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01 16편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에르미타쥐박물관
2018.7.01 16편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에르미타쥐박물관
에르미타쥐 박물관 :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미술관이다. 이곳에는 러시아의 회화가 잘 정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들과 네덜란드 · 플랑드르 · 프랑스의 바로크 화가들이 그린 많은 걸작을 비롯하여 중세 이래 서유럽의 작품들이 풍부하게 소장되어 있다. 동양의 미술품도 폭넓게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중앙아시아 미술품이 주목할 만하다.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며, 그 규모만 봐도 러시아인들이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네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2]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겨울궁전과 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된 작품들의 규모가 매우 방대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관람할 만 한 것은 125개의 홀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의 전시실로, 이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유명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카테리나 2세 예까쩨리나는 불타는 권력욕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대담한 여제이다.
표트르 대제와 함께 에카테리나 대제는 러시아의 역사의 큰 업적을 세웠다.
에카테리나 2세는 독일의 귀족의 딸로써 표트르 3세와 결혼을 하였으나 그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결혼 생활로 인해 훗날 에카테리나 대제는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남편인 표트르는 자신의 성장 배경인 프로이센에 대한 사랑으로 훗날 러시아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 반면
]프로이센 출신인 에카테리나는 완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러시아의 역사를 통달하는 등 더욱 러시아를 사랑하게 되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The State Hermitage Museum)‘으로 향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아닐까 싶다. 관광객 중 일부는 이곳만을 들러보기 위에 페테르부르크를 찾기도 한다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박물관에 오는 관광객만 연 300만 명에 이른단다. 제정러시아의 황궁이며 황제의 평소 집무실이 되었던 ‘겨울궁전(冬宮)’을 포함해 4개의 건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곳은 그 자체로 페테르부르크 역사와 문화의 상징이다. 1764년 ‘예카테리나 대제(Catherine the Great)’가 미술관 컬렉션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외부에 공개되기 시작된 것은 1852년부터이다. 일반에 공개되기 전, 왕실이 ‘겨울궁(Winter Palace)’ 옆에 작은 궁전을 지어 미술 컬렉션을 보관 전시했기 때문에, 그 궁전에 ‘에르미타주(Ermitage: 불어로 ‘은둔소’라는 뜻)’라는 닉네임이 붙게 되었고, 이 별칭이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기원이 되었다. 참고로 겨울궁전은 1754년부터 건축가 라스트렐리(Bartolomeo Francesco Rastrelli)가 세운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러시아 건축물이며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겨울궁 뿐 아니라 소에르미타주, 구에르미타주, 신에르미타주, 에르미타주 극장, 예비 보관소(Reserve House) 등 6개의 건물들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겨울궁전인 "에르미따쥐" 박물관 광장은 넵스키 대로가 시작되는 구 참모본부의 凱旋門이 보인다.
참모본부 건물은 18세기 중반에서부터 19세기 초반까지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국방성과 외무성, 재무성이 같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러시아의 역사에서 중요한 무대가 되었던 이 광장(廣場)은 러시아 혁명 전에는 화려한 군대행렬을 황제가 말을 타고 이끌기도 했던 자리이고,1917년 11월 7일 "볼셰비키" 革命을 일으킨 자리가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정치적인 집회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두개의 건물을 이어주는 凱旋門의 지붕 위에는 6마리의 말이 勝戰馬車를 끄는 모습의 靑銅像이 있다.
궁전 안쪽의 광장 중앙에는 "알렉산드르 圓柱기둥"이 있는데 이 기둥은 개선문과 함께 알렉산드르 1세가 1812년에 나폴레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1830년~1834년에 세운 것이란다.
붉은 색의 화강암으로 만든 이 기둥은 무게가 무려 600t으로 돌을 다듬고 운반하는데만 2년이 걸리고 2,400여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靑銅의 天使像까지의 높이가 48m라고 한다.
겨울 궁전이자 현재는 "에르미타쥐 박물관"이다.
본관은 원래 로마노프 왕조의 겨울궁전[3]으로, 옐리자베타 여제 시기에 건축되었다. 이곳에 예카테리나 2세가 수집한 유럽의 예술품 컬렉션을 전시하기 시작해 그 뒤를 이은 차르들에 의해 계속 소장품이 모집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일반에 개방되어 현대까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네바江"가에 있는 "에르미따쥐 박물관"은
제정 러시아 황제들이 기거했던 "겨울궁전"과 5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하루 방문객만 35,000名이 넘는다고 한다.
1817년에 지어진 이 宮殿은 "네바江"을 따라 230m 길이의 연록색 벽과 백색의 기둥이 밝은 조화를 이룬다. 지붕에는 176개의 조각상들이 있고 겨울 궁전으로 사용했던 건물 내부는 화려한 장식과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박물관에는 모두 1,560여개의 방이 있는데, 이중 350여개의 방에는 고호, 고갱, 피카소, 렘브란트, 미켈란젤로등 유명한 화가들의 수많은 그림 뿐만 아니라 각종 조각품과 발굴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1층에는 先史時代부터 古代까지, 2층에는 中世부터 15世紀를 거쳐 18世紀까지,
3층에는 18世紀부터 現在까지의 작품과 중국관 및 인도관 등이 있다고 한다.
은 1754~1762년에 건축한 로코코 양식의 제정 러시아 황제의
겨울 궁전으로 내부는 방과 홀 1,056개 ,창문 1,945개, 계단 117개, 지붕위에 조각상이176개가 있다.
1764년에 예카테리나 2세가 미술품을 수집한 것이 에르미타시의 기원이다. 본래는 예카테리나 2세 전용의 미술관으로, 초기에는 왕족과 귀족들의 수집품을 모았으며 19세기말에는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루빈슨, 피카소, 고갱, 고흐, 르느와르 등의 명화가 전시되어 있고, 이탈리아 등지에서 들여온 조각품들과 이집트의 미라부터현대의 병기에 이르는 고고학적 유물, 화폐와 메달, 장신구, 의상 등 300만 점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겨울궁전에 들어갈 때는외투차림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예의도 지키게하고 도둑방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겨울궁전 방 곳곳에는 감시자가 있다.늙은 아주머니들이 유니폼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데 마음이 착하지않게 생겼다.겨울궁전의 모습 중 특이한 것은 건물 창문이 모두 봉쇄되었다는 것이다.추운 곳이라그런가 보다.
겨울궁전 광장은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농민 혁명이 일어 난 곳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제정 러시아가 망하고 공산주의 소련이 탄생한 곳도 이 광장에서다.
1819년 - 1929년 로씨에 의해 만들어진 웅장한 참모 본부 건물이 있어 황제의 궁전을 호위 하고 있는 형상으로 지어져있다. 참모 본부의 아치형 지붕에는 영광의 병기라는이름을 가진 6마리 말과 2사람의 장군이 끄는 마차위에 천사상이 있고넓은 광장 한복판에는 커다란 원주 위에 십자가를 든 천사상이 위엄스럽게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2013년에는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구 참모본부 건물 중 일부가 박물관으로 편입되었다. 그동안 소홀했던 현대 미술 전용 전시관으로 사용한다.
러시아 혁명 이후 구 귀족들로부터 몰수한 예술품들을 모아놓는 장소가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겨울궁전과 그 주위의 문예 연구기관들을 모두 결합시켜 현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되었다.
거리예술가 동전을 주면 자세를 바꾸고 같이 사진을
사진을 같이 찍고 돈을 요구하는 예술가
러시아 고유 예술품만 모아놓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고대 이집트 유물부터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를 거쳐 소련 시절의 예술품까지 모아놓은 박물관이다.[4] 소련 시절 한때는 경제 개발을 위한 외화가 부족하여 소장된 예술품을 외국에 팔아먹기도 했으나, 소련의 경제가 발전하자 곧 소장품을 확대하였고, 현재에는 마티즈나 피카소 같은 현대 미술작가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총 소장작은 270만점이고, 전시로의 총 길이는 27km이라니까, 며칠동안 가도 다 못보고 온다.
종종 세계 3대 박물관[5]으로 불리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가장 큰 차이점이 약탈 문화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이나 프랑스는 세계를 휩쓸며 각국의 문화재를 약탈해 온 반면 러시아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대신 황실의 소장품과 합법적으로 구매한 작품들 상당수를 차곡차곡 모아왔었는데 대조국전쟁이 그 역사를 바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는 문화재 전담 부대를 만들어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했다. 그리고 이 문화재들은 베를린이 소련에게 점령당했을 때 고스란히 붉은 군대에 의해 다시 한 번 약탈 당했다. 회화, 조각, 귀금속 장신구, 고대 유물 등 약 20만 점의 예술품과 고서 약 200만 권을 약탈해 본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유물들은 1949년 동독 정부와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약 150만 점이 반환되었지만 핵심 유물들과 독일에게 권원이 없는 유물들은 아직 에르미타주를 비롯한 여러 러시아 박물관들에 남아있다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미술관은 입구 중앙 계단부터 화려하다. 영접홀인 문장관에는 8㎏의 황금을 입혀 러시아의 부를 자랑했다. 미술관은 1050개나 되는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황제의 집무실인 ’표트르1세의 홀‘과 황금으로 도금이 되어있는 ’황금의 방‘, 그리고 황실역사와 연관이 많은 ’게오르기 홀‘, ’문장(紋章) 홀‘, 러시아의 국장인 쌍두 독수리 문장 아래 금으로 만든 대 옥좌가 위용을 자랑하는 ’영웅들의 방‘ 등 수많은 홀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하나 같이 화려하기 짝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금박으로 장식된 내부에 눈이 부시다. 그러다가 문득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어 매고 있는 진열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나뭇가지 위에 공작새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는 조형물인데 ’시계‘라고 한다. 그것도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는 시계이다. 이 시계는 영국에서 들어왔는데 17세기 후반 영국의 기계공학자 ’제임스 콕스(James Cox)‘가 제작한 것이다. 4시간마다 공작이 날개를 펴면서 울었으나 현재는 특별한 날에만 운다고 한다. 그보다 이 시계는 다른 의미가 더 중요하다. ‘예카테리나 2세’의 음탕하고 사치스런 면목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물건인 것이다. 그녀에게는 50명이나 되는 첩(?)이 있었는데 그중 한명이 이 시계를 선물했다고 한다. 여왕과 만날 시간을 미리 입력해두어 그 시간이 되면 황금공작새가 화려하게 꼬리를 펼치면서 울어댔다고 한다.
에르미타주의 하이라이트는 ‘회화관’이다. 렘브란트와 루벤스를 비롯해 일리야 레핀, 마티스, 샤갈, 고갱 등의 작품들이 너무나 많이 전시되어 있어 이들이 모두 진품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이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그림 가운데 하나는 루벤스의 ‘로마식 자비(Roman Charity)’이다. 이 작품은, 로마 시대 죄를 지어 아사형에 처해졌던 아버지 시몬(Simon)이 갇혀있는 감옥에 면회 갔던 딸 페로(Pero)가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젖을 물리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했다. 에르미타주에서 만날 수 있는 루벤스의 또 다른 대작으로는 ‘대지와 바다의 결합(The Union of Earth and Water)’이 있다. 이 작품은 높이 2미터가 넘는 대작으로 대지의 신과 바다의 신의 모습이 사람의 실물 크기로 묘사되어 있으며, 루벤스 특유의 격정적이며 강렬한 테크닉으로 신화의 세계를 표현해내고 있다.
그림은 램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가 그린 ’제우스를 기다리는 다나야(1636년 작)‘란 작품이다. 1985년 6월 15일, 이 그림은 생을 마감할 뻔 했단다. 괴한에 의해 칼질을 당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그림은 20년간의 작업 끝에 복원(復原)이 된 것으로 손상된 부분을 색조를 짙게 칠하거나 또는 옅게 처리해서 완성시켰다고 한다. 아무튼 렘브란트의 다나에는 남자를 기다리는 따뜻한 연인의 그리움이 강조되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몰려있어 사진촬영에 실패했지만 ‘렘브란트’의 대표작은 사실 ‘돌아온 탕자’라고 봐야 한다. 성경에 실린 유명한 이야기로 방탕하게 살았던 아들이 거지꼴로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재회하는 그림이다. 아들을 받아주는 아버지의 표정이 매우 인상적인데, 깊은 체념과 고독이 묻어있다. 렘브란트가 이 작품을 그린 시기는 죽기 9년 전인 1660년으로 아버지의 표정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 보인다.
이밖에도 신고전주의와 인상파, 신인상파 등의 작품들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2층의 일부 전시실 뿐 아니라 3층으로 이어져서 전시하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근대 회화들은 3층의 남쪽 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는데, 마티스(Matisse)를 비롯하여 입체파 화가들인 피카소(Picasso), 말레비치(Malevich), 칸딘스키(Kandinsky) 등의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다. 근대 회화 갤러리 옆에 위치한 작은 전시실에서는 독일 낭만주의 회화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19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 캐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주요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3층의 서관에는 중국, 인도, 몽고, 티베트 등 동양 미술품들도 전시되고 있다.
에르미타주 1층 전시실에서는 고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선사 시대,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유물 등이 전시되고 있다. 고대 유물 컬렉션에서는 다양한 그리스 유물들도 선보인다. 기원전 5세기의 고대 그리스 도자기, 고대 그리스 도시들로부터 출토된 유물들, 헬레니즘 조각과 각종 카메오를 비롯한 보석류 등도 다양하다. 다만 고대 유물 컬렉션에 포함된 대부분의 그리스 조각상들과 기념비들은 카피본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참조한다.
서쪽 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는 12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는 서유럽의 장식 미술품들을 둘러봤다면 이젠 서서히 미술관을 빠져나가야할 차례이다. 아직도 구경해야할 게 수없이 많겠지만 다음 일정이 우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1917년에 있었던 10월 혁명 후, 귀족들로부터 몰수된 수많은 미술품들이 에르미타주 미술관으로 유입되면서 컬렉션의 규모는 훨씬 더 커졌다. 현재 3백만 여 점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보관된 작품을 전부 감상하겠다는 욕심은 금물이다. 작품은 하나당 1분씩만 감상해도 17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니 말이다. 또한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건물의 둘레만도 2km나 되고, 350여(혹자는 1050개라고도 한다) 개나 된다는 방을 어떻게 단번에 다 둘러볼 수 있겠는가.
참고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와 지도를 구비해 놓았으니 사용하면 관람에 편하다. 전세계 박물관 오디오가이드를 후원한 송혜교가 역시 후원했고 김성주 그리고 손숙 이 해설을 녹음하였다. 또한 의외로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돈을 추가로 내면. 과연 러시아... 였으나 입장료가 올라간 대신 (600 루블) 무료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학생 신분이라면 반드시 국제 학생증을 발급받아서 가도록 하자. 국제 학생증이 있다면 관람료가 무료이다.
에르미타쥐국립박물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미술관으로, 정식명칭은 국립 에르미타시 미술관이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 에 속한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예술품들이 모아져 예술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의 박물관이 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리타(1490년경) 렘부란드이 다나야(1636)와 돌아온 탕자(1660년)
엘그레코의 베드로 사도와 바울사도(1587년에서 1592년경 제작) 루벤스의 흙과 물의 연합(1612년에서 1615) 로댕의 ‘영원한 봄(1897년)’ 카메오의 ‘기원전 3세기’, 고갱의 ‘과일을 들고 있는 여자(1893년)’ 마티스의 ‘붉은방(1908년)’, 피카소의 ‘부채를 든 여자(1908년)’ 등 세계적인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의 시작은 "표트르 大帝"의 딸인 "엘리자베타 1세"가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762년 남편인 피터3世를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예카트리나 2世" 女帝가유럽의 미술품을 대량으로 수집하므로 점점 규모가 확대되었다.
"에르미타주"는 프랑스어로 "은둔의 장소"란 뜻으로 "예카트리나 女帝"는 이곳의 작품들을 혼자 즐겼으며 간혹 손님을 초대했단다. 손님이 관람 도중 하품을 하면 예술품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을 해 냉수를 들이키게 했다고 한다.
그녀는 "나는 미술작품은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림을 좋아한다" 라며 작품수집에 욕심을 내었지만
이곳의 모든 예술품은 약탈품이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수집을 한 것이 다른 박물관과 다르단다.
이곳에는 모두 300萬点의 소장품들이 있어서 이런 내용을 미리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우리 예정의 한 두시간에 관람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走馬看山이 아닐까.
북한의 그림도 한 점이 있고, 우리나라의 김흥수씨 작품도 한 점이 있다고 하는데 볼 시간이 없었다.
에르미타쥐의 대표적인 것들로는 안나 요안나브나의 왕좌, 표트르 홀, 중앙계단(요르단계단), 문장관, 플라제마나쉬의 은쟁반, 죠 바그마티온의 초상화, 전쟁갤러리, 장군들의 초상화, 게오르기 홀과 왕좌, 발쇼이 교회(대관식 장으로 쓰임), 로코코시대의 프랑스 예술관, 알렉산드로관, 프랑스응용미술관, 카메오의 식기, 18c 프랑스 예술관, 황금 응접실, 벨르이 홀, 규방, 공작석 응접실, 고딕스타일의 서재, 대사륜 마차(황제의 마차),
파빌리온 전시관, 발르이 에르미타쥐 궁중 정원, 공작새 시계, 르네상스 전기관, 에르미타쥐 극장, 라파엘 회랑, 미켈란젤로관, 기사관, 스네이테르관, 고대회화사의 회랑, 디오니스관, 칼리 반 화병관, 20개의원주관 등에 수많은 작품, 보물들이 쌓여있다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6.28~1640.5.30]의그림
국적 벨기에 출생지 독일 베스트팔렌 지겐 사진설명 우리나라의 대표 효녀가 심청이라면, 고대 로마에는 페로가 있다. 페로는 늙은 아비 키몬이 금이야 옥이야 키운 외동딸이다. 그런데 아비가 어떤 일로 감옥에 갇혔는데,
청천벽력 같은 판결이 떨어졌다. 먹을 것을 아무 것도 주지 말고 굶겨 죽이라는 것이다. 혼자 옥바라지를 하는 효녀 페로는 매일 쇠약해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른다. 간수가 어찌나 서슬이 퍼런지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도 들여보낼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며칠 못 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생긴 것이다.
페로는 며칠 고심 끝에 야릇한 꾀를 하나 낸다. 굶어서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제 젖을 물리기로 한 것이다. 해산한지 얼마않된 딸은 밧줄로 두손이 묶인채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운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던 아버지 키몬은 다행히 회생했다. 페로가 매일 풀방구리 드나들듯하면서 젖을 물리니 오히려 늙은 아비는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고 한다.
당국에서는 피골이 말라가는 아버지를 보고 자신의 젖을 아버지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죄수를 석방했다고 한다. 하여간에 자식의 지극한 정성이 아버지를 살린내용은 교훈적인내용임에 틀림없다.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뜨게해주었듯이..
에르미타쥐 박물관(겨울궁전)- 제정러시아 황제들이 거처하던 궁전으로 흰 기둥이 잘 어울리는 로코코 양식이다.
1762년 라스트렐 리가 건축했는데 1056개의 방과 177개의 계단 2000개가 넘는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건물 지붕위에는 170개의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다. 겨울궁전은 총 6개로 연결 되어 있는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 건물 중의 하나다. 1776년 에까쩨리나 2세가 서구에서 226점의 회화를 들여와 전시를 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지금은 약 300만점의 전시품이 소장 되어 있다. 서유럽관, 고대유물관, 원시문화관, 러시아 문화관, 동방국가 문화 예술관, 고대화폐전시관 등 6개 전시관이 있다. 125개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 미술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궁전 광장은 둥근 원 모양이다. 광장에는 탑 위에 십자가와 예수 상이 있다. 주위에는 6개의 조각상이 있다. 궁정 안의 4각형으로 된 건물 가운데는 정원과 벤치가 있다. 궁전은 흰색 조각 기둥 수십 개가 기둥마다 꽃가지를 조각하여 빼어나게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규모나 예술성이 극치를 이루어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도 정고함과 화려함이 베르사이유 궁 못지않다.
바닥은 모두 대리석이고 층계 마다 조각과 벽화로 장식 되었다. 조각상은 대부분 나상이다.
1750년대부터 작품이 2층 전시실에 시대별고 수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이드 설명이 너무 빨라 몇 개만 정리 했다. 산데리아 전시장은 크리스탈 상제리, 황금나무새, 공작 날개 움직이게 만든 조각 등 수백 점이 전시되었다.
램브란트의 아부라함 아들의 제사 지내는 그림에는 그의 아들 이삭의 가슴에 성경이 있다, 다빈치의 리다마돈나와 다수 작품, 미켈란젤로가 만든 조각상 까라바조 비파타는 소녀, 루벤스의 플란더스의 개 등등 300만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작품과 많은 관광객에 취하고 밀려서 1시간 정도 돌아보고 나왔다.
여름궁전이 화려하고 여성적이라면 겨울궁전은 웅장하고 남성적이다. 가이드는 바디칸 박물관,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라고 한다.
피카소의 그림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6.28~1640.5.30]의그림
성경에나오는 돌아온 탕자
작품 수는 많은데 바디칸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에 비해 가치 면에서 질이 많이 뒤지는 것 같다.
겨울궁전 광장에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고 한다. 1905년 피의 수요일 사건으로 러시아 공산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들이 추운 겨울 이 광장에 모여 아이들에게 먹을 빵을 달라고 외쳤다.
황제가 발코니에 나와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들은 황제가 어머니들의 말을 승낙하는 줄 알고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황제가 손을 흔든 것은 기병대의 출동을 알리는 신호 였다. 기병대는 광장에 몰려나와 200명 어머니들의 목을 쳤다. 광장은 피로 물들고 황제한테 떠난 민심은 혁명으로 이어졌다. 황제 축출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1917년 레닌의 주도하에 황제를 축출하고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을 탄생 시켰다. 황제가 어머니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으면 제정 러시아는 존속 되었을 것이다.
이집트 유물전
이집트 유골
박물관 창문 밖으로 아르미타주 광장이 내려다보인다. ‘궁전광장’이라고도 불리는데 소비에트 연방을 탄생시킨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던 역사의 현장이다. 도시의 상징적인 곳으로 지금도 기념일마다 많은 인파로 넘쳐난다고 한다. 광장의 한가운데에 세워진 탑 모양의 구조물은 ‘알렉산드르 기둥(알렉산드롭스카야 깔론나)’이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높이가 47.5m나 되는 이 기둥 전체가 하나의 화강암 덩어리로 만들어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 뒤에 보이는 건물은 참모본부이다
다음은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넵스킨대로 황금첨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