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11편 하노이 씨클로 박물관  2008.5.19~2008.5.23

 

 베트남의 수도. 베트남 북부 홍 강 서쪽 기슭, 송코이 강 오른편에 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곳으로, 정복자들에 의해 종종 정치의 중심지로 삼아졌다. 11세기 리 왕조 초대 통치자에 의해 수도로 정해졌으며, 20세기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였다. 1976년에는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도로, 철도, 항공 등이 정비되어 있어 베트남의 교통 중심지로 일컬어진다. 잦은 침략과 내란으로 사적과 궁전의 대다수는 파괴되었지만, 코로아의 성채, 공자의 유교 서원, 모트코트 탑 등의 명승지가 남아있다.

 

하노이는 한자로 하내(河內) 즉, ‘강 안쪽의 도시’ 또는 ‘강 사이의 도시’라는 뜻이다. 홍 강(Song Hong)이 하노이를 끼고 흐르고 있으며, 우기가 되면 홍 강이 자주 범람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노이는 홍 강을 따라 쭉 뻗어 있고, 홍 강에 놓인 롱 비엔(Long Bien) 다리와 쯔엉 드엉(Chuong Duong) 다리가 외곽 지역과 하노이를 연결한다.

 

하노이 호찌민 박물관(Hanoi Ho Chi Minh Museum, Bao Tang Ho Chi Minh Hanoi)

 

1990년 5월 19일, 호찌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호찌민의 활동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개관하였다. 구소련의 원조를 받아 레닌 박물관의 전문가가 설계와 내부 장식을 담당했다. 호찌민 생가 모형, 애장품, 편지 등 호찌민 생애와 관련된 모든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과거관과 미래관으로 구분된 전시실에는 평화, 행복, 자유 등을 상징하는 외국 작가의 현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영어, 불어, 러시아어 가이드가 있으므로 부탁하면 안내해 준다. 시멘트 건물(3층)로, 내부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다.

 

씨클로

점차 오토바이가 씨클로를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아주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는 유용하다. 하차할 때 요금을 내는데, 타기 전의 가격과 달리 비싼 요금을 요구할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서 한 바퀴 도는 코스이며, 1인 6만 동 정도이다. 10~15분 소요되며, 팁은 보통 1~2달러 정도를 준다.

 

▣씨클로

앞쪽은 인력거 뒤쪽은 자전거로 된 베트남의 전통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 택시에 비해서요금이 조금 비싸다. 주의할 점은, 요금 흥정은 반드시 출발 전에 해야한다 씨클로를 타고팀을 2불씩 주었는데도 적다고 1달러 더 달라고 한다...!

하노이로 돌아오는길에 모두를 과일의 왕인 두레안을 먹고싶다고 하였다 우리는 가이드에게100불을 팀으로 주고 나니 가이드가 기분으로 두레안을 산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 두레안을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 호텔 옆 발맛지 한국인이 워낙 많이 오니 한글로 쓰여있다, 아래는 두레안 과일 1KG에5천원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비싸서 구경만 한다 3나무만 있으면 대학을 보낼수 있다고한다. >

길거리에 팔고 있는 망고와 용과 , 망고는 1개에 1달러로 가격이 좀 비싼 편이어서 베트남사람들은 사 먹지 못한다 맛은 새콤 하고 달아서 이번여행에서 많이 먹었다 아래는 부페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 안내원 예쁘게 생기고 귀여워 사진 한장>

호치민 박물관 호치민에 평소 생활하며 입던 옷과 장신구 등이 전시 되어 있었다.

호치민 박물관 호치민에 평소 생활하며 입던 옷과 장신구 등이 전시 되어 있었다.

< 호치민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옷, 생활도구>

< 호치민 박물관 안내 군인 아가씨 >

< 박물관을 지키는 군인들>

< 박물관 에 있는 꽃 향기가 아름답다>

라택스 매장에서 모두들 마지막 여행이라 사모님 선물을 모두들 1개씩 샀다.

< 하노이는 오트바이 천국이다 약 천만대 라고 하니 한가정에 평균2-3대라나 >

시내에는 오트바이 행열이이만저만 구경이 아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엄청나다 세계에 모든오트바이가 여기에 모인

것 같았다

< 씨클로 한바퀴도는 데 약 30분 정도 걸린다>

< 길거리에서 복원을 팔고 있는 아낙네들>

씨클로를 타고 발마사지도 하고

하노이 공항에서

노니 공장 견학

씨클로를 타고 모두들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서울 식당 첫날 먹던 식당 그런대로 음식은괜찮은 편이다

우리는 발맛지를 끝으로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 대한여행사에서 제공하는 가이드 팀 2명 각각 200불씩을 공항에서 전달하고 시간에 쫒기느라 가이드에게 인사도 전하지 못하고 공항 게이트를 들어셨다.

이번여행은 일행이 1진 27명 2진 7명으로 나누어 출발하여 계속 일정은 같이 보냈으나올때 갈때 뱅기는 따로 탔다.

아무튼 모두들 사고 없이 일정을 소화해준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우리에게 친절을아끼지 않은 가이드 김정중 부장외 1명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대한 여행사 이승택과장도고생 많이 하였다

3박 5일의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 여행을 아무 사고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여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10편 하노이 수상인형극  2008.5.19~2008.5.23

 

수상 인형극
수상 인형극은 베트남의 독특한 문화로, 홍 강 유역의 농민들이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연못이나 호수에서 로이 누억라는 인형을 만들어 공연을 시작했다. 인형을 가슴까지 찬 물에서 다채롭게 움직인다. 이 인형들은 대나무와 실로 연결되어 사람들이 직접 조정한다. 인형극은 농민들의 일상 생활, 고기잡이, 소싸움 등을 우스꽝스럽게 재현한다. 주요 내용은 악귀로부터 농민과 농사일을 보호하여 풍년을 기원한다는 것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되며 남여 7인으로 구성된 악단인 떼우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흥을 돋운다.

 

가격
어른 : 10만동(한화 5천원가량)
어린이(키1.2m이하) : 6만

수상 인형극은 무아로이누독 (Mua Roi Nuoc)이 10세기 델타의 홍강 (Red River) 을 기원으로 한 독특한 예술 공연입니다. 과거에는 주변의 자연에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극을 꾸몄으며, 수확을 끝낸 후의 연못과 논둑이 주요

무대 였습니다. 이는 북부 베트남의 고유 형태로서 전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베트남에서만 찿아 볼수 있습니다. 오늘

날 하노이에서는 탱롱극단(Thang long Puppet Troupe)이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물이 고인 무대가 있는 곳에서 공연이 진행됩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에서는 긴 대나무 막대와 수면 아래 숨겨진 끈을 이용해 인형을 조정 합니다. 꼭두각시 인형은 나무로 조각한 것입니다.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수상 인형극은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베트남의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홍 강 유역의 농민들이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연못이나 호수에서 로이 누억(roi nuoc)이라는 작은 인형을 만들어 공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인형은 가슴까지 찬 물에서 다채로운 움직임을 보여 주며 좌중을 즐겁게 한다. 이 인형들은 대나무와 실로 연결되어 사람들이 직접 조정하는데, 움직임이 매우 정교해 마치 인형이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인형극은 농민의 일상생활, 고기잡이, 소싸움, 장기 등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재현한다. 주요 내용은 악귀로부터 농민과 농사일을 보호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되며 남녀 7인으로 구성된 악단인 떼우(Teu)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흥을 돋운다.

호안끼엠 호수 북쪽의 전용 극장에서 수상 인형극을 볼 수 있다. 게스트 하우스나 여행사에서 표를 구할 수 있으나 좌석을 지정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장에 가야 한다. 한글 팸플릿도 비치되어 있다.

 

수상 인형극은 무아로이누독 (Mua Roi Nuoc)이 10세기 델타의 홍강 (Red River) 을 기원으로 한 독특한 예술 공연입니다. 과거에는 주변의 자연에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극을 꾸몄으며, 수확을 끝낸 후의 연못과 논둑이 주요

무대 였습니다. 이는 북부 베트남의 고유 형태로서 전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베트남에서만 찿아 볼수 있습니다. 오늘

날 하노이에서는 탱롱극단(Thang long Puppet Troupe)이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물이 고인 무대가 있는 곳에서 공연이 진행됩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에서는 긴 대나무 막대와 수면 아래 숨겨진 끈을 이용해 인형을 조정 합니다. 꼭두각시 인형은 나무로 조각한 것입니다.

수상 인형극(베트남어: Múa rối nước)은 11세기부터 시작된 북베트남 홍 강 삼각주 유역에서 시작된 독특한 전통문화이다. 농민들이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연못이나 호수에서 로이 누억라는 인형을 만들어 공연을 시작했다. 인형을 가슴까지 찬 물에서 다채롭게 움직인다. 이 인형들은 대나무 로 연결되어 사람들이 직접 조정한다. 인형극은 농민들의 일상 생활, 고기잡이, 소싸움 등을 우스꽝스럽게 재현한다. 주요 내용은 악귀로부터 농민과 농사일을 보호하여 풍년을 기원한다는 것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되며 남녀 7인으로 구성된 악단인 떼우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흥을 돋운다.

현대의 수상인형극은 4평방미터의 풀장의 물 위 무대에서 공연이 된다. 오늘날의 공연이 이뤄지는 곳은 세 곳 중 하나이다. 무대가 설치된 마을의 전통적인 연못 위에서 하거나, 이동식 공연을 위해 제작된 이동식 탱크 무대이거나, 또는 특별하게 제작된 세트 무대에서 진행된다.[4]

사원의 정면과 닮은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대나무 무대 뒤에 선 8명의 인형조정사가 긴 대나무 막대와 끈 도구를 이용해 허리쯤 잠긴 물에서 인형을 조종한다. 인형은 등나무로 제작되며, 종종 무게가 15kg이 나가기도 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주식인 싹은 물을 댄 논에서 자란다. 원래의 수상인형극 축제는 글자그대로 논에서 개최되었는데,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조정사를 숨기기 위해 탑을 세워서 가렸다. 물은 인형들의 무대가 되었으며, 곡물 수확과 연결되는 상징적인 매개체였다. 물은 또한 인형의 줄과 인형조정사의 동작을 숨겨주는 역할을 했고, 음악과 노래의 울림을 크게 해주며, 희미하게 빛나는 조명 효과를 주기도 하였다

베트남 전통 악단은 배경음을 연주한다. 이러한 악기로는 북, 나무종, 심벌즈, 경적, 일현금 반다우, , 대나무 피리 등이 이용된다. 대나무 피리의 청아하고, 단순한 음은 고즈넉함을 동반하고, 반면 북과 심벌즈는 불을 내뿜는 용의 등장을 시끄럽게 알려줄 것이다

째오(chèo, 북베트남에서 유래된 오페라) 가수들은 인형이 연기하는 노래를 부른다. 연주자들과 인형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일체가 된다. 연주자들은 위험에 빠진 인형에게 경고의 말을 외치거나, 또는 실의에 빠진 인형에게 격려의 말을 한다.

인형은 무대 양쪽 모두에서 등장하거나, 탁한 물 속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기도 한다. 조명과 화려한 깃발이 무대를 장식하거나,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수상 인형극

 베트남에만 있는 전통 극예술로, 16~18세기에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도구, 소재, 무대 모두 논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음양 사상을 반영한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은 무대뒤에서 물속의 대나무와 밧줄 등을 이용하여 조종하는데, 독특한 조종술은 직계 후손에게만 전해져 내려오고, 딸에게는 전수가 되지 않으며 아들과 사위만이 전수받을 수 있다.

▣수상 인형극

무아로이누옥(Mua Roi Nuoc) 또는 수상인형극은 그 기원을 10세기 델타의 홍강(Redriver)에 둔 독특한 예술이다. 이 지역의 농부들은 주변자연 환경에서 찾을 수 있는자연재료를 이용해 이 예술의 행태를 바꾸어 갔다. 옛날에는 수확을 끝낸 후의 연못과논둑이 이 즉흥쇼의 주무대였다. 이러한 예술형태는 북부베트남의 고유한 형태이며, 전세계에서도 유일하게 베트남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탱롱극단(Thang Long puppettroupe)이 하노이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인형을 조정하는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긴대나무 막대와 수면 아래 숨겨진 끈으로 인형을 조종한다. 꼭두각시 인형은 나무로

조각되고, 어떤 것은 무게가 15킬로그램에 이른다. 전통 베트남 오케스트라가 배경음악을연주해주고, 우리나라의 창(昌)처럼 북베트남에 기원을 둔 전통오페라 체오(Cheo) 가수가꼭두각시의 얘기를 하는 행동에 맞춰서 노래를 한다.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9편 유교사원 문묘  2008.5.19~2008.5.23

 

하노이네 있는 문묘전은 하노이 공자묘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1070년 리탄통 황제가 공자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며, ​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라고도 하였으며, 리(Ly)왕조의 통치기간에 국교를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하면서 정신적인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베트남 최초의 대학 문묘를 방문하였다.임금님도 말에서 예를 갖추었다는곳이다.1034년 세워진 유교사원이며,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기도 하다.
문묘의 중앙의 문은 왕이 지나는 문이고, 양쪽 문은 문관과 무관의 지나는 문이었다고 한다.
1484년 첫 과거시험이 실시되었고,1780년까지  1306명의 합격자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규문각(태양을 상징)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드넓은 연못과 함께 공자사당이 나온다.
11c 리왕조가 하노이에 독립왕조를 세우기 전에는 베트남은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때문에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대표적인곳이  문묘다. 사당 중앙에는 공자 ,양옆에는 증자, 안자, 맹자, 자사 4성을 모셔 놓았다.

 

좀더 안으로 드어가면 규문각이 나옵니다.

규문각은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 지어진 문으로 공자의 업적이 별처럼 많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규문각(奎門閣)의 규(奎)자가 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문이 세개가 있는데 중앙의 아치문은 황제만 다닐 수 있었고 일반인은 양쪽 쪽문으로 다녔다고 합니다.

규문각을 지나면 정사각형의 연못이 나옵니다.

이연못의 이름은 천광정(天光井)으로 하늘빛 연못 이라는 뜻 입니다

규문각에는 총 82개의 진사제명비가 거북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비에는 과거시험의 합격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읽어볼까요?ㅎㅎ

문묘 안의 전경. 가운데 정사각형의 인공호수가 있고, 양 옆의 회랑식 복도에는 비석들이 들어서 있다.

이윽고 나타나는 대성전, 대성전 앞의  용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이공에서 온 대학생 들과 같이 촬영

사이공에서온 대학생들과 촬영

문묘(文廟, Van Mieu,Temple of Literature)

11세기에 세워진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다. 특히 그안에 있는 규문각은 하노이 상징물이 되고 있다. 19세기 원조(沅朝)시대에 만든 이 규문각에는82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들비석은 모두 다른 얼굴을 한 거북위에 세워져 있고 15-18세기의 300년동안 2년에 한번씩행한 과거시험의 합격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타원형의 기와로 만든 지붕이 아주 멋있고

벽이 없이 탁 트인 건물과 넓은 경내는 거리의 북적거림과는 거리가 먼 아주 조용한 곳이다.

지금이라도 그 당시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이 나타날 것만 같다.

베트남의 첫 번째 대학인 반 미우(Van Mieu)는 1070년 라이 탄 통(Ly Thanh Tong)의통치 기간중에 설립되어 공자에게 바쳐졌다. 한때 중국 고전에 대한 3년마다 치르는 시험장소로 이용된 이곳은 거대한 청동 종, 정원 몇겹의 지붕이 덮여진 정자들로 가득찬 다섯개의 안마당 으로 이어지는 대문에 의해 세로로 나뉘어져 있다.

여고생들과 촬영

공자사당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양쪽에 증자, 맹자, 안자, 자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사이공에서온 대학생들과 촬영

사이공에서온 대학생들과 촬영

< 문묘 입구 여기에는 많은 학생들이 여행 을 오고 있었다>

< 수학여행 온 학생들과 함께 같이 사진 찍자고 하니 학생들이 너무 즐거워 한다, 한국을 아느냐고 물으니 많은 학생들이 잘 안다고 대답하였다>>

결혼식하는 커플도

< 학생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니 표정을 아주 정겹게 하고 응해 주었다>

< 사진을 찍는 다고 하니 모두들 진지하고 밝게 표정을 지워 보였다>

대성문의 문에는 용과 봉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드디어 대성문을 지나 본당으로 왔습니다. 본당의 이름은 대성전 입니다.이 건물이 공자와 그의 제자 4명을 기리는 건물입니다.대성전 광장에 들어서자 마자 거대한 향로가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호랑이인지 사자인지 해태인지 구분이 안가는

정면의 붉은 현판에는 금색 글자로 만세사표 라고 써있습니다.

만세사표 : 만세에 모범이되는 위대한 스승이라는 뜻.

중앙에는 공자가 모셔져 있고 양쪽 옆으로 2명씩 4명의 유교상 유명인 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공자의 도(道)를 따랐던 증자, 안자, 사자, 맹자 등 4명의 제자들이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공자와 이들 4명을 합쳐서 동양 5성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동자에 이어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맹자 입니다.공자보다 100년 정도 늦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공자 맹자는 누구나 들어본 유명한 사람들이지요.

이사람은 증자. 본명은 증삼(曾參)인데 증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공자의 수제자였다고 합니다.

 

이 사람도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顔回) 입니다.보통은 본명인 안회가 아니라 안자(顔子) 라고 부릅니다.

29세에 백발이 성성했고 32세에 죽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자(思子). 

대성전 뒤에는 국자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시대에 국자감이 있었는데 베트남에도 국자감이 있네요.

지금의 대학에 해당한다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베트남 국자감은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곳은오 1079년에 세워져 170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층에는 베트남 황제도 여러명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식당 앞에서 예쁜 베트남 아가씨와 한컷

< 베트남 아가씨 치고는 굉장히 미녀였다 장미꽃 한 송이를 주고 기념촬영에 순순히 응해주는 아가씨가 너무 귀엽고 예쁘다 표정이 밝고 명랑해 많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차지 했다 아마도 친구들과 여행 온 것 같았다.>

장원급제한 자의 기념비

사이공에서온 대학생들과 촬영

사이공에서온 대학생들과 촬영

고등학생들과 한컷

< 베트남 아가씨 치고는 굉장히 미녀였다 장미꽃 한 송이를 주고 기념촬영에 순순히 응해주는 아가씨가 너무 귀엽고 예쁘다 표정이 밝고 명랑해 많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차지 했다 아마도 친구들과 여행 온 것 같았다.>

사이공에서온 대학생들과 촬영

매트리스 판매점 

점심식당에서

점심식당에서 종업원아가씨가 포즈를취해주고

<신혼여행온 부부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8편 하롱베이 티톱섬  2008.5.19~2008.5.23

 

티톱 섬 명칭의 유래

 

TITOP Island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물론 하롱베이에 있어 아름다운 絶景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세계 최초로 人工衛星을 발사한 러시아 이야기가 숨어있다. 세계 최초로 우주로 나간 사람은 러시아의 전 國名인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다. 유리 가가린과 티톱이란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人工衛星을 타고 지구를 도느냐에 대해 티톱은 젊고 유망한 가가린에게 讓步를 한다. 그래서 가가린이 宇宙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자 영웅이 되어 소련사람들에게 열렬히 歡迎을 받게 되고, 다음 번에 티톱이 우주선을 타고 나가는데 지금껏 사람들은 가가린은 알아도 티톱은 잘 모른다. 그가 한 말 중에 '아무도 2등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말이 유명하다.

1965년에 이 섬을 방문한 그의 이름을 따서 섬의 명칭을 지었고, 전망대 이름도 'TITOP전망대'라고 부른다.

 

해롱베이 중간쯤 되는 티톱섬(Titop Island) 선착장에 당도해 427계단을 올라 산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눈 아래 펼쳐진 경관은 한마디로 '장엄함' 그 자체라 할 만큼,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이다. 하롱베이는 마치 한폭의 자연 미술품을 보는 듯한 빼어난 경관을 지닌 채, 수많은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는듯 했다. 고요한 호수와 같은 바다위를 배가 가르는 바닷길을 따라, 용이 내려온 그곳으로 스며들 듯 빠져들어 간다. 진한 청록색의 바다는 전혀 파도가 일지 않고 수많은 섬들은 거친 파도를 막는 장벽을 이뤄 거대한 호수 안에 있는 듯한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1965 년에 이 섬을 방문한 그의 이름을 따서 섬의 명칭을 지었고, 전망대 이름도 'TITOP전망대'라고 부른다.

티톱 섬에 있는 하롱베이에 관한 안내문  

티톱 섬 정상에 있는전망대에서 바라본하롱베이 풍경

티톱 섬 선착장

티톱 섬 해수욕장

티톱 섬의 명칭 유래에 관한 설명문  

 

< 티톰섬 전망대를 올라 3천개의 섬들을 바라보니 끝이 안보인다,해수욕을 하는 해수욕장에 외국인들은 많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

 

<티톰섬 정상에서 기념 촬영, 아래는 영국 오스트레아에서 온 관광객들>

<티톰섬 정상에서 기념 촬영, 아래는 영국 오스트레아에서 온 관광객들><티톰섬 정상에서 기념 촬영,

영국 오스트레아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이메일로 사진을 보냈다>

<티톰섬 정상에서 기념 촬영, 아래는 영국 오스트레아에서 온 관광객들>

<티톰섬 정상에서 기념 촬영,영국 오스트레아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이메일로 사진을 보냈다>

<티톰섬 정상에서 기념 촬영,영국 오스트레아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이메일로 사진을 보냈다>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7편 하롱베이 천궁동굴  2008.5.19~2008.5.23

 

▣ 천궁동굴

4개의 종유석기둥이 떠받치는 "하늘의 지붕"이 있는 천궁동굴 최근에 발견된 석회석 동굴로, 하롱시 부두에서 남서쪽 4Km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하롱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로 손꼽히고 있는 곳이다. 천궁동굴이 있는 섬은 왕관이

2개의 동굴을 품고 있는 모습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선착장에서 내려, 입장권을 확인받은 후, 가파른 돌계단과 숲으로 이어진 천궁동굴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동굴의 좁은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동굴안에 들어서면 좁은 동굴

입구와는 달리, 130미터 길이에 웅장한 동굴내부가 드러난다. 간간히 외부에서 들어오는햇빛과 잘 꾸며진 내부 조명으로 동굴의 환상적인 자태을 볼 수 있다. 동굴 내부길을 따라 내려가면, 동굴의 중심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곳은 "하늘의 지붕이라고 불리울 만큼 높고 웅장한 천정이 자리잡고 있으며, 4개의 기둥이 이를 떠받치고있다. 종유석이 만들어낸 자연 돌커튼과 여러 종유석 사이를 휘감으며 들어오는 바람에드럼소리를 일기도 한다. 동굴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는 마지막 돌기둥을 휘감아 내려, 3개의작은 연못을 만든 후, 동굴 밖으로 흘러 나간다.

자연이 준 선물, 하롱베이 천궁동굴(天宮洞窟).

<4개의 종유석기둥이 떠받치는 "하늘의 지붕"이 있는 천궁동굴>

하롱베이의 관광유람선을 타고 제일 먼저 찾은 섬이 바로 하롱시(下龍市) 부두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곳에있는 '천궁동굴’이다. 하롱베이의 동굴들 중 가장 아름답다는 ‘티엔궁(천궁)동굴’, '하늘의 문'이라는

천궁(天宮) 동굴을 품고 있는 섬에 도착하여 선착장에서100 여개의 가파른 돌계단과 숲으로 이어진 천궁

동굴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동굴의 좁은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천궁동굴 안에 들어서면 좁은 동굴

입구와는 달리 1,300m 길이에 웅장한 동굴내부가 드러난다.

하롱베이의 여러 섬들은 크고 작은 동굴을 껴안고 있다. 석회암 덩어리인 이들 바위섬 안에는 몇천년씩을

돌고 돈 물들이 종유석을 생성하고, 이들 종유석들은 땅에서 밀어내는 석순과 만나 천연의 궁전을 만들고

있었다.  '하늘의 문’으로 불리는 티엔궁은 1903년 다른 동굴들과 마찬가지로 어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

되였다고 한다.

< 천궁동굴 앞에서 바라본 하롱베이>

배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동굴입구부터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장식된 궁전을 만난다. 중국인들이

조명을 설치해서인지 중국 특유의 산발적인 스타일이 얼핏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동굴의 화려함을 표현

해주고 있지만 어쩐지 촌스러운 느낌이 든다.

이 동굴은 4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매우 큰 규모다. 입구에서는 그리 큰 느낌이 없는데 안쪽으로 들어

갈수록 수많은 계단길이 굽이치고 높는 천장등, 웅장한규모를 짐작케 한다. 수억년의 세월 동안 만들어진

기상천외한 모습이 펼쳐지고  동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가 고드름 모양으로 자란 종유석과 천장에

서 떨어진 물방울이 동굴 바닥에 닿으면서 탑 모양으로 쌓인 석순, 그리고 종유석과 석순이 맞닿아 생긴

석주 등이 색다른 구경거리다.

동굴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는 마지막 돌기둥을 휘감아 내려 3개의 작은 연못을 만든 후 동굴 밖으로 흘러

나간다. 이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하여 1994년 UNESCO는 세계유산 목록가운데 자연공원으로 등록하였다.

몇 개의 섬에서는 4500년 전의 잘 다듬어진 돌도끼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베트남 본토에서는 발견된 적

이 없는 돌도끼였으며, 혼가이섬에서는 호아빈 문화로 알려진 1만 년 전 인류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

다.

동굴 속에는 자연그대로 보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길이 너무 닿아 생각보다는 조금은 실망했

으며 동굴인데도 석순이 없는 것은 붕괴위험이 있어 떼어내고 천정을 시멘트로 붙여 넣거나 보수를하여

동굴이라는 자체 그것만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것같다. 자라는 석순은 물을 머금고 계속 물방울이 떨어

지는데 이곳 종류석과 석순들은 대부분 건조한상태에서 생성활동이 중단된 죽은 동굴로 느껴진다.

하롱베이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석회동굴인 천궁(天宮) 동굴은 4개의 종유석 기둥이 '하늘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끝없이 흘러온 세월은 130m의 웅장한 동굴에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자연 미술을 그려놓고 있다. 짙고 깊은 동굴의 어둠을 깨고 외부에서 간간히 들어오는 태양 빛줄기와 관광객을 위해 꾸며 놓은 분수와 색색의 조명이 신비스러운 동굴을 환상속으로 빠트렸다.

간간히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인공적으로 꾸며진 내부 조명으로 동굴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 동굴 내부길을 따라 내려가면, 동굴의 중심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곳은 ‘하늘의 지붕’이라고 불리울

만큼 높고 웅장한 천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종유석이 만들어낸 자연 돌커튼과 여러 종유석 사이를

휘감으며 들어오는 바람에 드럼소리가 일기도 한다.

배트남 하롱베이에 있는 병풍처럼 둘러쌓인 3,000여개의 섬은 1994년 그 아름다운 경관으로 UNESCO 세계유산 목록 가운데 자연공원으로 등록되었다.   4개의 종유석 기둥이 떠받치고있는 천궁동굴은 하롱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로 손꼽히는 곳이다. 천궁동굴이 있는 섬은 작은 왕관이 2개의 동굴을 품고 있는 모습의 작은섬들로 이루어져있다. 가파른 돌계단과 숲으로 이루어진 입구를 올라가면 좁았던 입구와는 달리 130M길이의 웅장한 동굴 내부가 보인다. 인위적인 조명이 약간 거슬리기는 하지만 하늘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동굴로 들어서면 거대한 종유석 4개가 떠받치고 있는 모습의 웅장함에 신음소리가 절로난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작품의 동굴이지만 이곳역시 프랑스,미국과의 전쟁에 게릴라 거점으로 이용되었던 베트남 역사의 아픈곳이기도 하다.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6편 하롱베이 3부  2008.5.19~2008.5.23

 

< 가이드 이승택 과장과 함께 아래는 이선착장에서 다금바리 3마리 사서 맛있게 요리해서 회도 먹고 매운탕도 다금바리 가격 1마리에 15만원 무려 3마리를 먹었다>

<다금바리 3마리 구입 한마리당 15만원>

< 가이드 이승택 과장과 함께 아래는 이선착장에서 다금바리 3마리 사서 맛있게 요리해서 회도 먹고 매운탕도 다금바리 가격 1마리에 15만원 무려 3마리를 먹었다>

< 다금바리 먹고 해롱베이 야 신난다 >

< 3000개의 섬을 배경으로 아래는 우리가 탓던 유람선>

#5성급호텔 로 깔끔하고 깨끗하게 잘 정리 정돈 되어 있다.

베트남 5성호텔은 로고가 새겨진 종이가방을 비치해 놓는 특징이 있다.

< 올 떼는 하롱베이 갈 때는 해롱배이를 설명하는 가이드>

마치 명작 조각품을 감상하는 듯한 섬들의 경관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서 빛이 변하고 비나 안개에 의해 또다른 정취가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질학적으로는 북쪽은 계림으로부터 남쪽은 닌빈까지의 광대한 석회암 지역이다. 석회암 지역이 풍화 작용으로 깎여나가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할롱만(베트남어: Vịnh Hạ Long)은 베트남 북부, 꽝닌 성 통킹만 북서부에 있는 만의 명칭이며, 크고 작은 3,000개의 기암괴석과 섬들이 존재한다. 1994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름다운 하롱만의 전경을 볼수 있는 티톱섬 하롱베이 영화 007에 나온 배경

아름다운 하롱만의 전경을 볼수 있는 티톱섬 하롱베이 영화 007에 나온 배경

<다금바리 3마리 구입 한마리당 15만원>

< 가이드 이승택 과장과 함께 아래는 이선착장에서 다금바리 3마리 사서 맛있게 요리해서 회도 먹고 매운탕도 다금바리 가격 1마리에 15만원 무려 3마리를 먹었다>

< 다금바리 먹고 해롱베이 야 신난다 >

멋진 사나이들 한잔술에 맛이갔나

저녁에 나와 수영장에서 파트너와 신나게 수영했다

호텔을 배경으로

호텔앞 전경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5편 하롱베이 2부  2008.5.19~2008.5.23

하롱베이

바다 위에 수천 개의 섬이 뿌려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하롱베이는 용이 내려와 앉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산속에 살던 용이 바다로 내려올 때의 꼬리질로 계곡과 동굴들이 생겨나 현재와 같이 3천여 개의 섬 모양을 갖췄다고 한다. 중국의 계림과 견줄 수 있을 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화려하다. 섬들 가운데는 동굴이 있는 곳도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항 두 고(Hang Du Go) 동굴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동굴을 대리석 동굴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크고 웅장한데 무려 90개의 계단을 올라야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할롱만(베트남어: Vịnh Hạ Long)은 베트남 북부, 꽝닌 성 통킹만 북서부에 있는 만의 명칭이며, 크고 작은 3,000개의 기암괴석과 섬들이 존재한다. 1994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치 명작 조각품을 감상하는 듯한 섬들의 경관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서 빛이 변하고 비나 안개에 의해 또다른 정취가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질학적으로는 북쪽은 계림으로부터 남쪽은 닌빈까지의 광대한 석회암 지역이다. 석회암 지역이 풍화 작용으로 깎여나가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3000개의 섬을 배경으로 아래는 우리가 탓던 유람선>

< 3000개의 섬을 배경으로 아래는 우리가 탓던 유람선>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4편 하롱베이 1부  2008.5.19~2008.5.23

 

 

저녁때가 다되어서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우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서 소주를 곁들여 한잔씩하고 바로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을 아담하고 깨끗하였으며 HALONG PLAZA HOTEL 에 여장을 풀었다 1진은 가라오케로 출발하고 우리는 호텔에서 샤워를하고 간단히 시내 바람을 세고 다시 호텔로 들어와 룸메이트 강원근 지점장과 전신안마를 받으러 2층으로 갔다. 가격은 12달러 1시간 정도를 받고 나왔지만 영 시원찮다 녀석이 아 글쎄 팀을 20달러나 달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호텔 수영장이 3층에 있어 룸메이트와 같이 한참 수영을 하고 잠들었다

 

▣ 하롱베이

하롱베이 국립공원(Halong Bay National Park)은 영화 "인도차이나"와 로빈 윌리엄스의 굿모닝 베트남"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이다. 하노이의 동쪽에 위치한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그 미려한 장관으로 유명하다.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전체 국토 중 1553 평방 킬로미터를 차지한다. 이 만을 차지하고 있는 3000개 이상의 섬들이 보여주는 장관은 스펙타클 그 자체이다. 하롱(Halong, 下龍)이라는말은 글자 그대로 "용(龍)이 바다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무리의용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고,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내뱉은 보석들이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 국립공원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전쟁과 반란은 문화를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의 보존 노력은 도만카씨(Mr. Do ManhKha)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는 복무 중에도 동료들의 도움으로 많은 문화재를 수집할 수있었다. 이런 노력은 이 국립공원 안에 박물관을 짓는 것으로 이어졌고, 베트남 전쟁 중인1962년 마침내 그의 꿈이 실현되었다. 하롱베이(Halong Bay )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것이다. 32년 후 1994년에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되었다.

< 호텔 로비에서 한국음악을 연주하는 아가씨>

< 하롱베이 식당 2일동안 저녁을 여기서 먹었다>

2008.5.21 (수)

아침 6시 HALONG PLAZA HOTEL 주변을 산책하고 섬을 잇는 다리가 너무 아름다워구경을 했다

근데 일본에서 이 다리를 건설했다고 다리에 쓰여 있었다.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3편 닌빈호아,자하수동굴  2008.5.19~2008.5.23

 

▣ 닌빈

육지의 하롱베이-닌빈 호아루(Ninh Binh, Hoa Lu)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1번국도를 따라 1시간 40분 가량 약 93Km를 내려가면 그곳에 미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닌빈(Ninh Binh) 지방의 호아루가 있다. 현지에서는 이곳을 탐(Tom Coc)이라 부는데, 논숲의 하롱베이(Halong Bay in the rice paddy) 또는 육지의하롱베이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곳은 10세기(968년) 베트남 봉건왕족의 첫 도읍지였으며, AD 968년부터 1009년까지초기 12년간은 딘(Dinh) 왕조, 나머지 1036년까지 29년간은 레다이한(Le Dai Hanh)왕부터 시작되는 레(Le) 왕조의 수도였다. 리타이토 왕이 탕롱으로 도읍을 옮긴 후호아루의 수많은 문화재들은 파괴되거나 훼손되었으며, 현재 고대 왕궁터에는 현재 각각500m 거리를 두고 2개의 사원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딘킨 사원과 린킨 사원은각각 딘왕과 레왕에 헌납된 사원으로 지금도 매년 음력 3월 10일에는 많은 순례자들이이곳 호아루를 찾아와 딘왕과 레왕을 기리는 의식을 치루고 있다.

1858년 나폴레옹 3세의 다낭 공격으로 1884년 전국토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고, 73년1월 파리의 휴전협정이 성사되어 외세가 물러갈 때까지 이곳 호아루 지역은 민족정기와독립정신을 고취시킨 고향으로서 그 정진적인 지주 역할을 다 하였고, 지금은 훼손되지않은 자연으로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식민지 통치자로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고있는 프랑스 관광객이 눈에 많이 보인다.

삼판배를 타고 영화 "굿모닝 베트남" 의 배굥인 2키로의 수로를 따라 기암괴석, 지하수중동굴 등을 둘러 본다

< 삼판배를 타고 2KM 수로를 기암괴석, 지하수중동굴 등 관람>

< 삼판배를 타고 2KM 수로를 기암괴석, 지하수중동굴 아래 저멀리 거북바위가 보인다>

베트남 특유의 건물 보통가정집들>

< 저멀리 보이는 것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는 공동묘지 >

< 저멀리 보이는 것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는 공동묘지 >

< 저멀리 보이는 것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는 공동묘지 >

< 저멀리 보이는 것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는 공동묘지 >

닌빈 호아루에서 노를 좀 저었더니 온몸이 욱신 거린다  닌빈을 뒤로하고 우리는 하롱베이로 떠났다.

하롱베이로 이동을 하면서 망고를 1인당 1개씩 먹었다 가격은 1개에 1달러 정도 하였고 지금은 망고 철이라 길거리에서도 많이 팔고 있으나 가격이 비싸 베트남 사람들은 망고와 두레안 과일은 먹기가 힘들다고 한다.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2편 하노이 호치민 바딘광장  2008.5.19~2008.5.23

 

▣바딘광장

하노이의 중심 바딘광장은 베트남의 독립이 선언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지금은 국회의사당과공산당 본부 건물 등 정부 행정 건물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호치민묘가 그 맞은편에위치하고 있으며 그 주위로 호치민생가와 박물관 및 한기둥 사원을 둘러볼 수 있다.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업적을 남긴 호치민의 묘소가 있는 곳입니다.

1945년 호치민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곳으로 건국기념일이면 수많은 시민들이 모이고,평소에도 호치민 묘를 찾아오는 시민들과 관광객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호치민 생가

1954-69년에 호치민이 살았던 2층 고상식 주거와 관저의 터로 최고 지도자의가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 바딘광장 멀리 보이는 큰 건물은 호치민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곳>

호치민 생가

< 바딘광장 멀리 보이는 큰 건물은 호치민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곳>

 호치민이 평소 살던 집 생활관>

두나무가 공중에서 붙어 자라는 모습 아래사진은 호치민이 평소 살던 집 생활관>

< 사이공 관광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호치민 집무실, 아래는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을..

< 사이공 관광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새벽에 길거리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과 아래는 망고스틱과 노니열매를 파는 바구니>

MELIA HANOI HOTEL.호텔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시내를 한바퀴 돌아 보니 아침6시인데도 가족끼리 나와서 거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특이하다. 베트남 쌀국수를 먹는 사람 죽을 먹는 사람 빵을 먹는 사람 등등 가로수는 모두방랑자라는 나무로 꽃이 나무가지에 주렁 주렁 매달러 있다

<가로수 방랑자나무와 신호등 신호등은 타임이 설정되어 있었다>

<MELIA HANOI HOTEL.호텔 전경과 호텔 앞에 피어 있는 꽃 향기가 너무 좋았다>

< 바딘광장에서 단체 촬영 아래는 호치민이 귀빈을 모시고 영접한 영빈관>

<호치민 집무실, 아래는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을..>

나무의 특이한 모습>

사이공 관광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사이공 관광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사이공 관광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사이공 관광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사이공 관광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사이공 관광 대학의 학생들 사진 찍기를 되게 좋아하는데

생활관 주변 연못과 방랑자 꽃 나무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여행기  1편 진국사, 서호  2008.5.19~2008.5.23

 

2008.5.19(월)

대한여행사 와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여행 계약을 체결하고 가을에 유럽연수를 간다고하여많이 양보를 받아  34명은 기대되는 베트남 여행시작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아침 8시 30분 집합 10시40분 베트남 항공을 타기로 하고 대한 여행사

이승택과장과 짧은 미팅을 시작으로 여권을 거두어 뱅기에 몸을 싣고 장장 4시간 30분기간 여행이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늦게 시간이 가고 있었다.

 

◈ 수 도 : 하노이(Hanoi)

◈ 인 구 : 8,000만명(2002년말 기준, 약 80%가 농촌 거주)

◈ 기 후 : 고온다습, 북부 - 아열대성 기후, 남부 - 열대성 기후

◈ 면 적 : 330,991㎢(한반도의 1.5배)

◈ 주요도시 : 호치민시(Ho Chi Minh City)

◈ 주요민족 : 베트남인(88%), 중국계(3%), 타이, 무온, 메오, 모이족등 약 60여 소수민족

◈ 주요언어 : 베트남어(공용어), 영어,불어,러시아어(약간 통용)

◈ 종 교 : 불교(80%), 카톨릭(9%), 카오다이교, 호아하오교 등 종교의 자유 보장

기 후 : 몬순기후, 중북부는 열대기후

남북으로 1,600㎞의 길다란 베트남에서는 지역별 뚜렷한 기후상의 변화가 있다.

 

베트남 도착 현지시간 13:30분 우리는 간단한 여권수속을 마치고 14:30 가이드와 미팅을하였다. 인도차이나 패밀리 투어 김정중 부장 첫인상이 가이드가 맘에 든다.우선 베트남 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길거리의 작은 베트남 음식점 작아도 너무 작다.우리나라 구멍가게수준의 가계에서 베트남 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우리는 서호 및 진국사로향했다.

호암끼엔 호수

하노이 시내 중심 가에 있는 이 호수는 "되돌려 준 칼의 호수"로 유명한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명의 침략을 물리친 레 타이 투 왕이 잃어버린 검을 찾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호수에 있었는데, 거대한 황금 거북이가 수면으로 올라와 왕에게 검을 건네주고 갔다는전설이 지는 곳이다. 호수 주위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늘어져 있어 하노이 낭만을 더해주는 곳으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발 맛사지

여행중에 피로한 심신을 풀어주는 데 좋다. 중국 한방에서는 발이 온 몸의 기관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여긴다.

발맛사지는 지압의 결정체이며, 전문 지압사들이 직접 발을 맛사지하여 여행에서 쌓인피로를 풀어주어 관광을 더욱 더 즐겁게 한다. 맛사지의 순서는 우선 발을 깨끗하게 씻고,약물에 잠시 담근 후에 30-40분 정도에 걸쳐 한쪽 발씩 맛사지해 나간다.발 맛사지를 하는 아가씨들은 워낙 한국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한국말도 잘하고 대장금연속극도 보았다 하며 "사랑해 당신을 " 노래를 꾀나 잘 불렀다. 물론 노래 값도 받고....발 맛사지를 받고 호텔로 가는 길에 길거리에 노점에 위치한 생맥주한잔에 닭날개,감자구이,돼지갈비를 안주 삼아 한잔씩 하고 호텔로 돌아 왔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21편 바로셀로나 구엘공원 2013.10.9

 

구엘 공원의 주 정문으로 들어가면 모자이크로 만든 도마뱀 분수 가 있고, 그 뒤에는 살라 이포스틸라(Sala Hipóstila)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다. 여러 개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이 천장 가장자리의 난간은 위에서는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된다. 이곳은 장이 선다거나 모임이 열릴 수 있도록 설계된 장소이기도 하지만 기능적인 면으로 볼 때는 물을 모으는 곳이기도 하다. 천장으로 내린 비는 가운데가 뚫린 기둥을 통해 아래로 흘러내린다. 배수로 역할을 하기도 하는 기둥을 따라 흘러내린 물은 기둥 밑바닥에 설치된 저수 창고에 모인다. 로마시대에 사용하던 시스템을 가우디가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돌기둥이 세워진 산책로 역시 최대한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나무 모양처럼 만들었는데, 부
지를 닦을 때 나온 돌을 활용한 것이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 공원의 꽃이라 불리우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의 모습은 해 질 녘에 더 빛을 발한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미를 추구하는 가우디의 철학은 이 공원에도 적용되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길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자연 그대로를 설계에 담기 위해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길을 만들었으며, 마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신기하게 이어져 있다. 구엘 공원 안에는 가우디가 아버지와 함께 20년간 살았던 집이 있는데, 현재 이곳은 가우디 박물관이 되어 가우디가 생전 사용했던 유품들과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1900년부터 약 14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60채 이상 분양되어야 했지만 공사가 진행되던 중 구엘이 사망하면서, 3채만 분양되고 미완성 단지로 남게 되었다. 공원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그 앞으로는 알록달록한 타일 조각으로 옷을 입은 도마뱀 분수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삼은 시장이 있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 공원의 꽃이라 불리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20편  바로셀로나 성가족성당 2013.10.9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성가족 성당 ,가우디 생전 마지막 작품. 스페인 바르셀로 나에 짓고 있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다. 또한 '사그라다'는 
스페인어로 신성한 또는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파밀리아는 가족을 뜻하기 때문에 성가족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을 책임졌다. 이 건물에 대한 가우디의 작업
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의 일부이며, 2010년 11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당에서 준 대성당으로 승격을 선포
했다

 

성가족 성당(Sagrada Família)은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대표적인 건축물이다.1883년 3월 19일, 성 요셉 축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아직까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 감독을 맡았지만 생전에 완공하지 못하였다.그만큼 가우디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성당은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후원자들의 기부금만으로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작업이 무척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가우디는 죽기 전에 ‘이 작품의 주인(하느님)이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비록 미완성 작품일지라도, 가우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운 곡선, 섬세하게 조각된 내부가 인상적이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19편  스페인 바로셀로나 몬주익언덕,올림픽경기장 2013.10.9

 

몬주익 언덕은 올림픽 주경기장, 갤러리, 박물관, 야외극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복합 단지로서 시
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이곳이 문화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1929년 만국박람회(엑스포) 이후부터인
데 만국박람회의 전시관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1934년에국립 카탈루냐 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1975년에는 세계적 
예술가인 호안 미로가 재단을 설립해 개관한 호안 미로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몬 주익 언덕’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들의 귀에 익은 이름이었으며, 마라톤 금메달리스트‘황영
조’선수와 상호 등식관계로 우리 입에 오르내렸다. 바르셀로나에 찾아와서 직접 바라본 '몬 주익'은 마치 우리나라 
서울의 '남산'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리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그 높이(173m)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바다 
쪽으로 향하고 있는 산의 스카이라인은 남산(잠두봉 : 누에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형상)의 모습과 흡사하여 더욱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가장 높은 천국으로 향하는 중앙 탑을 설계할 때에도 이 산의 높이를 
넘지 않도록 170m로 제한하였다고 한다. <몬 주익>에는정상에 <몬 주익 성>을 비롯하여 우리 귀에 익은 <바르
셀로나 올림픽 경기장>과 광대한 공원 곳곳에 박물관, 미술관, 민속촌 등 시민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각종 문화시
설과 휴식 위락시설이 자리 잡고 있어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영원한 휴식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스페인, 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 18편     스페인,그라나다 헤네랄리페 정원 2013.10.8

 

헤네랄리페(Generalife)는 그라나다 왕의 여름 별궁이었다. 14세기 초에 조성되었다. 세로형 정원의 중앙에 수로를 설치하고 좌우로 분수를 두었다. 주위에는 정성껏 가꾼 꽃과 담쟁이 덩굴이 만발해 있다. 물과 정원수가 어우러진 경관은 이슬람 조경의 특징이다.헤네랄리페 정원14세기에 지어진 파티오 데 라 아세퀴아는 정원의 심장이다. 길고 좁은 관개수로가 한쪽을 흐르며, 12개가 넘는 분수가 가느다란 물줄기를 공중으로 뿜어 올리고 있다. 파르티코 데 로스 시프레세스의 북쪽 포르티코로 넘어가면, 장방형 인공 연못이 있고, 그 주위를 잘 정돈된 나지막한 생울타리가 에워싸고 있다

 

그라나다에서 알람브라 궁전으로 오르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궁전의 동쪽 높은 언덕에 그라나다 왕들의 피서를 위
한 은둔처로서 헤네랄리페(Generalife) 이궁이 있다.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이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보다 50미터
나 더 높은 서향 언덕에 위치하여 사방을 조망할 수 있을뿐 아니라 주위 경치가 아름답고 시원한 곳이어서 휴양지
로서 이상적인 곳이다.따라서 정원보다 건축 위주인 알람브라 궁전이 왕들의 상주 공간이라면, 헤네랄리페 궁전은 
건물을 제외한 공간 전부가 정원인 셈이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17편  스페인,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 2013.10.08

 

알람브라(아랍어: الحمراء, 스페인어: Alhambra)는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궁전과 성곽의 복합단지다.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졌다.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도 지역에서 머물던 아랍 군주의 저택이었던 곳으로 그라나다 시
의 남동쪽 경계에 있다. 현재에는 이슬람 건축 박물관으로쓰이고 있다. 르네상스식 건물이 카를로스 1세 때 추가되
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무어 왕조의 유물로 남은 가장 오래된 것은 알카사바라는 성곽으로 거대한 외벽과 탑, 방벽들만이 남아 있다. 알카
사바 안쪽에 알람브라 궁전이 있고, 그 안쪽에 시종들이 살던 알람브라 알타가 있다.이 궁전에서 으뜸가는 중정은 
도금양중정과 사자중정이다. 13세기말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알람브라 외곽의 ‘건설자의 정원'이라는 별장이 유
명하다.알람브라궁전에는 남부 유럽적이고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두 개의 커다란 정원이 있는데 그 주변에 많
은 방이 배치되어 있다. 궁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정원이 아라야네스 정원이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 16편 스페인 플라멩코 2013.10.8

 

 14세기부터 발전한 플라멩코는 집시·안달루시아인·아랍인·유대계 스페인인의 민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 집시들이 직업적으로 춤을 추게 되면서 플라멩코가 집시의 음악과 춤을 일컫게 되었다.보통 기타 음악과 즉흥춤을 수반하는 칸테(노래)로 구성된다. 심오하고 장중한 플라멩코는 비장감을 동반하며 죽음·번뇌·종교 등을 다룬다. 중간조의 플라멩코는 덜 심오하나 음악에 동양적 색조가 가미되는 경우가 많다. 경쾌한 플라멩코는 사랑·시골·즐거움을 소재로 한다.춤을 출 때 남성들의 발놀림은 발끝과 뒤꿈치로 탁탁 소리를 내는 등 복잡하게 펼쳐진다. 여성들의 춤은 발놀림보다는 손과 전신의 아름다움에 의존한다. 공연에는 복잡한 리듬의 손뼉치기·손가락 튕기기·추임새가 수반되기도 하며, 종종 캐
스터네츠도 등장한다.

 

스페인을 방문하면, 주요 도시에서 수준 높은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타브라오’란 곳을 찾아가 즐길 수 있다.춤을 감상할 때는 남자의 스텝과 여자의 손과 몸 동작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플라멩코 무용이란, ‘사파테아드’라고 하는 소리가 나는 스텝의 기술이고, 다음 기술은 손목에 의한 감정 표현, 팔, 어깨의 우아한 자세, 허리 놀림, 또 ‘피트’라고 하는 손가락으로 음을 내는 테크닉, 카스타넷 사용방법이다플라멩코 공연 중 ‘오레’라고 하는 흥을 돋우는 소리가 따르는데, 이 소리는 무용수, 가수, 기타리스트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복잡한 약속이 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15편  스페인 코르드바 메스키타사원 2013.10.7

 

메스키타는 모스크, 즉 이슬람 사원을 뜻한다. 아랍어로는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곳’이란 의미로 시작된 말이다. 8
세기 후반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 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에 버금가는 도시를 코르도바에 세우고자 
당시 서고트족의 교회의 일부를 구입한 뒤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게 되었고, 이는 스페인 이슬람 사원의 중심이 되었
다. 9~10세기 동안 크게 세 번 증축을 하면서 약 2만 5천 명의 신자들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엄청난 규모로 
완공되었다.

 

이 메스키타는한번에 2만5천명이 예배를 드릴수 있는 스페인의 가장 큰 모스크이며,  카톨릭 성당이다. 코르도바
는 이슬람 전성기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메스키타는 200년이 걸려서 10세기경에 완성 되었다. 8세기에 이
슬람 제국 때 모스크 건축 시작, 13세기에 레콩퀴스타 Reconquest 로 기독교가 다시 점령해서 중심부를 성당으
로 개조,  머슬림과 크리스찬 문명이 한데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있다.  

 

예배 전 전 몸을 씻는 수반이 자리했던 중정, 850개의 말굽 모양의 아치 기둥, 정교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이슬람식의 문양은 전통적인 이슬람 사원의 양식을 따랐다. 국토 회복 운동 후에는 승리를 상징하는 가톨릭 성당을 사원 중앙에 만들었으며, 수반이 있던 중정에는 오렌지 나무를 심고, 중정을 둘러싸고 있던 아치들도 모두 벽으로 막아 버렸다. 원래 말굽 모양의 아치 기둥은 1000개가 넘었었는데 성당을 세우면서 약 150여 개의 기둥은 사라졌다고 한다. 역사의 흔적으로 인해 한 공간에 두 개의 종교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건축물로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종교 건축물이다.

 

성당의 모습도 기억에 남아 있지만 메스키타의 모습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슬람이 만들어 놓은 중앙 예배실에  
하이포스타일 hypostyle 메트릭스 처럼 줄을 서 있는 850여개의 기둥이 압권이다. 모든 기둥이  부채모양의 이중 
아치로 연결되어 있고 아치의 빨간 벽돌과 하얀 벽돌이 부채모양을 만들어 일직선으로 보면 기둥숫자가 2배로 보이
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미흐랍 Mihrab은 메카를 향해 기도드리는 방향이 표시된 곳으로 대리석과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 되어있는  화려한 벽이다. 비잔틴 제국에 모자이크 장인들이 가지고 온 16톤의 모자이크 조각으로 미흐랍을 만들었다고 한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 14편 스페인 미하스 2013.10.7

 

미하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자치지역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다. 도시의 중심인 미하스푸에블로 지구는 안달루시아 지방 특유의 하얀 외벽 주택으로 가득하다. 관광이 주 수입원이며 스페인에서 가장 큰 골프 리조트인 라칼라 리조트가 있다. 20세기 전반까지 농사 외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낙후한 지역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스페인 남부 ‘태양의 해변’에 속하는 관광도시로 부각됐다.

 

하얀 마을로 유명한 미하스는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평화로운 작은 마을로 건물이 모두 흰색이다. 
높은 지역에 위치한 마을인데 멀리서 보면 흰색 집들만 눈에 들어온다. 뷰도 좋아서 별장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거리에 놓인 벤치도 흰색이다. 전망대 벽면에 새겨진 마을 이름인 미하스(Mijas)가 아름다운 색채로 수놓아있다공원으로 가던 길에 당나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알고 보니 바로 Burro Taxi라는 것으로1960년대에 당나귀들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노동자들을 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산책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관광객들로부터 받은 돈이 노동자들의 월급보다 많아지게 되어 마침내 당나귀 택시 회사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는 카페도 있고 노점상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야자수 아래 돌로 만들어진 벤치가 신기했다. 벤치가 모두 대리석이었다. 대리석 장인 Galiano가 1884년에 분수대와 벤치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카페에서 쉬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미하스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던 마을… 흰색으로 통일시켜 만든 건물들 때문에 미하스가 관광지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만약 아무런 특성 없이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었다면 이처럼 많은 사람이 찾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청동기 시대에 사람들이 살게 된 고대의 유적지라고 하는데 후에 페니키아인, 로마인, 무어인, 마침내 크리스이 살게 된 곳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나름 오랜 역사 속을 흘러온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여행기13편 b 모로코 카사블랑카 2013.10.06

 

모로코 대서양 연안에 있는 도시. 지명은 '하얀 집'이라는 뜻이다. 아랍 어로도 '하얀 집'이라는 뜻의 다르엘베이다Dar el Beida)라고 한다. 옛 이름은 베르베르 어로 안파(Anfa)인데 '작은 산, 언덕'의 뜻이다. 16세기경 베르베르 인의 도시 안파의 자리에 포르투갈 인들에 의해 도시가 건설되어 18세기 후반에 무역항으로 재건되었다유럽인가 하면 황량한 사막과 오아시스가 펼쳐지고, 미로 같은 시가지의 골목길 사이로 화려하고 웅장한 이슬람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하지만 어느 하나이색적이지 않은 곳이 없다. 중심가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은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 세워졌다는 자체만으로 꽤나 놀랍다.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중해를 통해 유럽과 맞닿아 있는 모로코는 유럽색이 짙은 국가이다. 특히 모로
코 제2의 도시인 카사블랑카는 동명의 영화로 인해 아프리카보다는 남부 유럽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북쪽으로는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대서양 연안, 동쪽으로는 알제
리, 남쪽으로는 사하라사막에 둘러싸인 모로코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아프리카보다 
유럽을 통해서 유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디나 어디서든 한눈에 보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의 건물이 있다. 바로 카사블랑카 제1의 관광명소 ‘하산 2세 사원(핫산 모스크)’이다. 높이가 200m나 되는 거대한 기둥사원이 우뚝 솟아있어 어디를 가든 눈에 띈다. 하산 2세 사원은 카사블랑카 서쪽 해변을 막아 만든 간척지 위에 지어져 실내/외에 각각 2만 명과8만 명, 합쳐서 모두 1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대규모 사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알-하람 모스크(al-Haram Mosque)'와 메디나 의 '예언자 모스크(Prophet's Mosque)' 다음으로 큰 규모다. 모스크 건설에 투입된 장인만도 1만여 명, 공사 기간은 8년이나 소요된 거대한 건축물이다.

 

높이뿐 아니라 대리석이 깔린 넓은 광장으로 인해 얼핏 보면 사원이라기보다 고급스런 궁전 같다. 기둥과 건물 외
벽, 실내 곳곳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모로코 전통 문양으로 화려함을 뽐낸다. 코란의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구절을 따라 해안가 절벽에 지어졌기 때문에사원에서 바로 대서양의 시원한 바람과 석양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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