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9 중남미 여행기 17편 칠레 산티아고
2019.3.19~2019.4.9 22일간의 중남미 여행기 17편
칠레 산티아고
가이드 유중혁
칠레 산티아고 2019.4. 2 여행 15일째
라파즈에서 출발한 비행기 LA893 오전8시30분에 출발하여 12시30분에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먼저 가이드미팅후 산티아고에서 2시간거리 아름다운 해변도시 바나멜마르를 보고 발파라이스 항구에서 전망대를 관광한다. 해변도시가는도중 중간에 와인공장을 가보기로하고 시음도해본다.
출발해보자
정식명칭은 칠레공화국(Republic of Chile)이다. 북쪽으로 페루, 북동쪽으로 볼리비아, 동쪽으로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며 서쪽으로 태평양, 남쪽으로는 남극해에 면한다. 볼리비아가 태평양 연안 해양출구를 요구하면서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영사관계만 유지하고 있다. 국명은 페루의 잉카족(族)이 아라우칸족을 정복하는 데 실패한 뒤 틸리(Tili)라는 당시 족장의 이름에 빗대어 아콩카과 계곡을 칠리(Chili) 계곡이라고 불렀다는 것, 아콩카과 계곡이 칠리라는 이름의 계곡과 도시가 있는 카스마(Casma) 계곡과 유사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등의 설이 전해진다. 행정구역은 13개주(region)로 되어 있다.
산티아고 데 칠레(스페인어: Santiago de Chile, 문화어: 싼디아고 데 칠레)는 칠레의 수도이다. 간단히 줄여서 산티아고(Santiago)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5,278,044명이며 중부 계곡에 위치해 있다. 인구는 1962년 월드컵 대회가 열린 4개 도시 중 하나이다. 근교를 포함한 도시 지역의 인구는 580만 명으로 세계 48위이며, 남미 유수의 세계 도시이다.
1541년에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원래 명칭은 신 엑스트레마두라의 산티아고(Santiago de la Nueva Extremadura)였다.
안데스 고봉들 위로 만년설이 뒤덮여 있고 그 절경을 병풍 삼아 해발 520m의 분지에 자리 잡은 산티아고는 좁고 긴 칠레의 국토에서 정 가운데쯤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4계절을 가지고 있으며 칠레 인구 약 1,700만 명 중 5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거대한 수도다. 분지 지형인 탓에 많은 매연이 발생하여 스모그가 낀 날이 많지만 맑은 날에는 도시의 뒤로 펼쳐진 안데스 산맥의 설산을 감상할 수 있다.
칠레 입국카드
칠레 중앙부 안데스 산맥과 해안산맥 사이에 전개된 분지 위에 있으며, 높이 450~650m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1541년 에스파냐의 페드로 데 발디비아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최초의 요새가 산타루시아 언덕에 구축되었다. 그 후 지진 ·홍수 ·대화재 등 여러 차례의 재해로 파괴되었으나 기후가 양호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관광객이 많다.
현지 가이드 유중혁
칠레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며 인구와 제조업체가 집중되어 있다. 섬유를 비롯하여 식품가공·피혁·피혁제품·화학약품·철강·기계·전기기구 등의 공장이 있고, 주변의 비옥한 중앙저지에서 산출되는 곡물·포도·채소 등을 집산한다. 시가의 중심부에는 근대적인 고층건물이 많으며, 1647년 파괴되었다가 1748년에 재건된 카테드랄을 비롯한 많은 교회, 남아메리카 최대를 자랑하는 국립도서관·국회의사당·관청·대통령관저·국립박물관·칠레대학·가톨릭대학·시립극장·금융기관 등이 있고, 북쪽의 크리스토발 언덕에는 22m의 성모 마리아상(像)이 세워져 있다.
2시간거리를 달리면서 좌우 모두 포도밭이다
시의 서쪽 약 150km 지점에 있는 발파라이소는 산티아고의 외항(外港)이다. 종단 철도는 북쪽의 아키케에서 남쪽의 프에르토몬트까지 통하며, 발파라이소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통하는 안데스 횡단철도에도 연결되어 있다. 남서쪽의 교외 로스세리요스에는 공항이 있다.
와인공장 시음겸 공장 견학
배럴은 한개당 약 $1,000. 미국에서 수입해 온 것들이고 수명은 약 8년. 한 배럴에 약 250리터가 저장이 된다고 하네요.
이스터섬에있는 모아이석상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건축물로는 총독 관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조폐국, 영사 재판소, 산프란시스코 교회, 산토도밍고 교회, 레콜레타 프란시스카나, 자비의 교회 등이 남아 있다. 코우시뇨 궁전이 대표적인 19세기 건축물이며 미술궁전, 국립도서관, 연합 클럽 등에 20세기 초의 양식들이 반영되어 있다. 현대식 건축물은 비타쿠라, 산루이스 산, 로쿠로에 있는 주거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이스터섬에있는 모아이석상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산티아고 시는 칠레의 철도 중심지이다. 서쪽에 있는 산안토니오의 여러 항구와 북서쪽에 있는 발파라이소에 연결되는 고속도로와 철도 경유지로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지하철이 있으며 푸다우엘에 있는 국제공항과 로스세리요스에 있는 공항을 통해 항공교통도 이용할 수 있다. 군용비행장인 옐보스케뿐만 아니라 로카스티요와 토발라바라고 하는 소규모 민간용 공항도 2개 있다.
와인 공장안의 포도밭 한송이를 먹어보니 알은 작은데 무척달다 설탕덩어리같다
우리가 시음한 와인 너무 달고 맛있어 모두들 한잔씩
우리가 시음한 와인 11달러 진짜 맛은 있는데 가방무게 때문에 1개 사신분도 저녁에 호텔에서 먹고
가방무게 20KG마추기 힘들어 사계절 옷을 모두 가져와서
시음주를 따라주는 창구 에서 먹어보고 직접사기도 했다
여기에서 생산된 와인들 한국으로는 수출을 하지 않는다고
종류도 무궁무진하고 가격은 와인도수에 따라 결정 보통 7불~ 20불이내
포도밭의 알맹이 처럼 와인도 무척 단것이 특징이다. 5,990페소 8.5달러
와인가격이 5,000페소 약 7달러
도수가 가장 약한와인 2,300페소 3.3달러
우리가 시음한 와인 7,990페소 11.4달러
와인공장안의 포도밭 포도가 작으면서 무척달다
성모상
산티아고 성지 순레길의 성당 일정에도 없는길을 가이드에게 부탁하여 잠시 들린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작은 성당인데 옛날 이곳에 큰지진이 있었는데 모든건물이 파괴되었는데 여기 성모님 상은
전연 파쾨되지않고 온전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현재에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많은 순레자들이
행사때는 세계에서 순례객들이 몰려들어 고속도로를 통제하고 순레자들을 맞이한다고...
조그만 아담한 성당
성당 내부
제단이 아담하고 예쁘다
해변도시 비나멜마르 바닷가 콘도 빌라들
산티아고는 칠레의 주요 공업 및 농업 지역이다. 수도이자 주도인 산티아고 시에 국내 공업 및 상업 활동의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는데, 그 생산 유형은 다른 남아메리카 도시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주요 철도공작창이 있는 산베르나르도, 종이 및 석고가공의 중심지인 푸엔테알토가 있으며, 멜리피야·탈라간테·부인 등에서도 대규모의 농업·무역·가공산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낙농과 육우생산 비중이 크고 주요작물은 곡물·포도·감자·콩 등이다. 구리·석고·석회석 등도 채광한다.
1541년 스페인 군대에 의해 산타 루시아 언덕에 최초의 요새가 세워지며 산티아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현재는 칠레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대부분의 기능이 모여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비중이 매우 큰 도시다. 서쪽 150km 지점의 해안가에 위치한 발파라이소는 산티아고의 외항(外航)으로 산티아고 주민들뿐만 아니라 배낭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 아름다운 항구이다. 기회가 된다면 들러 보도록 하자.
해변가의 선인장들과 뒤에 사막이
스페인이 지배하던 동안 산티아고는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체커판 모양의 도시윤곽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1800년대초 북쪽과 남쪽, 특히 서쪽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마포초 강 남쪽 제방은 물이 빠져나가 공공 산책로로 바뀌었으며, 현재 알라메다베르나르도오이긴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독립전쟁(1810~18) 때 결전인 마이푸 전투가 도시경계선 외곽지대에서 일어나 산티아고는 피해를 조금밖에 입지 않았다. 1818년 칠레가 독립하면서 공화국 수도로 지정되었으며, 그후 국가의 부가 이곳으로 집중되었다.
어딜까나 개팔자가 상팔자
철새들의 보금자리 바위가 온통 갈매기들의 배설물로 하얗게 변하고
선인장들의 보금자리
조개 조각품
이스터섬에있는 모아이석상 1개를 여기다가 전시하고 관광객을 맞이하고있다.
이스터섬에있는 모아이석상 1개를 여기다가 전시하고 관광객을 맞이하고있다
산티아고는 유난히 벽화가 많다 지금부터 벽화구경을 해보자
해변가의 마을 벽화가 유명하여 가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시작한다
엘리베이터 안의 산티아고 대학생들과 인정샷
바닷가 해변마을 지도
여기서부터 벽화 그림 시작이고
그림의 개성을 살려 만화와 개그가 포함되어
산티아고는 유난히 벽화(라고 쓰고 사실상 그래피티라고 읽어야 하겠지만)가 많은 도시.
Bellavista 지역에 가면 꽤나 수준높은 (?) 그래피티들을 만날 수 있다.
일부는 의도적으로 색칠을 권장한듯한 그래피티도 있고,
자생적으로 태어난 그래피티들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괜찮은 볼거리가 됨에는 틀림없다.
지금부터 벽화 구경하기
계단도 피아노로 그리고
전봇대에도 각종조각품들이 널려있고
저녁식사 와인과 곁들여
대통령궁
대통령궁 경비원들과
대통령궁 경비원들과
칠레의 청와대, La Moneda 궁전.
둥근 철제 돔을 가진 칠레 증권거래소 건물은 산티아고 센뜨로를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칠레의 청와대, La Moneda 궁전. 어지간해서는 들어가기 힘든 청와대와는 달리 자유롭게 건물을 드나들 수 있고,건물 양쪽으로는 큰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칠레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나는 순간이었던 1973년 피노체트 쿠테타가 일어났던 바로 그 곳.
칠레의 축구사랑
중앙광장
만일 누군가가 산티아고에 놀러온다고 한다면 반드시 보여주고싶은 건축물 1위.
Plaza de Armas에 있는 대성당이다.
1500년대에 처음 만들어져서, 지금 있는 건물도 지어진지 20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지금까지 가본 그 어느 성당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누구말로는 남미에서 최고라고 하고, 누군 또 아니라고 하던데 그건 나중에 한번 재봐야겠다)
언덕 꼭대기에는 리우의 그리스도상과 서로 마주보고있다는 유명한 성모상이 있다.
아르마스광장 체신청빌딩
산티아고 대성당 1558년에 건축 칠레카톨릭의 총본산
산티아고 대성당 야고보 상
산티아고는 라코루냐 시에서 남서쪽으로 51㎞ 떨어져 있으며 사르 강과 사렐라 강의 합류지점 가까이에 있다. 스페인어로 '사도 야고보'를 뜻하는 이름의 이 도시에 야고보의 성골함이 있다.
813년에 근처의 파드론에서 발견된 무덤이 44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사도 대(大)야고보의 무덤임이 초자연적 방법으로 밝혀졌다고 알려졌다. 야고보의 유골은 스페인으로 옮겨졌는데 야고보는 스페인에서 전도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유골의 발견으로 스페인 그리스도교는 반전의 전기를 마련했는데, 당시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리스도교도들의 세력권은 반도 북쪽의 좁고 길다란 땅에 국한되었다. 그 무덤 위에 아스투리아의 알폰소 2세가 흙으로 지은 교회를 알폰소 3세가 석조 교회로 재건했다.
순레길 행사 안내
야고보 무덤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 도시는 예루살렘과 로마에 이어 중세 때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교 순례지가 되었다. 997년 무덤을 제외한 도시 전체가 코르도바의 무어인 칼리프의 군사령관이었던 알 만수르 아브 자파르(알만조르)에 의해 파괴되었다.
1078년 레온과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의 명으로 마요르 광장 동쪽 끝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1128 봉헌, 1211 완공)은 층계 위에 페르난도 카사스 이 노보아가 지은(1738~47) 바로크 양식의 서쪽 정면(엘오브라도이로)을 갖추고 있다. 성당 내부에서는 거장 마테오가 로마네스크 양식에 고딕 양식의 특징을 가미해 만든 포르티코데라글로리아 현관이 가장 인상적이다. 정면 뒤에 있는 이 현관은 3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졌으며 '최후의 심판'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정면 뒤에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
다음 18편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