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마도 여행기 3편
2017.3.5
3편 가네이시 성터, 덕혜옹주비, 쓰시마민속자료관, 예보시티전망대
가네이시성
대마도의 명산 아리아케산 (有明山 558m) 이 뒤로 솟아 있는 가네이시성은 대마도가 크게 번성했던 시기인 1669년에 소오요시자네 가 건설한 성으로 역대 대마도주들의 거쳐였던 곳이며 조선통신사 환대가 이루어 졌던 곳이기도 하다.
가네이시성은 대마도도주 소가의 거점이었으나 내분으로 소실되고 17세기 후반에 정비하여 가네이시성 정원은 현재는 야쿠라문은 성에서 주변을 감시하기위해 만든 망루역할을 하던곳으로 다이소 시대에 소실된것을 1990년에 옛문헌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덕혜옹주결혼봉축비
가네이시성문을 지나 200m 쯤 걸어가면 덕혜옹주 결혼봉축비를 볼수있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는 덕혜옹주가 1931년 5월 대마도 도주의 후손인 소오 타케유키 백작과 정략결혼하면서 대마도 주민들이 이를 축하하기 위해 높이 2.3m 폭1m의 이왕가 소가 백작 이왕가종가백작어결혼봉축개념비(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 쓰인 결혼봉축 기념비를 만들었다고한다.
덕혜옹주는 조선26대왕이자 대한제국 초대황제인 고종의 환갑에 정식비가아닌궁녀인 복녁당 양귀인의 딸로 태어나 공주가 아닌 옹주라 불렀으며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압박에 의해 1925년 3월 24일 14살이라는 어린나이에 동경 유학을 떠난뒤인 20살이 되던해인 1931년 5월8일 데마도 백작 소오다케유키와 정략결혼하게 된다.
결혼후 정신분열증에 시달려 1946년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일제의 패망으로 귀족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한 소오다케유키와 이혼하게 된다.
1962년1월26일 귀국하였고 1989년 창덕궁 낙선제에서 별세하였다.
덕혜옹주와 소오다케유키와 이혼을 하자 결혼봉축기념비는 시내의 한구석에 버려지게 되었는데 한국관광객이 많이 찾게 되자 2001년에 복원하게 되었다.
대마도 역사 민속자료관
조선통신사비 옆으로는 동백 꽃피운 동백나무가 자리잡고있으며 그옆으로는 대마도의 역사자료를 살펴볼수 있는 대마도역사 민속자료관이 자리하고있다
이곳에서도 당시 한류를 전파하였던 조선통신사 행렬도 등의 유물을 살펴볼수 있었다.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천혜의 절경, 아소만=109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대마도는 리아스식해안과 다도해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그중 아소만 일원이 최고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와타즈미 신사를 뒤로하고 산길을 굽이쳐 올라가면 대마도 최고의 명소 '에보시타케 전망대'가 나선다. 까마귀가 모자를 쓴 형상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에보시타케는 아소만을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는 대마도 유일의 전망 포인트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아소만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이 마치 오밀조밀 가꿔놓은 정원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연무가 드리워지는 날이 많아 수채화처럼 맑고 또렷한 풍광을 대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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