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후기 1편

2017.5.27 21편 체코 모헤미아 타보르(Tabor)

차세대2 2017. 6. 26. 09:54

2017.5.27   21편 체코 모헤미아 타보르(Tabor)


프라하 야경을 보고 보헤미아지방의 타보르라는 마을에 있는 PAICAT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밤11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다시 매일은 프라하로 가서 바츨라프광장과 천문시계 틴교회를 볼예정이다

타보로는 숙소가 있어 잠시 들렸다가 가는곳이며 유적지는 아래와 같다.


 보헤미아지방의 Tabor라는 도시는 보헤미아는 현재의 체코로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성을 가지는 곳이다. 특히 개신교도 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겨주는 곳이다. 그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은 바로 프라하 남쪽으로 약 70km떨어진 Tabor라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바로 보헤미아의 개혁 사상의 중심지 였을 뿐만 아니라 바로 제 1차 30년 종교 전쟁의 시발지였다.


이 곳 사람들은 일찌기 얀 후스개혁가의 주요 활동 무대 였으므로 일찌기 개혁적 종교 사상에 깨어있던 곳이었다. 후스는 말씀위주의 신앙생활을 선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 사상에 반대하는 로마 교황청의 반대와 음모로 후스는 코스탄스에서 화형을 당하고 만다. 보헤미아의 정신적 지주의 화형 소식을 접한 보헤미안들은 로마 교회에 공식적으로 반대의 노선으로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파견한 사절단을 성위에서 던져 버리고는 전쟁이 시작되게 된다. 얀 지즈카 장군의 영도하에 카톨릭 군대를 몇번이나 물리쳤으나 마지막에는 결국 패하고 만다.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강제령에 의해 강제로 카톨릭지역이 된다. 그러나 보헤미안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간직하며 오늘날에도 상당수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타보르는  붉은 지붕의  요새 같은 중세풍의  소도시로 타보르 강이  휘돌아 흐르고 고대와  현대가  공존 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을  “타보르(Tabor) 라고 한데는 1412년   얀 후스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와서 머물면서부터  불리워졌다고 한다.  이유는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된  변화 산이  이스라엘에서는  “타보르산”이라고  불리워졌는데 보헤    사람들에게 이 도시는 변화  혹은 계시의 도시로  인식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광장에는  변화 산 교회가  세워져   그 옆에는  시 청사와 부속건물이,  광장 중앙에는   “지슈카 장군  동상”이  서  있다.  시청 건물  안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동굴을 파면서 결사 항전한  지슈카 장군과 후스 파 후예들의 투쟁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여의  않아 동굴입구만  눈 팅만 하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기 100년전에  이미 성    번역하고  말씀을 생명을 걸고 실천 하려 했던 곳이다 



 PAICAT 호텔에서 내려다본 타보르시내

PAICAT 호텔에서 내려다본 타보르시내

타보르광장


우리가 묵었던 호텔


기념탑



타보르광장




타보르광장과 시청사

 광장 중앙에는   “지슈카 장군  동상”이  서  있다

타보르광장과 시청사


광장에는  변화 산 교회가  세워져   그 옆에는  시 청사와 부속건물이,  광장 중앙에는   “지슈카 장군  동상”이  서  있다.

광장에는  변화 산 교회가  세워져   그 옆에는  시 청사와 부속건물이,  광장 중앙에는   “지슈카 장군  동상”이  서  있다.

광장에는  변화 산 교회가  



  시 청사와 부속건물이










기념공원

타보르 지도

도시 뒤족에는 큰 호수 공원이 있는데


도시 뒤족에는 큰 호수 공원이 있는데  많은 오리들이 행복하고 자연스레 놀면서

탑위에서 내려다본 광장

탑위에서 내려다본 시내모습



탑위에서 내려다본 광장



다음편은  프라하로 간다