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후기 1편

2019.4.9 중남미 여행기 5편 쿠바 하바나 헤밍웨이 혁명광장

차세대2 2019. 4. 30. 09:28

2019.3.19~2019.4.9 22일간의 중남미 여행기 5편

쿠바 하바나 가이드  현지인 마레

쿠바 하바나   2019.3.23


칸쿤을 출발하여 1시간 30분만에 카브리해 지역 최대도시 쿠바의 수도 하바나에 도착하였다.

여기애서는 한국인이 없어 현지인 가이드 마레 씨가 한국말을 배워 가이드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알아 듣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아들을수가 있었다.

먼저 간곳은 쿠바독립의 아버지 이자 쿠바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호세마르티 기념관 여기는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구경만하였다. 이곳에서는 대통령이 거주하고있어 갈수가 없었다.

다음 쿠바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활을 하고있는 혁명광장에서 인정샷을 날리고, 존엄광장, 말레꼰 산책로를 관광하고 헤밍웨이 박물관을 투어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쿠바 하바나

쿠바 섬 북쪽 해안선의 서쪽 끝에 있는 경제·정치·문화의 중심지이다. 1976년에 실시된 행정개편 때 시의 경계가 확장되어 옛 아바나·마리아나오·레글라·과나바코아·산티아고데라스베가스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지역이며, 정치적·행정적 단위이다.
기후는 열대성이지만 무역풍, 따뜻한 앞바다의 조류, 5~10월에 계속되는 우기 등으로 한결 완화된 열대성기후가 나타난다. 근채작물·커피·과일 등의 재배지로 중요하고 낙농업·가축생산지로도 유명하며 쿠바에서 가장 중요한 공업·수입·유통의 중심지로 수입·수출 교역은 대부분 아바나 항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바나는 옛날에 시의 중심지로 식민지시대의 정통양식으로 된 역사적 건물들이 많다
.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한 현대적 시가지에는 과거 식민지시대의 유적들과 현대적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항구 바로 곁에 있는 아바나는 옛날에 시의 중심지로 식민지시대의 정통양식으로 된 역사적 건물들이 많은 곳이다. 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건물은 1793년에 완공된 캡틴스제너럴 궁전이다. 라레볼루시온 광장 주변에는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몇몇 현대적 건축물들이 있다.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아바나 성벽은 파괴된 채로 여전히 남아 있으며, 모로 성을 비롯한 오래된 군사건축물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식민지시대의 아름다운 교회와 시민공원도 여러 개 남아 있다. 정부와 쿠바 공산당중앙위원회가 아바나 시에 있으며 아바나대학교는 훌륭한 교육기관으로 이름이 있다



혁명광장 호세마르티



혁명광장에는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던 호세 마르티를 기념하는 기념탑과 동상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쿠바하면 혁명가 체게바바가, 체르게바하면 혁명광장이 떠오르지만 

그는 알르헨티나 의사 출신이었으나 쿠바의 혁명을 이끌다가 미국 CIA 요원에 의해 피살당했다.

고향 아르헨티나보다 쿠바의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슴을 이 광장은 말해주고 있다.

쿠바 아바나 가이드 마레씨 설명이 진지하다.

호세 마르티를 기념하는 기념탑과 동상이


체 게바라 기념관.
체 게바라를 비롯 39명의 겔리 라 중 31구 사채가 이곳에 묻혀 잇고 체 게바라 박물관도 잇다.어릴 적 사진, 학교 성적표, 의대 졸업장, 의사 가운, 치과 도구들 카메라 등의 소장품과
카스트로와 찍은 사진, 부부 사진, 야구와 골프 침대에 누워잇는 모습 등 사진 등이 많이 있다.




쿠바는 자동차 수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5~60년대 차량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어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온듯한 착각속에 빠지게 된다.  이차들로 영업을하면서 살아간다

멋진 영업용자가용 타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한번타는데 50달러






쿠바는 자동차 수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5~60년대 차량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어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온듯한 착각속에 빠지게 된다



점심은 현지식으로 쿠바 음악을 들으며



사회주의의 모토가 그렇듯 쿠바는 나 혼자만의 삶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친절함과 배려가 몸에 밴 국민성을 갖고 있다.

또한 다인종 국가인지라 인종차별이 심한 때도 있긴 했으나 카스트로 혁명 이후엔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노력으로 지금은 가장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로 손꼽힌다.

그 단적인 예가 시내를 질주하는 차량들이 5~60년 올드카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고,

우야든동 콜롬버스 말처럼 쿠바는 정말 아름다웠다.

쿠바하면 먼저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과 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릴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미국과 남 아메리카 대륙의 사이에 위치하여 아메리카 대륙의 열쇠라고도 불릴만큼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쿠바는 1959년 부터 우리와의 교류를 단절한 채 같은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90년 들어  우리와 다시 수교를 맺고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이 지구상 몇 안되는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를 아무런 장애없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헤밍웨이 살던집

미국의 소설가. 제1차 세계 대전 때 종군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과 용감하게 싸우다 패배하는 인간의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표현했다. 대표작으로는 전쟁의 허무함과 고전적인 비련을 주제로 한 ‘무기여 잘 있거라’와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이 있다. 1952년에는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장편 소설. 1930년대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젊은 대학 교수인 로버트 조던이 게릴라 부대에 참가하여 교량 폭파 임무를 수행하고 총에 맞아 쓰러지기까지의 일을 그리고 있다.
*줄거리 : 1937년 스페인 내란이 한창일 무렵 로버트 조던은 교량 폭파의 임무를 띠고 근처 동굴에 숨어들었다가 거기서 마리아라는 처녀를 알게 된다. 조단과 마리아는 곧 사랑에 빠지게 되고, 철교를 폭파하기 전날 밤, 마리아는 조단에게 자신이 파시스트에게 능욕을 당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이튿날 작전 개시를 앞두고 조던 일행은 적의 공격을 받지만 가까스로 철교를 폭파하는 데 성공하고, 철교는 두 동강으로 끊어진다. 비록 작전은 성공했지만 조던 일행은 적의 맹렬한 반격으로 인해 많은 인명 손실을 보고, 조던과 마리아, 몇몇의 게릴라들과 집시들만 살아남는다. 그들은 몸을 숨기고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조던은 마리아와 일행을 도피시킨 후 총을 맞으며 안간힘을 다해 미친 듯이 적을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


노인과 바다

중편 소설.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늙은 어부가 물고기와 벌이는 사투를 통해 패배를 극복하고 절망와 허무를 뛰어 넘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준다.
*줄거리 :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늙은 어부 샌디에고는 84일간이나 고기를 못잡는다. 처음 40일은 한 소년과 같이 있었지만 고기를 잡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자 소년은 다른 배를 타게 된다. 어느 날, 노인은 큰 고기를 만나 사투 끝에 물고기를 잡는다. 항구로 돌아오는 도중 상어떼를 만나는데 사투 끝에 상어는 죽고 물고기는 뼈만 남게 되지만 노인은 만족해 한다. 마을 사람들은 고기 뼈를 보고 고기의 크기에 놀라며, 집에 돌아온 노인은 아프리카의 사자 꿈을 꾼다.


미국사람 헤밍웨이가 세째 부인과 함께 세계적 명작을

낳았던 집이다. 이 집도 그의 세번째 아내가 마련해 준 집이라고 한다.

세번째 부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세계의 명작, 노인과 바다를 탄생시켰다고



미국사람 헤밍웨이가 세째 부인과 함께 세계적 명작을 낳았던 집이다. 이 집도 그의 세번째 아내가 마련해 준 집이라고 한다.

세번째 부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세계의 명작, 노인과 바다를 탄생

헤밍웨이가 청새치 낚시를 즐기던 포구가 저 멀리 보인다.

자유분방한 그의 삶이 말해주듯 그가 남긴 유품들 역시 다양하고 취미 또한 다양했던듯 싶다.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와 하늘, 어두운 밤하늘을 수 놓았을 별들을 보며 그는 또 다른 글 소재로 상상의 나래를 폈을 것이다.

블랙, 린다 등 팻말이 보인다, 헤밍웨이가 반려견으로 기르던 고양이들의 무덤을 만들어 그들의 혼을 기리고 있다. 오른쪽 린다라는 팻말을 보고 나는 그 부인들 묘지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짐작을 했다.  그리고 블랙이라는 팻말을 보곤 이건 아닌데~ 사람 이름이 아닐지도 몰라~~~ 그랬다, 반려견


1899년 7월 21일 미국 시카고 교외의 오크파크에서 출생하였다. 고교시절에는 풋볼 선수였으나,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의 <스타 Star>지(紙) 기자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 의용병으로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이 되어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 중 다리에 중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 휴전이 되어 1919년 귀국하였다. 전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지의 특파원이 되어 다시 유럽에 건너가 각지를 여행하였고,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파리에서 G.스타인, E.파운드 등과 친교를 맺으며 작가로서 성장해간다.

헤밍웨이가 입던 군복

 

헤밍웨이는 61년 미국과 쿠바의 단교로 7년의 쿠바생활을 접고

본국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2년뒤 우울증, 편집증, 알콜중독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쿠바의 지도자 카스트로는 헤밍웨이의 열혈 애독자 중 한사람이었다.

태어난 조국보다 더 사랑했던 쿠바에서 쫒겨난 상실감이 그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헤밍웨이는 아프리카 사냥 경험을 소재로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이라는 수필집을 남겼다.

벽에 걸린 동물 박제들은 모두 그가 직접 사냥을 통해 얻은 그가 남긴 문학작품만큼 큰 유산이 아닌가 싶다.


자유분방한 그의 삶이 말해주듯 그가 남긴 유품들 역시 다양하고 취미 또한 다양했던듯 싶다.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와 하늘, 어두운 밤하늘을 수 놓았을 별들을 보며 그는 또 다른 글 소재로 상상의 나래를 폈을 것이다


헤밍웨이집에서 본 시내풍경 아름답기만하다.

헤밍웨이는 61년 미국과 쿠바의 단교로 7년의 쿠바생활을 접고  본국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2년뒤 우울증, 편집증, 알콜중독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쿠바의 지도자 카스트로는 헤밍웨이의 열혈 애독자 중 한사람이었다.

태어난 조국보다 더 사랑했던 쿠바에서 쫒겨난 상실감이 그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강을 건너 숲 속으로』(1950)는 이전 소설의 재판(再版)이라 해서 좋지 못한 평을 얻었지만, 다음 작품 『노인과 바다』(1952)는 대어(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단편이다. 심볼리즘과 운율을 유감없이 구사하여 그린 용기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생전에 쓰기를 벼르다가 끝내 쓰고야 만 작품”이라고 작가 자신이 말한 니힐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헤밍웨이가 즐겨 탔던 보트다. 아마 이 보트를 타고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됬던 청새치 낚시를 즐기지 않았을까 싶다.

헤밍웨이 집앞에서 작가를 생각하는 필자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자 쿠바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으며, 3번째 결혼 역시 파탄에 이르자 4번째로 런던에서 만난 통신원 메리 웰시와 결혼해 여생을 함께 보냈다.

헤밍웨이 집앞에서 쉬면서 포즈도 취해보고


헤밍웨이 기념품 가계

기념품들이 조잡하여 살만한것이 없다


종군기자 경험을 살려 <무기여 잘있거라> 라는 명작을 남겼고,

에스파니아 내전을 생생히 그려낸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작품은

그를 죽어도 죽지 않는 불멸의 작가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


헤밍웨이는 이 호텔에서 집필 활동을 많이 한걸로 유명하고 쿠바의 독재자 카스트로 마저도

그의 작품 애독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쿠바의 혁명후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자

헤밍웨이는 그 이듬해 본국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의 삶도 비극적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만약에, 어쩌면~등 이런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만약에 만약에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세계의 문학사는 크게 달라져 있지 않았을가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쿠바의 내전을 기억하라고 남겨진 유물들

노인과 바다의 배경지 코히마르,

대어를 낚아 만선을 이루고자 거친 파도와 싸우던 늙은 어부의 치열한 삶을 그려냈던 작품 노인과 바다로 그는 노벨 문학상을 거머 쥐었다.

중학교때 숙제로 읽었던 그 작품을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읽는 계기가 되었고 내 여생을 그리는 밑 그림이 되는 여행이 되기에 충분했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지 코히마르, 성 전망대 겸 등대

곳곳에 세워진 헤밍웨이 동상  쿠바는 헤밍웨이가 먹여살린다는 얘기도

헤밍웨이 동상을 가리키는필자

전망대 안에서도 호세마르티 사진들이


기념으로 인정샷을 남기고




엘모로 요새


쿠바 공동화장실 화장실 문이 없다  중국서 배웠는가?


저녁식사 쿠바음악과 함께




호텔에서 제공한 칵테일술 모지토를 한잔씩


comodoro hotel class  호텔앞 바다 수영장 날씨가 추워 한번해보지 못하고


우리가 묵었던 호텔 comodoro hotel class  여기서 이틀밤을 보냈다.


와인 공장 옛날 제조방법을 자세히 설명하여 놓았다 가이드가 특별히 보여준 선물

가이드 미아 씨가 와인공정을 설명하고

쿠바의 자좀심 국기 어딜가나 국기가

가지가지 와인 구경하기

쿠바 커피 구경하기

쿠바 자유시장 구경






쿠바의 아름다움 시작 다음 6편을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