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9  12편 스웨덴 스톡홀롬

멜라렌 호와 살트 쇤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1252년 도시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며, 스웨덴 통치자 비례르 야를이 기틀을 마련했다.독일 뤼베크 시와 무역협정을 맺은 후 급속도로 발전했고 1523년 스웨덴의 수도가 되었다. 19세기에는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위성도시들이 발전했다. 원래의 도심인 감라스탄에 세워진 건축물들은 16, 17세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스톡홀름은 스웨덴에서 가장 앞서가는 공업지역으로 금속·기계제조업, 제지·인쇄업, 식품업, 화학 공업 등이 발달했다. 중요한 소매유통 중심지이며, 스웨덴에서 2번째로 큰 항구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교육 중심지로, 수십 개의 학문단체와 과학 아카데미가 있다.

인구 93만명


스톡홀름(Stockholm) : 스웨덴의 수도이며 발트해로부터 약 30km 정도를 거슬러 올라온 멜라렌호() 동쪽에 위치한다. 많은 반도와 작은 섬들의 위에 시가지가 자리한 탓에 넓은 수면과 운하가 많다고 해서 흔히 북구의 베네치아로도 불린다. 스톡홀름은 1250년에 스타덴섬에서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그 무렵의 교회와 시장의 광장, 불규칙한 도로 등이 남아 있다








숙소 근처에서 만난 학생 같이 사진을 찍고 기뻐하며


시내 공원에서







스톡홀름’이라는 이름은 1252년 기록물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Stock은 통나무라는 뜻이고 holm은 섬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이 지역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멜라렌 호(스웨덴어: Mälaren Laken) 상류에서 통나무를 동동 띄워 땅에 닿는 곳에 도시를 짓기로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스톡홀롬스웨덴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 도시이다. 많은 섬을 끼고 있어 "북방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회토리예트(Hötorget)에 위치한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는 매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며, 1912년에는 하계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였고, 1958년에는 FIFA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곳이다.

스톡홀롬 시청사 스톡홀름 시청사(Stockholm City Hall)’이다. 차에서 내리자 붉은 벽돌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이 나타난다. 언뜻 보아서는 교회처럼 보이지만 1923년에 건축된 스톡홀름 시청 건물이다. 무엇보다 매년 12, 노벨상 시상식 후 축하 연회가 열리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건물은 저명한 건축가 라구날 오스트베리(Ragnar Östberg, 1866-1945)’의 설계로 1911년에 시작해서 12년의 공사 끝에 1923년 완공되었다. 동서 너비 120m에 남북 폭이 60m쯤 되는 장방형의 벽돌 건물로 동쪽에 안마당 중정(中庭), 서쪽엔 시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인 블루홀과 황금의방을 두고, 남동쪽 모퉁이에다 106m 높이의 주탑(柱塔)을 세운 구조이다. ‘시청타워라고 불리는 메인타워의 맨 위는 종루(鍾樓)와 금도금(金鍍金)된 첨탑(尖塔)을 올렸다. 전망대를 겸한 종루까지는 나선형(螺旋形)으로 된 365계단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스톡홀름 시내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멋진 조망대라는데도 우린 올라가 볼 수가 없었다. 여행사의 프로그램에도 빠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녀올만한 시간도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가이드의 위로가 뒤따른다. 5월부터 9월까지 개방하니 올라가 볼 수는 있지만 통로와 계단이 좁아서 40분마다 유료 입장객 서른 명까지만 받는 다는 것이다


시청사
북유럽 특유 중세풍의 디자인이 독특한 건물 시청사입니다 !
무려 1900만개의 금박 모자이크로 장식되어서 실제로도 아주 아름다운데요.
붉은 벽돌의 다채로운 색감과 골조들 사이로 들어오는 빛들을 보고 있자면 왜 사람들이 스톡홀롬에서 꼭 시청사를 보아라라고 하는지 아실 수 있을거예요.
실제로 많은 신혼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로도 유명하답니다


 청사는 적벽돌을 즐겨 쓰는 북유럽 낭만주의 건축을 기조로 하고, 북구 고딕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식, 비잔틴과 이슬람, 동양풍 장식, 아름다운 발코니와 조각상까지 다양한 문화 요소를 아름답게 섞어낸 절충식 건물이다. 영국 시인 예이츠가 이탈리아 도시들의 르네상스적 흥분 이래 거기에 견줄만한 건축물은 없었다.’고 찬미했을 정도이니 가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설계자 외스트베리는 베네치아 두칼레궁산마르코광장 종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는데 작년에 보았던 두칼레궁이나 종탑과는 하나도 닮은 것 같지가 않다

시청사안에서 바라보는 정문


안으로 들어서서 조금만 더 걸으면 시청의 메인 홀(mein hall)블루 홀(Blå hallenm, Blue Hall)이 나온다. 그곳에 청사를 안내해주는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가이드가 안내하는 투어만 가능하다고 한다. 혼자 들어갈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예약은 기본이고 인원도 열 명 이상의 단체가 필수인데, 개인적으로 오면 다른 팀에 끼어 움직여야 하는 불편쯤은 감수해만 한다. 가이드의 설명은 영어로 이루어진다. 우리 같은 패키지여행자들에게는 자체 가이드의 통역이 뒤따른다. 아무튼 홀은 엄청나게 넓다 아예 실내 광장이라고 부르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남북 길이 50m에 동서 너비 30m, 그리고 천장의 높이는 22m에 달한단다. 바닥 넓이가 무려 15(3백 평)에 달한다니 대체 얼마나 넓은지 미루어 짐작이 갈 것이다. 이름은 블루홀이지만 색깔은 푸른빛이 아니다. 원래는 벽돌 벽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다 파란 칠을 해서 스톡홀름의 푸른 호수를 상징하려고 했었는데, 설계자인 외스트베리가 벽돌 벽을 보고 나서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해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홀의 남서쪽에 나있는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오른다. 블루홀에서 만찬을 즐긴 참석자들도 이렇게 올라와 발코니 북쪽으로 난 통로를 따라 황금의 방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한다. 다음 행사인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처음으로 도착한 방은 시 의회가 열리는 의사당(議事堂)이다. 그런데 상상 외로 규모가 작다. 크고 으리으리하던 국내의 지자체 의사당을 몇 군데 돌아본 나로서는 의외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검소함을 기본으로 삼는 루터교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의사당은 좁고 긴 공간에 배치했다. 방문객들은 왼쪽 통로를 따라 이동하며 자연스럽게 구경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 의사당의 필수품인 방청석을 깜빡 잊을 뻔 했다. 입구 맞은편 위쪽에 200명쯤 앉을 수 있는 방청석이 마련되어 있다. 또 하나. 의장석 위에 달린 닫집이 눈길을 끈다. 권위의 상징일 것이다. 동양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격자형 벽을 비롯한 가구들은 당대의 유명 디자이너였던 카를 말름스텐(Malmsten 1888~1972)이 만들었다고 한다.




각종 메달들도 전시되어 있다. 새겨진 얼굴들이 거의 비슷한 걸 보면 노벨상 시상과 관련된 메달들이 아닐까 싶다.


[ 노벨상 ]

18331021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은 18961210일 이탈리아 산레모에 있는 별장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리고 그가 18951127일 파리에서 작성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보관해두었던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재산은 유언집행인에 의하여 안전한 유가증권에 투자한다. 그 이자는 매년 그 전해에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금형식으로 분배해야 한다.”




그런데 의사당의 천장이 예술이다. 높이가 19m나 되는 천장의 구조물인 트러스(truss)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네 전통가옥으로 치면 들보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천정은 바이킹 배를 뒤집어놓은 모양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이런 모든 결정 역시 설계자인 외스트베리의 발상이란다. 천장에는 그림을 그려놓았다. 바이킹 전통 문양이란다. 옆방으로 이동하기 전에 하나 더 알고 넘어가자. 스톡홀름 시의회의 정원은 101명이다. 원래는 100명 이었으나 투표 때 가부(可否) 동수가 자주 생겨 이를 막기 위해 1명을 추가했단다. 또 하나, 회의는 3주에 한 번씩 월요일 오후에 열리는데, 의원들의 보수(報酬)는 없고 그저 교통비 같은 실비(實費)만 제공될 따름이란다. 다들 생업에 종사하면서 시민들을 위한 일에 자원봉사 한다고 보면 되겠다. 하긴 이런 무보수 봉사는 선진국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랐으니 이런 좋은 점들은 스스로 따랐으면 좋겠다.




시청사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황금의 방(Golden Hall)‘이다. 길이 44m의 장방형 홀인데 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란다. 그래서 처음에는 만찬장으로 사용되다가 연회의 참석자가 1천명을 넘기면서 만찬은 블루홀로 옮겼고, 이곳에서는 만찬 후의 무도회장으로만 사용된단다. 정면의 벽에 그려진 여신은 멜라렌호와 스톡홀름의 수호 여신인 멜라렌호의 여왕(Mälardrottning)‘이다.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였던 에이나르 포르세트(Einar Forseth 1892-1988)‘가 그렸는데, 여신의 큰 눈과 입은 세상을 살피고 바르게 말하는 의미이고, 뱀 모양의 머리카락은 멜라렌호의 파도를 나타낸다고 한다. 왼손에 든 왕관은 여신이 내준 스톡홀름을, 그리고 오른손의 홀()은 권위를 상징한단다.



벽은 물론이고 창문 주변까지 빈틈없이 금빛 모자이크가 들어차 있다. 아니 금빛이 아닌 곳이 없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일일이 금박을 입힌 유리조각 1900만개로 만들었는데, 순금이라 할 수 있는 23.5K 금박이 11kg이나 들어갔다고 한다. 아무튼 가이드의 설명은 꽤나 길게 이어진다. 그만큼 자랑할 게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녀가 가장 장황하게 늘어놓은 부분은 그림 안에 들어있는 상징물들 이었다. 여신이 옷으로 감싸 무릎 위에 얹은 건물은 스톡홀름 시청이라고 했고, 여신의 왼쪽 아래에 그려져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에펠탑, 마천루 등은 서양을, 그리고 오른편에 보이는 코끼리나 낙타, 터키 국기 등은 동양을 각각 상징한단다. 따라서 스웨덴이 동서양의 중심에서 화합을 이끌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대단한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시청사 건물 옆에 누워있는 저분은????

시청사 앞의 바닷가 전망 죽여준다...



청사 밖으로 나오면 바로 멜라렌 호반에 접해있는 잔디밭이다. 시원한 그늘 쪽에 벤치가 놓여있으니 잠깐의 짬을 내어 쉬었다 가면 어떨까 싶다. 호수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남쪽(아래 사진의 스웨덴 국기 뒤쪽)으로 보이는 리다르홀멘(Riddarholmen)'기사(귀족)의 섬'이라는 뜻이다. 구스타프 왕가와 왕족을 비롯한 스톡홀름 귀족들이 살던 곳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 작은 섬엔 왕족, 귀족들의 옛 궁과 저택이 있었으나 1697년 대화재 때 트레 크로노르(세 왕관)성이 타버린 뒤로는 관공서, 법원, 국립도서관, 상인들의 사무실이 들어섰다고 한다.



코너를 돌자 황금빛의 관이 하나 모셔져 있다. ’비르예르 알 왕(Birger Jarl, 재위 1250~1266)‘의 황금관이란다. 그는 멜라렌(Maelaren)호와 발트 해가 만나는 지점에 떠있는 작은 섬(Gamla stan)에 성채(城砦)를 쌓아올렸다. 그리고 섬 주위에는 통나무(Stock)로 목책을 친 다음 섬 양쪽으로 흐르는 물길을 수문으로 막아 선박의 입출항을 감시 통제했다. 스톡홀름의 시작이며, 그가 스톡홀름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이다. 또한 그는 법률을 정비함으로써 최초의 중앙집권형 왕국도 탄생시켰다. 그런 그가 왜 저런 곳에 누워있는지 모르겠다.

바닷가 쪽에서 바라본 시청사


시청사 앞 조각품 남자상과 여인상
















시청사 앞에서 만난 자유여행하는 학생 영국에서 공부중에 여행을  시청사 전망대 입장권 시간이 남아 우리랑 같이 시간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희선이라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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