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산은 예당저수지 바로 곁에 있으며 저수지의 서쪽에 솟아 있는 산으로 대흥면 사람들은 대흥산이라 부른다.
봉수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아 가족산행을 하며 산성에서 산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고,
효제비에서 효도와 형제우애의 생생한 윤리교육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봉수산 산성안의 산마루에는 억새가 많아 한껏 가을 정취를 느낄 수도 있다.
봄이면 봉수산은 충남의 진달래산으로. 산 중턱에 있는 임존산성 성곽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길은 완만한 경사지만 지루하지 않고, 정상 부근에는 빛바랜 갈대가 우거져 있고 오른쪽 성곽 아래에는 봉수산의 최대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
산아래의 예당저수지를 내려다 보는 멋이 각별하고 도침대사가 창건했다는 대련사도 가볼만 하다.
흥성군 금마면쪽에서 오를 수도 있지만 예당 저수지쪽에서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볼거리도 많고 교통이 편리하다.
백제 멸망후 달솔 복신, 스님 도침 장군 흑치상치 등이 부흥운동을 벌인 유서 깊은 성으로
백제 유민들의 충혼이 담겨 있는 임존성은 사적 90호로 지정됐다.
봉수산 산정에 있는 둘레 3km의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벽의 높이가 약 2.5m, 폭이 3.5m이다.
성내는 너비 7-8m의 내호가 둘러져 있다. 성벽 외면은 석축이며 내면은 토석을 함께 축성했다.
구조적 특징은 네모퉁이로 견고하게 하기 위해 다른 곳보다 약 2m 정도 더 두껍게 쌓고
성문의 좌우에 일부를 연결해 치성처럼 장방형의 석축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당호의 아름다움과 서해 바다의 북쪽 삽교천호,
기름진 광야 등 내포 지방의 조망은 깊은 유서와 더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대련사
656년(의자왕 16)에 백제의 의각(義覺)과 도침(道琛)이 창건하였으며,
845년(문성왕 7)에 무염(無染)이 중창하였다.
대련사라고 한 것은 가까이에 있는 임존성(任存城) 안에 연당(蓮塘)과
연정(蓮井)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에는 1648년(인조 26)과 1619년(숙종 17), 1745년(영조 21)에 각각 중수하였다.
그 뒤 보월(普月)이 1836년(헌종 2)에 수선당(修禪堂)을 중수하였고,
1843년에는 노전(爐殿)을 신축하였으며, 1849년에는 법당을 중수하여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과 노전,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130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면 3칸, 측
면 2칸의 맞배지붕인 극락전은 1975년까지 원통보전이라 하였으나, 해체,
보수 때 이 건물 뒤쪽에서 '극락보전'이라고 쓴 현판이 발견되어 법당의 이름을 바꾸었다.
이밖에 법당 앞 뜰에는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78호인 대련사 삼층석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