키는 외교 정책을 통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1667년 대지진으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고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1808년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난 후에는 크로아티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를 침공한 세르비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포격을 가해 도시의 건물 상당수가 파괴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 세계의 학자들이 인간 방패가 되어 두브로브니크를 지켰으며 전쟁 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을 통해 대부분의 유적들이 복원되었다.


아드리아 해 남쪽 연안에 있으며 크로아티아 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스르지 산 아래쪽에서 바다로 튀어나온 곶 위에 자리잡고 있다. 해안성채가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으며, 오래된 성벽은 대부분 2겹으로 지어졌다.
주도로인 스트라둔 양 옆에는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집들이 늘어서 있다. 구도시는 대부분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좁은 길들이 나 있어 도시 전체가 그림 같은 미로를 이루고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주요산업으로 리큐어 주, 치즈, 비단, 가죽제품 제조업을 들 수 있다.

필레

동의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문 다른 표기 언어 Gradska Vrata Pile

두브로브니크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3개의 문 중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이중문이다. 16세기 중반 만들어진 첫 번째 문을 통과하면 계단 또는 내리막길이 나오고 15세기 중반 만들어진 두 번째 문은 플라차 거리와 바로 연결된다. 두 개의 문에는 모두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의 조각상이 있다. 플라차 거리 끝에는 또 다른 문인 플로체 문이 있고, 필레 문과 플로체 문 사이에 스르지산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부자 문이 있다. 버스 터미널이나 페리 터미널, 공항에서 시내버스로 들어오는 경우 모두 필레 문 앞에서 하차하면 된다. 관광 안내소도 필레 문 밖 버스 정류장 앞에 자리하고 있다.




아드리아 해 남쪽 연안에 있으며 크로아티아의 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이 항구의 해안성채가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으며, 거대하고 둥근 탑이 육지 쪽에서 이 도시를 굽어보고 서 있다. 대부분 2겹으로 지어진 성벽은 오래전부터 이곳의 자랑이었다. 성벽 너머로는 정원으로 둘러싸인 별장이 많이 있다.



이 도시의 초기 도시계획은 1292년의 화재 후 항구를 다시 지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1272년까지 라구사의 라틴 섬과 두브로브니크의 숲속 거주지를 나누어주는 습지대였던 계곡을 따라서 이곳의 주도로인 스트라둔이 쭉 뻗어 있고, 그 길 양 옆으로는 후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아름다운 집들이 늘어서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작은 숲(dubrava)을 뜻한다.

성벽 안에서는 자동차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스트라둔을 제외한 구도시는 대부분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좁은 길들만 나 있어 도시 전체가 그림 같은 미로를 이루고 있다. 14세기에 지은 2개의 수도원이 도시 양쪽 끝에 서 있는데,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이 서쪽 입구를 지키고, 도미니쿠스회 수도원이 동쪽 통로를 맡아 지켰다.

렉터 궁전은 달마치야 건축의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앞바다에 있는 로크름 섬은 정원과 오렌지나무로 유명하다. 해마다 여는 예술축제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경치 좋은 이 도시를 찾는다.

이 도시는 7세기에 에피다우루스가 슬라브와 아바르를 약탈했을 때 도망나온 로마 피난민들이 동남쪽 지역에 자리잡고, 이름을 라우사 또는 라구시움이라고 부른 것이 그 시작이었다.

슬라브의 식민지인들도 곧 그곳의 로마인들과 합쳐져 일찍부터 이 도시는 2개의 위대한 문명을 잇는 구실을 했다. 로마가 망한 후, 비잔틴의 지배를 받았다. 9~12세기에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쳤으나 1205~1358년에는 대부분의 독립권을 갖고도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는 속국이었다. 이 도시에서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망명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었는데, 그들 가운데 영국의 리처드 1세도 있었다. 또한 이 도시 공화정은 조약을 맺거나 공물을 바쳐 영토를 달마치야 해안까지 넓혔다. 비잔틴에서 도나우 지역까지 닿아 있는 육상 교역로가 끝나는 바닷가에 있어 상업이 크게 번성했다. 라구사의 육로 무역은 발칸 반도 전역에 걸쳐 번창했다.


1420년 달마치야가 베네치아에 팔렸지만 두브로브니크는 이름만 빼고 모든 점에서 자유도시 그대로 남았다. 수세기 동안 이곳 사람들은 동·서양 사이에서 책략을 발휘하여 독립을 잃지 않았다. 투르크와 전략협정을 맺어 오랫동안 자유를 지키고, 오스만 제국과 유럽 사이의 교역에서 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계속했다. 16세기에는 인도 및 아메리카 대륙과 교역을 했으며, 1588년 영국을 침공하는 스페인에 군대를 지원했으나 그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15~17세기에 예술과 문학이 크게 발전해 '남부 슬라브의 아테네'라는 이름을 얻었다. 남부 슬라브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곳 사람들의 말이 문학작품에 나타났다. 그러나 바다에서 이룬 업적이나 상업에서 얻은 성과는 이 도시의 문학사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부자카페


원래도 유명했지만, 꽃보다 누나에 나와서 더욱 유명해진 부자카페 입니다. 부자카페를 찾다보면 작은화살표가 그려져있는 간판이 있는데요. 이 화살표를 따라가다 해변쪽으로 작은 구멍으로 나가면 부자카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성벽으로 둘러쌓인 두브로브니크의 특성상, 신기하게도 해안 절벽에 카페가 위치해 있습니다. 부자카페는 시원한 음료와 최고의 바다풍경으로 모든것을 설명할 수 있는데요. 옆쪽 계단을 통해 더 아래로 내려가면 다이빙하는 포인트가 있어서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관광객들이 다이빙을 즐기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1667년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주민의 1/5 정도가 죽었다. 그후 나폴레옹 전쟁 때 다시 한번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1800~05년 이곳은 지중해에서 단 하나뿐인 중립국으로 교역에서 많은 몫을 차지했다. 1808년 나폴레옹 1세가 이곳을 점령했고, 1815년에는 빈 회의를 통해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 1918년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다. 



플라차 거리




플라차거리







오노프리오분수






































성벽투어

두브로브니크 여행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벽투어 인데요. 총 1.9km의 성벽길을 산책하듯이 풍경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걷는 2~3시간 정도 되는 코스 입니다.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붉은 기화지붕들이 보이는데요. 두브로브니크 하면 떠오르는 붉은 지붕처럼 신기하게도 어떤 건물도 붉은 지붕을 갖고 있답니다. 그래서 분명 페인트를 칠했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모두 각각의 다른 붉은 색의 기화를 갖고있습니다. 심지어 기화들은 모두 수공업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아드리드해의 푸른빛과 붉은 지붕의 조화가 썩 잘 어울립니다.

























성벽투어





정문 입구

렉터궁전




스르지산

성벽투어






성벽투어 하일라이트 쥬스와 커피 25유로

오노프리오분수

필레문의성 블라이세조각상

오노프리오 분수

플라차 거리


로쿠섬으로 가는 유람선에서 본 성벽






유람선에서본 스르지산


가이드 이원정씨가 맥주와 음료수를 한잔씩 흥겨운 유람선 여행이



나체족들이 수영과 휴식을 즐기는 이곳 나도 내리고 싶다

로쿠섬 나체족들이 수영하는곳














성당안


식당안내 아저씨

간단한 기념품을 파는 할머니





아랍계열 인지 전통복장을 한 여행객들이 인기 만점이다


인기절정 나도 같이 한장

인기절정





과자점과자가 대단히 호화 스럽다 색갈이 곱고 먹음직스러워 잠시 한개사본다



무개로 달아서 파는데 가격이 다르다  200그램에 5유로 정도


앵무새가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고 1유로를 받는다

성당을 보니 주일에 미사를 안봤군

저멀리 스르지산이보이고  갈매기들이 날고있네

수많은 요트들이 대기하고


당시 사용된 포가 전시되고 있다


성벽이 바다쪽은 두껍게 쌓여있고




호화유람선이 도착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쏟아지고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2017.5.22  8편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스르지산전망대

보스니아 네움에서 하루밤을보낸 우리는 다시 국경을 넘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로 간다.

국경을 넘는 시간도 점차 길어지고 있다. 쉽게도 할수 있지만 여권을 하나하나 보는것 땜에

아드리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두브로부니크는 네움에서 약한시간 정도 걸린다.

먼저 스르지산전망대와 성벽투어 그리고 로쿠섬 유람선을 타고 도는 비용이 100유로가 별도로 지불된다.

그 유명하고 보석같은 두브로브니크 여행을 지급부터 떠나본다.




네움의 아드리아 호텔에서 두브로브니크로간다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경

크로아티아를 둘로 나눈 도시 ‘네움’    

스플리트를 지나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면 두 번의 국경 출입문관리소를 만나게 되는데 두 국경 사이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Neum)이라는 도시가 자리하고 있다. 1984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대통령이었던 티토 대통령이 네움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넘겨 주었고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하면서 네움은 크로아티아를 두 개로 나눠 버린 큰 장벽이 되고 말았다. 현재까지도 크로아티아에서는 네움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네움을 크로아티아에 주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바다와 인접해 있는 도시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네움이 크로아티아로 되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첫 번째 출입문관리소를 지나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땅이고, 두 번째 출입문관리소를 통과하면 다시 크로아티아로 들어서게 된다. 여권 검사를 두 번 하니 여권은 꼭 몸에 지니고, 꺼내기 쉬운 곳에 두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 앞에 버스가 7대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약2시간에 걸쳐 기다는 것을 맛봐야 했다.






봉고차를 타고 스르지산 전만대로 간다  1호차 미남 운전기사를 탔다


스르지산    두브로브니크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했다면 두브로브니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스르지산 정상에 꼭 한 번 올라가보라. 구시가 위로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는 스르지산은 해발 415m인데 구시가에서는 개인 차량이 아니면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도보로도 이동 가능하지만 오르는 동안 그늘도 없고 이동 시간도 1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참고하자.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방법은 약 778m 길이의 구시가와 산 정상을 잇는 케이블카인데,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 역에 도착하면 바로 두브로브니크 시내와 아드리아 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전망대 뒤편의 내전 때 크로아티아 군대가 사용했던 요새는 독립 전쟁 박물관으로 활용해 유료 개방하고 있다. 전망대 아래쪽에는 카페와 1808년 나폴레옹이 점령하면서 세운 거대한 하얀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구시가 전망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로쿠섬도보이고

















이름모를 꽃들이 한창 피어나고



스르지산 전망대에 설치된 레스토랑과 십자가


전망대가는길

산악오트바이도 있고

전망대에 케이블카도 있고

일행들도 인증샷


정상의 레스토랑

저멀리 스폰자궁과 로쿠섬이 보인다


저멀리 산들은 모두 바위산인가 나무도 없네



엉컹키도 보이고





렉터궁전도보이고

성벽투어를 앞두고 산에서 바라보는 성은 완고하기만

성으로 둘러쌓인 궁전을 아름답기만하다

플라차 거리















야경















로쿠섬







스르지산을 내려오면서 배경좋은 곳에서





다음편을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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