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19~2019.4.9 22일간의 중남미 여행기 12편
페루 마추비추
가이드 박경숙사장(꼬꼬투어) T 51-444-4011-2 HP 51-976-170-652
페루 마추비추 2019.3.29 여행 11일째
우르밤바에서 기차를타고 1시간30분에 걸처 우르밤바강을 끼고 열차는 하염없이 달린다
강의 물이 심상치 않다. 지난밤에 비가많이 내렸나보다 흙탕물로 내려가는 물이 수량이
대단하다. 마치 폭포가 용을 이루는것 같다.
열차는 마추비추에 도착하여 우리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마추비추로 마을버스 모양 비슷한
버스로 20여명이 타고 올라간다 . 점심을 먹고나니 왠비가 그리 많이 오는지 모두들 우비를 입고
단단히 준비를 한다.
나는 운전기사의 배려로 바로 맞은 편에 앉을 수 있었다 기념으로 쪼코랫과 기념 볼펜을 주니
기사가 내가 사진을 많이 찍으니 눈치를 보며 운전을 한다 비디오 촬영시는 아예 차를 멈춘다.
너무 감사하다 차는 어느듯 정상을 향하여 가는 도중 기사가 몇번이나 차를 세워 미안한 마음이
영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정류소 도착을 조금 남겨놓고 나보고 사진을 찍으라고 보니 마추비추
가 보이고 전망이 좋다 연신 샷다를 누르고 나니 차가 떠나서 정류소에 도착한다.
자 지금부터 마추비추 여행을 시작해보자.
페루, 더 나아가 남아메리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유적지인 마추픽추는 하이램 빙엄(Hiram Bingham)이 1911년에 발견하기 전까지 산세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었다. 스페인 정복 이후 대부분 파괴된 잉카 제국의 유적들과 다르게 원형 가까이 보존된 채로 발견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마추픽추는 ‘잃어 버린 공중 도시’로 불리며 이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인 상과 하, 우측과 좌측, 남성과 여성, 시간과 공간의 두 기준에 따라 절묘한 위치에 의도적으로 건설되었다. 마추픽추는 와이나픽추(Huayna Picchu)라는 원뿔 모양의 봉우리와 마주보고 있는데 와이나픽추는 잉카인들의 토템으로 신봉하는 두 동물의 형태를 갖고 있다. 와이나픽추 봉우리를 앞에서 보면 퓨마의 형상으로 보이며 좌측에 있는 세 개의 작은 봉우리는 새(콘도르)가 날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잉카인들에게 와이나픽추는 지상과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신성한 산으로,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대지에 신성한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마추픽추를 방문하려면 쿠스코에서 우르밤바를 거쳐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오얀타이는 파차쿠텍왕 시대의 장군으로 왕의 딸과 사랑에 빠져 오얀타이탐보로 피신했다. 화가 난 파차쿠텍은 수차례에 걸쳐 오얀타이 장군을 공격했으나 번번이 격퇴되었고 결국 사랑을 인정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은 마추픽추로 들어가는 길목인 신성한 계곡의 입구인 동시에 군사적 · 전략적 요충지였다. 오얀타이탐보에는 군인들이 묵었던 숙소 · 종교시설 · 창고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마추픽추와 유사한 형태이다. 기찻길 옆으로는 아마존강의 원류인 우르밤바강이 흐른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로 들어가다 보면 유적지 입구에 황금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탐험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빙엄의 표지석이 있다.
마추픽추에는 평야가 적었지만, 잉카인들은 산비탈을 계단처럼 깎아 옥수수를 경작하여 오랜 세월 동안 넉넉히 먹고 살았다. 구리를 쇠만큼 단단하게 제련해 썼으며 그 고대의 방법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렇듯 강성했던 잉카 제국은 겨우 100여 년 만에 스페인 군대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의 역사 속 문명과 패망, 저항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집약해 보여 주는 잉카 최대 유적이 바로 안데스 산맥 밀림 속, 해발 2,400m 바위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공중 도시 마추픽추이다
이 도시는 1911년 발견되기 전까지 수풀에 묻힌 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기에 "잃어버린 도시" 혹은 산과 절벽, 밀림에 가려 밑에선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하여 "공중 도시"라고 불린다. 페루는 수도 리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시가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마추픽추는 산꼭대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구름이 산허리에 걸려 있을 때가 많아 산 아래에선 이 도시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다.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 천상의 음률이 공중 도시의 신비를 감싸고 돈다. 운무(雲霧)에 휩싸여 더욱 신비롭다. 잉카인들의 한이 서린 페루 전통민요가 원주민 악기 삼포냐의 음률로 울려 퍼지는 순간, 오랜 역사의 추억을 가슴에 간직한채 공중도시를 뒤로하고 쿠스코로 향하게 된다. 잉카 문명의 영원한 수수께끼 마추픽추는 왕조의 슬픔과 인디오 문명의 전설을 남긴 채 우리의 뇌리 속에 영원한 수수께끼로 잠들고 있다.
전통시장
비가많이온 터라 강물이 많다 다리를 건너 식당으로
오른쪽이 식당이 있는곳
즐비한 쇼핑가계들
식당에서 메뉴를
과일과 고기
기념으로 알카파 마후라 몇개를 저렴한 가격으로 1개 15불
기념품을 사고 인정샷
마추비추가는길
정상에 오니 비가그친다
마추픽추는 페루에서 잉카 문명의 흔적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세계적인 유적이에요. 2,300미터의 산 정상에,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절벽에 기대어 숨어 있는 신비의 공중 도시 마추픽추!
비도그치고 구름도 사라지고
중간에 비추비추가보이는곳에 차를 세우고
역시 3대가 복을 받아야 비를 피하지
버스 정류소
마추픽추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11년 미국의 하이람 빙검이라는 청년에 의해서였어요. 그는 아주 높은 산꼭대기에 환상적인 잉카 도시가 있다는 오래된 기록을 보고 찾아 나섰다가 발견한 거였지요. 마추픽추를 발견한 그는 이렇게 외쳤어요.
“와! 드디어 금의 도시 비트코스를 찾았다!”
비트코스는 잉카 제국이 어마어마하게 보유했던 금은보화가 감추어진 마지막 도시라고 알려진 곳이었고, 빙검은 그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물론 황금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세계는 잉카 제국 멸망 후 340년 동안 버려졌던 황금보다 더 귀하고 값진 잉카 제국의 유적을 만날 수 있었지요.
꼬불꼬불한 산을 돌아 돌아 산 정상에서 만나게 되는 마추픽추는 높이 5미터, 두께 1.8미터의 성벽으로 두텁게 싸여 있는 요새 도시예요. 잉카 인들은 인구 2만 명이 사는 게 가능했다는 이런 거대 도시를 어떻게 산꼭대기에 정교하게 만들어 놓았을까요? 그리고 왜 만들어 놓았을까요?
새로 복원된 가옥들
마추픽추는 가운데 있는 대광장을 중심으로 상부와 하부로 크게 나누어져 있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 도시 못지않게 여러 가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지요. 궁전이 있고,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고 의식에 사용되는 의례품을 저장하는 저장소가 있었습니다. 또 학교와 공장, 사람들이 살던 집, 묘지, 산을 계단식으로 깎아 옥수수와 약초를 재배하던 경작지도 있었지요. 천체 관측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건축물도 빼놓을 수 없어요.
사람들이 살았던 집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안데스 고원 지대의 둥근 가옥과는 달리 벽돌로 쌓은 양쪽 벽 위에 ∧자형으로 초가지붕을 얹어 놓았어요.
그리고 왕의 궁전이라 불리는 건물 밑은 감옥으로 사용된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문 입구에 나 있는 두 개의 구멍이 손을 넣어 채워 두는 장치로 밝혀졌거든요. 잉카 사회의 주요 범죄는 도둑질과 거짓말 그리고 게으름이었어요. 특히 생활환경이 어려운 산 정상의 마추픽추에서는 자기가 맡은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전체 공동체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무거운 벌로 다루어졌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추픽추의 높은 산꼭대기에는 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수로와 17군데나 되는 양수장도 보입니다. 산에서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한 방울의 물도 헛되이 버려지지 않도록 식수로 사용할 물과 농사짓는 데 쓸 물을 나누고 재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지요. 정말 잉카 인의 지혜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답니다
마추픽추는 에스파냐에 정복된 이후 5세기 동안이나 정글 안에 파묻혀 있었음에도 건물들의 지붕을 제외하고는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울창한 수림과 뾰족한 봉우리들, 신성한 계곡으로 불리며 우기에는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지형이 험한 퐁고 보에니케 골짜기가 마추픽추를 외부세계와 격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마추픽추는 태양신의 처녀들, 즉 ‘아크야’를 위해 건설한 것이라고 한다. 마추픽추를 건설하는 데 사용된 돌들은 600미터 아래의 깊은 골짜기에서 채취한 것인데 운반도구도 제대로 없었던 잉카인들은 악전고투했을 게 분명하다.
빙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이래 마추픽추는 차츰 비밀이 벗겨지고 있다. 마추픽추는 제례의식의 중심지였고 약 1200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추픽추는 테라스 형태의 농업구역과 도시구역으로 나눠져 있는데 계단식 밭에서는 옥수수와 감자, ‘안데스의 초록빛 황금’인 코카 잎을 재배했다. 가축도 따로 길렀다.
달의 신전은 유적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와이나픽추 중턱에 위치한다. 천연동굴을 이용해 다섯 군데의 벽감을 만들고 부조를 장식했다. 신전 안에는 거대한 바위의 가운데를 파서 만든 옥좌가 있지만 전설 속의 황금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빙엄은 제단 구역에서 많은 인골을 발견했는데 대다수가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선택된 여자들이었다. 발견된 175구의 미라 중 80퍼센트가 여자였고 나머지 20퍼센트는 사제와 아이들이었다. 빙엄은 현장에서 잉카제국을 상징하는 도자기 · 금속 · 섬유 등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마추픽추가 어떤 정책적인 결단(군사 전략적 측면, 실용성 미비)에 의해 포기되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하부에서 수많은 도자기 파편을 발견했는데 이는 희생 또는 제사의 의식 중에 도자기를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한다.
여행온 브라질인과 함께 사진을
전망대를 간다고 나셨지만
복원된 기옥들
집안에서 바라본 전망
200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유적지의 대부분은 가옥이나 저장고인데 지형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했고 화강암으로 건설했다. 출입문은 사다리꼴이고 지붕은 3500미터 이상의 고산지에서만 자라는 이추(Ichu)라는 짚으로 만들어 덮었다.(현재 복원된 건축물의 지붕도 이추로 덮었음) 정방형의 공동 마당을 가운데 두고 열 채씩 무리로 지어진 2층집들은 좁은 도로나 다소 돋운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다.
밑에는 우르밤바강이 흐르고
전망대를 간다고 올라 왔는데 이문을지나면 경비가 지키고 서명을 하고 시간을 적고 통과해야한다
올라가는 사람은 꼭이름을적고가야 한다 그리고 내려올때는 시간을 적고 통과해야한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시간에 쫒겨 더이상가지 못하고 내려가야만 했다.
잉카인들은 신성한 도시의 모든 시설들을 어떤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그것은 날개를 활짝 펴고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이다. 와이나픽추에서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인간들은 무질서와 방탕에 빠지기 쉬우므로 태양이 다양한 색깔의 깃털을 가진 새를 보내 영혼들을 위무해준다고 한다.
산업지구
채석장
10.왕궁,11. 의례용샘물, 12.태양신전, 13 능묘, 14 왕녀의 방
15. 콘도르사원, 16. 곡물저장소
첫번 째의 벽은 삭사이와만이나 쿠스코에 있는 잉카의 신전에서 본 벽처럼 벽전체가 종잇장 한 장 들어갈 수 없이 정밀하게 맞춰진 벽인데 마추픽추에서는 신전 건물에만 적용된다.
두번 째의 벽은 아랫부분은 신전과 비슷하게 가공된 벽이 아래에 있고 윗부분은 덜 가공된 돌을 쌓은 것인데왕궁과 귀족들의 가옥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벽 전체를 가공이 되지 않은 돌로 쌓은 것은 일반 서민의 집이라고 한다.
잉카인들이 몽사를 짓던 밭
마추픽추를 두고 사람들은 많은 의문을 품었습니다. 수십 톤은 되어 보이는 돌들을 잉카 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옮겨 왔는지, 산꼭대기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무얼 먹고 살았는지 말이에요. 워낙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보니 한때는 마추픽추가 외계인의 지구 기지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답니다. 금속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정교하게 돌을 잘라 건축 자재로 사용한 것도 외계인이 레이저로 잘랐기 때문이라고도 하고요.
이것 말고도 마추픽추가 주는 의문은 또 있어요. 마추픽추에서 100구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흔히 남자들은 공중 도시 마추픽추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산 아래에서 스페인 군대와 싸우다 전사하고, 사제로 선택된 ‘태양의 처녀’들만 남아 마추픽추와 운명을 같이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요.
주신전
앞마당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마추비추도 앞으로는 통제속에 예약된 인원만 통과할것 같다
수공업지구
복원된 가옥들
여기의 명물 알카파
저산이 모두 밭이네
해시계
수로와 양수장 말고도 마추픽추에는 놀랄 일이 많이 있어요. 마추픽추의 상부 지역 대신전 앞 네모난 돌기둥 위에 서 있는 해시계가 그 하나입니다. 돌기둥 모서리를 잇는 대각선 위로 6월의 동지각주1) 에 태양이 정확하게 통과하도록 설계되어 있지요. 또 다른 것은 신전 주위 곳곳에 보이는 산의 형상을 본뜬 돌 조각들입니다. 바로 뒤로 보이는 아이나비추 산을 비롯한 마추픽추 주변 산을 축소한 것들이라고 해요.
마추픽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천문관측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건축물이다. 하나의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인티와타나(Intihuatana, 케추아어로 태양을 끌어들이는 자리)는 해시계와 유사한데 동짓날(남반구에서는 여름) 하루 동안 사제들은 여기에서 제물을 바치며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잉카인들은 태양이 두 개의 ‘의자’를 갖고 있다고 믿었다. 북쪽의 주의자와 남쪽의 보조의자가 그것이다. 태양이 남쪽 의자에 자리 잡을 때인 하지가 한 해의 시작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인들은 인티와타나에 이마를 대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고 믿었다.
공동 마당에는 커다란 맷돌, 부피가 큰 농기구, 연료로 사용하는 라마의 배설물 저장소가 있었고 ‘추뇨(잉카인들의 주식으로 감자 말린 것)’를 만들기 위해 태양과 서리에 번갈아 노출되도록 감자를 널었다. 말린 고기 등은 줄에 매어 집 바깥에 매달았다.
왕의 무덤
종교 건축물은 주 광장 둘레에 축조했다. 정교한 부조가 새겨져 있고 반원형의 탑이 있는 태양신전,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제1신전 그리고 ‘왕의 묘’가 그것이다. 왕의 묘는 잉카 최고의 신에게 헌정된 숭배의 장소로 추정하며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잉카인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세 계단이 있는데 이는 지하(죽음) · 지상(현생) · 하늘(신)을 의미한다. 신전 근처의 왕의 궁전에는 식당과 거실 등이 있으며 마추픽추에서 유일한 화장실이 있다.
여기 가파른곳에 밭들이 농사를 어떻게 지웠을까
고지의 마추픽추에서는 물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잉카인들은 식수와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지하수가 나오는 곳에서부터 돌을 이용하여 고랑을 만들었다. 잉카인들의 돌 다루는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농사대신 잔디가 그 대신하고 있다.
일부 복원된 가옥들
일부 복원된 가옥 내부
우르밤바강이 많은 수량을 가지고 흐른다
마을에는 시장과 호텔들이 여행객들을 반기고
쇼핑도하고 알카 파가 최고인기
저녁식사 구이 이것은 40불인데 2인이나누어 20불씩 먹었다 전문집이 아니라 일행들은 익지않아 먹지도 못하고 돈만냈다.
풍요로운 농촌 배경으로
기차를 타고 율란타이탑보역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쿠스코로
역시 기차안에슨 차한잔과 쪼코랫 그리고 과자를 기념으로 준다
우리 가이드 박경숙사장
쿠스코 여자 경찰
마추비추를 걸어서 트래킹하는 코스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오른다
여기 젊음이 좋다 걸어서 오르는 사람들
계곡의 경사가 심해 눈앞이 아찔아찔 그래도 걸어서 버스는 요금이 비싸니 ....
걸어서 오르는 계곡 사이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다음 13편 다시 쿠스코에서 출발하여 볼리비아 라파스거쳐 우유니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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